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부 전화를 드릴 때면 “아침에 눈뜨면 왜 사는지 모르겠다”라며 빨리 가고 싶다는 대사를 반복하는 시어머니의 말은 진심일까. 살고 싶다는 말에 표현에 비가 새는 것이라 여겼다. 나 자신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 시어머니의 말은 왜 반어법이라고 단정했을까. 늙은 자의 말, 그것은 생의 갈망도 생의 포기도 전부 다 생의 미련으로 번역했다. 일종의 투사일까. 내가 생에 미련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합정역 2번 출구 파리바게트 앞을 지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아침 10시부터 휴지통에서 먹을 것을 뒤진다. 저 할아버지는 지금 살고 싶을까, 죽고 싶을까. 내가 빵을 사들고 나오다가 할아버지에게 “저기…시장하시면……” 했더니 빵을 빼앗아 빛처럼 사라진다. 살기 위해서 죽고 싶어져야 하는 생이 지긋지긋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