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백수가 됐습니다. 낯설도록 텅 빈 책상을 천천히 둘러 본 뒤 몸을 일으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구나. 낡은 몸을 기대게 해주던 의자에 인사합니다. 미리 조금씩 정리해둔 덕분에 따로 들고 나갈 건 없습니다. 스스로와 약속한 대로 바람인 듯 나서면 그만입니다. 화장실이라도 가듯 천천히 걸어가 편집국 문을 나섭니다. 후배 몇 명이 전송하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미리 부탁한 대로 해달라고 눈짓으로 눌러 앉힙니다. 끝내 바람 닮은 뒷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 문을 나서는 순간, 진공의 공간에 든 듯 모든 소리가 멈춥니다. 로비에 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이지만, 이 순간 제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이제 저 문을 나서면 다시는 사원이란 이름으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