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글을 배우려는 욕망이 독서의 문을 열다
왜 책을 읽는가? 내게 독서란 걷는 일과 같다. 심지어 나는 걸으면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 덕분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참 많았다. 언젠가 책에 정신이 팔린 채 걸어가다가 주차권 발행기에 부딪힌 일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이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고개를 들어 보았더니, 저런… 주차권 발행기가 아닌가! 걷거나 읽는 일은 자발적인 행위다. 그러나 독서는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습득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책을 읽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책 읽는 법을 쉽게 배우는 것도 아니다.
위대한 독서가들은 읽는 법을 쉽게 배웠을까? 내 경우엔 쉬운 편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깨우쳤을 정도로 말이다. 며칠 동안 알파벳을 따라 읽었을 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글자를 늦게 배우기 시작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1년 전부터 나는 불만이었다. 친구들은 거의 다 그 무렵에 글을 배웠던 것이다. “왜, 나만 글자를 안 가르쳐줘요?” 나는 이런 질문으로 끊임없이 부모님을 귀찮게 했다. 그러면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대꾸하곤 하셨다. “학교에서 가르쳐줄 테니 기다려. 다 때가 있는 법이야!”
나는 영화 포스터건 거리의 간판이건, 혹은 잡지 표지건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은 뭐든지 눈에 띌 때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뭐라고 쓰여 있어요?”라고 묻곤 했고,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정말로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내 첫걸음은 타의에 의해 남들보다 늦어진 셈이다.
여섯 살의 아이들은 매우 똑똑하다. 그리고 순진하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했던 것 같다. 공공연하게 그러나 신비스럽게 이루어지는 그 모든 일들에 대해 발생 동기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일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도대체 이 모든 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매달렸고, 글을 통해 그런 것들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은 글만큼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나는 부모님 말씀의 속뜻을 헤아릴 여지조차 없이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권위의식에 대해 거부감부터 가졌다.
나는 늘 권위가 싫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대방의 반박을 잠재우기 위해 권위에 기대어 내뱉는 말처럼 화가 나는 일도 없다.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논리적인 말, 놀랍도록 멋진 이성적 대화를 거부하는데, 내겐 이성적인 대화처럼 멋진 것도 없었다. 이성적인 대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반면 권위의식에서 나온 말은 그 기저에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권위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는 흡사 마법에 걸린 양 글쓰기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나타났다. 거친 야생아에 불과했던 내게 문장은 무언가를 열 수 있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문장 속의 글씨들은 그 자체가 마치 열쇠 모양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표현한 검고 길쭉한 열쇠 모양의 글씨들. 그야말로 우리 집 서가에 가득 찬 이 열쇠 꾸러미들은 내게 보물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글쓰기는 내게 추상적인 존재인 것은 물론,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즉, 이해관계를 떠난 것이었다.
나는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막연히 느낌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정의를 내려 보자면 문학은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유일한 글쓰기 형태이다. ‘왜 읽는가?’라는 질문은 바로 ‘왜 문학을 읽는가?’에 갈음하며, 내가 구하고자 하는 답은 바로 이 질문에 해당한다.
우리는 지식을 얻기 위해 역사 회고록이나 정치 프로그램, 천문학 관련 논문, 게임 설명서 등을 읽기도 하지만 사실 지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교양이 없거나 어리석기 그지없는 수많은 이들조차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유추(類推)능력’이다. 그리고 문학 중에서도 특히 픽션은 유추의 형태를 띤다. 즉 유추를 통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풀어낸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성(知性)을 넘어 감성(感性)에 반응하는 유추를 통해 사물을 이해한 것이 바로 문학이다. 유추와 감성, 이는 사물을 이해하는 또 다른 형태이며, 분석과 지성에 기대는 철학이 문학과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감성은 문학을 매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나, 또한 문학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기도 하다. 감성은 그 자체의 이미지로 우리를 기만할 수 있으며, 철학이나 심리학보다 더 빨리 이러저러한 사물들을 파악하게 만들 수도 있다. 책을 통한 사물의 이해, 책을 통한…. 나는 ‘책을 통한’이라는 표현에 담긴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인정할 수 없다. 이 표현은 아직 야만성을 벗지 못한 사회가 소위 문명이라고는 하나 겨우 식탁 예절에 불과한 세련된 탈을 뒤집어 쓴 주제에 정신적인 것에 집착한다는 경멸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논리는 어떠한가? 나는 사람들이 논리를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아이가 부모를 성가시게 하면 부모는 그 아이를 따지기 좋아하는 불손한 애로 취급한다. 우리는 ‘문학’과 관련한 수많은 표현들을 즐겨 사용한다. “참, 문학스럽구먼.”, “소설 좀 그만 쓰시지!”, “시가 따로 없네!” 같은 표현을 비롯하여 추잡한 어떤 사건들을 보면서 “개판이군!”이라는 말도 한다. 견공들이 들으면 분통을 터뜨릴 일이지만, 개가 됐든 문학이 됐든 그 자체가 가증스러운 것은 아니다. 문학과 연관된 단어들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을 것이며, ‘책을 통한’이란 말이 얼마나 좋은 표현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배우고 얻은 것은 대부분 책을 통해서였다. 세상에 대한 이해 혹은 나의 작은 지식들은 경험을 하는 순간부터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밖에 좀 나가 놀아라!”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부모님이 독서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더욱이 학식이 없던 분들도 아니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단지 내 관심사를 다양하게 넓혀주기 위함이었다. 어린 내게 관심의 대상은 오로지 책뿐이었다. 때때로 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나가서 놀기도 했다. 어머니의 다정한 시선을 받으며 분필로 그린 길을 따라 작은 자동차를 밀며 놀곤 했지만, 금세 싫증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은 의무적인 일들 때문에 괴로워하며 보냈던 것 같다. 놀아야 한다는 그 특별한 의무 때문에….
