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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벨정원~호엔잘츠부르크성~모차르트생가~블레드 섬!

[중산] 2017. 5. 13. 22:40

 

                                                                                    동화 속 한 장면인 불레드성과 호수 전경!

 

 

 

미라벨정원~호엔잘츠부르크성~모차르트생가~블레드 섬 순서로 둘러보다!

                                                       영화 '사운드오브 뮤직'의 배경 도시인 <도레미송>을 불렀던 곳 [미라벨 정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주() 잘츠부르크 시내에 있는 17세기 정원.
잘츠부르크는 소금(Salz)으로 만들어진 성(Burg)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시로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사실 잘츠부르크가 처음부터 음악의 도시로 이름을 떨친 것은 아니었습니다모차르트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유명하지 않았지만모차르트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잘츠부르크를 음악의 도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잘츠부르크 신시가지의 미라벨 궁전 앞에 펼쳐져 있는 정원으로, 중앙역에서 라이너슈트라세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오른쪽에 있다. 미라벨 궁전은 1606년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를 위해 지었으며, 당시는 알트나우라고 불렀다. 후임자인 마르쿠스 시티쿠스 대주교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정원은 1690년 바로크 건축의 대가인 요한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Fischer von Erlach)가 조성하였고, 18세기에 건축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Johann Lukas von Hildebrandt)가 개조하였으나 1818년 화재로 파괴된 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예전에는 궁전에 속해 있어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 개방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라벨 정원에서 마주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채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는 잘츠부르크의 상징로성과 왕들의 거주 공간군대와 감옥시설로도 사용된 곳입니다요새 안에는 대주교들의 호화로운 방중세시대의 무기고와 고문 기구잘츠부르크의 불이라 불리는 200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 등을 볼 수 있습니다.견고하고 큰 규모로 지상전에서는 아무도 점령할 수 없었지만히틀러의 비행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항복하고잘츠부르크가 점령당했었다고 합니다또한성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논베르크 수도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오스트리아의 가장 오래된 수녀원 중 하나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수녀 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전체적인 조화를 중시하여 조성하였으며, 분수와 연못, 대리석 조각물과 많은 꽃들로 잘 장식되어 있다. 중앙분수 주위에는 1690년 모스트(Most)가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을 조각한 작품이 늘어서 있고 그 옆에는 유럽의 많은 바로크 예술품들을 전시해 놓은 바로크 박물관이 있다. 정원 서쪽에는 1704~1718년에 만든 울타리로 주위를 두른 극장이 있고, 북쪽 문 앞에는 정교한 청동조각으로 꾸민 패가수스 분수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라벨 궁전은 규모는 작아도 콘서트가 많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궁전 내 대리석 홀에서 대주교를 위해 연주를 하였으며, 지금도 실내악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 또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도 인기 있는데, 결혼식이 끝나면 꽃 장식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다. 미라벨 정원 맞은편의 미라벨 광장에는 교외로 나가는 많은 관광버스들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로 가는 관문인 '마카르트 다리(Makartsteg)'에서 바라본 풍경

           

                                                                                 

 

 

                                                                                마차를 탈 수 있는  잘츠부르크 레지덴츠 광장!

대성당,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이 대성당은 당시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막강했던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재로 소실된 옛 성당 자리에 16세기 말부터 40년에 걸쳐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성당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유럽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레지덴츠광장에서 바라 본 호엔잘츠부르크 성채는 잘츠부르크의 상징인 곳으로 구시가 남쪽, 묀히스베르크 언덕의 120m 지점에 위치한다. 구시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이기 때문에 구시가 어디에서든 보이는 요새이다. 1077년 건축한 철옹성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 사이에 주교 서임권 투쟁(1075~1122년)을 벌이던 시기에 잘츠부르크 대주교 게프하르트가 남부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매우 견고하게 지어진 덕분에 한 번도 점령당하지 않아 지금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은 요새와 대주교의 거주 공간이었지만 군대 막사와 감옥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5년간 조카 마르쿠스 시티쿠스에게 감금되어 1617년 숨을 거둔 장소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15세기에 설치된 무기고와 대포 설치대가 여전히 남아 있고, 15~16세기 동안 증축 및 보수 작업을 진행해 17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엔잘츠부르크 요새(성채)

잘츠부르크의 상징이자 오스트리아에서 손꼽히는 문화재로 유럽에서 가장 큰 요새다. 1077년 게하르트 대주교가 남독일 제후의 공격에 대비해서 건축한 이래 18세기까지 수백년 동안 증축되었다. 모차르트 광장(Mozartplatz)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케이블카 이용. 도보 이동 시 페스퉁구스 거리(Festungs-gasse)로 20분 정도 올라간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내부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에서! 입구에는 3개의 청동대문은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지덴츠 광장, 중세시대의 건축물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모차르트가 들렸을 것으로 여겨지는 상가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모차르트 생가(건물 3층 금 휘장 한곳)를 배경으로~!

