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공간에 흩어져 있던 일상의 조각들을 모아 일직선으로 펼쳐보니 인생이 눈 깜짝 할 사이가 아니고 꽤나 길다는 느낌이다.(중략) 나의 70년이라는 인생을 정리를 해보니 감회가 새롭다. 전쟁세대인 부모님은 한없이 힘들었고 전후 베이비 세대인 우리시대 때는 그 다음이었다. 회고해보면 나름 개인적으로는 추억이 될 법 한데 드러 내놓기에는 망설여지는 지는 게 사실이다.(서문에서~)
서문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짧아 61세의 환갑에는 큰 잔치를 열어 장수를 축하 했다.그리고 70세의 축하 의례로서 고희라는 말을 두보 시에서 처음 인용하였다. 그 만큼 드물게 장수하였다는 의미이다. 85세까지 장수한 헤르만 헤세는 칠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칠십 세의 생일을 축하받으면 뭔가 중요한 경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나 대학 신입생이 느끼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한 단계를 달성하고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것으로, 체념과 경사스러운 느낌이 함께 뒤 섞인다~!” 사실 나도 그렇게 느껴진다. (중략)
작가인 카프카는 죽기 전에 자기의 기록물을 모두 불살라 버리라고 했으며, ‘불안의 책’ 저자인 페소아 역시 ‘자기가 썼던 모든 글을 맑은 정신으로 읽고 보니 별 쓸모가 없어,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많이 주저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역행을 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나는 그런 유명한 작가 반열의 사람이 아니기에 일기형식으로 지나온 발자취를 조금씩 모아 보았다. 그리고 철학자 에릭 호프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마치 불굴의 정신을 비축하는 것과 같다”는 말에 힘입어 조심스럽게 실행에 옮겨 보았다.
책 내용들은 주로 지난날의 우리가족의 일상에 대한 회상을 적은 것이라서 타인들에게 안방을 활짝 열어 보이는 같아 좀 민망하기도 하다. 탈 농촌화 하여 겨우 도시에 뿌리내려 자식들 공부 시켜 온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은 누구나 다 어려움이 많았다. 그나마 ‘빵을 위한 생계’라는 직장이 있었기에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살림살이는 호전되어 갔다.
다만 유교풍의 가부장적 아버지로서 관대함이나 자상함은 턱없이 부족했다. 한 밤중에 어린애가 칭얼댄다고 내의만 입힌 채로 문 밖으로 내쫓았던 카프카의 아버지만큼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고 엄격한 편이었고 여유로움은 턱없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딱히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지난 과거의 우중충한 추억들은 거의 생략하였다.(중략)
앞으로의 삶
세월이 더 흐르면 감각 없는 나의 눈앞에서 내 인생의 모든 때늦은 고통들이 엄습해와 지금껏 걸쳤던 유쾌한 옷들이 한 벌씩 벗겨질 것이다. 심지어 요구한 적도 없는 의무와 지구를 잠시 빌려 썼던 밭 뙤기 마저 포기하여야할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긴 침묵의 공간으로 정신을 집중하며 침잠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 시작과 끝이라는 것도 없었듯이, 이제는 없으면 없는 대로 완벽함과 계획의 노예가 되기도 싫다.
존재만이 진정한 의미가 있기에, 마음 가는 대로 소소한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맑은 날에는 햇볕에 내 우울함과 눅눅한 심신을 말릴 것이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유혹하면 하던 행동 멈추어 귀 기울이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갑갑하면 언제든 괴나리 봇 짐 챙겨 들고 마음 가는 대로 휭 하니 떠날 것이다.
부득불 나쁜 습관에 때 묻은 옷을 벗어 던지고 습관에 갇히지 않은 해맑은 옷으로 갈아입은 어린이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이제 제한적이다. 맑은 정신을 유지할 시간이 오 년이 될지 십 년이 될지 모른다. 남은 시간은 온전히 깨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가인 프로스트가 말한 것처럼, 어떤 장소에서든 책을 읽는 것, 봄철에 꽃 냄새를 맡는 것, 바다에서 석양의 빛 변화를 바라보는 것 등 일상의 매력을 인위적이라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고 또 음미하고자한다.(중략)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
눈을 뜨자마자 습관대로 나선다.
조금 지나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나서자고 졸라대도 꿈쩍 않고 멍석에 앉는다.
밥 먹고 나면 이내 산골로 나선다.
잠시 지나면 나를 무시한다.
나서자고 졸라대도 방바닥에 퍼져 있다.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기에
이 두 마음을 잘 달래어야 하루가 편안하다.
내일도 필시 그러할 것이다.
일찍이 사르트르는 존재는 사물이라는 조형을 만들기 위한 찰흙원형 자체였다고 하였다. 갈매기란 ‘존재하는 갈매기’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보통 존재는 숨어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고 했다. 존재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막연한 불안을 품으면서, 다른 존재에 대해 자신을 잉여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제 할비가 된 ‘나’ - 무기력하고, 초췌하고, 같은 말을 되씹고 있는 - ‘나 또한 잉여 존재가 되었는가 보다’. 죽음조차 잉여일 텐데 그래서 이제 나는 영원히 잉여의 존재로 남겠지만 일시적으로나마 가족 속에서 잉여의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를 삭제시켜버리는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중략)
부부라지만 나를 제외한 타인은 과연 나에게 무슨 관계로 있는 것일까. 이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을 안 해 볼 수 없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는 내가 당신이 아니듯이 당신이 내가 아닌 것처럼, 의식의 개체들 사이에는 하나의 공간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무(無)인, 수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거리가 있다고 하였다.(본문에서)
맺는 말
지나온 일기장 같은 글들과 사진들을 펼쳐보니 짧게 느껴지던 세월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래서 이렇게 한 번 펼쳐 볼 필요성은 있겠구나! 이런 여정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감회가 새롭다. 특히 일흔을 앞 둔 상태에서 인생을 총 정리 해보는 시간이었다. 하루 세끼를 먹지만 간식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10만 끼나 먹었다. 먹기도 많이 먹었고 두 발로 많이 걸어 다녔다.
이렇게 공간에 흩어져 있던 일상의 조각들을 모아 일직선으로 펼쳐보니 인생이 눈 깜짝 할 사이가 아니고 꽤나 길다는 느낌이다. 오래 전 장모님환갑 때 제주도 가족여행을 간적이 있다. 그 때 조랑말을 타신 장모님은 행복에 겨워하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씀 하셨다. 지금 그 시점을 한참 넘긴 나 역시도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두 아들 취업과 결혼할 때 똑 같은 느낌으로 말을 했다.(중략)
긴 글들은 주로 나의 느낌이거나 다짐들을, 표현하기 애매한 것은 함축의 시적 의미로, 인용의 글들은 절대 공감의 의미로 글을 써보려고 했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글 속에서 다소 자화자찬과 미사여구의 군살들이 들어 있어 부끄러울 뿐이다. 이것까지 통 크게 이해 해주길 바란다. 우리 모두 건강! 지족! 카르페디엠을 외치면서 열심히 살아갑시다!(중략)
블로그를 구독하시는 분들과 들리시는 모든 분들!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금년 한해도 코로나로 인해 제한적 활동과 경기까지 위축되어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많이 이어지시길 기원드립니다. 경기에도 호,불경기가 있듯이 인생에도 기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붉게 솟아 오르는 태양처럼 하시는 일들이 훤히 빛나고, 꼭 소원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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