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는 14세기 중엽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15세기 초에는 다양한 기법으로 발전하여 전성기를 맞고 이후로 점차 쇠퇴하다가 16세기 중엽 백자에 흡수되기까지 약 200여 년간 만들어졌던 도자기 가운데 하나로 왕실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어졌다.
분청사기란 이름은 1940년경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였던 고유섭 선생이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이름을 붙인데서 비롯하였다. 곧 분청사기는 이 분장회청사기의 약칭으로 조선시대 전기의 그릇을 대표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분청사기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은 14세기 고려 말의 국가 정세가 정치, 경제, 사회, 국방, 외교적으로 매우 혼란하였던데서 출발한다. 강진, 부안을 중심으로 한 고려 청자 중심의 도자 공예도 그 정형성을 잃어 갔으며, 국가의 보호와 배려를 받지 못한 기술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진다. 따라서 14세기경에 강진에서 만들어진 상감 청자들이 조금씩 양식상의 퇴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도처로 퍼져 나가 소규모의 가마를 만들어 도기 제조를 시작했는데, 바로 이러한 가마들에서 분청사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분청사기는 상감 청자의 전통 위에 서 있었지만 같은 유형의 상감 청자가 아니었다. 달라진 환경, 변화해 간 기술자들의 의식 구조, 수요층의 변화 등에 의해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양식의 도자기를 탄생시킨 것이다.
1. <초기> 1360년∼1420년경
초기 60년 동안은 30년씩 제1기와 제2기로 나누어지는데 초기 제1기는 고려 상감 청자가 쇠퇴하는 반면 분청사기가 태동하는 시기이다.
태동기의 특징은 태도가 조잡하고 기벽이 두껍고 암록색을 띤다. 무늬의 경우에는 구름무늬가 빗방울무늬로 변형된다든지, 대접의 포류수금무늬나 연당초무늬 같은 것은 점점 생략되어 몇 줄의 선만을 둘러 대체로 민무늬의 경향을 보이기로 한다.
1390년 이후 30년간의 제2기는 조선왕조의 기반이 다져지는 시기이므로 분청사기에서도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퇴화된 상감 청자의 무늬가 그대로 이어지는 한편 기형, 무늬, 위태가 재정비되어 조선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릇의 무늬는 퇴화된 연당초무늬, 풀무늬, 중권무늬, 빗방울무늬, 성긴 인화무늬가 많다. 그릇의 모양은 대접의 경우 안으로 흰 투박한 모양이 주종을 이루며 대마디굽의 특징을 보인다. 제작 방법은 태토 빚음 받침에 포개어 제작했으며, 유약은 청자유 계동의 투명유이지만 태토가 짙은 회흑색을 띠고 있어 유조는 여전히 암록색을 보인다.
2. <중기> 1420년∼1480년경
세종대왕의 치세 연간으로 민족 문화가 융성하던 시기인테, 이와 더불어 도자 공예에서는 분청사기가 기법상 다양한 발전을 보여 상감, 인화, 박지, 음각 등의 양상을 보인다. 태토는 정선되어 밝아지고 유약은 잡물이 없어 투명해지며 고려적인 전통에서부터 조선적인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된다.
대접의 경우 인화기법은 듬성듬성하게 찍던 무늬에서 발전하여 그릇 전체를 가득히 채워 무늬 구도상 빈틈없는 짜임새를 보인다. 인화 기법에 사용되는 단독 무늬 조장에는 국화, 톱니바퀴, 원, 육각판 등의 무늬가 있다. 대접 내면에 주로 사용되던 연당초무늬는 변형하여 활달한 새로운 무늬로 변모한다.
1450년부터 1480년 동안에는 모든 기법이 무르익은 반면에 무늬가 해이해지고 유태에 잡물이 많이 섞여 막그릇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귀얄 기법이 현저히 증가한다.
이 때의 인화 기법은 무늬의 짜임새라든지 압인 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또 얕게 압인되어 백토 감입의 상태가 지저분하게 나타나 제작의 소홀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는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사옹원의 분원이 성립된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연권무늬의 경우에는 고도의 기술이 습득되어 그릇의 면에 골고루 시문되고 여백 없이 압인된 곳에 백토가 고루 감입되며, 특히 박지와 음각 기법이 특색을 이룬다. 박지와 음각 기법은 전라도 지방에서 크게 유행하여 전라도 분청사기의 특징을 이룬다.
3. <후기> 1480년∼1540년경
후기는 쇠퇴기로서 1480년부터 1540년경의 약 60여 년동안이다. 이 시기에는 서서히 귀얄 기법이 사라지는 반면 담금 분장 기법으로 현저히 백자화하고 있다.
