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오스왈드 챔버스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한 수십 수백만의 영국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챔버스가 소천한 후 먼 훗날에도 그의 말씀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입술에 여전히 있다. 그의 책들이 문자 그대로 수십여 나라의 언어로 수백만의 사람들에 의해 매일 읽히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대답은 챔버스의 메시지와 성품 두 가지에 있다. 이 둘은 뗄 수 없다. 이 책은 이 둘이 어떻게 한 개인 안에서 합쳐지면서 세상이 망각하기를 거부하는 독특한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고학과 미술, 문학에 심취했던 챔버스는 주님께 사로잡힌 이후, 평생을 “최상의 하나님께 나의 최선을 드립니다”라는 각오로 완전히 주님께 항복한, 순종의 길을 걸어갔다. 런던에서 성경훈련대학과 성경통신 과정을 통해 수많은 청년들을 사역자로 키워냈고, 그즈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YMCA 군목으로 지원했다.
이집트의 자이툰에서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 있는 군인들에게 밤마다 막사에서 헌신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며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수천 명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고, 그 현장에서 43세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평생 주님이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말씀을 전파하던 ‘복음의 방랑자’로서의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거나 안락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평안한 순종의 길이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이 책은 구 카이로의 챔버스의 묘지 곁에 서서 앞으로 남편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거트루드였지만 챔버스는 그녀에게 애정 어린 별명인 ‘비디’B.D.(Beloved Disciple의 머리글자)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언제나 그녀를 ‘비디’라고 불렀다. 챔버스가 죽은 후 그녀는 남편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알리는 데 자신의 남은 삶을 온전히 헌신했다. 매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자신을 희생하는 그녀의 사역의 결과로, 챔버스의 이름으로 50여 권의 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사역의 과정 속에서 자기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챔버스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우리의 마음이 보게 될 때, 우리의 몸은 그 목표를 향해 기꺼이 헌신되어 쓰임 받아야 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챔버스와 비디는 둘 다 기꺼이 주님께 헌신했고 그들의 삶은 주님께 온전히 쓰임 받았다. 여기서는 이 책의 1부부터 3부까지 소개한다...(요약)
밀알(이집트, 카이로 - 1917년 11월 16일)
1917년 11월, 벌써 제1차 세계대전은 4년째에 접어들고 있었고 이집트의 병원과 회복실은 전사자와 환자로 가득했다. 군 장례식은 카이로에서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장례식은 최고급 장교나 정부 고위 관료들만을 위해 마련되는 특별 순서로 치러지고 있었다. 이 특별한 장례식의 주인공은 군대의 장교나 정부 관료도 아닌 자이툰 지구의 YMCA 사관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였다. 이집트인들을 포함한 거대한 군중이 공동묘지에서 장례행렬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이툰의 주민들도 비통한 마음을 안고 장례식을 찾아왔다. 훗날 장례식에 참여했던 한 사람은 “카이로에서 챔버스가 알게 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조용히 찾았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챔버스는 그 전날 맹장 파열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소식이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까지 퍼지자, 그 소식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연실색했다. 뭔가 실수가 있든지 잘못된 소식이거나 오해라고 여겼다. 왜 하나님께서 챔버스와 같이 귀한 사람을 데려가신다는 말인가? 그것도 불과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디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남편과 함께 보내면서 남편이 회복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기간 동안 그녀의 마음에 임한 성경 말씀은 매우 분명한 확신을 주는 듯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요 11:4).
챔버스의 동역자들인 글래디스 잉그램과 에바 스핑크는 천국에서 자신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을 챔버스 생각에 눈물을 참느라 서로 손을 꼭 붙들었다. 런던의 성경훈련대학에서 챔버스는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실수한 적이 없으시다”고 매우 자신 있게 말하곤 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 이집트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하지 않으셨던가? 주께서는 그들을 지키시고 주의 품 안에서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비디와 챔버스는 7년 전 결혼하여 잘 지내왔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볼 때, 지금 최악의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비디는 34세의 나이로 과부가 되었고 아무런 경제적 대책이나 도움도 없는 가운데 어린 딸을 키우게 되었다. 그 정도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지금 전쟁의 상황,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황폐한 타지의 사막 지대에서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영국에 돌아가실 겁니까? 챔버스 없이 어떻게 살아가실 생각인가요?” 비디는 눈을 감고 딸 캐슬린을 가까이 끌어당겨 안더니 평소에 잘 부르던 찬송을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다.“내 영혼아 하늘의 왕께 찬양하라. 주의 발 앞에 영광을 돌리라.”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아도 그녀의 유일한 소망이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있는 한, 그녀가 이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은 결코 마지막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 위대한 것들의 씨앗
챔버스의 사망 소식은 11월 17일 토요일에 선더랜드에 살던 데이빗 람베르트 목사에게 전해졌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심정을 적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가 이집트에서 소천했다는 망연자실하게 만드는 소식을 받았단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구나. 전성기가 되기 전에 죽다니!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내게 챔버스보다 더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없다. 나는 내 영혼처럼 그를 사랑했다. 그의 죽음은 1908년에 우리 막내아들 노르만이 죽었을 때의 충격만큼 크구나.
람베르트와 아내 엠마는 9년 전에 막내아들을 잃었다. 비탄에 잠긴 이 젊은 부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과 치유의 손길을 갈급해 하고 있을 때, 챔버스가 기도 동맹 집회를 위해 선더랜드에 왔다. 람베르트는 호기심으로 그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스코틀랜드 악센트로 힘찬 메시지를 전하는 박력 있는 젊은 목사에게 사로잡혔다.” 챔버스의 설교 주제는 ‘중생’이었고 그의 메시지는 “마치 그 당시 종교의 인본주의적인 많은 활동과 인위적인 모습에 벼락을 치는 듯했다.” 챔버스는 람베르트의 집에 손님으로 머물게 되면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인기 있는 친구가 되었고, 그 가정의 지속적인 영적 위로자가 되었다. 람베르트는 아들에게 쓰던 편지를 잠깐 멈추고 책상 서랍에서 노란 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 속에는 1909년에 챔버스가 쓴 간결한 답신이 들어 있었다.
친애하는 람베르트 형제님께
마귀가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불을 토하는 한, 그것은 우리가 마귀에게 주목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당신 아내와 자녀들에게 마음 깊은 안부를 전합니다. - 오스왈드 챔버스로부터.
<“순종의 길(1부-3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이빗 맥캐스랜드 지음, 역자 스테반 황교수, 토기장이>
▣ 저자 데이빗 맥캐스랜드
오스왈드 챔버스의 작품에 관한 한 현재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그가 쓴 오스왈드 챔버스의 자서전 『순종의 길』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출판협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그는 오스왈드 챔버스의 삶과 사역을 담은 이 전기를 쓰기 위해 영국, 미국, 이집트 등 현장을 다니며 철저한 연구와 조사를 병행했다. 그는 오스왈드 챔버스의 모든 작품을 한 권으로 묶은 방대한 『오스왈드 챔버스 전집』을 편집했고, 여기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다시 『오스왈드 챔버스의 명언 인용집』을 편집했다. 특히 전기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에릭 리델의 전기도 쓴 바 있다. 현재 그는 미국 디스커버리하우스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오늘의 양식』 정기 기고자이기도 하다. 아내 루안과 네 딸을 둔 그는 현재 텍사스리버티 힐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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