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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존재!

[중산] 2025. 6. 14. 07:13

제주, 수월봉에서 본 자귀도와 신창리 해변 전경

 

톰슨이 일흔이 됐을 때, 꿈에서 계시를 하나 받았다. 오래 살려면 건강에 더 신경 쓰라는 것이었다. 꿈에서 깬 뒤, 그는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조깅과 수영을 하고, 일광욕도 했다.

 

단 세 달 만에 15 킬로그램이 빠졌고, 허리가 15센티미터 줄며 가슴은 12센티미터 넓어졌다. 한층 건강해진 톰슨은 외모에도 자신이 생겨서 미용실에서 짧고 멋진 헤어스타일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만 미용실에서 나오다 버스에 치였다. 그는 죽어가면서 울부짖었다. “신이시여,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그러자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톰슨. 머리가 짧아져서 못 알아봤구나.”

 

톰슨이 머리를 기르든 짧은 머리를 하든, 헤어스타일은 우연한 성질일 뿐, 본질이 달라지진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톰슨은 살을 빼고 머리 모양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 농담에서 톰슨의 본성을 알아보지 못한 유일한 이가 있었으니, 하필 그게 신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과 ‘우연한 성질’을 구분했다. 본질이란 그것 없이는 도저히 지금 같은 형태로 존재할 수 없는 핵심적인 성질이다.

 

반면 우연한 성질이란 일부 특성은 결정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에 필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성질이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소크라테스가 지닌 합리성은 그가 존재하는 것의 핵심 요소다. 합리성이 없다면, 소크라테스는 결코 소크라테스일 수 없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돼지코인 것은 우연이다. 돼지코는 분명 소크라테스 존재 방식의 일부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다. 즉, 즉, 소크라테스에게서 합리성을 뺏으면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일 수 없지만, 그가 성형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그냥 코 성형을 한 소크라테스인 것이다. 위와 같은 농담의 예도 들어 보았다.

 

<‘철학자와 오리너구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토머스 캐스카트/대니얼 클라인 지음, 박효진님 옮김, 알키미스트출판>

* 토머스 캐스카트 :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신학, 방송계, 작가, 강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대니얼 클라인 :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 강의, 코미디 대본 작가로도 활동했다. 다수의 철학 교양서를 집필했고 첫 소설<포워드매거진>으로 올해의 책을 수상하였다.

 

제주, 신창리 풍력발전소와 선인장 마을

 

 

기록하는 존재

기록이 반드시 글의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다. 수메르인들이 원래는 빚과 세금을 추적하기 위해 봉인된 점토 항아리에 토큰을 넣었다는 사실이다.

 

약 2500년 전 중국 우화와 격언을 담은 <도덕경>은 문자 대신 ‘밧줄의 매듭’을 사용했다. 또 다른 고대 중국 경전인 <역경>은 그런 밧줄의 기능을 말했다.

 

이 신비한 중국의 밧줄 매듭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한때는 적어도 ‘일을 처리하는 데' 아주 중요하게 쓰여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먼 옛날 매듭을 맨 끈은 ‘통치자들이’ 정사를 처리하는데 사용되었다.” 영국의 선교사 대니얼 타이어만은 1821년에서 1829년까지의 여행을 기록한 일지에서 하와이 사람들이 소유권을 기록했다는 이야기한다.

 

“세금 징수자들은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섬 전체의 주민으로부터 징수한 갖가지 물품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기록 수단은 길이가 700~900미터 쯤 되는 밧줄이다.

 

주로 색깔과 크기와 모양이 각각 다른 매듭, 고리, 술로 밧줄을 구분한다. 납세자는 각각 밧줄에 자기 자리가 있다. 각 구역 밧줄에는 자기의 몫이 있고, 달러의 양, 돼지, 샌들 한 쌍, 토란의 양 등등 에 따라 납세자들이 내야 할 세금의 비율이 정해졌다.“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도 피사로는 잉카인의 재물을 약탈할 때마다 회계관리자가 창고 밖에서 키푸의 매듭을 묶었다 풀었다 하며 줄어드는 보물을 기록했다고 썼다.

 

수백 개의 키푸가 박물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 있지만 매듭을 읽는 방법은 소실되었다. 키푸와 초기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 설형문자도 부호가 아니라 물건과 개념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누가 빚졌고 언제 갚아야 하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설형문자를 혁신했다는 점을 상기하자. 점차 설형문자는 발음부호에 통합하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특정한 개인을 지칭하는 문자도 포함된다.

