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도서관의 책들

[중산] 2011. 6. 24. 13:24

 

고문자와 살인자,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 후안무치할 정도로 순종적인 관료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가 적나라하게 고발당해도 왜?라는 질문에 거의 대답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주는 사실이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차가운 얼굴은 그들이 과거에 저지를 행위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말라는 저항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 도서관의 책들을 통해 나는 그들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 빅토르 위고에 따르면, 지옥은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카인에게 지옥은 아벨의 얼굴이고, 네로에게 지옥은 아그리파의 얼굴이다. 맥베스의 지옥은 방코의 얼굴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메데이아에게 지옥은 자식들의 얼굴일 것이다. 한편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는 어떤 나치스 장교가 자신에게 살해당한 유대인 광대의 유령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는 모습을 꿈꾸었다.

 

 

내 책들 사이의 신기한 관련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시간이 여러 세기를 가로질러 끝없이 흐르며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고 똑같은 형상을 목격한다면, 모든 범죄와 배신 및 악행의 진실이 결국에는 밝혀질 것이다. 카르타고는 모든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지만, 내 도서관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흩뿌려진 로마의 소금에서 다시 일어선다. 돈 후안은 엘비라의 고뇌에 다시 맞닥뜨리고,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유령을 다시 만난다. 이때 가해자는 시간의 순환을 피할 수 없는 까닭에 희생자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배우고, 책을 읽음으로써 올바르게 질문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러나 우리가 책에서 반드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해들은 목소리와 상상으로 창조해낸 이야기를 통해서, 책은 우리가 직접 고통 받지 않아 알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게 해줄 뿐이다. 고통 자체는 희생자의 몫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독서가는 아웃사이더이다.

 

<“밤의 도서관”에서 극히 일부요약 발췌,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박사 번역, 세종서적>

 

                                                                                                    <감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