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바보(얼간이)!

[중산] 2010. 10. 22. 08:58

역도태 : 얼간이처럼 구는 게 더 안전하다

이세민은 정교금을 편애했으며, 이용기와 양옥환은 안녹산을 총애했다. 양산박의 송강은 이규를, 악비는 우고를, 이자성은 유종민을 아꼈다. 이렇듯 역사에서 총애를 받은 장수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2인자를 자처했으며, 다소 바보스러웠다는 점이다. 그런데 2인자 혹은 좀 모자라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지는 않다.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정말 어수룩하고, 어떤 이들은 어수룩한 체했다. 앞에서 예를 든 인물 중에 이규와 우고는 정말 바보들이고, 유종민은 실제 바보이기도 하고 바보스러운 척 하기도 한 반반씩 섞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안녹산은 가장 능청스럽게 바보처럼 굴었던 인물이었다.

 

이렇게 좀 모자라는 얼간이 장군들이나 윗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자들은 대개 순박해서 윗사람의 눈에 들었다. 윗사람들은 꾸밈없고 순박한 이들을 편애했고 웬만한 잘못도 눈감아 주었다. 윗사람들은 정곡을 찌르는 이견보다는, 꾸밈없고 순박한 이들의 이견을 더 좋아했다. 예컨대 이자성의 경우, 유종민과 이암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유종민에게 이자성은 한없이 관대했다. 그러나 온화하고 교양 있는 이암과는 마치 물과 불이 만난 것처럼 상극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암은 영리했고 그의 재능은 상관인 이자성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유종민은 비록 다소 난폭하긴 했지만 총명하지 못했으므로, 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자성의 적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암이 이자성의 손에 죽게 된 이유도 이자성 앞에서 모자라게 굴지 않아서였다. 이암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그 돌아가는 정세를 뻔히 파악하고 있었고, 이암의 견해는 독창적이며 예리했다. 그렇게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암을 이자성은 과연 곁에 두고 싶었을까?

이암은 너무 명민하게 굴어 죽임을 당했고, 반대로 안녹산은 어수룩한 체했으므로 성공할 수 있었다. 번영을 누렸던 당나라는 안사(安史)의 난으로 멸망했는데, 그 안사의 난을 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오랑캐 안녹산이었다. 그러나 안사의 난이 발생하기 전까지 당현종과 양귀비는 안녹산이 오랑캐로서 은혜를 입은 자라는 이유로 방심하고 있었다. 이는 당나라 황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녹산이 바보짓을 너무 잘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당현종이 안녹산에게 태자를 알현하도록 하였는데 안녹산이 예를 갖추지 않았다. 그러자 곁에 있던 대신들이 그에게 어서 절을 하라고 했지만, 안녹산은 여전히 선 채로 저는 오랑캐라서 조정의 예를 잘 모를 뿐 아니라, 태자가 어떤 벼슬인지는 더더구나 잘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당현종이 이 아이는 황태자다. 내가 죽고 나면 태자가 날 대신하여 너희들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녹산이 소인 우둔하여 여태껏 폐하 한 분만 알고 있었지 황태자는 몰랐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마지못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당현종이 양섬, 양기, 양귀비 세 자매와 안녹산에게 서로 의형제를 맺으라고 권하자, 안녹산은 양귀비의 수양아들이 되고 싶어 했다. 이에 당현종과 양귀비는 나란히 앉아 수양아들이 된 안녹산의 절을 받았는데, 안녹산이 양귀비에게 먼저 절을 하자 현종이 왜 양귀비에게 먼저 절을 하는지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안녹산이 우리 오랑캐들은 어머니에게 먼저 절을 오린 후에 아버지께 올립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황태자도 몰라보고 오직 아내인 양귀비와 현종만을 존중하는 덜 떨어진 안녹산이 황제 마음을 기쁘게 만들고 마음을 푹 놓게 만들었으니 어찌 이런 안녹산을 예뻐하지 않았겠는가? 황제는 그런 그에게 저절로 무장해제가 되었다.

 

당시 충성스러운 척을 한 자는 안녹산 하나만이 아니었다. 안사의 난 초기, 당현종은 반란군을 쉽게 진압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황제의 수중에는 안녹산과 견줄 만한 비장의 카드, 가서한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현종의 기대주였던 가서한 장군은 그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가서한 장군은 반란군을 저지하던 중 반란군의 복병을 만나자 안녹산에게 무릎을 꿇고 투항했기 때문이다.

 

가서한과 안녹산 두 경쟁자는 황제 앞에서는 충성을 다 할 것처럼 연기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는 반역자요, 하나는 적에게 투항한 배신자였으니 이들의 충성은 모두 거짓이었다. 예로부터 좀 모자라는 사람이 복이 많다는 것은 중국 역사상 성문화되지 않은 역도태 게임법칙인데, 다소 바보스러운 아랫사람을 편애한 상사의 눈에 비친 얼간이의 장점이라면 송강이 끊임없이 이규를 편애한 것처럼 너무 많아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법하다.

