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당신은 모르실 거 에요!

[중산] 2022. 9. 17. 03:43

227일간의 인도 소년 표류기

 

로버트슨 일가는 바다에서 38일간 버텼다. 1950년대에 한국 상선의 선원이 173일간 태평양에서 버티다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227일간 버텼다. 내 시련은 7개월 넘게 계속되었다.

 

바쁘게 지냈다. 그게 생존의 열쇠였다. 구명보트에서, 또 뗏목에서, 언제나 할 일이 있었다. 보통은 오후보다 오전이 나았다. 오후에는 시간의 공허함이 느껴졌으니까. 밤이든 낮이든 비가 내리면 다른 일은 모두 중지했다. 비가 내리는 동안은 빗물받이를 받쳐 들고, 물을 받는 데만 신경을 쏟았다.

 

나는 며칠인지, 몇 주일인지, 몇 달인지 헤아리지 않았다. 내가 살아남은 것은 시간 개념 자체를 잊은 덕분이었다. 햇빛과 염분 때문에 옷이 너덜너덜해졌다. 처음에는 아주 얇아졌다. 그러더니 솔기만 남기고 다 헤져버렸다. 마지막으로 솔기마저 뜯어졌다. 몇 달간 나체로 살았다. 줄에 끼운 호루라기만 목에 걸고서.

 

소금물 때문에 생긴 부수럼 - 빨갛게 성난 꼴사나운 상처 - 은 몸에 스며든 수분으로 인해 생긴 바다의 나병과도 같았다. 발진하면 피부가 몹시 예민해졌다. 어쩌다 벗겨진 부위를 문지르면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부스럼은 뗏목에 많이 닿아 물에 항상 접촉하는 부분에서 심했다. 바로 등이다. 똑바로 눕지 못하고 며칠씩 보내기도 했다. 시간과 햇살이 상처를 치료해주었지만 아주 더뎠고, 물기가 닿으면 새로운 부스럼이 나타나곤 했다.

 

별을 보고 길을 찾는 것은 포기했다. 무엇을 알아낸다 하더라도 쓸모가 없었다. 어디로 갈지 제어할 수단이 없었다 - 키도, 돛도, 모터도 없었고, 노는 있었지만 힘이 충분치 않았다. 노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항로를 파악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노를 제대로 다룰 줄 안다 한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알까?

 

내게 시간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거리가 되었다 - 나는 삶의 길을 여행했다. 또 손으로 위도를 가늠하기보다는 다른 일들을 했다. 나중에야 내가 좁은 길을 여행했음을 알았다. 태평양 적도의 역류 때문이었다. 

 

작은 훅에는 봉을 한두 개 달아서 수면 가까이에서 고기를 낚았다. 고기는 더디게 잡혀서 성공하면 굉장히 기분이 좋았지만 노력에 비해서 보답은 적었다. 결국 작살이 가장 귀중한 낚시 장비로 판명되었다.

 

생존 지침서에 나온 대로 거북은 잡기 수월했다. 한 손으로 뒷지느러미를 움켜쥐면 바다거북을 붙잡을 수 있었다. 60킬로그램쯤 되는 버둥거리는 거북을 구명보트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거북을 죽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내 마음을 당긴 것은 바다거북의 피였다. 생존 지침서에 바다거북의 피가 ‘영양분이 많고 짜지 않은 마실 것’이라고 나와 있었으니까. 갈증이 그만큼 심했다.

 

몸 안에 흐르는 혈관을 자르려면 칼을 ‘목에 박으라’는 조언이 나와 있었다. 목이 없었다. 목을 껍질 속에 쑥 밀어 넣어버렸다. 놈은 고집스런 표정으로 날 거꾸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칼을 움켜잡고, 앞발을 찍었다. 여석은 더 껍질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바다거북은 훨씬 움츠러들면서 칼날이 꽂힌 부분 쪽으로 기울더니, 불쑥 머리를 내밀며 주둥이로 나를 거세게 공격했다. 나는 뒤로 자빠졌다. 나는 손도끼를 들고 거북의 목을 내리쳐 도끼날을 깊이 박았다. 선홍색 피가 흘렀다. 청량음료 한 캔 정도의 분량이었다.

 

벌레만 빼고 조류를 포함해서 모두 먹어봤다. 구명보트 선체에 붙은 작은 따개비 같은 생명체도 유혹했다. 따개비의 흐물흐물한 부분을 빨아 먹었다. 또 따개비의 살은 낚시할 때 미끼로 맞춤했다. 

 

잠자는 습관이 변했다. 늘 쉬긴 하지만, 밤에 한 시간 이상 자지 못하고 계속 깼다. 끊임없이 넘실대는 바다나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것은 불안과 초조였다. 잠을 찔끔찔끔 자는 증세가 심해졌다.

