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스톡홀름경제대학에 입학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자랑스러워할 것 같았거든요. 스웨덴 최대의 가스업체의 역대 최연소 재무담당임원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차량을 지원해주었고 전담 비서도 있었습니다. 출장 다닐 땐 비즈니스 석을 이용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는 그림처럼 완벽한 인생이었습니다. 대학 졸업하자 3년 동안 여섯 개 나라를 돌면서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엄청난 의지력과 자제력을 발휘해서 겨우 버텨낸 거였죠.
하지만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결국엔 깨닫게 되지요.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성공과 행복은 서로 다른 것이니까요.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자, 오늘도 신나게 시작해볼까! “ 하지만 속으론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기분이 별로야. 일하러 가기도 싫고, 일 생각만하면 왜 이렇게 불안하지? 마음 한구석엔 늘 의심이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것 같아.
내가 준비를 제대로 했을까?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제 경우에는, 일하러 나가려고 빈틈없이 차려입고 반짝거리는 서류 가방을 집어 들면 마치 연극에 출연하려고 분장한 것 같았습니다.
일요일 오후였지만, 마음속에는 다가올 업무 때문에 불안이 가득해 가만히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라는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인간 내면의 평화로운 것, 고요하고 차분한 것, 자꾸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중하며,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와 같은 것들에는 보상이 따른다.” 몇 번이고 읽다 보니 뭔가 깨달음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 내려놓기로 마음먹자 속이 후련했지요. 그 결정은 위험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파도처럼 밀려와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습니다. 벌떡 일어나 덩실거리며 춤을 췄습니다. 며칠 뒤, 저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더는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할 수 없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저 자신과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앞으로 일단 나 자신이 좀 더 견디기 쉬운 사람이 되는 거야.
내 본모습을 좀 더 편하게 대하는 사람, 내 생각에 지배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말이야.“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어느 정도 감은 있었습니다.
얼마 뒤 4주 과정인 시끌벅적한 마을의 사원으로 돌아갔습니다. 타낫이라는 중국인 스승이 있었는데, 그만두겠다고 할 때마다 웃으며 위로해주셨지요. “두유한잔 마시고 한잠 푹 자도록 해요.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마음이 바뀔지도 몰라요.“
실제로 매번 바뀌었습니다. 스웨덴으로 돌아와서도 아침저녁으로 명상을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제 내면세계를 여는 열쇠를 받아든 것 같았습니다. 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살면서 이보다 더 도움이 됐던 말은 별로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타고난 초능력을 간과한 채로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에 의심을 품으며 조금은 거리를 두거나 우스갯거리 삼아 가볍게 접근한다면 자기답게 살아가기가 무한히 쉬워지는데 말이지요.
그때 우리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때 우리는 자기 내면에 참된 친구이자 소중한 동반자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며 절대적으로 여러분의 편이지요.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못하고 다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가 되어 수시로 상처받습니다. 자기 생각을 모두 믿어버린다면 우리 삶에서 가장 암울한 순간에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게 되지요. 말 그대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는 삶에서 존엄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유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은 대부분 의도치 않게 생깁니다. 그간에 길러진 방식, 그동안 경험한 것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타고난 것들, 우리가 속한 문화와 환경 그리고 인생 여정에서 마주치는 메시지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됩니다. 생각 또한 그 산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숲속 승려가 되고 싶어서 모든 걸 뒤로하고 왔습니다.” 주지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잘 왔다고 말했습니다. “사흘 뒤에도 여기 있겠다고 하면, 당신은 머리를 깎으라는 요청을 받게 될 겁니다.”
주지 스님의 말은 환영 인사치고는 다소 차갑게 들렸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왜 그랬는지 알았지요. 사원의 생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중간에 마음을 바꾸고 떠나는 사람이 워낙 많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제 마음은 사흘 뒤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깎을 때가 되자 마음이 편했습니다.
의무적으로 매일 긴 시간 동안 좌선하여 강도 높은 수행을 했는데도 제 의지대로 명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수년이 흐른 다음이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세상과 제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지요.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박미경님 옮김, 단산초당출판>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스톡홀름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재무 전문가로 다국적기업의 에스파냐 지사에 근무, 스웨덴 최대 가스업체였던 AGA 자회사의 역대 최연소 재무담당최고 책임자인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17년간 수행했다.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2022월 1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은 30만부 판매되었고 세계2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인생 이야기의 종결 불가능성
한사람의 인생을 이야기로 만든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고 무모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빈틈없이 완결된 단 하나의 플롯으로 우리 삶을 단정 지어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성급하고 폭력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이 모두를 경계하며, 실수투성이의 플롯을 통해서라도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일을 뜻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해와 오독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우리의 서사적 이해는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어딘가 틀렸을지 모르고,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는 언제든 다시 쓰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인생을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는 ‘잠정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미하일 바흐친은 “한 인간이 살아 있는 한 그는 자신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최후의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에게 A=A라는 동일률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언제나 ‘아직 최후의 말을 하지 않은’존재로 대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타인을 ‘살려두어야’ 한다. 타인의 삶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도 진실은 다만 잠정적이며 완전하게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야기의 끈’-서사적 사고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박진 교수(숭실대-국민대학교)지음, 이학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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