 

얼간이는 평생을 가도 윗사람만큼 총명할 수 없다. 이들은 한번 자신이 모셔야 될 상전이라고 인식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원한도 후회도 없이 해낸다. 똑똑한 아랫사람을 두려워하는 윗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얼마나 다루기 쉬운 인물인가? 한편 복이 많다는 얼간이도 희생양이 될 수 있고, 얼간이 가면을 벗고 반격을 가해올 수도 있다. 그러나 감쪽같이 바보행세를 하여 어느 쪽이 진짜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면, 오히려 복이 따를 뿐 아니라 일생 동안 총애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규와 안녹산의 결말이 어떠하건 간에 다소 바보스러운 사람은 오랜 세월 역사에 줄곧 나타났다. 역사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역도태 게임 중 얼간이 게임이 있었으며, 이 게임으로 인해 후천적 지적장애를 가진 자들이 대량으로 양산되었다.

 

북송 중기, 문관제도가 번영하며 유사 이래 재능이 출중한 세 사람을 세상에 배출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개혁가 왕안석과 대학자 사마광, 대문호 소동파였다. 그러나 북송의 당쟁은 철저히 이 3대 인재들의 협력 가능성을 불식시켰으며, 각자의 원대한 포부 또한 파멸시켰다. 왕안석, 사마광은 서로 나뉘어 무리를 거느리고 신종과 고태후의 대열에 각각 줄을 섰으나, 소동파는 줄 서기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머리를 꼿꼿하게 쳐들고 자기 목소리를 내었다. 당파 싸움이 무엇인지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내면 깊숙이 있는 영혼과 양심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따져보면 소동파와 왕안석은 모두 구양수의 문하생으로 왕안석은 말하자면 소동파의 사형이 되는 셈이었으므로, 소동파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당시 재상이었던 왕안석에 빌붙는다면 그의 전도가 매우 양양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소동파는 당연히 신당의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정치적인 견해로 대체되거나 치환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소동파는 신법에 고집스럽게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로 인해 왕안석과의 관계가 깨져버렸다.

 

소동파는 내 사람이 아니다라고 왕안석이 판단을 내린 후 신당이 장악하고 있는 조정에서 소동파는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영영 얻지 못하였다. 그런데 소동파와 마찬가지로 변법을 반대했던 보수 인사인 구당의 당수 사마광은 왜 소동파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당시 사마광이 당수였던 구당은 소동파를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소동파의 태도는 구당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소동파는 독자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소동파는 보수적이기는 했지만 보수당의 당원이 되기를 거부했고, 이들과도 동맹을 체결하지 않았다. 즉 그는 왕안석 쪽 사람도, 사마광 쪽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역도태 : 개성이 강한 자는 아웃!

소동파는 누구의 사람이었을까?

소동파는 약관의 나이에 명성을 얻었으며 천재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스물두 살 때 치른 과거시험 시 제출한 그의 시문에 시험 감독관은 경악했고, 송나라 인종은 시험 감독관이 올린 소동파의 대작,〈충직하고 온후함을 상벌함에 관한 소고와 그의 아우 소철의 시험지를 보고 손뼉을 치며 짐이 후손을 위해 오늘 재상 둘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또 여섯 번째 황제였던 신종은 그의 글을 읽을 때면 수라를 드는 것도 잊고 천하의 기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동파는 누구의 사람이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시종 긍정적이기보다는 개성 있는 자는 도태된다는 비참한 결론을 도출해낸다. 1079년 신당의 일부 소인배들이 소동파가 쓴 시구를 두고 호들갑을 떨며 어사대에 탄핵문을 올렸는데, 소동파가 국정을 공격했다는 내용이었다. 난생 처음 수감되는 재난을 당한 소동파의 그 유명한 오대시안(오대란 어사대를 말한다. 조정의 정치를 비방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어사대에 체포된 소동파를 어사들이 심문한 내용과 소동파의 변명을 담은 기록이 오대시안이다)은 이렇게 찾아왔다.

 

오대시안은 철두철미하게 괘씸한 소동파 벌주기로 얼룩진 억울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오대시안은 벼슬길 내지 인생길에서 소동파가 만난 대지진이었고, 이 지진은 그에게 역도태 게임의 법칙(개성이 강한 자는 도태된다)에 대해 깊은 가르침을 주었다. 개성파 인격의 희생을 원치 않았던 소동파는 부득불 주류에서 축출될 수밖에 없었고, 세상을 구하겠다는 신념도 버려야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연과 더불어 시에 자신의 뜻을 실어야 했다.

<“역도태”일부 요약, 청완쥔 지음 ,미래의창>

 

                                                                <신설 거가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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