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산을 에워싸기 시작하면 나는 구름 사이를 뚫고 산을 오른다. 확 트인 하늘보다 구름 속이 훨씬 마음에 든다. 구름은 압축된 침묵을 선사한다. 고독의 농도를 짙게 만드는 것이다. 고독은 달걀의 흰자위다. 달걀의 제일 좋은 부위인 것이다. 고독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일종의 단백질이다. 토파나(돌로미터 산맥의 동부에 위치한 고산지대, 3,244미터 봉우리를 도파나 디 메초라고 부른다)를 뒤덮은 구름이 부서지더니 우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게 동작의 우아함을 허락했던 고독도 거기서 끝났다. (…) 등반가의 본능이 나를 떠민다. 십자가를 붙잡으라고, 등반을 완성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인조섬유로 만든 겉옷이 다시 바스락거리기 시작하고 어느 샌가 나는 다시 번개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