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진로의 불확실성!

[중산] 2026. 3. 11. 12:54

 

 

지금 있는 곳이 고향

 

어둠이 없다면 빛을 모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악이 없다면

미덕이나 정의도 몰랐을 것이다.

 

세상에는 악이 넘친다.

사람들이 선한 행동을 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체에 고통과 불편을 가져오는 것을

악이라 부른다.

 

하지만 인생은 영혼을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삶을 영적 경험으로 이해하는 자에게는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현재 있는 곳이 곧 고향이다.

어디서든 자기 내면,

영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프 톨스토이

 

산수유꽃

 

 

우리 앞에 놓인 진로의 불확실성은 우리의 삶 전체를 괴롭힌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무서워진다. 더 이상 의무를 지시해 주지 않는 자유가 두려운 탓이다.

 

그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나라에서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곳에서는 각자가 자기만의 발견을 하게 된다.

 

그 발견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라. 그러므로 가장 덜 알려진 아프리카 오지에서 가장 불확실하게 더듬어 간 길이 훨씬 덜 막연하다….

 

그늘진 숲이 우리를 유인하고, 아직 마르지 않은 샘의 신기루가…. 그러나 샘은 우리의 욕망이 그것이 흐르게 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고장은 오직 우리가 접근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형태를 드러내 존재하게 되는 것이며. 주변의 풍경은 우리의 발걸음에 맞춰 우리 앞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평선 끝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것조차, 끊임없이 변모를 거듭하는 겉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심각한 주제 앞에서 비유들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신과의 만남을 기다리지만, 불행하게도 어느 곳을 향해 기도를 드려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러고는 신은 도처 어디에든 있으나 다만 발견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리고 되는대로 아무 곳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그러므로 나타나엘, 너 또한 손에 쥔 등불이 인도하는 대로 길을 더듬어 가는 사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디를 가든, 너는 신을 만날 수밖에 없다 - 신. 메날크는 말하곤 했다. “신은 바로 우리 앞에 있는 것”이라고.

 

나타나엘, 너는 지나가면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느 곳에서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덧없이 지나가 버리지 않는 것은 오직 신뿐임을 명심해라. 중요성은 사물 속이 아니라, 너의 시선 속에 있어야 할 것이다.

 

네 머릿속에 간직된 모든 명확한 지식들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너와는 별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왜 그것에 그리도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가?

 

욕망에는, 욕망의 충족감을 얻게 되는 것이 있다 - 그 충족감으로 욕망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나타나엘, 너에게 확실히 말하는데, 욕망의 대상 자체를 소유하는 것은 언제나 거짓이었던 반면, 욕망은 항상 나를 더 풍요롭게 해주었다.

 

 

많은 감미로운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엘, 나는 나 자신을 소진시켰다. 그것들의 찬란함은 내가 그것들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끊임없이 타올랐다는 이 사실에서 연유한다.

 

나는 지칠 수가 없었다. 모든 열정이 나에게는 사랑으로 인한 소모, 어떤 감미로운 소모였다. (… )나타나엘, 공감이 아니다 - 사랑이어야 한다.

 

그 행위가 옳은 것인지 옳지 못한 것인지 판단하지 말고 행동하기, 선일까 악일까 걱정하지 말고 사랑하기. 내가 너에게 열정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나타나엘, 고요한 삶보다는 격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죽음과 함께 잠드는 휴식이 아닌 어떤 다른 휴식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살아서 충족시키지 못했기에 나의 죽음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모든 욕망과 에너지가 나를 괴롭힐까 두렵다.

 

나는 내 내면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것을 이 땅 위에 빠짐없이 표출한 다음, 희망의 완전한 소멸, 완전한 절망 속에서 죽기를 희망한다.

 

나타나엘,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이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너도 잘 알지 않는가. 때때로 내가 이런저런 슬픔들, 근심들, 고통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이 없었다면 나는 그것들을 겨우 견뎌 냈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삶을 돌보도록 놔두자!~

 

<‘지상의 양식 ‧ 새양식’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드레 지드 지음, 최애영 옮김, 열린책들출판>

 

* 앙드레 지드 : 프랑스 문인, 1869년 파리 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 폴 지드와 루앙의 부유한 개신교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좁은문>,<배덕자>, <전원 교향곡>,<위폐 제조자들>등 의 작품이 있으며, 1947년 11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1년 파리의 자택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탈주와 해방의 참고서’인 <지상의 양식>은 지상에서의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결단과, 그 실천을 통해 체험한 환희를 기록한 비망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