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킨다. 작가가 매 작품마다 선보이는 이러한 연금술적 변환의 기적은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작가 생전 마지막으로 묶어낸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 2007) 이후 작고하기 전까지 발표한 세 편의 소설(「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빨갱이 바이러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과 함께 김윤식, 신경숙, 김애란 세 분이 추천한 세 작품(「카메라와 워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닮은 방들」)까지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실린 마지막 작품집 『기나긴 하루』. 전쟁과 분단, 사회와 개인의 아픔을 그 작은 몸으로 모두 받아낸 팔십 년. 그 시간은 선생에게 어떤 긴 하루로 남았을지....(요약)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찬바람 난 지 언젠데 자꾸 속에서 열불이 나려고 해서 손사래로 부채질을 하다 말고 내가 미쳤지, 나는 세면대로 가서 찬물로 북북 세수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뭐가 미쳤다는 건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더 미친 것은 남편에게 뭔가 하소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였다. 오늘 온종일 내가 무슨 일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지 최소한 남편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근하는 남편에게 슬쩍 운을 뗀다는 게, 여보 나 왜 이렇게 울화가 치밀고 얼굴이 화끈거리지, 했더니 그가 한다는 소리가 갱년긴가보군, 했다. 그래 갱년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화상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가 여자에 대해 뭘 안다고. 의학적인 답변으로는, 나 지금 갱년기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팔십 노인들이 모여 앉아 갱년기 타령을 하는 것을 참아내야 할 걱정으로 아침부터 울증에 빠져 있는 아내에게 그건 할 소리가 아니지.
사실 시누이가 이혼하기 전까지 시어머니는 며느리 같은 거 거들떠도 안 봤다. 한 인물 하는 시누이는 대학 때 부잣집 아들에다 키도 크고 인물도 잘나서 킹카로 통하는 동기와 소문난 연애를 해서 한때 어머니로 하여금 딸 가진 근심을 흠뻑 맛보게 했다. 어머니의 성화에는 아랑곳없이 그야말로 서늘하게 견디던 시누이는 그 킹카가 가업을 이어받은 후에 결혼에 골인했고, 연이어서 아들딸을 차례로 낳았다. 딸의 지위가 반석같이 굳어졌다고 판단한 시어머니는 기고만장해졌다. 나는 꿀릴 게 없이 살아왔다는 게 당신의 일생을 쇠꼬챙이처럼 관통하는 자부심인데, 아들에 관해서는 하등 내세울 게 없어서 적잖이 자존심 상했을 것이다. 집안에서나 대외적인 행사에서나 딸사위를 내세우고 아들 내외는 치지도외했다. 그런 딸이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 한바탕 난리를 예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도록 모든 문제 - 자녀 양육 문제와 위자료 문제 - 등을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받아내고 서류 정리까지 깨끗이 마무리된 후에 친정에는 통고만 해온 것이다.