나는 언제나 놀이보다는 책에서 더 많은 기쁨을 느꼈다. 운동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억이나 할 말이 없다. 형형색색의 미니카들을 가지고 놀다가 부모님이 흡족해하시면 곧바로 내 최고의 행복인 책 읽기에 몰입했다. 물론 그때의 행복감은 책 읽기의 또 다른 이유였고, 독서는 내게 다른 어떤 놀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었다.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독재자는 왜 책을 읽는가?
지도자를 뽑을 때 우리가 따져 보아야 할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혹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불을 지를 사람은 아닐까?”이다. 이런 의혹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가 너무나 순하고 무서울 게 전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그런 의혹이 든다면, 심히 우려스러울 정도로 저속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인 칼리프 오마르는 고대시대에 가장 풍부한 장서량을 자랑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태우라고 명령함으로써(642년 무슬림의 이집트 정복 때) 저속한 광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훌륭한 혈통을 자랑하는 독재자들의 파렴치함은 아무런 배경 없는 가난한 야심가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신앙만큼이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이 종종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가 하면, 최악의 독재자들이 독서를 권장하는 일 또한 드물지 않다. 옛 소비에트연방에서 책은 어딜 가든 쉽게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사회주의가 봉건사상에 대한 승리임을 증명하기 위해 제정 러시아 시대의 문학을 가르쳤고, 위대한 문인들의 원고 또한 소중하게 보관했다. 책으로부터 탄생한 볼셰비즘이 책을 보호한 것이다. 마르크스 역시 푸시킨을 비롯한 문인들을 구해냈다!
나는 흑해에서 보냈던 어느 여름날을 떠올릴 때마다 감상에 젖는다. 그때 흑해 연안에 있는 한 별장의 테라스에서 조셉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 문제(Le Marxisme et les problèmes de linguistique)』(내가 보기에는 러시아 원제인 『사회주의의 경제학적 문제들』이 더 옳은 것 같다.)를 다시 한 번 정독했다. 더 없이 행복한 여름이었다. 하지만 나라면 그들에게 사람을 불태우지 말고, 차라리 내 책들을 불태우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나의 어둠을 인식하기 위해 책을 읽다
억눌린 모든 것이 해방되었다. 나는 읽고 또 읽었으며, 마치 빛을 본 것만 같았다. 그 느낌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보았던 것, 그리고 내가 인식했던 것은 18세기 계몽시대를 상징하던 바로 그 ‘빛’이었다.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왜 책을 읽는가?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편견 속에 살면서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둠은 인식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문학의 일부이다. 어둠은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고유한 특성이다. 독서가들은 순수성과 완전함과 공정함을 내세우지 않는 유일한 문학가들이며 그런 요소가 없이도, 자랑할 것이 없어도(여기서 루소는 제외한다) 그 자체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결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글쓰기는 정숙하지 못한 성행위다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건 쉽지 않지만, 그만큼 달콤한 일이다. 마치 황홀했던 섹스처럼 사랑스런 추억을 남겨 준다. 독자는 책과 함께 오르가슴에 빠진다. 독서는 궁극적으로 글쓰기로 나아가며, 글쓰기란 정숙하지 못한 성행위와도 같다. 작가로서의 데뷔 시절이 단지 첫걸음에 불과했다면, 처음으로 책을 출간하고 난 직후에는 거리로 나가는 것조차 부끄러울 것이다.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자신의 은밀한 신체 부위 같은 나의 두려움과 기쁨을 어떻게 밖으로 내보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너무나 분주한 요즘 사람들은 마음을 열 틈이 없어서 벌거벗은 자들에게 무관심할 뿐 아니라,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쩌면 너무나 예의가 바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못 본 척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쓴 책을 읽지 않는 것일 수도…. 생제르맹 거리에는 매일매일 나체로 활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체포되지도 않는 그들은 바로 작가이며, 독자는 그들의 공모자이다.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 속의 보물을 훔치라
이성에 반대하기 위해 읽는다