상감과 인화 기법은 쇠퇴해 가며 공주 학봉리 계룡산 기슭 일대에서 제작된 철화 기법과 같은 개성이 강한 지방 양식으로 발전한다. 이 시기에 유조는 녹색이 짙어지며 태토에는 잡물이 섞이고 대개의 경우 백자와 함께 수집된다.
① 상감기법 |
고려 상감기법의 연속으로 표현하고자하는 무늬를 그린 뒤 무늬 부분만을 긁어 음각선을 내고 이곳에 백토나 자토(붉은색 흙)를 넣고 유약을 바른 뒤 구어내는 방법으로 만든 분청사기이다. 이와 같이 도자기 재료와는 다른 물질을 넣어 무늬를 나타내는 방법을 상감기법이라고 하는데 많이 쓰인 백토는 하얗게, 자토는 검게나타나 원래 바탕과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무늬를 구성한다. 상감기법으로 많이 이용된 무늬로는 모란당초무늬, 모란무늬, 초화무늬, 갈대무늬, 물고기무늬, 어룡무늬, 파도무늬, 돌무늬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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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인화기법 |
인화기법은 꽃모양의 도장을 찍어 만든다고 하여 인화기법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그 무늬가 꽃무늬 만은 아니다. 인화기법은 나무나 도자기로 만든 도장을 찍어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주로 백토를 넣어 만든 기법이기에 넓은 의미에서는 상감기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화기법은 무늬가 작고 같은 무늬를 연속하여 반복적으로 찍었기 때문에 상감기법의 다른 그릇과는 달리 추상적인 분위기를 준다.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제작하였다. 1420년경에는 무늬 구도가 안정되고 15세기 중엽에는 세련된 면을 볼 수 있다. 인화기법 제작과정은 [그릇을 성형]-[도장으로 표면을 장식]-[백토로 분장]-[찍혀진 부분에 백토나 자토를 메워 넣기]-[문양을 제외한 배경의 백토 긁어 내기]-[유약 바르고 굽기] 순으로 진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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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박지기법 |
그릇 전체 혹은 일부에 백토로 분장한 후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를 음각으로 그리고 백토가 남아 있는 무늬 이외에 배경을 긁어 내어 무늬의 백색과 회색의 바탕색에 대조되게 하는 기법이다. 백색과 바탕색과 대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긁어낸 바탕에 철재를 가하여 흑갈색을 띠게 한 기법도 있다. 세종 때 활발하게 만들어졌고, 주로 전라도(고흥군 두레면)지방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제작과정은 [그릇을 성형한다]-[백토로 분장한다]-[원하는 문양을 그린다]-[문양을 제외한 배경에 백토를 긁어 낸다]-[유약을 입혀 굽는다] 으로 하며, 구워낸 그릇의 문양은 흰색, 배경은 회색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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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음각기법 |
음각기법은 조화기법이라고도 한다. 백토 분장 뒤에 원하는 무늬를 선으로 조각을 하여 백색 바탕에 회색의 무늬가 새겨지게 하는 기법이다. 제작과정은 [그릇을 성형한다]-[백토로 분장한다]-[무늬를 선으로 표현한다]-[유약을 입혀 구워낸다]. 음각 기법의 무늬로는 모란당초무늬, 연꽃무늬, 연 당초무늬, 물고기무늬, 잎 무늬, 버드나무 무늬, 인물무늬, 가옥무늬 등이며, 회화적인 사실 표현에서부터 추상된 무늬에 이르기까지 능숙한 필치를 구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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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철화기법 |
백토를 분장한 후 철분이 많이 포함된 안료(물감)를 사용하여 붓으로 문양을 그려낸 기법이다. 이 때 그려지는 문양은 도식적인 것, 추상적인 것, 회화적인 것, 익살스러운 것 등 다양하여 서민들의 생활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기법은 주로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충남 공주군 반포면의 계룡산 기슭에서 주로 제작되어 일명 '계룡산 분청사기'라고 한다. 무늬의 색은 철분이 포함되어 있기에 구워진 후에는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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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귀얄기법 |
귀얄은 일종의 풀을 엮어 만든 빗자루와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이 도구를 써서 백토를 발라 만드는 기법이다. 풀비로 백토를 순식간에 자유롭게 바르기 때문에 생동적인 운동감이 표현된 다양한 무늬효과가 나타난다. 대체로 분청사기의 쇠퇴과정에서 나타나고, 포개어 구워 대량 생산한 막사발에 많이 이용된 기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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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담금 (덤벙) 기법 |
백토 물에 그릇을 덤벙 담가 백토를 입히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붓 자국이 없어서 표면이 차분한 느낌을 준다. 굽 언저리에는 백토가 묻지 않지만 백토를 두텁게 씌우면 표면이 거의 백자와 같이 되므로 이 기법의 그릇들은 분청사기 말기에 많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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