5호선을 타려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시누이한테서였다. 서둘지 마. 이제부터는 집에서 차리지 말고 나가 잡수라고 했어. 내가 아주 예약까지 해놓았으니까 틀림없을 거야. 말이야 바른대로 말이지, 네 잘못이야. 처음부터 울 엄마를 그렇게 길들이는 게 아니었어. 만만하게 보이면 기어오르는 건 늙은이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야. 그녀답지 않게 가벼운 설교까지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거 하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느냐는 가벼운 질책은 시누이 노릇이라기보다는 우정에 가깝다. 시누이보다는 친구로서 그 여성이 고맙고 의지가 되는 건 사실이다. 나도 고분고분한 성미는 아닌데 처음부터도 아니고, 시집살이 무섭던 옛날에도 고방 열쇠 물려받을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시어머니한테 꼼짝 못하고 쥐여 살게 된 사정은 내가 생각해도 하도 치사스럽고 한심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시어머니가 사준 집이었다. 시어머니는 죽는 날까지 돈은 움켜쥐고 있어야지 생전에 자식에게 물려줬다가는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는 믿음이 강한 분이었다. 정년까지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했고 먼저 돌아가신 시아버지도 공무원이었다. 두 분이 다 돈을 벌고 자녀도 남매밖에 안 뒀으니 가난하게 살았달 순 없지만, 검약이 몸에 밴 분들이었다. 부자 동네 학군에서도 잘 가르치기로 소문이 나 육학년 담임을 내리 삼 년씩이나 맡을 때가 교사로서의 시어머니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현직 교사의 과외는 금지돼 있었지만 학부모들의 간청을 못이기는 척 자기 반 아이들 중 우수한 학생만을 골라 몰래 과외도 서슴지 않았다. 육학년 담임선생을 둘러싼 치맛바람과 성의표시의 도가 지나쳐 사회문제가 되고 마침내 중학교 입시가 없어질 그 무렵이었다. 시어머니는 그 시절을 마치 도깨비장난처럼 돈이 쏟아져 들어오더라고 회상했다.
도깨비장난으로 생긴 돈을 도깨비한테 도로 빼앗기지 않으려면 땅을 사는 게 수라는 게 시어머니의 믿음이었다. 땅에 대한 시어머니의 그런 철학과 당시 공무원이던 시아버지의 정보랄까, 선견지명이 맞아떨어져 여기저기 땅을 조금씩 사 모은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남편의 추측일 뿐 명색이 장남이 그 땅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설마 돌아가신 후에는 그 땅이 있는 땅인지 없는 땅인지, 오랜 세월 자식들한테 세도 부릴 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그 정체를 드러내리라 체념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시기가 어머니 생전에 왔다. 시누이의 이혼이 그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뽐내기 좋아하는 시어머니에게 만족감을 주던 딸이 이혼하자 그게 중대한 결격 사유라고 생각한 듯했다. 출세를 했나 돈을 많이 벌었나 하다못해 다니는 회사가 남들이 다 알아주는 버젓한 회사인가, 다 아닌 아들이 그 나이에 집까지 없다는 게 뻐기기 좋아하는 시어머니에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겠는가.
못난 아들의 자존심을 은근히 긁은 적은 많았지만 그때처럼 대놓고 분풀이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게 한바탕 야단을 치고 나서 땅 판 돈이라며 우리에게는 과분한 중형 아파트를 사주었다. 꾸중을 들을 때는 정말이지 끝까지 참아내기 힘들어 그 돈 도로 내놓고 싶었지만 못 그랬다. 남편이 나 대신 그래주길 바란 것도 같고, 남편이 그러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던 것도 같다. 아무튼 우리의 참을성이 아파트 한 채 값이라면 우린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래의 일인데도 그 일을 계기로 이 집에 시집오고 나서 이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고부 사이를 평화롭게 유지시켜주던 불간섭주의랄까, 쿨한 관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유를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게 돈의 힘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아파트를 사주시고 나서 시어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시는 투가 강압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고 내가 그걸 꾹 참고 받아들인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팔순이 다 된 노인에게 그렇게 많은 사교모임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기적인 것만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되는 것 같았다. 