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돈! 너의 정체는?

[중산] 2022. 8. 23. 07:58

 

오 황금! 아름답고 귀한 번쩍이는 금.

그렇다. 신이여,

내가 하늘에 빈 것은 단순한 나무뿌리가 아니었다.

금만 여기에 있으라. 검은 것도 희게,

늙은 것도 젊게, 추함을 미로, 비겁도 용기로,

악도 선으로, 천함도 고귀하게 만들 수 있지.

 

오, 신이여!

황금은 당신의 계단에서 승려를 꾀어내고

환자의 자리에 바늘이 돋게 하는 것

오, 누런 노예여. 너는 신앙의 유대를

묶었다 풀었다 하며 저주받은 자도 축복한다.

 

너는 치욕도 존경케 하고 도적도 찬미한다.

너 금은 손 떠는 노파에게 신랑을 데려다 주며

농양을 앓아 병원까지도 진저리치는 계집을 화기만당하게 한다.

물러가라, 저주로운 티끌이여. 보편적인 창부여. 분쟁의 단서여!

- 셰익스피어의 비극 <아테네의 타이먼>에서

 

셰익스피어는 모든 인간적이며 자연적인 속성을 바꾸고 사물의 일반적인 변환과 교환을 수행하고 불가능과 친교를 맺는 가시적 신성으로서의 돈을 매우 증오했다. 오늘날 돈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백여 년 전 마르크스의 진단은 전혀 과격한 것이 못 된다. “돈은 인간의 노동과 생존에 있어서 똑 같이 본질이다. 이 본질은 인간을 지배하며 인간은 그것을 존경한다.”

 

어찌 보면 현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돈은 이미 신의 권좌를 차지하고 있고, 현대인들은 그 돈의 신전 아래서 굽실거리는 배금주의적 주물 숭배의 열렬한 교도들인지도 모른다. 

 

울진 바닷가

 

‘세믄 이바노비치는 매일 차려 주는 점심을 모두 먹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점심 값으로 동화(銅貨) 25코페이카만을 사용했고, 그 이상은 절대 쓰지 않았다. 만두와 양배추 스프 한 그릇, 종종 그는 양배추 수프도 소고기도 먹지 않았고, 양념을 바른 구운 빵을 적당히 먹었다. 이것들은 아주 형편없는 싸구려 음식이었다.’

 

“20년이 넘도록 죽은 듯이 누워서 입도 벙긋하지 않고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것도 모르고 검소하게 살아온 사람인데 무슨 헛소리를 듣고 갑자기 머리가 돌아 버려 이 세상에 사는 것이 갑자기 괴로워졌단 말인가∙∙∙∙∙∙. 다른 모든 사람도 힘들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았더라면 머리가 돌지도 않았을 텐데∙∙∙∙∙∙.”

 

‘그는 너무나도 가난했기 때문에 그 가난에 짓눌려 쓸 수 있는 돈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지키려고만 발버둥 치다가 죽어 간 것이다.’ - 도스토예스키의 <프로하르친씨>에서

 

 

 

정말 되는 일이라고는 없는 가난한 페인트공이라는 것을. 지금 아내와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고단하지만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다만 가끔씩 액운 같은 일이 덮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주엔 노름을 하고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노름은 해 봤자 늘 운이 없었다.

 

~ 그가 매판 따기만 하자 놀라움은 경악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눈은 반짝거렸지만 모험 탓에 혓바닥도 몸도 뻣뻣하게 굳은 채. 그는 부자였다!

 

~ 모든 사람들이 모르게 돈을 꽁꽁 숨겨야 한다고! 어젯밤 깜깜한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을 땐 거의 죄책감에 가까운 야릇한 두려움을 느꼈지만, 어디였더라? 어디로 갔었지? 벨다인은 돈을 파묻은 기억을 더듬었다.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었다. “어디였나∙∙∙∙∙∙ 어디였나∙∙∙∙∙∙어디였나?”~

 

큰 붓을 손에 들고 사다리 위에 서서 천장에 색칠을 하다가 가끔씩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다. 떨어져 마침내 이 한심한 인생을 끝장냈으면 하고 말이다. ‘이게 인생인가!’ 병약하여 골골거리는 아내는 바느질 벌이가 통 시원찮았고, 날로 혈색이 창백해지며 말라 갔다.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은 아들놈은늘 배가 고파 학교가 끝나자마자 미친 듯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초라한 방에서 먹잘 것 없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별 말이 없었다. 그가 그렇게 돈 많은 부자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이 모든 근심을 혼자 꽁꽁 숨기고 살아야 했다. -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벨다인 부자의 돈>에서

 

* <벨다인 부자의 돈>에서 카를 벨다인은 화가가 되고 싶었던 가난한 페인트공이다. 술집에서 카드놀이를 하다 판돈을 따서 엄청난 부자가 된다. 기분이 좋아 술이 취한 상태에서 가족이이나 이웃에게 당장 들키지 않기 위해서 땅에 파묻는다. 유감스럽게도 술에서 깨어난 그는 그 장소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매우 불행하게 살다가 죽어 간다. 그에게 돈은 차라리 ‘악의 꽃’이었다.