 

밤에 멀리서 빛이 보였다는 확신이 드는 날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화염 신호를 보냈다. 조명탄을 다 쓰자, 소형 화염신호기를 사용했다. 그 배들은 날 보지 못한 걸까? 어떤 경우든 매번 아무것도 아닌 걸로 끝이 났다.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뗏목의 돛에 기대 앉아 있다 해도 수면 위로 1미터 높이도 못 내다보지 않는가? 넓고 넓은 태평양을 지나가는 배가 이렇게 작은 점을 볼 확률이 있을까?

 

내 가장 큰 바람은 - 구조보다도 큰 바람은 - 책을 한 권 갖는 것이었다.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아쉽게도 구명보트에는 성서가 없었다.

 

적어도 소설책이라도 한 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구명보트에는 달랑 생존 지침서만 있었고, 나는 조난 중에 만 번도 넘게 그 책을 읽었을 것이다. 일기를 썼다. 지금 필체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글자를 작게 썼다. 종이가 떨어질까 두려웠다. 일기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일기에는 날짜나 순서를 적은 숫자가 없다. 며칠, 몇 주일이 한 장에 기록되어 있다. 뭘 기대하고 있는지 적혀 있다. 일어난 일과 느낌에 대해, 뭘 낚시했고 뭘 놓쳤는지에 대해, 바다의 기후에 대해, 문제와 해결에 대해, 하나같이 굉장히 현실적인 내용이다.

 

나는 환경에 맞게 조절한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 혼자만의 미사를 올렸고, 공양도 없는 힌두교식 제사를 올렸다. 메카가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모른 채 엉터리 아랍어로 알라신께 예배했다. 그런 의식이 위로를 주었다. 하지만 힘들었다.

 

신을 믿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깊은 신뢰를 갖는 것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분노와 절망과 약함으로 급속히 가라앉아서, 태평양 바닥에 처박힐 것 같았다. 거기서 다시 올라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나도 리처드 파커처럼 변비에 걸렸다. 물을 너무 조금 마시고 단백질을 과하게 섭취하는 우리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나 역시 월중 행사처럼 대변을 볼 정도였다. 변을 볼 때는 오랫동안 힘들게 고통을 겪었다. 땀으로 목욕을 했고, 지쳐서 기진맥진했다. 고열로 시달리 때보다 힘겨운 수난이었다.

 

생존 식료품이 점점 줄어들자, 책자에 적힌 그대로 여덟 시간마다 비스킷 한 개씩만 먹을 정도로 급식량을 줄였다. 계속 배가 고팠다. 비스킷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자, 먹을 수 있는 것은 맛을 불문하고 먹었다. 짜지만 않으면 아무 맛도 상관없었다.

 

여러 가지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바다는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처럼 귀에 속삭였다. 바다는 호주머니에 든 동전처럼 쨍그랑했다. 바다는 산사태 같은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람이 토하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죽은 듯 고요했다.

 

조난자가 되는 것은 우울하고 지친, 상반된 것들 속에 붙잡힌 것과 같다. 환할 때는 트인 바다가 눈멀게 하고 두렵게 한다. 어두울 때는 어둠이 폐소공포증을 일으킨다. 낮에는 더워서 시원하기를 바라며, 아이스크림을 꿈꾸면서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싶어한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바다가 주름살 하나 없다. 바람의 속삭임조차 없다. 시간이 영원까지 계속될 듯하다. 어찌나 권태로운지, 의식불명에 가까운 상태로 빠진다. 그러다 바다가 거칠어지면 감정은 광풍에 휩싸인다.

 

눈물을 터뜨린다. 비명을 지른다. 일부러 자해를 한다. 한데 공포의 손아귀 - 최악의 폭풍우 - 속에서도 당신은 권태를 느낀다. 그 모든 것과 함께 깊은 나른함을 느낀다. 죽음만이 지속적으로 감정을 흥분시킨다. 구명보트에서의 삶은 생활이라고 할 게 없다.

 

상어 떼가 매일 나타났다. 주로 마코상어와 블루상어였지만, 악몽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타이거 상어가 솟구치기도 했다. 녀석의 코를 손도끼로 휙 내리치니 깊은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빗물과 태양 증류기에서 받은 물을 50리터들이 비닐봉지에 모아서 물품함에 보관했다. 비닐봉지는 줄로 잘 묶었다.

 

어느 날 아침 물품함을 열었는데 물 봉지 세 개가 모두 쏟아졌거나, 봉투가 찢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 최악의 악몽이었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비닐봉지를 담요로 말아서, 구명보트 철제 선체에 비닐이 찢기지 않게 했다.

 

소용없다. 오늘 난 죽는다.

오늘 죽을 거야.

난 죽는다.

이게 마지막 일기였다. 그 후에도 계속 버텼지만 기록하지는 못했다.

