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토를 둘러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어둠이 깔린 뒷골목이나 자기만의 독방에서, 관찰 카메라(CCTV)도 없고, 더구나 몸까지 변신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인간의 이중성이 꿈틀되지 않을까?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하게 묘사한 문학작품이 있어 여기에 소개하겠다.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곤란합니다. 뭔가 기묘한 데가 있는 자였어요. 불쾌하고 혐오스럽다고나 할까? 저는 지금껏 그렇게 혐오스러운 자를 본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어요. 그냥 괴기스럽다고나 할까? 정확히 말하긴 곤란하지만 뭔가 뒤틀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분명 정상이 아닌데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그래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요. 표현이 불가능해요.”
지킬의 가까운 지인인 엔필드가 하이드를 본 모습을 변호사인 어터슨에게 한 말이다. 이 표현은 꽤 젊잖은 편이지만 비속어로 말하자면, ‘살짝 맛이 간, 또라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상이다. “혹 나 또는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나요?“ 자아와 자기, 의식과 무의식, 안과 바깥의 조화에서 균형이 깨져 괴물로 변신한 인간상을 꾸민, 즉 우리의 자화상을 그린 문학이 바로 <지킬 앤 하이드>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 문학에서도 작가는 ‘인간이 완전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중적인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의식 안에서 두 개의 본성이 다투고 있음을 보았다. 두 본성 모두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두 가지가 모두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킬 앤 하이드>의 문학적 동기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과학적인 탐구의 과정을 거쳐 기적의 가능성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선과 악을 분리해낼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에 빠지게 되었다. 만약 이 두 요소를 각기 다른 자아로 분리해낼 수 있다면 인생에서 견디기 힘든 모든 고뇌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약 한 병만 마시면 저명한 교수의 몸에서 빠져나와 마법의 망토를 두르듯 에드워드 하이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존경어린 시선을 받으며 하루를 견뎌낸 뒤에 마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처럼 언제든 자유의 바다로 뛰어 들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도 꿰뚫어 볼 수 없는 망토를 두르고 있는 한 나는 안전했다’
아 아! 평소 의기소침한 자기에서 벗어나 큰 소리치며 객기라도 부려보고 싶은 생각들이 누구나 한 번쯤 불쑥 들기도 한다. 마치 용맹한 사내대장부라도 된 듯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 보다 훨씬 차원이 다른 악의 행동으로 옮긴 하이드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그래서 변신한 하이드 삶을 회한하는 글도 남겼다. ‘내가 누린 쾌락은 고상하지 못했다. 이런 쾌락은 하이드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끔찍한 결과로 나타나곤 했다. 방탕에서 돌아 온 나는 종종 내 대리인이 저지른 악행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음껏 쾌락을 즐기라고 내 영혼이 보낸 이 악마는 비열하고 극악무도했다.’ 라고 실토한다.
‘그는 자신만을 생각했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행동했으며, 짐승처럼 타인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자기 욕망만을 채웠다. 게다가 그는 돌덩어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무자비 했다.’ 작품 속 하이드는 어린아이와 덴버스 경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기도 했다.
지킬박사는 약을 조제해서 하이드로 변신을 꾀한다. 약의 양에 따라 변신의 양상이 바뀌어 당황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몇 배의 약을 더 쓰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혹 마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우리 일상에서 하이드를 경험 해 볼 수 있는 매개체의 예는 마약보다 술이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도 작가는 ‘술주정뱅이가 육체적으로 무감각해진 상태에서 야수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건 5백 번에 한 번이나 될까?’라고 기술을 하기도 했다. 사람은 음주량이 많아지면 대개 판단력이 흐려지고 대범해지며 들뜨게 된다.
기분 전환을 위해 마시지만 적정량을 초과하게 되면 음주로 인해 부작용으로 수반되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자동차 음주 사고, 폭력사고, 언쟁 등 평소 과묵한 사람도 음주를 하면 시끄럽고 활동적으로 바뀐다. 거기에다 주사까지 있으면 언쟁과 폭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평소 사무실이나 공공장소에서는 준법정신이 뛰어난 사람도 과음으로 인해 예의범절을 망각하고 실수를 범한 예를 매스컴을 통해 가끔 접한다. 몰래카메라, 성추행사건들도 음주로 인해 발생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친 음주상태로 갔을 때는 우리가 이미 하이드로 변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소 근엄하던 지킬박사가 혐오스런 하이드로 변신할 때 쓰던 약들이 단지 술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범행 후 대개 처벌이 두려워서 술 깨고 나면 기억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용서를 구한다. 그 당시의 행위자는 현재의 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하이드가 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중성을 심리적, 문학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 ‘지킬 앤 하이드‘이다. 그러면 지킬 앤 하이드의 문학적 이야기들을 일상의 일들과 연계시켜보면 더 많은 교훈이 될듯하다.
