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우리는 언제 결혼을 해야 하는가?
남자와 여자 서로가 상대방 없이는
살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될 때다.
좋은 결혼에서 좋은 자녀가 태어난다.
육체적 사랑에 한번 빠진 사람은
상대를 바꿔가며 계속 그런 사랑을 반복한다.
그러다 결국에는
진정한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미움,정말, 역겨움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 레프 톨스토이

사랑이 없는 애착
의존성의 특징은 영적 성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영양 섭취에만 관심을 두고 그 이외의 것에는 무심하다.
그들은 만족과 행복을 갈망한다. 그러나 성장은 갈망하지 않으며 성장에 따르는 불행과 고독과 고통은 견디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가 의존할 상대의 영적 성장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다.
의존성은 ‘사랑’이라는 말을 잘못 갖다 붙인 여러 행동 유형 중 하나다. 우리는 자주 생명이 없는 대상이나 어떤 일을 사랑하다고 말한다. 즉, “그는 돈을 사랑한다”라든지 “그는 권력을 사랑한다”라든가 “그는 정원을 사랑한다” 혹은 “그는 골프 치기를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권력과 돈은 사랑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인류 발전을 위해 정치권력을 이용하려고 정치하면서 인생을 힘들게 살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또는 영적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성할 시간과 자유를 얻으려고 부를 갈구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인간성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란 말이 너무 일반적이고 그 특별한 의미가 상실돼 사랑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나 애착을 느끼는 것과의 관계를 규정할 때 그 관계의 질적 차이는 무시하고 모두 ‘사랑’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한다면, 현명함과 우둔함, 선과 악, 귀한 것과 천한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엄밀하게 정의를 내리면, 우리는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물과 비교해서 생각할 때 실질적인 성숙이 가능한 존재는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개를 ‘사랑한다’. 우리는 개를 먹이고 목욕시키고 만져주며 훈련시키고 같이 놀기도 한다. 개가 아프면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부리나케 수의사에게로 달려간다.
개가 도망가거나 죽으면 슬픔에 젖는다. 아이들이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애완동물이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다시 애완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첫째로 우리가 다른 인간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를 비교해볼 때 애완동물과의 의사소통을 극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애완동물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둘째,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될 때에 한해서만 애완동물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반항하거나 대들면 이들을 오랫동안 곁에 두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애완동물관계에서 그들의 의존성을 기르고자 한다. 언제까지나 자기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난롯가에서 믿음직스럽게 엎드려 있기를 바란다.
애완동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로부터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군인들이 영어로 대화할 수 없는 독일, 이틸리아 또는 일본의 ‘전쟁 신부들’과 동화 같은 결혼을 했다. 그런데 신부들이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이나 느낌, 소망, 목표를 아내에게 투입시켜 애완동물에게서 느끼는 것 같은 친밀감을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영어를 배움으로써 남편은 아내가 자신과는 다른 생각과 의견과 목표를 갖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사랑이 끝나고 말았다.
많은 것을 알게 된 아내가 자신을 사랑스러운 애완동물 취급하는 남편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남성에게 사랑이란 아내가 애완동물이라는 데서 생겨난 것이므로 아내의 장점이나 독립성이나 개성을 존중할 능력이 없다.
이러한 증상 중 가장 슬픈 경우는 정말 많은 여자가 아이를 단지 아기일 때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가 두 살이 되기까지는 이상적인 어머니가 될지도 모르겠다.
무한정 부드럽게 기쁨으로 갓난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감싸 안아주고 같이 놀고 계속적으로 애정을 쏟고 전적으로 아기를 기르는데 헌신하며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황홀할 정도로 행복해한다.
그러나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상황이 돌변한다. 아이가 자기 뜻을 확실히 나타내기 시작하자마자 - 말도 안 듣고, 찡찡대고, 놀기를 거부하고, 때로 안아주는 것도 싫다고 하고, 엄마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며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향해 조금씩 움직여 나갈 때 - 어머니로서의 사랑은 중단된다.
어머니는 아기에게 흥미를 잃고 그냥 내버려두며 아기를 단지 귀찮은 존재로 생각한다. 그 무렵 어머니는 - 가끔 있는 일이지만 - 다시 임신하고픈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또 다른 아기, 즉 다른 애완동물을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 만일 성공적으로 아이를 가지면, 대개 첫 아이 때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아이가 관심을 호소하는데도 이를 거의 전적으로 무시한 채 이웃의 갓난아기 돌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미운 두 살’은 인생에서 갓난아기로서의 마지막이며, 어머니로부터 사랑받는 마지막 시기다. 이때 고통과 상실을 경험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뻔히 알 수 있지만, 새로운 갓난아기 돌보기에 바쁜 어머니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런 경험의 결과는 보통 아이들이 자라서 성년기에 들어갈 때 우울한 성향 혹은 수동성인 의존적 성격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그 둘 다를 지닌 의존적 성격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갓난아기와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것이나 의존적이고 복종적인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 모두가 본능적인 행동 패턴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본능적 행동에는 ‘모성 본능’ 또는 보다 일반적으로 ‘부모로서의 본능’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이는 것이 매우 적합하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에 빠진다’라는 본능적 행동과 비슷하다.
이것은 절대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별다른 노력없이 필요 없고, 전적으로 의지나 선택에 따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족의 생존을 독려하지만, 종족의 발전이나 영적 성장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고 참사랑이 싹틀 수 있는 인간관계를 솔선해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사랑과 흡사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건강하고 창조적인 결혼으로 발전하든지, 건강하게 영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로 기르거나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M.스캇펙 지음, 최미양님 옮김>
* 모건 스캇 펙(Morgan Scott Peck , 1936~2005)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었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뉴욕시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
이 책은 단순한 심리학 해설서를 넘어 ‘영적 성장을 위한 나침반이자 자기 성찰의 동반자’로 평가받으며 종교와 신념을 초월해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이를 극복해 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로운 ‘자기훈육법’을 들려준다.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용기, 진정한 사랑, 건강한 훈육, 그리고 삶이 주는 은총을 통해 한 걸음씩 성숙해가는 여정을 안내하는, 우리 내면의 성장을 위한 따뜻한 지도이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취의 아침! (15) | 2026.03.14 |
|---|---|
| 진로의 불확실성! (4) | 2026.03.11 |
|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 (20) | 2026.03.02 |
| 행동하기 전에 열까지 세어라! (6) | 2026.02.26 |
| 어리석은 규칙! (2) | 2026.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