오늘날 오스트리아 모차르트가 남긴 유산은 수백조도 아닌 돈으로는 환산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차르트 생가는

잘츠부르크의 대표 번화가인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진한 노란색 건물을 찾으면 된다. 모차르트가 1756년 1월 27일 태어난 뒤 17세까지 살던 집으로 모차르트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모차르트의 유년시절 작품이 탄생한 곳으로, 현재는 모차르트가 생전에 사용하던 침대, 바이올린, 피아노, 악보, 초상화,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많은 인기를 얻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차르트 생가 [Mozart's Birthplace]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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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Wolfgang Amadeus/1756.1.27~1791.12.5)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국적 : 오스트리아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주요수상 : 황금박차(拍車)훈장
주요작품 : 《피가로의 결혼》(1786)이나 《돈 조반니》(1787) 《마적(魔笛)》(1791)
잘츠부르크 출생.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나타내어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의 궁정에 알리기 위하여 아들이 6세 되던 해부터 여행을 계획하여 1762년 7월 바이에른 선거후의 궁정이 있는 뮌헨에 가서 연주하고, 이어 빈으로 가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사 앞에서 연주하는 등 많은 일화가 있다.
그의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준 것은 서유럽을 거의 일주하다시피 한 여행(1763∼1766)이었다.
여행에서는 파리에서 알게 된 J.쇼베르트(1720?∼1767), 런던에서 알게 된 J.C.바흐(J.S.바흐의 막내아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파리에서는 바이올린소나타를, 런던에서는 최초의 교향곡(제1번 Eb장조) 등을 작곡했는데, 이 교향곡은 8세 때의 작품이었다.
 
두번째로 빈을 다녀온 후, 1769~1773년에는 3번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는데 그 동안 교황으로부터 황금박차(拍車)훈장을 받고,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의 입회시험(入會試驗)에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볼로냐에서 마르티니로부터 음악이론 ·작곡을 배운 일과 이탈리아의 기악 ·성악에 직접 접한 일 등은 그 후의 교향곡 ·오페라 ·교회음악 창작에 풍부한 자극이 되었다.
그는 이때 10대 소년으로 오페라의 작곡 의뢰를 받고 밀라노에서 작곡한 오페라를 상연(1770)하였는데, 제2회(1771)와 제3회(1772∼1773)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곳에서 오페라를 작곡 상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후 1777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과 사교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으나, 차차 그 직무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여 1777년 가을부터 1779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다른 궁정에 취직하기 위하여 만하임 ·파리를 여행하였다.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음악면에서는 만하임악파와 접촉하는 등 수확이 컸고 이때 《파리교향곡》(1778) 외에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또한 만하임에서의 아로이지아 베버와의 사랑, 파리에서의 어머니의 죽음 등 인생의 경험도 많이 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궁정음악가로서의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1780년 말 뮌헨궁정으로부터 의뢰받은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의 상연을 위하여 잘츠부르크를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때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대주교 히에로니무스와의 불화가 표면화하여,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와 사표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빈에서 살기로 결심, 그의 인생의 후반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빈에서는 처음 작곡 ·연주(피아노) ·교육활동을 하였으며, 오페라 《후궁(後宮)으로부터의 도주》(1782)와 《하프나교향곡》(1782), 피아노협주곡 등을 작곡하였고 1782년 8월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그가 빈에 머무는 동안에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되었다.
하이든과는 1785년경에 직접 알게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빈시대의 후반에 접어들자 모차르트의 작품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그 반면 빈의 청중들의 기호로부터는 차차 멀어져, 생활은 어려워지고 친구들로부터 빌린 빚도 많아졌다.
 
