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 찾아온 우주인 존스
“이 혹성의 주인은 꽤나 불합리한 생명체로군요!” 이런 무례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남자가 있다. 이름은 ‘존스’, 1년 전쯤 행동경제학자인 내 연구실에 찾아왔다. 존스는 자신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별에서 온 우주인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임무는 이곳에서 지구인처럼 지내면서 지구인의 생태를 조사하는 일이라고 한다. 예기치 못했던 방문자에게 나는 바짝 흥미가 생겼다.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경제적 인간’이란 뜻을 지닌 ‘호모 에코노미쿠스’ 별에서 온 존스는 외모는 지구인과 똑같았지만 우리에 비해 훨씬 더 합리적이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의사결정을 했고, 여러 가지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기호들 사이에 전혀 모순이 생기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결같았다. 당연히 간사하거나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몸에 좋지 않은 담배는 전혀 피지도 않았고, 건강을 생각하며 식사를 하니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었다. 초(超)합리주의자인 존스는 지구인이 ‘절대로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그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종종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정말 존스의 말처럼 우리는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생명체일까? 다음의 문제를 통해 확인해보자.
문제 - 대체 안젤리나 졸리는 어디에?
당신은 ‘쾌락의 집’에 와 있다. 건물 주인은 당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며 이렇게 제안했다. “여기 빨강, 파랑, 노랑 3가지 색깔의 문이 있습니다. 이중 단 하나의 문 뒤에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손꼽히는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녀가 어떤 문에 서있는지 알아맞히면 당신은 오늘밤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자! 과연 어느 문일지 골라 보십시오.”
기쁜 마음에 당신은 과감하게 가운데 파란색 문을 선택했다. 아직 문은 열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주가 말한다. “나는 어느 문 뒤에 안젤리나 졸리가 서있는지 알고 있어요. 그럼 이번엔 특별히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2개의 문 가운데 안젤리나 졸리가 없는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주인은 이렇게 말하며 노란색 문을 열어젖혔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주인이 다시 당신에게 물었다. “이제 남은 문은 2개입니다. 하나는 당신이 선택한 파란색 문이고, 다른 하나는 왼쪽에 있는 빨간색 문이죠. 둘 중 1군데에 안젤리나 졸리가 숨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당신에게 특별히 선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자, 빨간색 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처음에 고른 파란색 문을 그대로 선택하시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당신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체 어느 쪽 문을 선택해야 안젤리나 졸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안젤리나 졸리(여성 독자라면 ‘브래드 피트’라고 생각하시라!)와 꿈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신중하게 생각해보라. 존스는 자신이 만난 지구인들에게 이 문제를 냈을 때 응답자의 약 80퍼센트는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았고, 나머지 20퍼센트는 선택을 바꿨다고 했다.
응답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선택을 바꾸지 않은 그룹은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니까 굳이 선택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와 “선택을 바꿨다가 틀리면 억울할 것 같아서 파란색 문을 그대로 선택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반대로 선택을 바꾼 그룹은 “확률이 1/2이니까 어느 쪽 문을 선택해도 마찬가지겠지만” 하고 말을 꺼낸 후에 “왠지”, “직감으로”, “신의 계시가 있어서” 등을 이유로 빨간색 문을 골랐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존스는 “이 혹성의 주인들은 이렇게 쉬운 확률 문제조차도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 하더라고요.”라고 비아냥거렸다. 나는 존스의 비아냥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실 존스가 낸 문제는 행동경제학에서 많이 다룬 문제인데, 꽤 우수한 학자들도 이 문제의 답을 맞히지 못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면 둘 중 한쪽 문에 안젤리나 졸리가 있을 확률이 2배나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ANSWER
선택을 바꾸는 쪽이 이득이다. 파란색 문을 그대로 선택했을 때 안젤리나 졸리가 있을 확률은 1/3, 빨간색 문으로 바꿔 선택하면 확률은 2/3로 높아진다.
“문 2개 중 한쪽에만 안젤리나 졸리가 있으니 어느 쪽을 선택해도 확률은 1/2인데, 왜 각각 1/3과 2/3가 되는 걸까요?” 분명히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이 2개라서 확률이 절반일 거라는 생각은 너무나 단순하다. 조금만 더 이치에 맞게 생각해보자. 맨 처음, 문 뒤쪽에 안젤리나 졸리가 있을 확률은 3개의 문 모두 1/3이었다. 파란색 문이 1/3, 빨간색 문이 1/3, 노란색 문이 1/3. 즉 당신이 선택한 파란색 문 뒤에 졸리가 있을 확률은 1/3, 빨간색 문 ‘또는’ 노란색 문 뒤쪽에 졸리가 있을 확률은 2/3가 된다.
이 상태에서 건물 주인은 졸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노란색 문을 열었다. 여기서 없다고 알고 있던 문을 열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빨간색 문 또는 노란색 문 뒤에 졸리가 있을 확률이 2/3였고, 노란색 문을 주인이 의식적으로 연 것이기 때문에 남은 빨간색 문 뒤쪽에 졸리가 있을 확률은 2/3가 된다. 하지만 파란색 문의 확률은 그대로 1/3이다. 따라서 확률이 1/3인 파란색 문을 그대로 선택하기보다는 확률이 2/3인 빨간색 문을 선택하는 게 성공 확률을 2배로 높일 수 있다. 그러니 분명히 선택을 바꾸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만약 아직도 내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문의 개수가 훨씬 많다고 가정해보라. 그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를테면 문이 100개가 있고, 그중 하나의 문 뒤에 안젤리나 졸리를 숨겨놓는다. 당신은 100개의 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그 문 뒤에 졸리가 있을 확률은 1/100이다. 그리고 어느 문 뒤쪽에 졸리가 있는지를 알고 있는 건물 주인은 그녀가 숨어 있지 않은 문 98개를 차례차례로 연다. 이제 남은 1개의 문과 당신이 선택한 문 중에서 졸리가 있을 확률은 어느 쪽이 높을까? 당신이 선택한 문의 확률은 변함없이 1/100이다. 하지만 다른 한쪽의 문 뒤에 졸리가 있을 확률은 99/100이다. 왜냐하면 건물 주인은 졸리가 없는 문만 골라서 98개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해가 되는가?<“불합리한 지구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하워드 댄포드 지음, 역자 김윤경님, 비즈니스북스>
▣ 저자 하워드 댄포드
흥미진진한 실험과 재미난 사례로 행동경제학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경제학자. 1962년 태어나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일본 간사이가쿠인대학과 도시샤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수년간 다양한 실험과 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평소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하고 그 결과,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행동경제학 연구에 몰두해왔다. 최근에는 행동경제학을 중심으로 게임이론, 미시경제학을 토대로 한 사회분석을 시도하는 한편 뇌과학에도 관심이 많아 뉴로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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