같은 엄마 뱃속에 자란 형제지간이라도 어미 닭을 따라다니면서 사이좋게 지내던 철없던 병아리 때와는 달리 커가면서 먹이다툼과 서열싸움을 치열하게 벌이게 된다. 더 나아가 재산 상속의 문제로 법정소송을 벌이는 경우라면 내가 알고 있던 지난날의 형제의 본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권력의지와 욕망덩어리의 하이드로 변한 모습만 남아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솔로다‘ ’돌싱’ 프로들을 보면서도 이런 경우를 연계시켜본다. 참여자들은 주로 직업과 외모도 훌륭하고 호감형의 헨리 지킬박사 같은 상대를 찾아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 역시 처음에는 지킬 박사라고 선택하지만 훗날 서로가 권태와 더불어 또 다른 이기적인 욕망의 악인으로 변한 하이드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을 뿐이다.
의사든 정치인이든 교수든 사회적 지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어느 날 불미스러운 일로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을 가금씩 접하곤 한다. 그들의 일상은 상당히 베일에 가려져 알 수 없지만 막상 가면이 벗겨지고 마각을 드러낸 후의 모습에서 일반인들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만 그럴까? 그렇지 않다. 누구나 야누스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원래 그런 거지 뭐 그냥 즐기면서 사랑하면서 이해하고 묻어가면 되지 않나 할 수 있겠지만 인간 내면을 잘 모르고 낙천적으로만 생각할 문제만은 아니다. 주변에 자세히 관찰해 보면 자아와 자기의 균형이 무너진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 주변에 마음 속 증오를 키우면서 하이드처럼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지킬 박사는 의학박사이자, 법학박사, 왕립학술 회원이면서 부자이다. 그야말로 부러울 것 없는 사회적 덕망을 갖춘 사람이다. 가까이 만나는 주변사람들 역시 모두 의사 아니면 변호사이다. 그런 그가 하이드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이런 혐오의 정서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자 칼 쿠스타프 융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인간은 자아(ego)와 자기(self)로 나누어지는데, 자아는 누군가를 의식하는 나라 할 수 있다. 즉 남의 눈치를 보는 나라고 할까? 이에 반해 자기는 내 안의 나라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고유의 나인 것이다.
융에 따르면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의식적인 나로서의 자아보다 내면속에 자리하고 있는 나로서의 자기가 크다고 한다. 이를 의식적인 자아와 대비하여 무의식이라 부른다. 특히 이 무의식은 개인적인 성향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집단무의식이라 이름 지었다.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어서 자아가 강해지려면 자기가 나와 그러면 안 된다고 속삭이고 무의식 속 자기가 뚫고 나오려 하면 자아가 냉정하게 막아 균형을 찾는다. 그래서 내 안의 두 존재와 화해하고 통합해 가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
만약 균형을 잃어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내가 아니라 할 수 있다. 사회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며 인색하고 완고한 사람은 아마 자아가 강한 사람일 것이다. 혹은 사이코패스처럼 주위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두 온전한 영혼이 아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문학적으로 내안의 선과 악을 분리해 내는 실험을 처음 시도하였다. 악한 나를 올바른 자아의 야망과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악마가 아닌 천사로 태어나게 실험에 임했다. 하지만 악의 형상을 한 하이드는 더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광기를 부렸다.
그리고 그 나마 남아 있던 지킬마저도 비틀거리며 절망적인 부조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실험은 실패하면서 내안의 선과 악은 분리할 수 없고 다 품고 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본다면 내 안의 두 사람이 균형을 유지하며 조화롭게 공존해야 진실한 자신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다만 이 두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잘 다독여야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숙제로 남아있을 뿐이다.
내 안의 자기라는 존재를 객관화하고 우매한 자기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진리의 자양분으로 키우고 다듬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현들의 이야기와 나를 일깨우는 명상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책들과 진리를 강조한 많은 책들을 끝없이 접해나가면서 고 추론적 정신적 성장을 꾸준히 추구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중산>.
<‘지킬 앤 하이드’를 읽고 나의 생각들을 첨언 해보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해옥님 옮김, 구름서재 출판>
* 지킬앤 하이드 작가인 스티븐슨과 카프카는 닮은꼴이다. 다 인간의 변신을 그렸다. 카프카는 인간을 곤충으로 변신하는 것을, 지킬앤 하이드는 자기 외 또 다른 면을 하이드라는 인물로 변신을 꾀해 표현하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둘 다 단명하였다. 카프카는 두문불출의 은둔형이었지만 폐병으로 1924년 41세의 나이로, 스티븐슨 역시 이 작품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뇌출혈로 1894년 44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카프카와는 달리 스티븐슨은 미 대륙을 황단하며 사랑을 불태운 자유인이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스코틀랜드의 엔든버리에서 부유한 토목기사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병약하였던 그는 바다를 동경하였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학을 공부하였고 후에 전공을 바꿔 변호사가 되지만 폐병으로 인해 법률가길을 포기하고 글을 쓰는 일에 전념한다. 요양을 위해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던 중 남편과 별거 중이던 11세 연상의 미국의 오즈먼을 만나 결혼한다. 1883년 의붓아들 로이들를 위해 쓴 모험소설<보물섬>이 대성공하여 일약 인기 작가로 떠오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기이한 사례>, <납치>,<발란트래 경>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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