178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러한 상황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피가로의 결혼》(1786)이나 《돈 조반니》(1787) 등의 오페라는 이 시기의 걸작들이다.
후자가 초연(初演)된 해 4월 베토벤이 찾아왔고 5월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구르크의 뒤를 이어 궁정실내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것은 이름뿐이고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이듬해에는 닥쳐오는 경제적인 궁핍 속에서 이른바 3대교향곡 《제39번 E장조》 《제40번 G단조》 《제41번 C장조:주피터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그 후에도 모차르트는 몇 차례 여행을 하였다. 1789년의 베를린 여행에서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알현하여 작곡의뢰를 받았다.
 
이듬해 초에는 오페라 부파 《코시 판 투테》를 완성하고, 가을에는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대관식협주곡》 등을 포함한 연주회를 열었으나 빚은 늘어날 뿐이었고 1791년 8월 의뢰받은 오페라 《티투스제(帝)의 인자(仁慈)》의 상연을 위하여 프라하로 여행하였으나 이 때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9월에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魔笛)》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레퀴엠》을 미완성인 채 남겨 두고 12월 5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빈시의 성마르크스묘지에 있다.
36세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생애였으나, 어려서부터 창작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은 성악 ·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채롭다.
 
그의 공적은 하이든과 함께 빈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데 있으며, 그를 앞섰던 이른바 전고전파(前古典派)의 여러 양식을 한몸에 흡수, 하이든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적인 예술을 이룩하였다

 

 

 

 

                                                                                              블레드섬까지 타고가는 나룻배

중세시대로 돌아간 시간

블레드섬과 함께 블레드 호수에서 들러야 할 또 하나의 명소는 블레드성(Bled Castle)이다. 호수 한 켠 13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블레드성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 중 하나다. 블레드성의 역사는 독일 왕 헨리 2세(Henry II)가 아델베론 브릭슨 주교(Albuin of Brixen)에게 성이 자리한 영토를 주었던 1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금의 성터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로마네스크 탑만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1011년 비로소 성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이후 중세시대에 이르러 몇몇 탑들이 추가로 지어졌고, 1511년 지진으로 소실된 이후 다시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블레드성은 박물관과 와인 셀러, 레스토랑, 채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블레드성의 역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이 성에 오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 곳곳에 중세시대 의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 박물관 안에 실제 사람 크기로 재현해 놓은 중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곳만큼은 시간이 빗겨간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블레드섬에는 성모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Mother of God)가 있다. 이곳은 9~10세기경 슬라브Slav 신화 속 지바 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종교 전쟁으로 인해 신전이 파괴되고 몇 차례의 부침을 겪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바로크 스타일 교회가 완성되었다.

                                                                       나룻배로 도착한 블레드섬에서~!

마주 보이는 중앙 건물이 구 유고 대통령 티토 별장이었다고 한다.

요시프 티토 : 구 유고슬라비아 시절 초대 대통령이자 종신 대통령이다. 독재자였지만 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해 국민들의 존경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었다. 수정 공산주의 노선을 택해 경제를 발전시켰고 국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도 허락했다.

 

 

                                                                                                  블레드성

 

                                                                                                       블레드성 내부

블레드성 내부의 구텐베르크 인쇄소, 와인 셀러. 파크 레스토랑 & 카페(Park Restaurant & Cafe)가 있다.
블레드의 명물 크림 케이크 ‘크렘나 레지나(Kremna Rezina)’의 원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수십년 동안 이전 그대로의 레시피를 고수해 오고 있다. 상아색 바닐라 크림과 하얀 휘핑크림 위에 얇은 페스트리 빵이 덮인 정사각형 케이크는 상상 그 이상의 맛이 난다

주소: Grajska Cesta, 4260 Bled, Slovenia
운영시간:11~3월 8:00~18:00, 4월~6월14일 8:00~20:00, 6월15일~9월15일 8:00~21:00,9월16일~10월 8:00~20:00 
전화: +386 4 5729 782
홈페이지: www.blejski-grad.si/en

                                                                                             블래드섬을 배경으로 

                                                      블레드 성에서 바라본 블레드 섬 전경! 

연인들이 꿈꾸는 웨딩장소로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는 보힌 호수와 더불어 알프스 만년설이 녹은 물로 이루어진 빙하호로 크기는 보힌 호수의 3분의 1 정도 된다. 호수 자체로도 예쁘지만, 호수 중앙에 자리한 블레드섬과 블레드성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흐린 날씨에 오후 늦게 도착하여 밝은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