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불공평하다
릴리 레드베터는 앨라배마 주 개즈던에 있는 굿이어 타이어 공장에서 19년 동안 근무했다. 그녀는 재직 기간 대부분을 관리 주임으로 일했다.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릴리의 이 같은 경력은 여성 근로자로서 중요한 성취라고 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릴리는 남자들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꿋꿋이 유지했으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1996년에는 ‘최우수 실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릴리는 처음에는 다른 주임들과 동등한 봉급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차이가 났다. 상사의 노골적인 편견 때문에 ‘초라한’ 근무 평가를 받아 승진에서 탈락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1997년 말, 릴리의 급여는 남자 동료들에 비해 15~40퍼센트나 적었다. 릴리의 월 급여는 3,727달러인 데 비해 남자 주임들은 4,286~5,236달러를 받은 것이다. 그러던 중 임금 차별의 실상을 알게 된 릴리는 1964년의 공민권법에 따라 발족한 연방 고용기회균등위원회(EEOC)에 ‘질문서’를 제출했다. 공민권법 제7조는 직장 내에서 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릴리는 재직 당시에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1998년 후반, 조기 퇴직한 이후 굿이어사를 제소했다.
배심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차별받은 급여와 손해 배상, 법정 비용을 회사가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결국 사건은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5대 4로 굿이어사가 승소했다.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새뮤얼 앨리토는 릴리 사건이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법률에 따르면 ‘차별 행위’가 발생한 지 180일 이내에 EEOC에 이의 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릴리에 대한 임금 차별은 수년 전에 벌어졌기 때문에 대법원은 릴리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승진이나 해고 같은 경우 차별은 종종 희생자에게 그 즉시 분명해 보이지만, 임금 차별은 훨씬 더 은밀하게 진행된다. 그렇지만 작은 차별 행위도 시간이 흐르면 엄청나게 누적될 수 있다. 또 미국의 대다수 회사는 근로자가 동료의 급여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노골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임금 차별을 파악하기 어렵고, 이에 대한 증거를 찾기는 훨씬 더 어렵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곳곳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도 매체마다 이 사건을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뽑았으며 많은 지면을 할애해 이 판결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이 뉴스는 순식간에 50만 개 이상의 웹사이트와 블로그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하원에서도 지체없이 이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다뤘다. 1개월 후 캘리포니아의 하원 의원 조지 밀러가 ‘2007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안’을 제출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이 법안은 225대 197의 표결로 하원을 통과했다. 하지만 상원의 최종 표결에서 가결에 필요한 60표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버락 오바마는 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상원의원 중 한 사람이다. 이후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 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한 유세에서는 릴리를 연사로 초청하기도 했다. 2008년 대선이 끝난 뒤 새로 구성된 의회에서는 이 법안을 압도적인 다수로 가결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로 서명한 주요 법안이 되었다.
이처럼 명백히 불공정한 차별 행위는 불행하게도 미국 사회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불공평은 예로부터 인류 역사에서 끊이지 않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므로 릴리 레드베터 사례는 낯선 일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사례는 공정과 불공정의 본질에 대해 많이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불공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일부는 ‘형평성의 원리’에서 접근할 수 있다. 수년간 릴리 레드베터의 업무 실적에 대한 처우는 엄격한 양적 분배라는 측면에서 부적절했다. 레드베터 사례에서 두 번째로 배울 수 있는 것은 힘(권력)이 공정성을 좌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릴리 레드베터의 사례가 보여준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중요한 측면은 그녀를 지지하며 표출된 대중의 들끓는 분노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분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강력한 암시일 것이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편견에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불쾌감을 느끼고 그녀를 지원한 것이다.
실제로 심각한 불공정은 권력과 부의 지나친 편재(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일부가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할 때)에서 비롯된다. 이런 불평등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담론의 전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또한 지속적으로 논의된 주제였다. 그러나 진부할 정도로 전형적인 우리의 이기심이나 탐욕과 반대로 우리 대다수에게는 공정성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가 실현되고 경제적인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며 ‘상호 이익’이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 잡은 사회, 혜택과 의무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공정성의 기준’이라는 것은 이런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준이 바로 안정적인 ‘사회계약’을 달성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이 계약은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일상적 표현일 뿐 아니라 존중할 만한 철학 개념이다.
<“공정 사회란 무엇인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피터 코닝 지음, 역자 박병화박사님, 에코리브르>
▣ 저자 피터 코닝
미국의 생물학자, 컨설턴트, 복잡계 과학자이다. 《뉴스위크》에 과학 관련 글을 기고했으며, 스탠퍼드 대학교 인간생물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워싱턴 주 프라이데이 하버(Friday Harbor)에 소재한 복잡계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Complex Systems)의 소장이다. 생명과학과 사회과학에 관한 폭넓은 저술을 해온 그는 특히 진화에서 시너지의 원인적 역할(causal role) 연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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