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삶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과 같다. 각 악장에 제목을 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과>, <몇몇 사람과>, <아무도 없이>. 이 세 악장은 일 년 동안 각각 넉 달씩 연주된다. 가끔씩은 한 달 동안 세 악장이 번갈아 연주되는 경우도 있지만 중복되는 경우는 없다. <많은 사람들과>는 독자나 출판 관계자, 저널리스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몇몇 사람과>는 브라질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고, 코파카바나 해변을 거닐고, 드문드문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때다. 남는 시간은 대부분 집에서 보낸다. 오늘은 <아무도 없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곳 피레네 지역 마을에 사는 이백여 명의 주민들 머리 위로 어스름이 내리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이곳에서 방앗간을 개조한 집 한 채를 샀다. 매일 아침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소와 양 떼들을 지나 옥수수밭과 초원 사이를 거니는 것이 내 일과다(<많은 사람들과>와는 완전히 딴판인 생활이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가를 잊는다. 질문도 답도 없이 온몸으로 순간을 살고, 일 년에 사계절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며(명백한 사실이지만, 가끔 우리는 그걸 잊을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싼 자연과 하나가 되어간다. 이때의 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여느 시골사람처럼 내게 가장 중요한 뉴스는 일기예보다. 시골사람이라면 누구나 비, 바람, 추위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그들의 삶과 일정, 수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니까. 산책길에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와 마주치면 인사를 주고받고, 날씨에 대해 몇 마디 나눈 뒤,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간다. 농부는 밭을 갈고, 나는 산책을 하는 것이다.
점심때가 되어 가벼운 식사를 하고 나면 불현듯, 오래된 건물 안의 어느 방에 놓인 기이한 물건이 시야에 들어온다. 기적 중의 기적, 초고속 통신에 연결된 모니터와 자판이다. 나는 알고 있다. 전원을 켜는 순간, 또다른 세상이 내 앞에 나타나리라는 걸.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버텨보지만, 어느새 내 손가락은 전원을 누르고, 나는 또다시 세상과 브라질 신문, 책, 인터뷰 일정,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뉴스, 청탁 건, 비행기 표가 내일 도착한다는 연락, 연기하거나 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들에 접속한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부지런히 일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의 신화를 이루었고, 거기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이>가 연주되는 동안은 모니터 위의 모든 것이 아득히 멀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과>, 혹은 <몇몇 사람들과>가 흐르는 때, 방앗간집에서의 시간이 꿈결처럼 느껴지듯이.
해가 지고 전원을 끄면 어느덧 세상은 다시 풀 내음과 소 울음소리, 방앗간집 옆 우리로 양 떼를 모는 양치기의 소리만 메아리치는 시골마을이 된다. 나는 궁금해한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세상이 내 삶의 하루 동안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내게 크나큰 기쁨을 준다는 것,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아주 행복하다는 사실 외에는.
<“흐르는 강물처럼“일부 발췌,파울로 코엘료 지음,문학동네>
* 1947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출생.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십대 때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청년 시절에는 브라질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반정부 활동을 하다 두 차례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히피문화에 심취하여 록밴드를 결성하고 120여 곡의 음악을 만들었으며, 히피, 저널리스트, 록스타, 배우, 희곡작가, 연극 연출가 그리고 TV 프로듀서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1982년 떠난 유럽여행에서 만난 J라는 인물의 이끌림에 따라 1986년 서른여덟 살 때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그는 순례의 경험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인 1987년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파울로 코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