말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 있어요?”

 

죽어가는 마음을 안고 어둠 속에서 홀로 있을 때, 놀랍게도 소리를 듣게 된다. 모양이나 색깔도 없는 소리가 이상하게 퍼진다. 눈이 멀면 다른 소리를 듣게 된다.

 

다시 말소리가 울렸다.

“거기 누구 있어요?” 내가 미쳤다고 결론지었다.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불행은 짝을 원하는 법이라, 정신병이 불행을 불러낸다. “거기 누구 있어요?” 그 목소리가 계속 울린다.

 

우리가 육지에, 정확히 말하자면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나는 너무 기운이 없어서 행복해할 힘마저 없었다. 우리는 착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구명보트는 하마터면 파도에 전복될 뻔했다. 나는 안간힘을 쓰다가 모래사장에 쓰러졌다. 리처드 파크도 없이 혼자가 되어버렸다.

 

신마저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신도 없었다. 보드랍고, 단단하고, 드넓은 이 해변은 신의 뺨 같았고, 내가 거기 있자 어디선가 두 눈이 기쁨으로 번득이고 입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나와 같은 종족이 날 발견했다. 그들은 날 데려갔다.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  

 

<‘파이이야기’ P489 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얀 마텔지음, 공경희님 옮김, 작가정신출판>

*얀 마텔 :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레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27세 때부터 글쓰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셔츠>,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포르투갈의 높은 산>, <셀프> 등,<파이이야기>로 2002년 맨 부커상을 수상했다. <파이이야기>는 2013년 <라이프 오브 파이>로 영화로 개봉되어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날 저녁 아내인 에델버터에게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의도적으로 뭔가에 조바심이 난 듯 기운을 슬쩍 비추기 시작했다. 에델버터로 하여금 이것을 눈치 채게 하는 게 내 계산이었다.

 

“안 되겠어요. 여보. 당신에게는 변화가 필요해요. 완전한 변화 말이에요. 그러니 부탁할게요. 한 달 동안 떠나 있으세요. 아뇨, 같이 가자고 하지 마세요. 그러고 싶어 하신다는 건 잘 알지만, 그러지 않겠어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남자들이에요. 조지와 헤리스에게 같이 가자고 하세요. 날 믿어요.

 

당신처럼 쉽사리 흥분하는 두뇌에는 가정에서 받는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가끔씩 필요해요. 아이들에게 음악 레슨과 자전거와 하루에 세 번 먹일 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잠시 잊어버리세요.

 

요리며 집안 일, 옆집 개, 정육점 영수증 같은 일상에 대해서는 생각지 마세요. 모든 것이 새롭고 낮선 그런 곳으로 가세요. 그런 곳에서라면 당신의 지친 마음이 평화와 새로운 생각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잠시 떠나세요. 저에게 당신이 그리워할 시간을 주세요.

 

늘 저와 함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저도, 우리가 태양의 축복과 달의 아름다움에 대해 무관심해지듯이 잊어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당신의 장점과 당신의 미덕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세요. 떠나세요. 그리고 몸과 마음에 활력을 얻고 돌아오세요.

 

더욱 총명하고 더욱 바른 남자가 되어 - 아,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 저의 곁으로 돌아 와주세요“라고 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비록 바라던 바를 손에 넣게 될지라도, 꼭 우리가 원하던 방식으로 얻어지지는 않는 것이 인생사다. 우선, 에델버타는 내가 뭔가 초조해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의도적으로 관심을 이끌어내야 했다. 나는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 밤은 그다지 몸 상태가 좋지 않네요.“ ”그래요? 몰랐어요, 왜 그래요?“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런 지가 벌써 몇 주째네요.“ ”위스키 때문이에요. 평소에는 손도 대지 않으면서 해리스네 갈 때는 꼭 마시잖아요. 몸에 안 받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에요.“ 에델버타가 말했다.

 

“위스키 때문이 아니에요. 그것보다는 훨씬 심각한 문제에요. 신체상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 비평 글들 때문이군요. 내 말대로 그런 글들은 그저 불쏘시개 감으로 삼으라니까요.” 에델버타는 다소 동정어린 어조로 말했다.

 

“비평 글들 때문이 아니에요.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평도 나아지고 있어요. 한두 개 정도.” “그럼 뭐죠? 어쨌든 뭔가 원인이 있을 거 아니에요?” “아뇨, 원인 같은 건 없어요. 그게 참 주목할 만한 문제죠. 그냥 이상하게 불편한 느낌이 계속 나를 사로잡고 있다고밖에 설명하지 못하겠어요.”

 

“단조로운 일상, 평화롭기 그지없는 축복의 나날들, 그런 것들이 삶을 질리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불평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요? 안 그런 삶을 살게 된다해도, 그 삶을 그다지 좋아하게 될 거 같진 않은데요.”

