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딱 우리나이인 쉰다섯 살 때 위의 작품 ‘게르니카’를 그려 그의 화가인생에서 시쳇말로 최고로 물오른 작품을 그렸다. 이 이후에도 서른다섯 해를 더 살았으니... 91살이네!, 이때까지 수천 점의 작품을 더 내놓아 현재 엄청난 액수로 거래되고 있다.
한편 이 명성과는 달리 작품발표 및 재산에 관한 법적공방에 시달렸고 사생활은 엄청 복잡하였다. 그는 난마처럼 뒤얽힌 복잡성과 날카로운 단절로 점철된 삶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역량을 발휘 할수 있었다고 한다. 1940년에 공산당에 입당하여 정치활동도 하였으며 여든살이 넘어서도 엄청난 정력과 기운을 발휘했다. 이 같은 피카소의 마지막 시기에 대해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작가 존버거는 ”피카소는 일을 할때는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주제는 없다...다른 화가의 작품에서 주제를 취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단지와 접시를 장식할 뿐이다. 철부지 애들처럼 군다....“
전기작가 페론스와 사진작가 덩컨은 그의 거장주변을 접근할수 있는 허락을 받아 거장의 왕국에서 벌어진 일들이 겉보기마냥 밝은 면만 있지 않다는 점을 폭로했다.
가학적인 성격이 있어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폭행도 서슴지 않았고, 첫번째 부인은 정신이상으로 죽었고, 발터와 도라 등의 여인들도 자살내지 신경쇠약에 걸렸다.
두 번째 부인은 작품전시계획을 세운 날 자살을 하였다. 피카소는 자신을 미노타우로스와 동일시해서 여인들의 몸과 영혼을 모두 희생하기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의 전기를 쓴 리처드슨은 “다른 누구보다 자기만을 추켜세울 수 있는 친구들을 원했다. 그는 끊임없이 친구들의 헌신적인 자세와 이해능력, 그리고 인내심을 까다롭게 시험했다”고 기술한다.
그럼에도 피카소는 대담하게 도전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천의무봉의 솜씨를 지녔을 뿐더러 사진 찍기를 좋아했고 시샘 많은 언론을 즐기기까지 하였다. 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각예술의 마법사였다. 끊임없이 창조에 몰두하여 새로운 작품을 내 놓았으니...
한 거장이 그냥 태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동양적으로는 수신제가를 기본으로 하면서 가정사라도 평안하기를 바라는데...지금 우리 나이에 걸작을 남기는 일에 몰입하지 않는다면 늙어가는 마당에 나를 아는 주변사람과 집안 식구라도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너무 평범한가?.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편의 피카소 생활을 짜집기 해봤습니다. 다들 좋은 일 창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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