예술에 있어서 이성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것이고, 광기는 죽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런 이유로 고인이 된 아나톨 프랑스는 썩은 생선처럼 버려졌고, 알프레드 자리는 아직까지 재미를 보고 있다. 작가는 죽어야 한다. 살아 있는 작가들은 자신 앞에 드리워진 ‘예의’라는 스크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기가 어렵다. 살아 있는 작가들이 불행해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에너지는 그대로 살려 두되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다. 독자인 내게 광기는 즐거움을 주는 반면, 이성은 뒷걸음질 치게 한다. 독서는 비이성적인 행위다. 중요한 인물들은 독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그래도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명예나 돈과는 상관없이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독자는 때로 실패한 글을 고쳐 쓴다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 제라르 드 빌리에의 탐정소설 시리즈 가운데 『붉은 레바논(Rouge Liban)』을 6.99유로를 주고 샀다. 책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판매원에게 그렇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들은 척도 않는다. 그냥 샀다. 어떤가 보려고. 시작은 괜찮았다. 속도감이 있었고, 통속적인 에너지(통속적이지만 에너지가 넘친다는 뜻에서)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제1장 14쪽까지만 그랬을 뿐. 15쪽부터는 지루한 대화의 반복이다. 딱히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이 게으른 작가에게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묘사라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보다. 저속한 그의 묘사는 감탄할 만한 인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물을 조금도 부각시키지 못했다. 한 예로 50쪽까지 두 문장을 들어 보겠다. “사우디의 왕자는 금과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자신의 손목시계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이어서 두 번의 대화가 오고 간 뒤), “천사가 나타났다가 겁에 질려 달아났다.” 작가가 어찌나 성실했던지 42쪽에 나왔던 이 대목이 47쪽에도 그대로 다시 나온다. 나머지 부분에서도 이 시리즈가 놓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 발견되었다.
1년 전인가 2년 전에 여행할 때 읽으려고 발자크의 책을 구입했으나 정작 여행에는 가져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 책의 여백은 나의 메모들로 빼곡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고전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고전주의자들은 규칙에 집착하는 혁명가다
우리는 ‘고전주의자’들을 ‘느긋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전주의자들은 느긋함과는 거리가 먼 혁명가들이다. 말레르브와 브왈로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16~17세기 고전주의의 위대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인 그들은 앞선 시대를 파괴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았다. 그렇다고 범죄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선대를 추종하지 않았을 뿐이다.
고전주의자들은 불규칙한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규칙이 있는가? 고전주의자들이 반동분자가 된 것도 그래서였다. 고전주의자들은 세상 모든 것이 규칙적인 아케이드로 정돈된 파리의 리볼리 가나 아크로폴리스 같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는 있어도 아크로폴리스 ‘같은 것’은 없는 법.
사실 인생은 본질적으로 바로크적이다. 위대한 고전주의자인 루이 14세는 방돔 광장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파괴했다. ‘아름다움’, 이것이 보수주의자들에게 맞서 고전주의자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그렇다면 왜 루이 14세는 자신의 아버지 루이 13세가 세운 베르사유 궁전은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아버지 뒤를 계승한다는 것, 이 또한 규칙에 합당하며 고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의 적자인 영국 시인 토마스 흄은 박물관을 10년마다 한 번씩 파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파 신고전주의자인 그는 몇 년 후에 나타날 T. S. 엘리엇에게 길을 터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흄에 관한 책을 저술한 패트릭 맥기네스가 내게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흄이 길에서 오줌을 싸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경찰이 한마디 하자 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지금 중산층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소. 이 사실을 알고 있소?” 재치 있는 농담이었지만, 흄의 이 말에는 당시 영국에서 큰 골칫거리였던 중산층에 대한 입장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는 사실에 진정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패트릭 맥기네스는 그 경찰관이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움, 불규칙성을 표방하는 바로크는 고전주의보다 더 보수적이다. 아니, 보수적이기보다는 온건하다고 해야 할까? 바로크는 움직임에 열광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바로크는 말 그대로 바람이다. 바로크는 바람을 대리석에 잡아 매두는 데 성공했다.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저널리즘과 문학,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뉴욕타임스》지는 2006년부터 프랑스에서 인쇄되어 배포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미국에서 인쇄된 일요일판 《뉴욕타임스》가 호당 14유로에 판매되고 있었다. 미국판과 똑같은 프랑스판 《뉴욕타임스》는 6유로라는 싼 가격으로 그때까지 뉴욕 소식을 전해 주던 《메트로 섹션(Metro Section)》의 독자를 앗아가 버렸다. 프랑스판 《뉴욕타임스》는 흑백 인쇄에 작은 판형으로 보기에도 좋았다.