처음 시작이 얼마나 모욕적이었는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회수 때였으니까 아파트 사주신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무리 자식 신세 안 지는 걸 코에 걸고 사시는 도도한 분이라지만 생신만은 우리가 꼬박꼬박 챙겨드렸다. 거의 밖에서 치렀지만 그건 당신이 원하셔서 그랬던 거고 집에서 차리기 싫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이름 붙은 생신이고 버젓한 아파트도 장만했겠다 집에서 차리겠다고 했더니 당신도 좋아하셨다. 집들이 겸해서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척까지 청해서 풍성하고 화기애애한 잔치를 벌여 시어머니를 흐뭇하게 해드렸다. 그 후에도 내 음식 솜씨를 두고두고 칭찬해주신 것도 애써 차린 보람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꼭 대접해야 할 친구분들이 몇 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집에서 차려드려야 하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먹긴 밖에서 먹지만 딸이나 며느리가 참석해서 살갑게 대접도 하고 나중에 음식값도 내는 게 당신네들 생신모임의 관례라고 했다. 자식 신세 안 지고 산다는 걸 코에 걸고 사는 잘난 노인네들인 줄만 알았더니 자식 효도 받는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하는 귀여운 데도 있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그럼 지금까지 그 역할은 누가 했을까, 보나마나 시누이였겠지. 시누이 이혼 후에도 남들이 행여 수군거릴까 신경쓰면서도 맡길 데가 거기밖에 없었을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불쌍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 잘난 시어머니를 불쌍해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날 시어머니한테 당한 모욕은 며느리로 하여금 다시는 그분과 화해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4.4회 모임이니까 L호텔 뷔페로 할 거라고 했다. 4.4회라는 모임 이름은 경성사범 입학년도인 1944년에서 따온 거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경성사범 출신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 들어갔다는 걸 반드시 밝히고 싶어했다. 일제시대에 경성사범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전교 일등이나 가능한데 그 전교도 시시한 학교는 안 되고 명문 학교라야 된다는 거였다. 4.4회 멤버는 다행히 많지는 않았다. 연세들이 높으니까 돌아가신 분도 있고 그분들의 특별한 우월감에 동조할 만큼 현재의 삶도 유복한 분들만이 동참하는 모임 같았다. L호텔이라면 점심 값이 꽤 나갈 텐데, 내심 쫄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 해보는 대외적인 효돈데 그 정도는 해야지, 집에서 요리 솜씨 부릴 때보다 훨씬 더 신이 났다.
노인네들이 식탐도 많고 예상했던 것보다 양도 큰 것에 놀랐다. 헌 부대에 곡식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옛말을 실감케 했다. 눈치 봐서 잘 잡숫는 것을 접시가 넘치게 덜어다드려도 순식간에 없어졌다. 갈비는 물론 노인네들이 잡숫기 어려운 대게나 가재도 미처 채워드리기도 전에 어찌나 잘 잡숫는지 아무리 뷔페라지만 너무 자주 드나들며 맛있는 것만 담아오는 게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당신들도 좀 움직였으면 좋으련만 처음 한 접시만 손수 덜어오고 앉은 채 꼼짝 않고 맛있는 걸 마음껏 즐기셨다. 그 모습을 보니 아무리 비싸도 돈이 안 아까울 것 같았다.
나름대로 보람 있는 효도를 한 것 같아 꽤 나가는 음식값도 아까운 줄 몰랐다. 카드로 긋고 영수증을 받는데 손님들을 저만치 앞세우고 뒤처졌던 시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돌아오더니 영수증을 날렵하게 낚아채서 당신 핸드백에 찔러넣으면서 날카롭게 속삭였다. 네 구좌로 부쳐주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그만한 액수가 다음날 내 통장으로 입금돼 있었다. 그 순간 모욕당한 듯한 기분은 아파트를 당장 토해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4.4회 모임 외에는 다들 L호텔보다는 싼 데서 했지만 여러 번 치르는 걸 보니 그게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면 수월치 않은 액수일 테니 마냥 좋은 얼굴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 그분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는 걸 인정 안 할 수가 없었다.
