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를 받으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하는 일도 겪으면서, 나는 수년 동안 사람을 평가하는 문제와 씨름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로 하고, 사회과학 문헌을 조사하거나 그것으로 부족한 경우 직접 실험을 수행하기도 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나는 다음 물음들의 답을 구하고자 했다. 1) 타인을 평가하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 2) 칭찬과 비판은 꼭 반대되는 의미일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까? 3)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칭찬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 4) 내가 타인(또는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영향을 미칠까?
참고로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판단이자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사람을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긍정이나 부정의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 점에 착안하여 과학자들은 뇌의 중심에 위치한 시상을 연구하여 평가의 유인을 추적했다. 뇌간 바로 위에 위치한 시상은 뇌의 모든 고차원적 활동에 관여한다. 예로 누군가를 마주하면 정식 사고 프로세스에 정보가 전달되기 전에 먼저 뇌의 시상에서 기초적 판단을 한다.
가령 상대방이 우리를 향해 웃고 있거나, 아니면 소리를 칠 때, 우리 뇌의 시상에서 이런 정서적 유의성(Valence,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기준)을 긍정 혹은 부정으로 해석하여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시상에서 긍정이나 부정의 판단을 하면, 그 신호가 중추 신경계로 전달되어 상대방에게 접근할지 회피할지 활동을 준비한다. 이어서 시상에서 내린 긍정이나 부정의 해석이 뇌의 고차원적 영역에 전달된다.
시상의 반응은 대개 단순하고 무의식적이다. 그래서 시상에서 평가의 유의성을 인식하지 못하면(가령, 누군가가 시치미를 떼고 말할 때) 그 정보가 한층 고차원적인 두뇌 영역에 전달되고, 신체 반응을 이끄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런 고차원의 프로세스에서 상대방의 말을 해석하여 긍정이나 부정의 판단(칭찬이나 지적을 인식)을 하고, 이런 정보는 다시 시상에 전달되어 연이은 신체의 반응을 이끈다. 그런데 타인과 마주치는 것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 탓에 우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거나 비판하면서 살아간다.
칭찬이 아닌 비판이 뇌를 깨운다: 사람들은 비판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의 근거가 정확한지 아닌지 따져서 비판을 수용하든가 깨끗이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첨에는 사족을 못 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얘기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그런 의견의 출처나 근거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미소를 짓거나 따뜻한 어조로 평가를 내릴 경우, 그 효과는 훨씬 커진다. 그런 경우 뇌의 시상이 (어쩌면 부당한) 즐거움의 감정을 느끼도록 무의식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는 칭찬을 깊이 고찰하지 않기 때문에, 칭찬받은 사실을 떠올리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아졌다 해도, 결국 칭찬의 구체적인 내용은 떠올리지 못한다. 가령, 가장 최근에 자신을 칭찬한 사람 몇 명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아마 우리는 그들을 아주 잘 기억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칭찬하면서 뭐라고 말했는지 물어보면, 아마 기억을 잘 못 할 것이다. 반면에 사람들은 비난받은 일은 아주 잘 기억한다. 가장 최근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나쁜 소리를 했는지 물어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상세하게 기억해낼 것이다.
부정성에서 비롯되는 현상은 아주 흥미롭다. 가령 우리는 비판을 듣기 전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부정적 의견을 듣는 데 많은 인지능력을 쏟아 부어서 우리 뇌가 그 전의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이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행 간섭(새로운 정보가 이전에 학습한 정보를 방해하는 현상)이라고 하는 이 현상 때문에 “무슨 일 때문에 그 사람이 호통을 쳤니?” 하고 물으면, 종종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칭찬과 긍정적 사건을 접할 때는 인지능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아서 역행 간섭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부정적 평가를 받은 직후 우리의 뇌와 신체는 전면적인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즉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 자리를 뜰지, 항변할지, 논쟁을 할지, 알력으로 위협할지, 해법을 내달라고 간청할지 등 여러 가지 가능한 선택을 생각한다. 그리고 즉시 결정을 내리는 데 유용한 정보를 구한다. 그래서 부정적 사건을 접한 후에 우리의 기억력은 실제로 향상되는데, 이런 효과를 순향 증강이라고 한다. 이 점에 비추어보면, 부정적 의견을 말한 직후에 기억시키고자 하는 정보를 제시해야만 더 효과적이다.
한편 긍정적 의견과 부정적 의견을 함께 제시할 때는 순서가 중요하다. 예부터 칭찬을 먼저 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누그러뜨린 다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썩 좋은 생각이 아니다. 칭찬을 들어서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만, 잠시 후에 역행 간섭 현상이 일어나 부정적 의견만 기억에 남게 된다. 그래서 부정적 의견을 먼저 말하고 나서 긍정적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좋다. 비판을 들은 상대방은 주의를 집중해서 칭찬을 들을 것이다.
그럼 비판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우선 부정적 평가를 내릴 때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평가받는 사람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또 잘못을 지적하되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비판에 반응하는 분명하고 건설적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비판하자마자 즉각적인 대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비판을 받자마자 내뱉는 말은 우리 뇌의 감정을 다루는 부분에서 즉각적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피드백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비판 받은 사람이 간단한 답변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함으로써 그가 비판을 충분히 숙고할 여유를 주는 것이 좋다.
칭찬이야말로 전략이 필요하다: 칭찬이 비판보다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칭찬할 때는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뇌는 음운과 운율이 반복되는 것을 좋아한다. 음운은 기억하는 데, 운율은 의미를 더욱 깊이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나 사물을 기리는 서정시에서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운율과 리듬이 발달했다. 한편 ‘종결자’나 ‘미스터 프로그래밍’ 같은 긍정적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별명을 사용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놀라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컨대 생각지도 못한 일로 칭찬을 받으면 그 일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관계의 본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클리포드 나스, 코리나 옌 지음, 역자 방영호, 푸른숲>
▣ 저자
클리포드 나스: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고, CHIMe(Humans and Interactive Media) 연구소 소장이다. 프린스턴 대학교 수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IBM에서 컴퓨터 그래픽, 데이터 구조, 데이터 디자인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 CASA(Computers Are Social Actors) 패러다임 연구의 권위자이며, 산업 컨설턴트로서 마이크로소프트, 토요타, 필립스, BMW, 휴렛팩커드, AOL, 소니, 델 등의 기업에 자문활동을 해왔다. 저서로는 『The Media Equation』, 『Wired for Speech』가 있다.
코리나 옌: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학내 디자인 저널 《Ambidextrous》의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베이 에어리어에 거주하며 디자인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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