같은 잡지라 해도 오리지널 판본과 외국 판본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무엇인가 변질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지역신문을 타지에서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저널리즘과 문학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문학은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읽더라도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문학의 본질은 그 자체에 내재해 있어서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반면에 저널리즘의 본질은 대부분 지면 밖에 있어서 독자가 끄집어내야 한다. 문학이 창작이라면 저널리즘은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은 신문 지면에 집착한다. 신문에도 때로는 문학이 있고, 수많은 책 가운데에도 옮겨지자마자 퇴색해 버리는 저널리즘이 있다. 그러나 언론은 대중과의 타협이다. 이 점은 문학과의 또 다른 차이인데, 그래서 언론이 독자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독자는 모닝커피와 함께 뉴스를 보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한 성인 대중이다.
저널리즘은 폭력을 순화시키기 위한 이미지들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2001년 9월 11일, 그리고 연이은 며칠간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유럽의 텔레비전 방송까지 월드트레이드센터 건물을 관통하는 비행기의 모습과 건물이 붕괴되는 모습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은 정보 전달의 수준을 넘어 시청자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끔찍한 참사였다. 백 번 이상 바늘에 찔리면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법이다.
텔레비전이 시청자의 감각을 마비시킨 그 사태는 어쩌면 아랍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폭동을 잠재웠을지 모른다. 이 테러 소식이 전해졌을 때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라말라(Ramallah)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습을 방영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미국 정부가 불길을 피하기 위해 창밖으로 뛰어내리거나 추락하는 장면, 혹은 으스러진 신체 이미지를 텔레비전에서 방송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던 것 또한 그런 이유가 있었다.(이라크에서 전사한 군인들 시신의 송환 장면을 찍지 못하게 한 것 역시 전사자들에 대해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문학은 대중에 대한 의무감이 없으므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들까지 다 보여줄 수 있다. 개인적인 감흥은 집단적인 감흥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을뿐더러 파급력 또한 미미하다. 미국의 소설가 제이 맥키너니는 소설 『아름다운 인생(The Good Life)』(2006)에서 단 한 장의 이미지를 가지고 금지된 다른 모든 이미지를 대신했는데, 그것은 바로 소리의 이미지였다. 썩은 과일이 으깨지는 소리 하나로 탑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의 신체를 이야기한다. 더 이상 묘사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끔찍한 이미지는 더 이상 묘사하지 않기로 한다. 쌍둥이 빌딩은 인류의 고통을 아주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9·11사태 당시, 독일의 작곡가 칼하인츠 스톡하우젠은 이 건물의 붕괴야말로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미학적 사건이라는 엄청난 발언을 했다. 그리고 전 세계인의 지탄을 받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것은 감성이 결여된 삐뚤어진 지성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지성에 호소한 적 없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보다도 더 큰 허점을 남겼다. 재난의 아름다움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한다. 지진으로 파괴되는 2012년의 로스앤젤레스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것을 감상하는 이들이 이미 허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란 허벅지에서 부러진 뼈가 돌출된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줄 때 생겨나는 법이다.
문학과 저널리즘, 이 두 가지 글의 핵심적인 차이는 죽음과의 관계에 있다. 문학은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저널리즘은 죽은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문학은 유쾌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저널리즘은 불쾌한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널리즘이 죽음이 아닌 죽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왜 책을 읽지 않는가?
잃어버린 황홀감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읽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섹스를 마친 직후와 비슷하다. 파트너에게서 떨어져 나와 아직 상대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을 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찰나와 같은 무아지경에 이를 때, 우리는 아직 진짜 절정에는 도달하지 못한 듯 황급히 또 한 번의 새로운 황홀감을 찾는다. 그런 짧은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순간적인 것과 지속적인 것이 공존하는 순간, 즉 ‘독서’라는 정신 활동(감각이 빠지지 않은)을 하는 가운데 쉼을 얻거나, 신체 활동(사유가 없지 않은)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체득하기를 갈망하는 순간 말이다.