 

가덕 눌차만

 

도깨비 방망이, 오래된 윤리의 거울

 

도깨비 방망이는 돈 방망이였고, 또 그것은 인간의 마음 방망이였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인간에게는 보상의 의미로서 돈 방망이 구실을 톡톡히 해 주었지만, 돈에 집착하여 타락한 인간에게는 징벌의 의미로서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여기에 우리 선인들이 지녔던 도덕적인 금전관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무엇보다 우선해서 사람살이의 근본을 강조했다. 청빈이나 안빈낙도, 안빈자족을 특별히 강조하고 실천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발자크의 <좋지 않은 가죽>에서 젊은 주인공은 도박판에서 가진 돈을 다 탕진한다. 실의에 빠진 그는 신비체험으로 마술 주머니를 잃게 된다.

 

이 마술 주머니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용할 때마다 피부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말은 생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즉 돈에의 무분별한 욕망은 곧 죽음으로 통한다는 윤리 감각을 그 마술 주머니는 전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횡재를 했을 때 인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자기 돈을 지키려는 인간의 행태들은 어떠한가, 가난한 자들의 꿈은 무엇인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활과 인생이 끌려갈 때 인간들은 어떤 생각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에서 돈을 문제적인 대상이었던 것이다.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라고 말했던 이는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벨다인 부자의 돈>역시 돈은 최악의 주인이었다. <프로하르친 씨>의 주인공에게도 돈은 최악의 주인이었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현실을 재현하는 문학에서도 대개 돈이 최악의 주인으로 문제되는 상황이 많이 나타난다. 돈이 최악의 주인으로 인간 위에 군림할 때 인간은 제대로 된 ‘인간 값’을 알지 못한다. 특히 근대 이후 물질문명이 가속화되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늘어났다. 그래서일까 일찍이 브레이트는 이렇게 절규했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나는 아는가?

누가 그것을 아는지 내가 알게 무어람!

나는 그저 인간 값만 알고 있을 뿐.  - <상품의 노래>중에서

 

<‘돈’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도스토옙스키 ‘프로하르친씨‘ 외 5편, 에디터출판>

 

부산항대교

 

재산이 주는 기쁨은 지속성이 없다.

너의 마음이 있는 바로 그곳에 너의 보물이 있다. 재산을 가장 중요한 보물로 삼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오물 속에 묻혀 있다.

 

정신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재산이 불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불편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람의 진정한 삶의 발전을 멈추게 한다. - 톨스토이

 

사람이 왜 부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그는 왜 비싼 말들, 비싼 옷들, 넓고 멋진 방들, 그리고 오락 장소들을 찾아다닐 여가를 가져야만 하는가? 그것은 자기 이성을 동반할 생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자기 이성의 내면적 일을 주어라. 그러면 그는 가장 부유한 사람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 에머슨

- <‘365일 에센스 톨스토이 잠언집, 톨스토이 지음, 이동진님 옮김, 해누리출판>

 

 

 

나의 모든 욕망들의 롱드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네.

잠을 깨니 내 모든 욕망들이 목말라했네.

그들은 자면서 사막을 건너기라도 한 것 같았지.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우리의 불안은 망설이네.

욕망들이여! 너희는 지치지도 않는가?

오! 오! 오! 지나가는 이 조그만 쾌락이여!

- 머지않아 지나가 버릴 쾌락이여!

오호라! 오호라!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연장할 수 있을지

나는 알건만 내 즐거움을 어떻게 길들여야 할지 나는 모르네.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우리의 불안은 망설이네.

 

나의 행복이 부유한 재산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지도 말라. 지상에 아무런 집착도 갖지 않는 나의 마음은 항상 가난하였다. 그러므로 죽기도 수월할 것이다. 나의 행복은 열정으로 이룩된 것이다. 차별 없이 모든 것을 통하여 나는 열렬하게 찬미하였다.

 

나타나엘이여, 그대의 마음속에서 기다림은 욕망마저도 아니어야 하고 다만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한갓 마음의 준비여야 하리니. 그대에게로 오는 모든 것을 기다려라. 그러나 오직 그대에게로 오는 것만을 원해야 한다. 하루의 매 순간 그대는 신을 송두리째 다 가질 수 있음을 알라. 그대의 욕망은 사랑이어야 하며, 그대의 소유는 사랑에 넘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효력이 없는 욕망을 무엇에 쓰겠는가?

 

쾌락이 감싸고 있는 단맛 가득한 과일이여, 싹이 트려면 너는 너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그것은 죽어야 하리! 너를 감싸고 있는 그 단맛은 죽어야 하리. 그 기막히고 달콤하게 넘치는 살은 죽어야 하리! 그것은 땅의 것일지니. 그대를 살리기 위해 그것은 죽어야 하리. “과일이 죽지 않으면 홀로 남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이윽고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할 때가 온다.

‘그 모든 것’이란 무엇일까? -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축적해 놓은 재산이요 소유지요 책이 그득히 들어찬 서재요.

그저 한가로움을 즐기는 안락의자들일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고통과 노동일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과 자라나는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며

시작해 놓은 일, 마무리 지어야 할 과업,

이제 막 실현되려는 꿈일 것이다.

 

한 번 더 읽고 싶었던 책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들,

제대로 만족시켜 보지 못한 호기심,

당신의 도움에 기대를 걸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

이루고 싶었던 평화, 마음의 평정이었으니∙∙∙∙∙.

그런데 문득 내기가 끝나버린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

 

<‘지상의 양식’에서 극히 일부 발췌,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님 옮김, 민음사 출판>

 

충남 홍성의 아름다운 용봉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