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톨스토이의 가정사!

[중산] 2024. 12. 5. 10:10

울주군 진하해수욕장

 

 

영원히 살 것처럼 밭을 갈아라. 그리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 조지 헨더슨, <경작용 사다리>,1944

 

톨스토이는 병으로 수척해졌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더욱 환해지고 투명해졌으며, 한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워서 무엇이든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잊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 내듯, 여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기다리듯 그는 조심스레 귀를 기울였다.

- 막심 고리키, <레오 톨스토이를 회상하며>, 1920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가지각색으로 불행하다.”

 

참 맞는 이야기다. 톨스토이 자신의 가정도 아주 가지각색으로 불행했다. ‘참되게 살기’라는 가장의 가르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식솔들은 앞다퉈 육체의 욕구에 굴복했다.

 

아들 안드레이는 매우 독실한 정교 신앙의 소유자였는데도 유뷰녀와 사귀고 있었다. 그 유부녀라는 것이 하필이면 현지사의 사모님이었다.

 

딸 마샤와 타냐도 이상한 연애 관계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자식들의 연애사건보다 한층 기괴하고 심각했던 사건은 소피야 부인의 연애였다.

 

대문호 백작 부인은 가족들과 친지들의 경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하의 피아니스트와 꽤 오랫동안 염문을 뿌렸다. 소피야 부인의 연애는 하루아침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삶에 대한 불만은 꽤 오래 전부터 그녀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아직은 젊은 부인이 해마다 늘어나는 자식들과 나이 많은 남편만 뒷바라지하며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1875년 그녀의 일기를 보자.

 

“이 격리된 시골 생활은 참을 수 없다. 음울한 무감각,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 매일매일, 매달, 매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홀로서기를 할 수 없다. 나는 남편에게 매여 있다. 그리고 이 속박감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내가 이런 우울증에 빠진 것은 대부분 그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1975년 10월 12일

 

부인의 심리 상태는 이해가 된다.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취미도 오락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남편과 자식만이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저술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면서 거기에 모든 열정을 바쳤다. 그녀는 원고 교정이나 출판 일은 물론 영원한 보조였다.

 

소피야 부인은 결혼 후 16년 동안 열세 명의 아이를 출산했다. 그렇게 낳은 아이들은 끊임없이 그녀의 돌봄을 요구했다.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그 결혼 생활의 절반 이상은 임신 상태였고 나머지 절반은 모유 수유로 보냈다는 결과가 나온다.

 

게다가 그녀에게도 ‘중년의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소피야 부인에게 결정타를 가한 것은 막내아들 바냐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천사 같은 막내아들을 유난히 사랑했다. 아들의 죽음에는 부부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다. 아들이 죽기 며칠 전, 저작권 문제로 남편과 대판 싸우고 눈길 속으로 뛰쳐나갔다가 거의 죽을 뻔 했다.

 

이렇게 싸우는 동안 바냐는 성홍열에 걸려 소리 없이 죽고 말았다. 막내의 죽음 이후 그녀가 보여준 이상하고 과격한 언행들은 모두 아들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자 소피야 부인은 허전한 가슴을 채우기 위해 피아노 래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무언가 몰입할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톨스토이집을 가끔씩 방문하곤 했던 음악가 세르게이 타네예프에게 개인 레슨을 부탁했다. 그녀는 쉰둘이었고 타네예프는 열두 살 연하인 마흔이었다. 톨스토이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타네예프는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제자였으며 실력이 꽤 탄탄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음악적인 재능보다 톨스토이 부인의 애인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부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타네예프의 연주회에는 반드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지만 백작부인은 당당하고 떳떳했다.

 

심지어 당사자인 타네예프조차 톨스토이 백작부인이 자신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한동안 모르고 있었다. 부인의 일기를 보자.

 

“내 양심은 하느님 앞에, 남편 앞에, 자식들 앞에 깨끗하다. 나는 영혼, 생각, 육체 모두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결하다.”(1897년 7월 21일)

 

톨스토이는 사태의 희극성을 여러 번 지적했지만 아내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타네예프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는 네 가지 선택의 여지를 주고 아내에게 고르라고 했다.