가증스러운 글에 울화가 치밀어서: 나는 108년 동안 줄곧 위대한 걸작이라 평가받아 왔던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서신문(Lettres)』을 《신 프랑스 평론(NRF)》에서 처음 읽기 시작했다. 사실 『밤의 끝으로의 여행(Voyage au bout de la nuit)』을 집필한 그는 그동안 온갖 욕설과 비난을 받아왔다. 눈물을 쥐어짜는 늙은 쥐라는 낙인까지 찍힐 정도다. 1948년 2월 18일 장 폴랑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단언하건대, 다음 학살이 일어날 때 나는 도살장에 있을 것입니다. 결단코 송아지들 편에서요….”
유대인 대량 학살을 주장했던 그가 뭐가 부족했던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울먹거리며 “결단코”라고 강조한다. 오래도록 학살자들의 편에 있었던 사람이 말이다. 플레이아드 판본에도 나오지만, 1942년 대독협력 정책 동조자의 우두머리였던 도리오에게 보낸 한 장의 편지가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 “유태인은 결코 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 명의 유태인이 곧 유태 민족 전체입니다. … 개미 한 마리가 있는 곳이 곧 개미소굴이지요.”
셀린이 자비로운 사람이었다면 세간의 동정심에 호소라도 했겠지만 그는 거기엔 관심이 없었다. 대신 2차 대전 후 18개월 동안 코펜하겐의 감옥에서 자신을 위한 변론집을 구상했고, 그중 12권은 감옥에서, 나머지 6권은 병원에서 집필을 끝냈다. 그는 끊임없이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다. 그동안 그의 친구였던 나치 부역자들은 프랑스에서 자살하거나 처형되었다. 이런 사실은 정확히 어떤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베르나르 프랭크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영원히 명예를 박탈당한 작가가 있다면, 그는 바로 루이-페르디낭 셀린이다. 앞서 말한 폴랑에게 보낸 편지는 《NRF》의 47쪽에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즉시 책을 덮어버린 후 다시는 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종류의 정치인들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작가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그런 야비한 작가들과 그들을 감싸고도는 이들, 그들이 물어온 미끼를 무대 삼아 활동하는 전문가들, 그들을 찬양하지 않으면 밥줄이 끊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비평가들, 이들이 내는 소음은 묵묵히 일하는 천재들의 소리를 묵살하는 한편 위조된 가짜들만 살아남게 한다. 애석한 일이지만, 세상은 사유보다는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리네 작가들은 성직자들과 달리 칩거하지 않고 자신을 애써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 참! 이란의 도시 콤(Qom)에는 홀로 살아가는 작가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방문객이라고는 해골처럼 튀어나온 그의 갈비뼈를 조롱하며 머리끝에 걸쳐 있는 터번으로 그의 뺨을 강타하는 바람뿐인 그곳에서 말이다. 힘들게 도랑을 기어오르는 독자를 만드느니 그냥 독자 없이 사는 게 나은 것이다.
미칠 것 같아서: 해석에 대한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읽는 것을 멈추는 편이 낫다. 내가 어떤 작가에 대해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다면,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진실인 이상 우리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편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사색하기 위해서: 사색이야말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가장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독서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피리 부는 사람 앞에 놓인 뱀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말하자면, 독서는 내게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마치 숨을 쉬는 것과도 같다. 나는 책을 읽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책읽기를 멈춰버린 위대한 독자들을 나는 알고 있다. 독서를 주관하는 신 따위는 없지만, 대신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독서능력이 책읽기의 운명을 주관한다.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제 나는 피사의 사탑처럼 옆구리가 휜 미국 유람선 안에서 멍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여행에 대한 안내 책자를 읽을 것이다.
<"왜 책을 읽는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샤를 단치 지음,역자 임명주,이루출판>
저자 샤를 단치
1961년 프랑스 남서부의 타흐브에서 태어났다. 의학교수 집안에서 자란 그는 집안의 권유로 툴루즈 법대에 들어갔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법대 시절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법대는 내게 최고의 학과였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었으므로.” 28세 때 파리에서 박사 논문을 마친 그는 첫 에세이집과 첫 시집을 출간했다. 그 후 고전 작가들의 미간행 작품들을 발굴하는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영미 문학의 번역자로도 일했다. 2012년 3월 《르몽드》에 “문학의 포퓰리즘”을 발표했다. 현대문학과 리얼리즘의 위험한 미적 행보를 비판한 이 논설은 커다란 문학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문학잡지(magazine Transfuge) 특별호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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