회수 해가 지나자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올해부터는 4.4회가 발목을 잡았다. 4.4회가 정기적으로 모일 구실로 계를 만든 건 최근의 일이라고 했다. 그것도 누가 목돈을 타가기 위한 계가 아니라 돈만 다달이 각출할 뿐 타가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같은 경성사범 동기인데 교직을 중간에 그만두고 살림만 하다가 늘그막에 과부 되고 자식들도 병들거나 돈을 못 벌어 단칸방에서 비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아낸 것도 시어머니였고, 복 좋은 우리들이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도움에 나서자는 제안을 한 것도 시어머니였다. 돕는 방법도 매우 합리적이었다. 매달 십만 원씩 들고 나와 점심 먹고 나머지는 그 친구에게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먹는 것은 최소한으로 줄여서 싸구려로만 먹는다고 했다. 그 정도만 해도 감동 스토리인데 시어머니는 거기 만족하지 못하고 점심은 자기 집에서 낼 테니 모인 돈 전액을 보내자는 안을 냈고 멤버들로부터는 물론 대환영을 받았다. 그 멤버들을 더욱 편하게 해주려면 도우미가 필요했다. 늙은이가 부엌에서 움직이는 건 같은 늙은이끼리도 편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내가 다달이 시어머니 아파트로 시누이 말 짝으로 파출부 나가게 된 경위가 대강 이러했다.
오늘도 시어머니는 나 할 일은 수저만 놓으면 될 정도로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며느리 손 안 빌리고 당신 혼자서 완벽하게 차려놨다는 자부심으로 씽쌩 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시어머니 주변을 나는 헛되게 맴돈다. 내가 할 일을 찾아낼 수가 없어서 어쩔 줄을 모를수록 얼굴만 달아오른다. 그런 나를 가만 놔둘 시어머니가 아니다. 얘야, 손님 초대한 줄 뻔히 알고 오면서 꽃다발이라고 한 다발 사오면 내가 얼마나 낯이 나겠니? 너는 다 좋은데 센스가 모자라.
남친이 자기를 좋아하는 여친에게 너는 다 좋은데, 성격도 좋고, 능력도 있고, 직장도 좋은데, 생긴 것만 빼면 말이야,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여자친구가 받은 모멸감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남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양가가 상견례를 치르고 나서 엄마는 별로 탐탁하지 않은 듯 말했었다. 자고로 시어머니 자리는 좀 무식한 듯해야 며느리 신상이 편하다 했는데.... 엄마는 그때 그 자리에서 벌써 경성사범 출신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질렸을 것이다.
4.4회 멤버들은 열 명 남짓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정확하기도 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의 한꺼번에 시간을 지켜 나타났다. 그들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떠들던 수다를 식탁에서 먹고 마시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주로 같이 늙어가는 동창들 얘기였다. 누구는 암, 누구는 치매, 누구는 뇌졸중에 걸리고 누구는 과부가 됐다는 우울한 소식에도 그분들의 식욕은 주춤도 안 하고, 심난해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자리가 거실 소파로 이동하자 나는 마음이 급했다. 커피든 녹차든, 시어머니 의중의 가장 아름다운 잔을 대령해야만 뒷말이 없다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시어머니 생각으로는 그거야말로 센스의 문제일 터, 그러나 센스야말로 간섭을 가장 싫어하는 원초적인 감수성이라는 걸 그는 알까.
후식 자리의 화제는 단연 아픈 얘기였다. 고혈압, 당뇨, 불면증, 건망증, 난청, 퇴행성관절염, 심지어는 요실금까지, 병 자랑을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내가 참아줄 수 없는 건 병 자랑이 아니라 그 모든 증세를 갱년기 탓으로 돌리는 거였다. 갱년기엔 누구나 다 그래. 갱년기 현상은 조만간 지나가게 돼 있어. 갱년기를 잘 넘겨야 하는데. 정작 갱년기는 여기 이 부엌 구석에서 거봉포도를 송이째 내놓을 것인가 알알이 떼어서 내놓을 것인가를 못 정해서 속에서 열불이 나고 있는 난데. 나는 손사래로 부채질을 대신하면서, 조용히 음습한 죽음이나 직시해야 할 노인들의 즐거운 착각도 이쯤 되면 초기 치매현상이 아닐까 걱정이 되는 한편 재미있기도 했다.
