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
잘못을 저지를 때보다 그것을 벌할 때 더 많은 쾌감을 느끼며 나는 즐거이 나의 육체를 벌했다.*ⁱ 그저 단순히 죄를 벌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한히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공적(功績)’이라는 생각 자체를 아예 없애버릴 것. 정신에는 그것이야말로 커다란 장애인 것이다.
*ⁱ 신비주의적 고행에 열광할 무릅 지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전날 저녁 욕조에 가득 채워놓았던 싸늘한 물속에 몸을 담그곤 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성서 몇 쪽을 읽었다∙∙∙∙∙∙. 고행을 위하여 나는 마룻바닥에서 잠잤다. 한밤중에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우리의 나아갈 길이 확실치 않아서 우리는 일생동안 괴로워했다. 그대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 무서운 것이다. 의무를 인도해 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낯설기만 한 고장에서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니. 사람은 저마다 거기서 ‘자신만의’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나로 하여금 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감사하는 내 마음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끊임없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고통의 끝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왜 기쁨의 끝에 오는 아픔보다 더 크지 못한 것인가?
그 까닭은, 슬플 때는 그 슬픔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생각하지만, 행복에 잠겨 있을 때는 그 행복 덕분에 면하게 되는 고통들을 조금도 머리에 떠올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행복하다는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의 감각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양이 할당되어 있는 것. 아무리 소량이라도 그것을 빼앗기면 그것을 도둑맞은 것이 된다. 내가 존재하기 전에는 내가 생명을 요구했는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지금은 모든 것이 나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감미롭고 사랑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도 당연하게 감미로워서 지나가는 바람의 조그만 애무도 내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준다. 감사하는 마음의 필요성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라고 가르쳐준다.
당신이 ‘유혹’이라고 불렀던 것, 내가 당신과 함께 유혹이라고 불렀던 것, 내가 애석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그것이다. 오늘 내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몇 가지 유혹에 졌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다른 유혹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 유혹들이 이미 매력을 잃고 나의 사고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찾아 헤매였던 것이다. 나는 나의 청춘을 어둡게 만든 것을, 현실보다 공상을 더 좋아했던 것을, 삶에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을 후회한다.
오! 우리가 하지 못한 모든 것, 그러나 우리가 할 수도 있었을 모든 것∙∙∙∙∙∙ 하고 이승을 떠나려는 순간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했어야 마땅한 모든 것, 그러나 우리가 하지 못한 모든 것! 체면 걱정 때문에, 기회를 기다리다가, 게을러서, 그리고 “제길! 시간이 좀먹나!”. 하는 생각만 줄곧 하고 있다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매일 매일,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 때 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결심, 노력, 포용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에 ∙∙∙∙∙∙. 지나가는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만다. 오! 뒤에 올 그대는 보다 민첩해져서 순간을 놓치지 말라! 하고 그대들은 생각할 것이다.
<‘지상의 양식’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님 옮김, 민음사 출판>
건강한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세상살이 맘대로 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런 불만족은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다. 남편은 무서운 아내로부터 받은 고난을 회피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내가 화를 내면 전혀 마음에도 없으면서 반사적으로 “아 네네.” 한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대답이다. 대답은 내내, 하면서 말의 내용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죽을 때는 혼자 죽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모든 일은 생각지 못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결코 혼자 죽을 수 없다. 죽음이라는 일선을 넘기까지 아마도 긴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이 과정이 상당히 긴 기간 지속되는 관문이다. 도중에 혼자서 음식물 준비를 못하게 되고 마실 물조차 뜨러 갈 수 없게 되거나 제 발로 화장실까지 갈 기력마저 잃게 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스런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이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된 후에도 그다지 세심하게 돌보지 않았다. ‘보통 사람으로 살아 주세요’하는 심정이었다. 컵을 쥘 힘도 없어서 남이 먹여주어야만 하지만 물을 흘려도 좋으니 누군가 입혀주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으니 어떻게든 스스로 입게 나뒀다.
나는 몸속이 편찮아 옷을 입는 데만 10분 넘게 걸린다. 의사가 피부를 볕에 그을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외출 시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분을 바른다. 딱 그 정도만 하는데 15분이나 걸려 중간에 드러눕고 싶어진다.
왼쪽으로 돌 때 마다 찌릿하고 통증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내 또래의 의사가 ‘그럴 만한 연세지요’라고 하며 결국 치료약이 없다는 진단을 내리면 버럭 화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의사들의 말이 상당히 정확하고 온당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노인이 더 나이를 먹으면 성격이 약간씩 변한다. 내가 체감한바, 둔감해지는 부분도 있고 어던 면에서는 민감해지기도 한다. 친정어머니가 뇌연화(腦軟化)로 쓰러졌을 때 그 변화를 체험했다.
그 전까지 어머니는 상당히 총명하고, 주위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분이었다. 자신의 취향과 나름의 정의감도 있었다. 70대에 들어 설명할 길이 없는, 미묘한 변화를 보이며 무너져 갔다. 건망증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어머니가 달라졌다’. 뇌동맥경화가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머니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부터 뇌의 병변을 의심했어야 했다.
사람이 노년에 접어들면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남편은 젊었을 때 불성실의 전형이었다. 절대 있는 그대로, 재대로 된 표현을 하지 않는다. 젊은 여자들에게는 꼭 놀리듯 농담을 한다. 행동으로는 못된 짓을 하지 않는데 입으로는 ‘불량’을 일삼는다.
재미있는 것이 이런 언행은 나이 들어 몸이 약해지고 그에 따라 일련의 변화가 나타난 이후에도 변함없었다.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머리에 혹을 달고 눈 주위에 파란 멍이 들었지만, 사람들이 어쩌다 그리 됐냐고 물으면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더 생생해졌다.
“아아, 이거 마누라한테 맞아서 생긴 겁니다.” 남들이 보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씨는 사분사분하지 않아도 폭력을 쓰지 않는다. 남편은 나에 대해 악담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그게 그의 취미이고 낙이다.
내가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남편은 쫓아나와 손나팔을 만들어 입에 대고는 이웃들을 향해 “내가 저녁엔 튀김 만들어 놓을게.”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이웃에게 내가 집안일은 제쳐두고 밖으로 나도는 여자라고 선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참으로 우습게도 그러한 성격은 병을 앓고 몸이 쇠약해져서도 여전했다.
<‘나다운 일상을 산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책읽는 고양이 출판>
* 소노 아야코 : <멀리서 온 손님>이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면서 등단에 데뷔했다. 22세에 결혼 후 친정어머니와 두 분의 시부모님과 한 집에 살아오면서,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찰을 담아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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