 

세계 최초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쿠심이라는 관료였다. 5000년 전 수메르 회계사들은 18개의 점토판에서 쿠심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시간의 지배자-우리 시대의 시간’ P438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토머스 서든도프/조너선 레드쇼/애덤 벌리 지음, 조은영님옮김, 디플롯출판>

* 토머스 서든도프 : 퀸즐랜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오클랜드 대학교 박사학위를받았다. 인간 정신의 본질과 진화에 관한 연구로 여러 상을 수상했다. /조너선 레드쇼 : 퀸즐랜드대학교 박사후연구원/애덤 벌리 : 하버드대학교 시드니대학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예지력과 의사결정에 관한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을 연구했다.

 

욕지도 삼여

 

 

18세기 말 도덕적 문제가 심각하게 다뤄진 경우는 드물었다. 도덕적 문제를 다룰 때는 선과 악을 정의한 다음 선을 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과 특히 악을 행했을 때 위협적인 제재가 무엇인지를 열거했다.

 

종교에서 누구는 천국에 가고 누구는 지옥에 간다고 예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신중해지긴 하겠지만 계산적이며 비윤리적으로 변모한다.

 

더구나 만약 경찰에 잡히지 않을게 확실하다면 무엇이든 허용되고 지옥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과속 단속 카메라에 접근하거나 경찰이 보일 때만 속도를 늦추고 나서 바로 속도를 올리는 과속 운전사와도 비슷하다.

 

칸트는 도덕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면 “… 하지 않는 한 거짓말하지 말하라‘, ’… 하지 않는 한 살인하지 말아라‘와 같은 특정 조건이 없는 원칙에 따라야 하고, 모든 상황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구속력이 있는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칸트는 두 가지 유형의 명령을 구별했다. 가언적 명령이 그 첫 번째다. 어떤 조건 내에서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명령이다.

 

예컨대 ‘감옥에 갈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도둑질하지 말라’와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때가 아니라면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경우다.

 

즉 ‘못을 박고 싶다면 망치를 들어라’, ‘오믈렛을 만들고 싶다면 달걀을 깨라‘와 같다. 이러한 명령들은 외부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칸트는 이러한 유형의 가언적 명령이 도덕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도덕은 다른 유형의 명령인 정언적 명령에 기초해야 한다.

 

다시 말해 순간의 감정이나 상황, 선의와 관련 없는 계율에 기초해야 한다. 거짓말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며 공정하라.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정언적 명령이란 모든 상황에서 만인이 지키길 바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가령 내가 거짓말을 하면서 상대방은 내가 진실을 말하는 걸로 믿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만인을 위한 진리의 법칙을 내세우면서 나를 예외로 두는 것이다.

 

만일 내가 도둑질하거나 살인하거나 간음했다면, 내가 타인에게 저지른 행동을 내가 당신하는 건 싫으므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만을 위한 법칙에서 벗어나 만인을 위한 법칙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선과 악을 정의하는 절대 기준이자 기초가 된다.

 

예컨대 환자가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에 대한 진실을 물을 때 의사는 환자의 근심을 덜어주려고 거짓말을 하고 싶다고 해보자. 이때 환자는 더는 진실을 들을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고, 그저 의사가 하기 곤란한 말을 피하게 되는 수단이 된다. 

 

내가 정언적인 보편성 원리에 모순될 때마다 상대는 나를 위한 수단이 되고 나는 너를 위한 진정한 목적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이념에 기초해 정언적 명령의 새롭고 실질적인 공식이 나왔다.

 

“사람을 대할 때 자신에게 좋으면서 타인에게도 좋은 방식으로 대하되 절대로 단순한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물론 너무 형이상학적인 이 도덕철학은 베냐민, 헤겔, 니체 그리고 많은 이의 분석적인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칸트의 관점에서 봤을 때, 타인의 작업으로 이익을 취한다면 그 자체로 부도덕하다. 이러한 생각의 결과로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혈액이나 장기 판매를 금지했고 돈을 받고 아기를 대신 낳아주는 대리모를 금지할 수 있었다.

 

미국처럼 판매가 허가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프랑스나 대부분의 유럽에서 혈액이나 장기는 기부나 기증을 한다. 인간의 신체는 상품이 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인본주의를 통해 디오게네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칸트와 같이 서로 다른 사상의 철학자들이 인류를 해방하는 수많은 도구를 후대에 남겼다.

 

<‘불안사회 생존전략’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장 폴 주아리 지음, 배정은 님 옮김, 상상스퀘어 출판> * 장 폴 주아리 : 알제리 출신 프랑스 철학자이자 교수. 정치철학, 과학철학, 철학사, 철학교육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파리1대학, 퐁트네 생 클루 고등사범학교, 피카르디의 인문학부, 라군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철학속으로 들어가기>, <구석기 시대의 예술>,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철학하기가 쉬웠다면?>,<철학으로 정치를 취하다>,<유산으로서의 과학>,<루소, 미래의 시민> 등의 저서가 있다.

 

 

설악산 흘림골 여심 폭포
설악산 용소폭포
울릉도 성인봉 정상
울릉도 봉래폭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