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무렵 장돌림을 시작한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 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둔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애끓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쳐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나귀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생각(念)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