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나를 지키는 처세술

[중산] 2011. 11. 2. 12:45

 

공성신퇴功成身退_ 나를 지키는 처세술

 

 

공을 이룬 뒤 초야로 물러나다_ 범려와 구천

노자가 이르기를 공을 이룬 뒤에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라고 했다. 이 말이 고대 중국 정치가들에게 권모술의 하나로 해석되었다면, 월왕 구천을 보좌한 범려는 최초의 실천인 중 하나였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한 뒤로 경제, 정치, 군사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그리하여 월왕 구천은 주천자의 승인을 얻어 패자가 되었고, 공신 범려를 상장군에 임명했다. 구천이 승리를 거두고 오나라의 조당에 앉아 있을 때였다. 오나라의 멸망에 적잖은 공을 세운 간신 백비가 상을 기대하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구천은 그가 오왕의 대신이었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백비가 화가 나서 물러가자 구천은 화근을 제거한다는 핑계로 그를 뒤쫓아가 죽였다.

 

 

월나라로 돌아온 후, 구천은 대신들을 청해 축하연을 베풀었다. 대신들은 저마다 하례를 올리고 월왕의 공로와 덕을 칭송했는데, 구천의 표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범려는 속으로 구천과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나눌 수 없구나!라고 탄식했다. 오나라도 멸하고 원한도 다 갚은 이상 월왕에게 모신들은 불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범려는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 화를 입을지 모르니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범려는 떠나기에 앞서 구천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자고로 군주가 치욕을 겪으면 신하는 죽음으로써 충효를 다해야 마땅하다고 들었습니다. 소신이 지난날 대왕께서 회계에서 치욕을 당하셨는데도 죽지 못한 이유는 한때의 수모를 참아 월나라의 패업을 이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치욕도 씻었으니 만일 과거 소신의 죄를 사면해주신다면 이제 그만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로 돌아갈까 하옵니다. 구천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만류했다. 그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오늘이 있을 수 없었소. 부디 내 곁에 남아 함께 나라를 다스립시다.

 

 

이미 마음을 굳힌 범려가 극구 사양하자, 급기야 구천은 위협까지 했다. 계속 고집을 피운다면 그대 가족의 목숨이 성치 못할 것이오. 하지만 범려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말했다. 대왕께서 뜻한 바대로 하소서. 소신은 소신이 원하는 길을 가겠나이다. 범려는 약간의 재물을 가지고 가솔들과 함께 월나라를 떠났다. 사실 구천은 유능한 공신이 제 발로 떠나주는 것이 통쾌하기만 했다. 그래서 범려를 막지도 잡아오지도 않았고, 대신 인심을 얻기 위해 그에게 봉읍을 하사했다.

 

 

범려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제나라에 은거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문종에서 편지를 보냈다. 잡을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화살을 사라지고, 토끼를 다 잡고나면 사냥개는 잡아먹는 법이오. 뜻인즉슨 이미 목적을 다 이룬 이상 구천이 공신들을 가만둘 리 없으니 어서 피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종은 여전히 범려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그는 단지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아가지 않는 소극적인 방안을 택했다. 더 이상 구천과 국사를 논하지 않으면 위험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토사구팽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며칠 후 몸소 병문안을 온 구천이 검 한 자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대는 오래 전에 내게 일곱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나는 그 중 세 가지 계책만을 이용해 오나라를 멸하고 패자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네 가지는 어디에 쓸 것인가? 구천이 돌아간 후 검을 살펴보니 바로 옛날 오왕이 오자서에게 자살을 명하며 내렸던 속루검이었다. 문종은 그제야 범려의 말을 떠올리며 가슴을 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결국 구천의 명에 따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중용中庸을 지향하고, 당장의 근심이 없더라도 미래의 근심은 걱정해야 함을 강조하고, 공업을 매우 중시한 것과 더불어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때문에 각 개인으로서는 진퇴를 결정하는 일이 어려운 과제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물러섬은 결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보다 먼 미래를 위한 재충전을 의미한다. 위정자는 사회적인 평가에 신경 쓰기에 앞서 공적을 세운 뒤에는 한 걸음 물러서고, 일이 잘 될 때 자성의 시간을 가지고 먼 앞날에 있을지 모를 나쁜 결과를 예상해보는 슬기로움을 지녀야 한다.<“권력의 숨은 법칙”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리정 지음, 역자 이은희님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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