 

첫째, 즉각 그 ‘젊은 놈팡이’와의 관계를 끊을 것. 둘째, 부부관계를 정리하고 톨스토이 자신은 외국으로 간 뒤 서로 완전히 별개의 인생을 살 것.

 

셋째, 그 ‘젊은 놈팡이’와 헤어지고 자신과 함께 외국으로 가서 부인이 안정을 취할 때까지 머무를 것. 넷째, 그냥 지금처럼 살면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길 기다릴 것.

 

타네예프 사건은 톨스토이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네 번째 해결책을 향해 흘러갔다. 이후 10여 년 동안 간헐적으로 타네예프를 만나거나 쫓아다니거나 집으로 초대하거나 하면서 남편의 염장을 질렀다.

 

남편이 불만을 토로하면 부인은 ‘나는 친구를 가지면 안 되냐’면서 즉시 받아쳤다. 소피야 부인의 행동에는 어딘지 모르게 애처로운 점이 있다. 바람난 중년 부인의 상투적인 스토리와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육체의 욕구를 위해 젊은 남자를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긋한 나이에 여전히 동물적인 정욕으로 마누라를 괴롭히는 남편한테 정나미가 떨어져 순결한 플라토닉 러브를 원했다.

 

그녀에게는 정신적인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타네예프에 대한 소피야 부인의 열정은 다분히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물론 늙어가는 여염집 부인이 젊은 사내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추하다. 그러나 그녀를 비웃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글쎄, 뭐랄까, 얼마나 위안이 그리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 - 도덕을 상실한 시대의 톨스토이 읽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석영중교수지음, 위즈덤하우스출판>

*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하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4년까지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 회장을 역임. 저서로<매핑 도스토옙스키 :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죽음의 집에서 보다 : 도스토옙스키의 갱생의 서사(공저) >,<도스토예스키의 명장면 200>과 수많은 역서 등이 있다. 1999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수여했다.

 

세간에는 톨스토이 부인인 소피야가 세계 3대 악처 중 한명이라고 한다. 그 외에는 소크라테스 부인, 모차르트 부인이 있다. 이들은 음지에서 자녀들을 키우면서 남편의 뒷바라지에 희생과 헌신의 힘을 보탰는지도 모른다.

 

짐작해보면, 우선 소크라테스는 시대적 배경으로 봐서 일정한 벌이도 없이 철학에만 매진하였으므로 생활형편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모차르트 부인은 바람끼도 있었고 사치와 낭비벽이 심했다고 한다. 그녀의 씀씀이 때문에 모차르트의 잦은 연주로 결혼 9년 만에 과로사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종국에는 장례식에도 불참하고 돈이 없어 남편의 묘를 쓸 수가 없었다

.

이들에 비해 톨스토이는 생활 여건이 괜찮았다. 다만 젊었을 때는 그의 이상과 쾌락을 동시에 꿈꾸는 모순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세상을 구원하고 싶은 갈망과 그의 박애정신 때문에 부인과의 갈등을 크게 겪었다. 유산과 저작권 수입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톨스토이의 생각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긴 세월 동안 악필인 톨스토이의 장편소설의 원고를 일일이 교정하는 가하면, 유모 없이 아이들을 손수 길러낸 부인이 그런 악처라는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이 분란의 중심에는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돈'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벌이가 없거나 재산 상속문제 로 가족들이 소외된다면 누구나 그런 갈등을 초래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남편의 명성에 누를 끼쳤다는 독자들의 사랑의 괘씸죄가 아닌가 싶다. <중산>

 

 

아마도 중년은 켜켜이 쌓인 껍데기를 벗는, 혹은 벗어야 하는 시기이다. 야망이라는 껍데기, 자아라는 껍데기 … 자만과 그릇된 욕망, 가면과 갑옷 말이다. 사람들은 경쟁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갑옷을 입은 것이 아니었던가?

 

만약 경쟁을 그만둔대도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 더 빨리 벗어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중년에는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찬란한 해방인가!                  - 엔 모로 린드버그, <바다로부터 온 선물>,(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