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잊는다는 건
애써 떠올리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쩌다 생각나면 그때 그리워하겠습니다.
때때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을 겁니다.
그 눈물 애써 감추려 하지 않겠습니다.
기억 속에서 그대를 까맣게 잊는다는 건
그대와 헤어진 것보다 더 아픈 일이니끼요.
W. 웨인
시계의 발명과 시간예측
기원전 46년, 전쟁에서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당시 365일 달력을 사용하던 로마가 계절을 제때 따라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바람에 수확이 시작되기도 전에 추수 축제 때가 된 것이다.
좌절한 카이사르는 최고의 천문학자들을 소집해 이 난제를 해결하라 명했고, 그렇게 365일의 율리우스력이 탄생했다. 이 달력에는 4년마다 하루의 윤일이 추가된다.
만약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정확히 65번 자전한다면 달력을 만들고 유지하기가 얼마나 쉬웠을까.
하지만 지구는 세련되지 못하게 1년에 365.2422번 자전하며 그조차도 근사값이다. 그래서 율리루스력은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정하여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간다.
네덜란드 발명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처음으로 물리 법칙에 수학 공식을 도입해 기술한 인물이며, 17세기에 최초로 믿을 수 있는 시계를 만든 사람으로도 알려졌다.
20세기에는 수정(水晶)의 진동을 이용한 디지털시계가 전 세계에 쓰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과학자들은 세슘의 믿음직스러운 공진주파수를 이용해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원자시계를 만들었다.
원자시계는 빛이 위성에서 A지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거기에서 고작 몇 미터 떨어진 B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의 미세한 차이까지 측정할 수 있다.
이 방식은 GPS 내비게이션에서도 쓰이는데, GPS시스템의 시계가 100만분의 1초 어긋나면 지상에서는 640미터의 차이가 발생한다.
2019년에는 미국항공우주국이 1000만 년에 1초의 오차밖에 없는 딥 스페이스 원자시계를 쏘아 올렸다. 24시간, 60분, 60초의 주기가 하루를 임의로 나눠놓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이 수를 사용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4와60은 둘 다 합성수 중에서도 고합성수에 해당하는데, 그 말은 그보다 작은 어떤 수보다 다양한 정수의 곱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24시간은 2×12, 3 × 8시간, 4 × 6시간으로 나눌 수 있고, 60분은 2×30분, 3×20분, 4×15분, 5×12분, 6×10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생활의 많은 측면에서 아주 편리하게 쓰일 수 있다. ‘8시간 노동, 8시간 여가, 8시간 휴식’은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이 외친 구호였다.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하루를 나눈 것이 아니라 곱한 결과다.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노동자에게 적어도 하루의 온전한 휴식을 주기 위해 일주일 개념을 도입했다.
문화권마다 일주일 정의 기준은 다르며 가령 아프리카 베냉의 에도 사람들은 4일을, 인도네시아 자바 사람들은 5일을, 서아프리카의 아칸족은 6일, 고대 로마인들은 8일을, 고대 중국과 이집트에서는 10일이 일주일이다. (프랑스혁명에서도 1793년에서 1802년 사이에는 열흘을 일주일로 삼았다)
7일마다 돌아오는 일주일은 기원전 6세기경 유대교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정의했든 시간을 재는 방식을 합의함으로써 인간은 장기든 단기든 일정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를 더욱 정확하고 검증 가능한 문제로 만드는 도구를 사용하여 예측 능력을 강화한다.
<‘시간의 지배자-우리 시대의 시간’ P438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토머스 서든도프/조너선 레드쇼/애덤 벌리 지음, 조은영님옮김, 디플롯출판>* 토머스 서든도프 : 퀸즐랜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오클랜드 대학교 박사학위를받았다. 인간 정신의 본질과 진화에 관한 연구로 여러 상을 수상했다. /조너선 레드쇼 : 퀸즐랜드대학교 박사후연구원/애덤 벌리 : 하버드대학교 시드니대학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예지력과 의사결정에 관한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을 연구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사르트르는 ‘매 순간 타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썼다. 이 말은 내가 계속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고 타인이 나를 단순히 보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나를 보고 있는 건 타인의 눈이다. 이 눈은 시선의 유기적 실현 매체일 뿐이다. 시선이 느껴질 때 나는 단순히 눈을 인식하는 게 아니다.
눈을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눈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시선은 나와 나 자신의 관계를 형성한다. 아고라 광장에서 물고기 청어를 들고 산책하는 냉소주의자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말해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같은 행동을 혼자 했다면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을 때만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내가 행한 일의 심각성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
내가 느낀 시선은 두 개의 안구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주는 타자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의식이다. 이 의식은 객관적으로 나를 파악하도록 하며 나쁜 신념을 가지지 않도록 해준다.
사르트르는 예를 하나 들었다. 내가 질투나 관음증이 있어서 복도의 열쇠구멍에 눈을 대고 모르는 사람들을 염탐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만한 상황이 있어서 염탐한 것이지 특별히 부도덕해서 염탐한 게 아니다. 예상대로라면 나는 혼자다.
그런데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누가 있는 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발소리는 누군가가 나를 봤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나는 당황한다. 결국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행동이 천박하다는 걸 더는 숨길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봤는지 여부를 누가 알겠는가?
'타인은 나와 나 자체 사이의 매개체다‘ 라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인의 시선은 그때까지 내가 회피하고 있었던 나의 일부를 폭로한다.
따라서 크라테스와 그의 부인 히파르키아를 바라보던 아테네인들의 시선은 이 부부가 아테네의 규칙을 뒤엎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주었다.
반면 이들 부부가 자신들을 꾸짖고 분노하는 아테네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로 충격적인 게 무엇인지를 아테네인들에게 폭로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과 모든 시민은 각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불안사회 생존절략’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장 폴 주아리 지음, 배정은 님 옮김, 상상스퀘어 출판> * 장 폴 주아리 : 알제리 출신 프랑스 철학자이자 교수. 정치철학, 과학철학, 철학사, 철학교육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파리1대학, 퐁트네 생 클루 고등사범학교, 피카르디의 인문학부, 라군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철학속으로 들어가기>, <구석기 시대의 예술>,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철학하기가 쉬웠다면?>,<철학으로 정치를 취하다>,<유산으로서의 과학>,<루소, 미래의 시민> 등의 저서가 있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록하는 존재! (19) | 2025.06.14 |
---|---|
‘이 뭣고’, 화두참구! (19) | 2025.06.11 |
일흔 살 생일에! (17) | 2025.06.03 |
결혼, 부부 생활! (18) | 2025.05.31 |
계절의 규칙적인 변화! (15) | 2025.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