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_ 객체 지향, 타자가 중심에 놓이기 시작할 때
객체 지향: 타자가 기술로 비집고 들어올 때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의 관계는 인문학의 대표적인 학문인 철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더 나아가 ‘세상의 본질’에 대한 문제로도 연관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객체 지향은 객체가 아무것도 몰라도 모든 정보를 통해 객체가 원하는 바를 단숨에 해결해 준다는 강점이 있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이 ‘직관적인 디자인’이라고 말해지는 이유도 잡스의 ‘객체지향 시스템’이 정점에 오른 형태로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객체 지향 시스템에 관한 단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리모컨의 형태이다. 잡스는 2005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40개의 버튼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리모컨과 단 6개의 버튼이 있는 애플 리모컨을 사진을 통해 비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리모컨은 40개의 버튼이 울퉁불퉁하게 달려 있어 거북이 등껍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애들의 리모컨은 심플하고 손에 착 감기는 수려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우리는 애플의 리모컨에 ‘객체 지향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신을 위해 40개의 버튼을 만들어 놓았다. 당신은 여기에서 ‘자유롭게’ 40개의 버튼을 조작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이게 ‘자유로운’ 일일까. 리모컨을 아주 잘 아는 전문가에게는 무한한 자유를 선사할지 모르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결코 객체 지향적이지 못하다. 정작 40개의 버튼이 달린 리모컨을 받아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신은 짜증부터 날 것이다. 반면에 6개의 버튼만 있는 애플의 리모컨에는 ‘당신은 몰라도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객체 지향적 사고방식이 배어 있다.
“아이튠즈는 여러분의 모든 미디어를 아이폰에 동기화시켜 줄 것이다. 여러분들의 음악, 오디오북, 팟캐스트, 영화, TV쇼, 뮤직 비디오 등의 모든 미디어들을 말이다. …… 이뿐만이 아니다. 사진들, 노트들, 웹브라우저에서 가져온 북마크들, 이메일 계정들, 전체 이메일 구성 모든 데이터들이 완전히 자동으로 여러분의 아이폰으로 옮겨지게 된다. 정말 멋진 일이다. …… 충전하고 동기화하라.”
- 〈Mac World Expo 기조연설〉(2007)
동기화에 관한 한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잡스의 말처럼 충전하고, 동기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최근 잡스가 발표한 ‘아이클라우드’에 관한 내용이다. 심지어 여기에서는 ‘동기화’라는 개념 자체도 사라져 버린다. 이제는 ‘객체 지향’이 아니라 ‘객체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모양새다.
통제와 자율성에 대한 모순의 해결
회사는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이 좋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관리되고 체계화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통제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다. 자신들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일을 할 뿐이고, 날짜가 되면 월급을 받을 뿐이다. 다음 날에도 시키는 일만 하니 창조에 대한 열망도 없고, 새로움에 대한 갈망도 없어진다. 통제와 자율, 창의성은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며 기업에게 ‘난제’를 부여한다. 이 어려운 난제를 해결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이다. 그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완벽하게 통제를 한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창의성을 이끌어 낸다. 어려운 문제지만 잡스는 해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통제와 창의성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 1 → 모든 구성원은 모든 구성원을 만날 수 있다.
앞장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잡스는 최하위와 수시로 접촉한다. 중간층을 체크하고 조직을 단순화하는 목적 이외에도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자신의 상관을 건너뛰어 더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애플은 다르다. 잡스는 작업 현장에 가서 직접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준다. 애플은 기업의 권위적인 구조 자체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이렇게 만났을 때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개 직접적이고 업무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잡스는 직원을 만나 간단하게 이야기를 들은 후 다음의 둘 중 하나로 피드백을 준다. “음, 괜찮군. 계속해 봐.” “됐어. 그런 멍청한 짓은 그만둬.”
한국 기업이라면 어떨까. CEO는 어쩌다 부하에게 ‘어때, 할 만해?’라고 웃으며 말해 주고, 부하는 ‘예, 괜찮습니다’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비록 최상부와 최하위가 접촉을 한다고 하더라도 업무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는 거의 힘들다. 중간층의 두꺼운 벽이 무너진 곳에서 자율과 창의성이 꽃핀다. 답답한 상사 때문에 일을 질척거릴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최상위에서 단호하고 명쾌하게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통제와 창의성의 모순’을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통제와 창의성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 2 → 궁극의 책임자를 ‘방점’으로 찍어 놓는다
애플의 회사 구조에는 일반 회사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다른 명칭이 있다. 그것은 바로 DRI라는 것이다. ‘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의 약자로,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애플에서 하는 모든 회의록에서 DRI가 있다. 누가 무엇을 맡고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종이 몇 장으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 흔히 애플 직원들은 협업이 필요할 때 이렇게 묻곤 한다. “거기 DRI가 누구죠?”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다. 책임 관계가 엮이거나 분산되고, 때로는 여러 가지 형태로 귀속되는 일은 전혀 없다. 딱 한 명이 책임을 지면 창의성이 떨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일이 잘못되었다고 팀 단위로 혼이 난다든지, 팀장이 상사에게 혼쭐이 난 후 부하에게 화풀이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개개인의 책임으로 발가벗겨진 상태에서는 일을 대강대강 한다거나, 창의적이지 못한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 DRI는 뭉뚱그려져 있는 애매한 책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며, 정확하게 성과가 평가되고 배분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통제와 함께 충분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가 가능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자신을 통제하는 리더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리더가 진정한 의미에서 ‘보스’가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진정한 보스의 관리와 통제는 직원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서 세세하게 결정해 주거나, 그들의 모든 불편을 사소하게라도 해결해 주는 방식이 진정한 보스의 역할이다. 자신들이 최고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의미이다. 애플 직원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고, 굳이 회사에 건의하지 않아도 최고의 건강식을 회사에서 먹을 수 있다.진정한 보스는 직원들의 행복과 즐거움까지 통제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통제라면 그 누군들 원하지 않을 것인가.<“CEO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자 스티브 잡스를 말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이남훈 지음, 팬덤북스>
<11월 초 팔공산 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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