제동을 걸 사람이 없어선지 착각이 착각을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화제에도 기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병 자랑이 서로의 용모에 대한 탐색으로 변했다. 그래 갱년기니까, 병 자랑보다도 미용에 대한 관심이 더 어울리겠지. 너 그동안 보톡스 맞은 거 아냐? 쟤 저번에 땡긴 거 이제 자리잡을 때가 됐는데 아직도 어색한 것 같지 않니? 쟤가 몇 년이나 젊어지나 봐가며 나도 해볼까 하는데…… 한 사람의 삼십 년 젊어지는 꿈은 갱년기에서 삼십 년을 더 끌어내려 처녀 때 자기가 한 인물 한 얘기, 자기를 따르던 숱한 남자들 얘기로 접어들었다. 연애는 영원한 회춘재인가. 노인들은 자기가 지금 몇 살인지 헷갈리고 왔다갔다하면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생기가 나 보였다.
어느 자리에도 꼭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나 전환을 위해 좋은 일이었다. 시어머니가 선창을 하고 다들 따라 불렀다. 그윽한 애조를 띤 후렴은 이러했다. ‘무까시노 히까리 이마 이즈꼬.’ ‘그 옛날의 광영은 지금 어디에.’ 대체 그 소절을 왜 그렇게 애타게 반복해 불렀을까. 저분들이 하자 없이 모범적으로 살아온 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평생 초등학교 선생 노릇하면서 언제 한번 광내고 살아본 적이 있다고. 그러면서도 인생 전반에 대한 측은지심 같은 걸로 마음이 울적하게 가라앉았다. 그때 시어머니가 나에게 이제 가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그런다고 당장 나오긴 좀 뭣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제야 곗돈들을 모으다 말고 누가 느닷없이 말했다. 야, 그 배고프던 그 시절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시선이 아득해지는 그들을 뒤로하고 시어머니 아파트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 노인들이 애타게 찾은 그 옛날의 광영이 그럼 배고픈 시절이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그러면서도 나는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것한테 쫓기는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조금 서둘렀다.
세미가 지적해준 데는 그녀가 근무하는 회사가 있는 빌딩 일층에 있는 커피빈이었다. 세미는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내가 너무 일찍 온 거였다. 세미는 한 달 전까지 내 며느리였던 아이다. 아들 혼자서 집에 다니러 왔을 때, 세미는? 하고 물었더니 헤어졌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겨우 한 달에 한두 번 시부모 보러 오는 문제로 티격태격했구나 싶어 언짢은 걸 참고 세미가 싫다면 오지 말지 뭣 하러 왔냐고 우선 내 아들 마음부터 능쳐주려고 했다. 그렇다고 부모 된 도리로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갈 건 아니다 싶어, 세미, 걔 오냐오냐 물렁하게 굴면 네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을 아이다 너, 바야흐로 일장연설을 하려는데 아들이 세미 지금 제 와이프 아니라니까요. 전처가 된 지 한참 되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뭐야, 이놈아. 결혼이 무슨 장난이야. 남편이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 흥분하지 마세요. 이미 끝난 일이에요. 그러고는 벌써 전에 살던 오피스텔로 짐 옮기고 따로 나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세미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하도 기가 막히니까 말도 잘 안 나와 속으로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물었다. 감히 이혼이란 말을 누가 먼저 꺼냈냐? 겁도 없이. 그 말 먼저 꺼낸 사람이 누구냐고? 엄마,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왜 안 중요해. 그릇이 깨져도 누가 깨뜨렸냐고 묻는 게 순서야. 책임의 소재는 분명히 해야 하니까. 엄마, 엄마가 무슨 재판관이에요. 따질 걸 따지세요. 우린 서로 같이 사는 데 멀미가 났을 뿐이에요. 우린 둘 다 어엿한 성인이구요. 글쎄, 누가 먼저 멀미를 냈냐니까. 어느 날 내가 멀미를 내고 있다 보니 그 친구도 멀미를 내고 있더라고요. 멀미나는 차는 빨리 내리는 게 수지 누가 먼저 멀미가 났냐는 따져서 뭐하게요. 걔 참 앙큼하구나, 세미 말이다. 남의 자식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우린 지금 남남이라니까요, 완전.
