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는 재테크의 해방구인가
펀드의 신화, 펀드의 눈물: 펀드는 이제 시골의 노인들도 아는 현대인의 필수 금융 상품이 되었다. 펀드 하나 갖고 있지 않으면 미개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금융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조금도 갖추지 못한 사람조차도 펀드로 수십 퍼센트의 수익을 거뒀다고 거드름을 피운다. 한켠에서는 금융에 대한 화려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마이너스 수익률로 잔뜩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쯤 되면 펀드는 생활필수품을 넘어 사람들의 정서까지도 좌우하는 금융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펀드가 나온 환경을 보면 우리네 아련한 추억과 연결된다. 바로 단군 이래 최대 치욕이라는 IMF 신탁 체제다. 당시의 모습은 우리 국민에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대한민국은 이를 통해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정부의 국가 운영 체제도 그렇지만 국민이 ‘경제’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의식에도 근본적인 틀을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돈이 흘러가는 물꼬가 바뀌었고 자신의 지갑을 채우고 관리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종전에는 부의 축적 수단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재테크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변종 축적 수단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펀드’다. 지식인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펀드가 어느새 시골 아낙네의 금융계좌에까지 침투했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는 펀드대국이 되었다. 펀드에 웃고, 펀드에 우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펀드는 1970년 5월 20일, 당시 한국투자개발공사가 설정한 ‘안정 성장 증권 투자신탁 1월호’이다. 이 펀드는 《기네스북》에 우리나라 최초의 펀드로 등재되기도 했다. 40년을 넘긴 지금에도 수백억 원의 설정 잔액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5년 동안의 수익률도 100%를 넘나들고 있다. 대한민국 펀드의 산증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펀드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람에게는 결코 친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환란 직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낯익은 대형 금융사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손실을 주는 상품에는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쳐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식으로 쪽박을 차는 위험을 피하면서도, 전문가의 손을 빌려 주식과 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의 매력에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제3의 길’이라는 환상을 심어 주었다. 신흥 국가에 투자하는 상품들은 100%에 가까운 꿈의 수익률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펀드 판매사들의 감언이설에 따라 대한민국에는 ‘펀드 광풍’, ‘묻지마 펀드 열풍’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며 펀드의 유행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급기야 IMF위기의 종료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던 1998년 12월에는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건 최초의 뮤추얼 펀드를 판매하기에 이른다. 투자자가 주인이 되는 이 낯선 간접 투자 상품은 발매 2시간 만에 500억 원의 한도를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대한민국 펀드의 신화를 만들어 낸 ‘바이코리아 펀드’와 ‘인사이트 펀드’에 이르기까지, 펀드는 마침내 투자의 으뜸이자 기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펀드 시장은 2003년 이후 시중의 돈을 급격하게 빨아들이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2007년 말 300조원에 육박하더니 이듬해에는 361조원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기관투자자 중심이었던 펀드에 ‘묻지마 펀드’의 열풍까지, 정보도 없는 개인들이 너도나도 뛰어드는 바람에 전체 투자액의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투자 대상도 주식과 채권, 부동산에서 선박, 영화, 한우, 그림, 고철, 심지어 와인과 물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굴릴 구석만 보이면 펀드라는 이름 아래 상품이 만들어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펀드 광풍에 휩쓸리면서, 그리고 펀드가 품어 내는 수익률이 은행의 몇 배에 이르게 되면서 사람들은 ‘펀드의 신화’가 영원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하지만 신기루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펀드에 취한 대한민국 국민을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투자액의 60%에 이르는 손실률 속에서, 국민의 웃음은 울음과 탄식으로 변했다. 결혼을 몇 달 앞둔 커플들은 결혼자금을 날려 결혼날짜를 미뤘고, 곳곳에서 이혼하는 부부까지 생겼다. 이렇게 펀드의 함정에 빠졌던 국민들은 속절없이 밀려든 위기의 구렁텅이 속에서 손도 쓰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가히 ‘펀드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금융위기는 펀드가 가진 함정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더듬어 볼 기회를 안겨 주었다. 묻지마 열풍에 편승해 뜨거운 맛을 보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른바 조금은 경제를 안다는 지식인들에게도 펀드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소중한 교훈을 체험하게 한 것이다.<“은행의 거짓말”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영기, 김영필 지음,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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