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가장 현명한 사람!

[중산] 2025. 5. 14. 19:40

지리산 반야봉에서~!

 

 

현명한 사람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작은 것은 커지고

큰 것은 작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은 것으로

처리해 버립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만 불행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스스로 큰 고민에 빠진답니다.

 

₋ R. 로시푸코

 

 

합천 황매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삶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는 듯 다양한 공부와 게임에 몰두한다. 심지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필연적인 죽음을 피할 수가 없어서, 또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행복을 찾을 수 없어서 고안해낸 유일한 방법은, 죽음을 뒤로 제쳐두고 주위를 산만하게 하거나 본질적인 부분에서 멀어져 유희를 즐김으로써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즉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 즐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이 그렇다. 어떤 영화는 우리의 내면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해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단순한 오락은 삶에서 벗어나 존재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도피하고 방황하게 만든다.

 

고된 퇴근길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이나 테블릿에 몸을 던지고 집에 도착하면 또 다른 화면들 속으로 몸을 던진다. 술이나 마약과 같은 현실도피에 가상의 투영이라는 현대적인 형태가 추가된 것이다.

 

우리는 행복할 때 오락을 즐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간이 행복하다면 조금 덜 즐기더라도 똑 같이 행복할 것이다.” 여기에서 파스칼은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왕을 예로 들어보면 권력, 부, 영광, 사랑, 쾌락 등 모든 방면에서 모든 것을 소유했지만 왕국의 업무 논의가 끝나고 나면 식사 때는 마상 술이나 사냥 또는 광대의 곡예가 필요하고 일어날 때도 잠들 때도 형식이 필요하며 왕을 즐겁게 할 광인들이 필요하다.

 

이 모두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다. 식탁에 사슴고기와 연어, 토끼와 비둘기, 파이와 케이크를 차려놓게 하고는 막상 왕은 숲에서 말을 타고 토끼를 쫓고 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토끼는 왕의 두려움, 죽음, 불행을 상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벗어나 살게 함으로써 미래의 포획을 상상하며 현재 삶을 잊게 할 뿐이다.

 

왕이 사냥하러 간다면 “포획이 아니라 사냥을 추구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왕과 같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발견하게 될 불행을 잊기 위해 자신의 바깥을 내다본다. 불행을 없애는 것과 거리가 먼 오락은 ‘우리의 불행 가운데 가장 큰 불행’이라고 파스칼은 결론짓는다.

 

오락은 현실 속에서 불행에 대해 해방을 추구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한 가지에서 온다. 즉 방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는 데서 온다.”

 

가장 바쁜 나라, 상품과 이미지 소비가 가장 많은 선진국에서 수도원 은둔이나 요가 수행 심지어 철학적 상담이 기이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파스칼로부터 2세기 후 독일의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잔인한 진단을 내린다. 모든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하므로 곧 고통이라고 상기시킨다.

 

그래서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 충족은 괴로움을 없앨지언정 지루함을 유발한다. 나는 무언가를 쫓고 그 무언가가 내 삶을 채우지만, 그것에 도달함으로써 더는 무엇도 쫓지 않게 되고 더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부족함이 없기에, 즉 지루하기에 새로운 욕망, 채워야 할 새로운 결핍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 존재 전체를 요약한다. “그러므로 삶은 진자처럼 오른쪽과 왼쪽 사이를,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반복한다.” 우리 존재, 즉 스토아학파가 야심차게 해방하려했던, 인간의 물질에 대한 의존 현상을 선명히 요약한 말이다.

 

시인들도 같은 것을 느꼈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표현했다. 예컨대 루이 아라공은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을 짜내고 싶어지면 행복을 망가뜨린다 / 삶은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대립이다/ 행복한 사랑은 없다.”

 

<동 쥐앙>에서 몰리에르는 “여자를 한번 지배하면 더는 할 말도 없고 바랄 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혹할 다른 여자가 필요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했을 때 이제 정복할 다른 세계가 없음을 후회했듯이 말이다.

 

이 끝없는 탐색, 그래서 끝없이 고통스렀던 길의 끝에서 동 쥐앙이 사령관의 손을 잡고 지옥으로 가기로 선택했듯이, 그리고 스탕달이 <연애론>에서 ‘무서운 벼랑 끝의 길’이라고 묘사했듯이 말이다.

 

<‘불안사회 생존절략’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장 폴 주아리 지음, 배정은 님 옮김, 상상스퀘어 출판> * 장 폴 주아리 : 알제리 출신 프랑스 철학자이자 교수. 정치철학, 과학철학, 철학사, 철학교육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파리1대학, 퐁트네 생 클루 고등사범학교, 피카르디의 인문학부, 라군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철학속으로 들어가기>, <구석기 시대의 예술>,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철학하기가 쉬웠다면?>,<철학으로 정치를 취하다>,<유산으로서의 과학>,<루소, 미래의 시민>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