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자살충동!

[중산] 2012. 3. 28. 17:06

 

남편이 직장에 사표를 썼다. 같은 직장 동료인 박 모라는 반대파의 술수에 밀려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단다. 남에게 빼앗겨 버리는 일을 수차례 경험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을 당하고, 또 혼자 삭히려고 애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미영 씨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 이건 내 문제고, 당사자인 나는 괜찮은데 당신이 왜 그러냐.”며 오히려 미영 씨를 타박했다. 남편의 태도가 미영 씨는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차라리 세상을 등지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는 미영 씨. 그녀에게 자살의 충동을 느끼냐고 물어야 했다. 많은 연구들이 자살충동에 대해서는 가능한 자세하게 묻는 것이 충동을 약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내가 왜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야 하는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그게 또 화가 나죠.”

“맞습니다.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분노하게 되는 상황이 또 화가 나는 거죠. 그녀가 먼저 분노의 실체를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 몫만큼의 분노만 감당하면 되었다. 남편에 대한 오랜 불만과 남편 몫의 분노까지 엉켜 있기도 했다. 게다가 미영 씨는 과거의 어느 한때처럼 지옥같이 힘든 갈등의 날들을 또 겪게 될까봐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남편에게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결코 제 정서를 이해하고 받아준 적이 없어요. 말끝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하죠. 심지어 그때는 자기도 힘들었다고, 그리고 제가 자기한테 했던 말이나 행동들은 이미 다 용서했대요. 하지만 제가 겪는 분노나 고통은 정말 10분의1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화나는 부분이 이거예요. 말로는 다 용서되고 이해된다고 하지만 실은 요만큼도 내 감정을 진심으로 느껴보려고 하지 않아요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배신한 첫사랑 남자보다 빨리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선택했어요. 그와 헤어진 지 3년도 채 안됐을 때였죠. 너무 화나고 자존심 상해서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렸지만, 그와 다시 한 번 이야기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혼자 속단하고 끝내버린 게 잘한 건지 모르겠어요.10년 넘게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제 내 인생은 어떡해야 할까요? 전 어쩌면 좋죠?”

 

“남편은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요. 그 사람은 제가 어떤 감정상태인지 도무지 진심으로 귀를 열고 들으려고도 느끼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아마 돈을 많이 벌어온다 해도 썩 기쁘지는 않을 거예요.” 남편이 시민단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수입을 잘 올리지 못해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서로 이해하고 이해 받는다면 돈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불만의 핵심은 공감 받지 못하는 것. 정서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으로 다시 귀결되었다.

 

누락된 존재! 그래. 가족 안에서 그녀는 누락된 사람이었다. 아들이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고, 농사일과 집안일로 너무나 바쁜 엄마는 그녀를 돌볼 틈이 없었다.

사계절 찬란한 그날에 그녀는 눈이 아플 정도로 찬란한 외로움 속에 누락된 채 내 던져져 있었다. 나는 구태여“누락”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다.

 

“미영씨는 아마 외동딸로서 다른 형제들에 비해 어머니와 자신을 가장 많이 동일시한 자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아야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말썽을 피우거나 ”땡깡“을 부리거나 칭얼거려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었겠죠.” “맞아요” “미영씨가 누락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당신 스스로 “누락”시킨 것 같다. 그것이 당신 가족의 욕망이었던 것 같다. “너는 빠져있어.”라는 가족들의 무언의 요구에 당신은 순응한 것이다.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마음에 와 닿는 무언가가 있어요. 머리로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가슴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요.”

 

그녀는 자신을 누락시키는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지키려 했다. 항상 누군가의 삶에 조연이기를 자처한 것이다. 힘든 어머니를 알아서 도왔고, 어려운 집안일도 스스로 처리해왔다.

그 후로는 자신을 누락 시키는 데 적극 앞장 선 것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는 세상의 중심에서 자기 삶의 주연이 되려는 노력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키우는데”만족하며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났다. 다른 누군가를 키움으로써 세상에 봉사한다고 여겼지만 무의식 속 그녀의 진짜 의도는 주연의 명부에서 자신을 누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르게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왜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녀가 자신을 세상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는 것은 겸손도, 능력부족도 아니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본 적이 없었던 그녀에게 너무나 낯선 일이기 때문이다.

 

남편을 도움으로써 자신을 누락시켜온 그녀에게 남편의 성공을 위협하는 박 모 같은 사건이 생기면, 그녀는 아예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없어지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온전히 느껴지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남편이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모든 결과와 그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존재가 가장 확실하게 수용받는 경험일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에 전이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무의식적으로 요구했고, 그녀가 고통스럽게 수행한 욕망이 결국 그녀가 분노하는 지점이지만, 그래서 또한 그녀가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는 타자의 욕망을 이제 알아야 하고,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주체의 욕망으로 회귀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느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 심심한 것이다. 그 심심함이 반복되면 불만이 쌓인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놀아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좀 더 멀리 있는 관계를 찾는다. 친구나 이웃, 동호회 사람들과 만나 심심함을 달랜다. 그 순간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깊은 외로움은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그들과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오히려 헛헛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심심함과 외로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이란, 내가 말할 대상이 없는 데서 비롯된 상처가 아니라, 내가 누구로부터도 말 걸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상처 떠나보내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정신분석가 이승욱박사, 예담출판사>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보들은 항상 시간을 도둑맞는다!  (0) 2012.04.02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하다.  (0) 2012.04.02
유능한 관리자!  (0) 2012.03.28
화에 대하여...!  (0) 2012.03.17
꿈은 현실이다!  (0) 201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