그애들은 부모 속도 안 썩히고 부담도 안 주고 너무도 쉽게 결혼했다. 요즘 혼기보다는 좀 이른 나이긴 했지만 혼기를 놓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좋은 대학 경영학과 나와 재벌기업에 취직했으니 월급도 많이 받을 것이다. 즈이 아버지와는 달리 재벌에 대한 적대감도 없고 경제관념도 야무져서 오피스텔도 세든 게 아니라 샀다고 했다. 며늘애도 제힘으로 장만했는지 부모가 사줬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명의의 오피스텔에 살다가 둘이 결혼하게 되니까 두 오피스텔을 전세 줘서 합한 돈으로 살 만한 아파트를 전세 내서 신혼살림을 꾸리다가 파경을 맞은 것이다. 이런 사정이니 아들은 결혼 때도 부모에게 신세를 지거나 걱정을 끼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때 난 왜 그렇게 심난했을까. 이러려고 그랬나. 부모한테 손 안 벌리고 인륜대사를 치르려는 아들이 대견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 다 하는 걱정을 나만 안 하는 게 왠지 불안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약한 소외감이었다.
뭐가 잘못됐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예단을 생략하자는 건 아들 가진 쪽에서 예의상 한번 해본 소린데 그쪽에서 백 퍼센트 수용했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지만 경험자들로부터 얻어들은 가장 천격스럽고도 복잡 미묘한 저울질에서는 일단 비켜난 것 같아 한숨 놓았었다. 그 대신 패물은 좀 해주려고 했는데 커플반지가 있으니까 됐다고 하는 걸 살살 달래서 귀금속상에서 만나기로 힘들게 날짜를 잡았다. 세미는 그 으리으리한 보석상을 한번 쭉 휘둘러만 보고는 됐어요, 됐어요, 뭐가 됐다는 건지 내 소매를 끌고 가까운 백화점으로 갔다. 그러고는 액서서리 파는 데서 장난감 같은 팔찌와 귀고리 목걸이 들을 성의 없이, 마치 쓸어담듯이 골라잡았다. 그래봤댔자 귀금속에다 대면 몇 푼 안 되지만 쓰잘 데 없는 것들을 하도 여러 개 사는지라, 얘야, 하나를 가져도 값나가는 걸 가져야지 그따위 것들 아무리 많아봐야 아쉬울 때 하나도 도움 안 된단다, 했더니, 세미가 그 동그랗고 맑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럼 궁할 때 팔아먹으라고 저한테 패물 해주려고 하셨어요? 이러는 거였다. 참 맹랑한 아이구나 싶기는 했지만 욕심스러운 아이는 아닌 것 같은 게 마음에 들었었다.
이런 며늘아기는 설사 아들이 이혼을 당했다고 한들 거덜날 것은 없으리라. 거덜도 뭐가 있어야 날 게 아닌가. 아들딸 결혼할 때마다 한 재산 기울여서, 기울일 재산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떡 벌어지게 해주고, 예단입네 살 집입네 과분하게 장만하는 사이에 사돈집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자식들한테 정떨어지기도 하는 과정이 왜 있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부모는 투자를 안 했으니 부모의 발언권이 약하고, 저희들끼리는 구속력이 없었던 게 아닐까. 결혼이 무슨 장난이냐고 일단 호통을 치긴 했지만 돈 문제가 얽히지 않은 결혼은 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드나드는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하게 짧고 나풀나풀한 치마를 입고 있다. 커피빈 안쪽 벽은 완만한 둥근 곡선인데 선을 따라 턱을 만들어놓아 걸터앉을 수도 있게 꾸며놓았다. 동성끼리나 사무적인 관계로 보이는 남녀만 테이블에 마주 앉고 사귀는 사이로 보이는 커플은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해놓은 그쪽에 가 앉아 있다. 남자 무릎 위에 올라앉은 계집애도 있고, 남자 목에다 제 팔을 감고 있는 아이도 있다. 저쪽 자리는 남녀의 친밀한 신체 접촉을 위해 꾸민 자리인 듯했다. 근데 가만히 보니 상대를 주무르고 있는 건 주로 여자고 남자는 수동적이다.