 

“글쎄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요. 즐거움이 계속되는 삶에서는, 가끔은 천국의 상인들조차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평온함을 하나의 짐으로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 자신만 해도, 단 하나의 어긋나는 음조도 없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축복의 삶은, 내가 느끼기에, 사람을 점점 미치게 하는 게 아닐까 하거든요.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좀 이상한 데가 있는 사람이어야 말이지요. 어떤 때는 나 자신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런 순간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럴 때면 내가 어찌나 싫어지는지.“

 

“당신은 모를 거 에요. 내가 가끔씩 얼마나 떠나고 싶어 했는지, 심지어는 당신 곁에서조차도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더는 생각하지 않아요.” 에델버타가 말했다. 에델버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밀려왔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어떻게 남편에게 그렇게 말해요.” “나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지금껏 한 번도 말하지 않았어요. 남자들은, 아내가 아무리 남편을 좋아해도, 남편이 지겨울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아내인 에델버타가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은 모르실 거 에요. 나도 가끔씩 획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난,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언제 돌아올 건지,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죠.

 

당신은 모를 거예요. 나도 가끔씩은 내가 좋아하는, 또 아이들도 좋아할 저녁 메뉴를 주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당신은 모를 거예요. 가끔씩은, 나는 좋아하지만 당신은 좋아하지 않는 여자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어 하고, 내가 피곤할 때 자고 싶어 하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이 같이 산다는 것은 서로를 위해 자신의 원하는 바를 끊임없이 희생한다는 의미죠. 네, 가끔씩은 긴장감을 풀어줄 필요가 있어요.“

 

에델버타의 말을 생각하며 나는 여자들이란 참 지혜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상처를 입었고, 화가 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원하는 게 나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거라면∙∙∙∙∙∙.”

“늙은 거위처럼 굴지 말아요.” 에델버타가 말했다.

 

“난 단지 당신에게도 완벽하지 않은 구석이 한두 개쯤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에요. 그것만 빼면 당신이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당신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될 만큼이면 돼요. 예전에 당신을 자주 못 보았을 때는 그랬으니까요.

 

우리가 태양의 영광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아마도 매일 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내가 당신에게 무관심해진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죠.“ 나는 에델버타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경박한 것이, 우리가 다루는 주제와 적절하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가 남편과 떨어져 있는 3,4주의 시간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아내로서 할 짓인가 말이다. 그건 전혀 에델버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나는 걱정이 됐다. 이번 여행은 왜지 꺼려졌다. 조지와 헤리스만 아니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 내가 한 말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좋아요. 에델버다.” 나는 대답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하지요. 내 존재감으로부터의 휴가를 원한다면 충분히 즐기도록 해요.”

 

그녀를 너무 힘들게 하지 마. 네가 사이클링을 시작한 이후 너의 수호천사가 얼마나 바빴을지 생각이나 해봤어? 그녀를 미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 거 아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삶의 어느 구석에도 진보란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아무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이대로 멈춰버릴지도 몰라. 세상을∙∙∙∙∙∙.” 해리스가 말했다.

 

독일 시민은 사병이고 경찰은 장교다. 경찰은 거리에서 보행의 방향과 보행의 속도를 지시한다. 모든 다리의 끝에 경찰이 서서 다리 건너는 법을 지시한다. 경찰이 없으면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독일에선 책임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존재다.

 

당신을 돌보는 것은 독일 경찰의 의무다. 독일에선 변호사가 필요 없다. 사기를 당했으면 국가가 소송을 맡아준다. 국가는 결혼도 시켜주고 보험도 들어주고 사소한 것을 놓고 당신과 노름도 해줄 것이다. “태어나기만 하십시오.” 독일 정부가 독일 시민에게 말한다.

 

“나머지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당신은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독일인은 바른 사람이다. 독일인은 오랫동안 유럽의 사병이었기 때문에 군사 본능이 피 속에 흐른다. 신기한 것은, 아이처럼 무력했던 사람도 제복을 입는 순간 책임감과 추진력을 겸비한 지적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본인 자신은 다스릴 수 없다. 이런 독일인들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학교다. 의무에 대한 독일인들의 관념은 이런 것 같다. ‘단추 있는 제복을 입은 모든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이것은 앵글로 색슨적인 설계와는 완전히 대치되는 개념이다. ~ 

 

<‘자전거를 탄 세 남자’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문예출판사> * 제롬 K. 제롬 : 1859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영어로 쓰여진 최고의 코믹 걸작 중 하나인 <보트 위의 세 남자>로 100만부 이상 히트를 한 작가. 후속작이 <자전거를 탄 세 남자>이다. ‘영국인’의 시각에서 독일의 모습을 예리하면서도 재치있게 묘사해 공감의 웃음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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