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철학하다
사랑은 서로 공유해야만
우리 스스로가 활짝 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정체성과 상호성에 세 번째 차원,
아리스토텔레스가 암묵적으로만 인정한
한 가지를 보태고자 합니다
바로 이타성입니다.
₋ 프레데릭 르누아르
위대한 소설을 거듭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소설에 바라는 점은 소설을 읽음으로써 경험을 확장하고, 인식을 명확하게 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좀 더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다.
세실 경이 말했듯이, “어느 누구도 남자이면서 여자, 신비주의자이면서 유물론자, 범죄자이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 고대 로마인이자 현대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절대로 알지 못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톨스토이는 로마인을 등장인물로 한 번도 만들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톨스토이가 로마인 등장인물을 자주 내세운 셰익스피어를 이해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소설은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조지 엘리엇은 빅토리아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천재적인 이유는 빅토리아 정신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900쪽 넘는 2부작 소설이지만 오늘날까지 계속 읽히고 있다.
또한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곤차로프, 레스코프 같은 19세기 러시아 소설가들의 작품과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비롯해, 로트, 토마시 디 람페두사 그리고 아이작.B. 싱어와 I.J. 싱어 형제의 작품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내 인생의 소설가 중 지금부터 반세기 넘어서까지 어느 소설가의 작품이 계속 재미있게 읽힐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 있게 줄 수 있는 답은 아이작 B. 싱어였다. 그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어 독자를 못 견디게 만드는 천재적인 스토리텔러다.
요즘 내가 읽는 책은 700여 쪽에 이르는 『레프 톨스토이 단편집』이다. 이 작품은 「카자크 사람들」, 「크로이체르 소나타」「하지 무라드」 등 아홉 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중편 소설로 간주할 만큼 긴 분량의 소설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톨스토이는 최고의 소설가이자, 아마 모든 시대와 장르를 통틀어서 가장 훌륭한 작가다. 그가 만든 모든 인물은 살아 숨 쉬고, 그가 집필한 모든 소설과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소설 속 지루한 부분(가령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역사 부분)조차 흥미롭다. 집착과 시들해진 사랑, 살인에까지 질투심을 그린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예로 들어보자.
기나긴 기차 여행 중인 화자는 옆자리에 앉은 남자로부터 아내의 사랑을 잃고 결국엔 질투심으로 아내를 살해한 과정을 듣게 된다.
톨스토이 소설인 이야기는 단순히 실망감과 격렬한 질투심을 가진 남편의 이야기가 아니다.
독자는 끊임없이 관찰과 격언, 개요와 통찰, 남성적 욕정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고찰, 현대 심리학의 끔찍한 미래, 음악이 정신에 미치는 효과, ‘질투의 화신’등을 접하게 된다.
「크로이체르 소나타」주인공 포즈드니셰프는 아내를 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음악을 언급한다. “사람들은 음악이 영혼을 고양한다고 말합니다.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음악은 어떤 작용을 하긴 하는데 무서운 작용을 합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어요. 음악은 영혼을 고양시키지는 않았어요. 고양시키지도, 그렇다고 저하시키지도 않았어요. 단지 영혼을 자극할 뿐이죠.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음악은 나 자신을, 나의 진정한 위치를 잊게 만들지요. 음악은 나를 내자리가 아닌 다른 어떤 곳으로 옮겨 놓습니다.
음악의 영향 아래에서는 내가 실제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설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또 있다.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2)보다 더 강력하면서도 또 모호한 예는 없을 것이다.
