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는 단서들
신의 존재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증거란 있을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신의 실체에 대한 강력한 단서들을 - 신성한 지문들을 - 여기저기서 찾아냈다. 나는 한때 기막히게 총명한 젊은 과학자와 정기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신이 존재한다는 막연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 중엔 장점을 풍부하게 지닌 논리도 많았지만, 어느 주장이든 궁극적으로 합리에 의해 모두 반박할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때문에 그는 마음이 불편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의 존재에 대해 물샐틈없이 완벽한 증거를 단 하나만이라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신앙심을 갖겠어요?” 나는 그가 “강력한 합리주의”를 가정하고 있음을 지적해주었고, 바로 그런 합리주의에 대해서 물샐틈없는 증거란 없다는 사실을 둘이서 함께 인식하게 되자, 그는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 그가 “증거”라고 불렀던 논리들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증거가 아닌 “단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관점으로 문제를 다루게 되자, 그는 신이 존재한다는 단서들이 모두 합쳐지면 막강한 힘을 가진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철학자 앨빈 플란팅가는 합리적인 인간들 모두에게 신이 존재한다고 설득할 수 있는 증거란 없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 적어도 서른 개 정도의 대단히 그럴듯한 주장은 있다고 믿는다. 시간을 두고 플란팅가의 그 리스트를 충분히 검토해본 독자들은, 그 가운데 참으로 거부하기 힘든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호소력이 큰 논리들을 모아보면 그 무게는 엄청난 것이 될 수 있다. 그런 몇 가지 논리들을 훑어보기로 하자.
신비한 “뱅” : 프랜시스 콜린즈는 그의 저서 『신의 언어』에서 일반인들이 알기 쉬운 말로 다음과 같이 실마리를 풀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기원이 빅뱅이라는, 대단히 확고한 결론을 갖고 있다. 우주는 150억 년 전 무한히 작은 하나의 점에서 나온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밝은 에너지의 섬광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자연이 - 이 경우엔 우주가 - 어떻게 저절로 창조될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우주에 어떤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누군가 그것을 시작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틀림없이 자연의 밖에 있는 존재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인간 맞이할 준비가 된 우주? : 유기적인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물리적인 규칙성과 불변성 - 빛의 속도, 중력상수, 다양한 핵력의 크기 등 - 이 모두 다 함께 지극히 좁은 범위 내에 들어가는 수치를 가져야만 한다. 그런데 이처럼 완벽한 수치들이 우연히 모일 가능성은 너무나 적어서 통계적으로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인데, 콜린즈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과학자의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면, 마치 우주가 우리 인류의 도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중력상수, 여러 핵력에 대한 다양한 상수 등, 정확한 수치를 지닌 모두 15가지의 상수가 있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단 백만 분의 일, 아니 어쩌면 몇 조 분의 일만 틀렸어도, 우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상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물질은 유착될 수 없었을 것이며, 은하계도, 수많은 별들도, 혹성도, 인간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표현을 빌면, 아주 많은 숫자의 다이얼이 있어 그 모든 다이얼이 지극히 좁은 한도 안에서 일제히 튜닝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튜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호킹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우주가 빅뱅 같은 현상으로부터 생겨날 확률은 너무나도 낮다. 나는 여기에 틀림없이 종교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인간과 같은 존재를 창조하겠다는 의도를 지닌 어떤 신의 섭리로 설명하면 모르거니와, 왜 단순히 이런 식으로 우주가 시작되었는지를 달리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미조정(微調整) 논리”(Fine-Tuning Argument) 혹은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불러왔다. 다시 말해 우주가 인류의 도래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격렬한 반론이 무수하게 쏟아진 걸로 볼 때, 이것은 하나의 논리로서 제법 강력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응답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나오는데, 수도 없이 많은 우주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어마어마한 시간과 공간에 걸쳐 어마어마한 숫자의 우주들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중 어떤 우주는 불가피하게 우리 같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미조정’되어 있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바로 그 우주이며, 그래서 우리는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증거”로서의 미조정 논리는 합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많은 숫자의 우주들이 있다는 증거는 조금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할 방법 또한 전혀 없다. 그렇지만, 하나의 “단서” 혹은 “실마리”로서 이러한 사고방법론은 막강한 힘을 지닌다. 앨빈 플란팅가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한 포커 게임에서 에이스 4카드를 스트레이트로 스무 번씩이나 쥐게 된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자 함께 포커를 하는 사람들이 권총을 꺼내려고 하는데, 이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 수상쩍게 보이겠지. 알아. 하지만 무한히 많은 우주가 있어서 포커 패를 돌릴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실현되는 우주가 딱 하나 있다면 어떨까? 우연히도 우리는 내가 속임수를 쓰지 않아도 항상 에이스 4카드를 쥐게 되는 우주에 있다는 얘기지.”
이런 논리는 함께 포커를 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이 그냥 어쩌다보니 연달아 스무 번씩 에이스 4카드를 쥐게 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가 속임수를 썼다는 걸 증명할 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속이지 않은 걸로 결론짓는다면 비합리적일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어쩌다보니 유기 생명체들이 생겨난 어느 우주에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우주의 미조정이 어떤 식으로 ‘디자인’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결론짓는 건 비합리적일 것이다. 어떤 창조주가 없이도 유기 생명체가 생길 수는 있었겠지만, 너무나도 희박한 그 가능성이 진실인 것처럼 믿으며 산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걸까?
<“살아있는 신”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티머시 켈러 지음, 베가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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