아들이 처음으로 세미를 집에 데리고 와서 소개시키던 날 생각이 났다. 세미는 우리 아들의 단단한 가슴팍이나 울퉁불퉁한 팔뚝을 괜히 탁탁 치곤 했다. 부드럽게 어루만질 때도 있었다. 무슨 애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산만하게 굴면서 내 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지만 내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니까, 철부지의 천진난만한 버릇쯤으로 봐주려고 애썼다. 남들은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단점만 보인다는데 우리 부부는 눈에 콩 꺼풀이 씐 것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도 우리 식의 책임 회피가 아니었을까.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닥 더운 날은 아니어서 에어컨 대신 창문을 있는 대로 열어놓았었다. 저녁 후의 선들바람은 쾌적했다. 별안간 세미가 비명을 질렀다. 모기에 물렸다는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난 몰라, 어떻게 집 안에 모기가 다 있어, 방방 뛰면서 난리를 치기에 나는 우선 곤충에게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을 물린 자리에 발라주려고 했다. 물것에 예민한 체질인 것 같았다. 희고 길고 매끈한 팔뚝에 두 군데나 방금 물린 자국이 콩알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약을 발라 주었는데도 팔짝팔짝 뛰면서 천금 같은 우리 아들에게 당장 그 모기를 잡아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오빠가 당장 잡아올게, 아들은 식당과 거실의 의자들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면서 온 집 안을 난장판을 만들고 나서 기어코 모기 한 마리를 손으로 때려잡아 개선장군처럼 자랑스럽게 세미에게 갖다 바쳤다.
그때부터 난 그 아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모기보다 더 앵앵거리던 혀 짧은 어리광하며, 남의 아들을 그 부모 앞에서 머슴 대하듯 하는 버르장머리하며, 공주병도 중증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귀여운 듯이 바라만 봤고 그애를 보내고 나서 우리 아들이 어쩌다 그런 아이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마음에 안 차했더니 그가 한다는 소리가, 내버려둬. 곰하곤 못 살아도 여우하곤 살 수 있다지 않남. 엄마가 하도 무뚝뚝하고 둔하니까 제짝은 정반대로 골라잡은 거야, 그랬다. 그때 남편하고 한바탕 싸워서라도 그 혼사를 막아야 했거늘.
세미가 들어오고 있었다. 딴 계집애들처럼 나풀대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굽이 십 센티나 될 것 같은 구두를 신고 모델처럼 또박또박 우아하게 걸어 들어왔다. 한때 며느리였던 여자와 마주 앉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끼리 합석하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세미는 머리만 한 번 까딱하고 나서 만나자고 한 것은 네가 먼저니 말도 네가 먼저 하라는 투로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면구스러워서 나는 시켜만 놓고 안 마시고 있던 카푸치노를 한 모금 홀짝 넘기면서 말문을 열었다.