소설은 투르게네프가 창조한 상류층 집안 키르사노프가와 젊은 의사 바자로프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 독자는 저자가 도대체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독자 자신 또한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아마도 최고로 예리한 정치 소설은 가장 비정치적인 작가인 헨리 제임스의 작품일 것이다. 『카사마시마 공주』(1885~1886)에서 제임스는 행동파 급진주의자, 세련된 급진파 귀족부터 사회적 억압의 진정한 희생자까지 다양한 시각과 신념을 가진 인물들을 만들어 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는 위대한 작가의 전당에 오랜 시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작가 콘래드가 떠오른다. 『비밀 요원』, 『선구인 눈으로』, 『노스트로모』, 그리고 수업에서 교재로 많이 쓰여 유명해진 중편 소설 『암흑의 핵심』같은 콘래드의 강렬한 작품은 정치적이고 편향성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지속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강한 정치적 견해를 초월해버렸다. 최고의 소설은 편향적이지 않고, 특별한 이유나 프로그램을 표현하지 않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신학적으로, 심지어 인종적으로 편향적인 사람들도 포함한다.
미국에서 출판된 가장 중요한(책의 영향력 면에서) 소설은 의심의 여지없이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사실 역사적 측면에서만 중요한 책으로 남아 있다. 디킨스와 톨스토이, 조지 엘리엇을 비롯한 다른 위대한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편향성이 보이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들의 소설을 망칠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진지한 소설은 극적인 드라마를 전개함으로써, 개연성 있는 등장인물이 겪는 도덕적 갈등을 보여주고, 논쟁을 인간적 묘사로 대체함으로써 독자를 생각하게끔 자극한다.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아니면 어디서 ‘아름다움이 선한 것’이라는 생각이 커다란 환상이라는 생각과 마주칠 수 있을까.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어느 신학자도 해내지 못했을 방법으로 죽음을 현실화했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등장인물 미코퍼는 어느 경제학자보다도 훌륭하게 경제의 교훈을 가르쳐준다. 이 모든 것이 위대한 소설가의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인생의 여러 단계마다 우리는 소설에서 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영국의 평론가 F. R. 리비스는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를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콘래드 이렇게 네 명으로 한정했다.
리비스보다 취향이 좀 더 가톨릭적인 미국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그의 정전 목록에 오스틴, 스탕달, 발자크, 디킨스, 브론테 자매, 도스토옙스키, 하디, 멜빌,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포크너를 올렸다.
평론가 트릴링은 탁월하고 훌륭한 소설가로 세르반테스, 디킨스,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이렇게 네 작가를 뽑았다. 하우는 스탕달, 도스토옙스키, 앙드레 말로, 아서 쾨슬러,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을 선정했다.
어떤 소설이 공식적인 상을 수여 했다고 해서 그 소설이 훌륭한 소설은 고사하고 중요한 소설로 확정되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퓰리처상 픽션 부문은 이류나 삼류 소설에 상을 수여하면서 그 명성에 빛이 바래가고 있다. 영국 부커상 또한 더 나을 게 없다고 알려져 있다.
노벨문학상의 경우를 보자면, 톨스토이, 프루스트, 제임스, 버지니아 울프, 나보코프 등 생전에 노벨상을 받지 못한 작가들을 모은다면 펄 벅, 헤르만 헤세, 싱클레어 루이스, 존 스타인벡 등 노벨상 수상한 작가들보다 더 멋진 클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읽으면서 큰 즐거움을 준,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과 소설가를 만들어봤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기꺼이 다시 읽고 싶다.
폴 스콧의 『라즈 콰르텟』, 토마시 디 람페투사의 『표범』, 윌리엄 포크너의 『스놉스 3부작』,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의 행진곡』,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와 『황홀한 집』, 뮤리얼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 댄 제이콥슨의 『도착 시간』과 『줄루족과 자이드족』, 맥스 비어붐의 『쥴리카 돕슨』과『일곱 명의 남자』~ ~.
<‘소설이 하는 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조지프 엡스타인 지음, 권진희님 옮김, 사람in출판> * 조지프 엡스타인 : 야망, 우정, 시기, 가십, 이혼 등을 다룬 책 30여 권을 집필했다. 아메리칸 스칼러의 편집인으로 활약했으며, 노스웨스턴대학교 영어과에서 30년간 교편을 잡았다. <뉴요커>,<코멘터리>, <뉴 크라이티어리언>,<타임스 문예 부록> 등 수많은 잡지에 기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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