어떤 커피로 할래? 여긴 커피 종류가 많구나. 요샌 다 그래요. 커피는 온종일 여러 잔 마셨으니까 녹차로 할게요. 이런 데서 녹차도 파니. 얼굴이 좀 수척한 것 같구나. 살도 좀 빠지고. 그래요? 잘됐네요. 마음 고생해서 그런 줄 아시나본데 아니걸랑요. 요새 다이어트중이에요. 결혼생활 하는 동안 스트레스 받아서 살만 쪘거들랑요. 아유, 끔찍해, 글쎄 이 몸매에 삼 킬로그램이나 불었었으니까. 직장 일은 잘되니? 그럼요, 요새 오직 일에만 매달려 있으니까 행복해요. 오빠한테 얘기 들으셨을 텐데 왜 만나자고 하셨어요? 왜, 만나잔 게 잘못됐냐. 아무리 너희끼리 좋아서 한 결혼이라지만 정식으로 양가 어른 일가친척 모시고 한 결혼인데 우리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었으니 부모 된 도리로 자초지종을 알기나 하려고 불러냈다. 뭐가 잘못됐냐. 뭐 잘못하셨다는 게 아니라요, 오빠가 그 정도는 얘기하지 않던가요. 듣긴 잠깐 들었지만 하도 말 같지가 않아서……
그럼 저라도 말 같은 얘기를 해달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 왜 안 되겠니? 도대체 왜 이혼까지 하게 된 거니. 성격차예요. 순전히. 여긴 파경난 배우들의 기자회견 자리가 아니다. 그 성격차이라는 것, 내가 좀 알아들을 수 있게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순 없겠니? 이를테면요…… 이를테면 제가 오랜만에 오빠하고 같이 집에서 저녁 먹으려고 장보고 온갖 솜씨 부려서 근사하게 저녁상을 봐놓으면 오빠는 먹고 들어오고, 내가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해서 대충 먹고 들어가서 침대에 널브러져 있으면 자기는 쫄쫄 굶고 들어와서 집 밥이 먹고 싶어 죽을 뻔했는데 아무것도 안 해놨다고 화내고 문 박차고 나가버리고, 내가 외식하고 싶을 때 오빠는 집 밥, 내가 집 밥 먹고 싶을 때 오빠는 외식. 지가 집 밥 당번일 땐 땡땡이쳐도 되고, 난 안 되고,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니까요.
고작 그게 성격차란 말이니? 고작 그거라니요. 그런 일이 누적돼보세요, 얼마나 힘든데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 몸이 삼 킬로그램이나 불었겠어요. 그 정도는 성격차이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 아니냐? 아침에 나갈 때나 중간에 서로의 일정이나 컨디션을 미리 알아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런 노력도 안 하고 어떻게 결혼생활을 유지시킬 수 있겠니. 연애할 때나 신혼 때는 서로 약속 안 하고도 그런 게 척척 맞았다니까요. 보고 싶은 영화, 먹고 싶은 음식, 걷고 싶은 거리, 그런 것들을 말 안 하고도 서로 척척 알아맞혔다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그렇게 텔레파시가 통하게 돼 있는 거 아닌가요. 연애도 아마 그 재미에 했을걸요. 그게 안 통하고부터 우린 서로의 사랑을 의심했고 같이 살 까닭도 못 느끼게 된 거죠.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벽창호끼리 마주 앉은 느낌이었다. 그날 밤 남편한테 세미한테 듣고 온 그 말도 안 되는 이혼사유를 말해줬더니 그가 말했다. 남자들의 뇌는 결국은 엄마 닮은 여자가 마음 편하게 돼 있다더니 맞는 말이구만. 곰처럼 무뚝뚝하고 둔한 어미에게 질려서 아들이 여우 같은 여자에게 끌렸을 거라고 말할 때는 언제구. 이 집에서 못된 바람은 다 나에게로 불어온다. 난 대답 대신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걷잡을 수 없이 잠이 밀려왔다. 자야겠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코 골며, 아 아, 간간이 신음하며, 남편이 관찰한 나의 자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도 나의 꿈속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기나긴 하루”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저자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서울대 문리대 재학중 6.25를 겪고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으로 『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등단 이후 향년 81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기까지 사십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선보이며 한국문학사에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 각인되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꽃을 찾아서』, 『미망』, 『친절한 복희씨』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상(2006) 등을 수상했다. 2006년,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원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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