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에서 문학으로
발자크는 아버지 베르나르 프랑수아와 그보다 30년 이상이나 어린 어머니 샤로트 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대로 군계통이나 관청에서 의료품을 납품했던 파리의 상가 출신이었다. 18세기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낙천적인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신경이 예민하여 잔소리꾼이고 몽상적인 영혼의 소유자였다. 발자크는 이 판이한 두 성격을 이어받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으며, 작품에 다양성을 불어넣게 한 첫째 조건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당시 작가들의 대부분이 귀족 아니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던 집안 출신이었던 데 반해, 발자크는 평민 출신이었다. 그가 부르주아 계급에 대해 표시하는 숨은 공감과 노골적인 경멸, 귀족 계급에 나타내는 야유와 반감이 뒤섞인 동경은 원래 그런 사실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발자크는 태어나자마자 남의 손에서 자랐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발자크는 평생 어머니에게 반감을 품었으며 『골짜기의 백합』 같은 작품에서는 그 불만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는 여덟 살 때부터 오라토리오 회의 기숙학교를 다녔는데, 6년 동안 거의 한 번도 집에 가지 못했고 그 사이 어머니는 겨우 두 번 방문했을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발자크는 수업에는 흥미를 갖지 않고, 독서에만 열중했다. 때론 지나친 상상력 때문에 괴로워하는 조숙한 학생이었다.
중등 교육을 마친 발자크는 대학 법학부에 적을 두고 문학부의 강의를 청강했다. 법학부에서 법률을 공부하던 발자크는 20세가 되던 해에 갑작스럽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 선언한다. 강력히 반대하던 발자크의 부모들은 조건부로 2년간의 여유를 주었고, 발자크는 『크롬웰』이라는 운문 5막의 비극을 10개월간 소비해서 완성했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또한 작품의 감정을 의뢰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앙드류는 ‘뭐든지 좋으니 문학 이외의 일’을 시키도록 하라고 권유했다. 발자크는 희곡에서 소설로 장르를 선회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나간다.
베르니 부인과의 연애
한편 이 시기에 발자크의 사생활에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생애뿐 아니라 작품에도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여성인 베르니 부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1822년,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45세에 달했던 베르니 부인은 발자크 일가가 아버지의 퇴직을 계기로 새로운 집을 마련했던, 파리 근교 빌벨리지에 사는 사법관의 아내였다. 그녀는 베르니 백작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아홉이나 낳았으나 그 결혼 생활은 불행한 결혼이었던 것 같다.
발자크는 젊은이다운 뜨거운 정열을 그녀에게 퍼부었다. 부인은 발자크의 사랑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의 취미를 연마시키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때로는 그를 위로하는 한편 뒤로는 발자크의 사업에 금전적인 원조까지 해주었다. 또 그때까지 그녀의 인생 편력은 『결혼의 생리』에 수록된 갖가지의 이야깃거리를 발자크에게 제공했고, 『30대 여인』이나 『골짜기의 백합』에 묘사되는 결혼 생활에서 불행만 맛보는 여성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를 제시해주었다.
6만 프랑의 빚
발자크는 베르니 부인과 근친에게서 자금을 융통해 스스로 서문을 써서 몰리에르 전집과 라 퐁텐느 전집을 출판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자금이 막혔고, 그 여파를 만회하기 위해 인쇄업을 개시했다. 그런데 이 인쇄업마저 잘 안되자, 다음 해에는 다시 활자주조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마 발자크는 출판업이 잘 안되는 것은 좋은 인쇄소가 없기 때문이며, 인쇄업이 안되는 것은 좋은 활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일관된 경영에도 불구하고 1828년에는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발자크는 6만 프랑여의 부채를 지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일생을 통해 붙어다니게 되는 부채의 시초가 되었다. 돈의 힘을 알게 된 이 괴로운 시기를 통해 그는 보다 현실적으로 사회를 보는 눈을 키워간다.
발자크는 이리하여 다시 문학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미 자기에게는 펜 하나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인간 희극』의 체계
『인간 희극』은 1789년 대혁명으로부터 1848년 혁명까지 프랑스 사회를 그린 거대한 ‘벽화’, ‘도서관’, ‘박물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왕정복고 시절(1814-1830)과 제2제정시대(1830-1848), 곧 발자크가 몸소 체험했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발자크는 동물학자들이 동물의 기원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구성의 통일’이라는 원리를 이용해서, 동물을 분류하듯 인간 사회를 엄격히 분류해나간다. 그리고 독립된 작품들을 『인간 희극』이라는 큰 틀로 묶어놓았다. 큰 틀에 묶여 있지만 동시에 작품 하나하나는 이 덩어리의 일부로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1833년쯤, 발자크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그러나 「풍속 연구」,「철학적 연구」,「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던 원대한 시도는 결국 91편만을 완성하는 데 그쳤다.
라스티냐크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온 장래성 있는 청년이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또 다른 삶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그를 사교계로 유혹한다. 먼 친척인 보세앙 부인의 후원을 등에 업고 라스티냐크는 사교계에 진출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처음 만난 레스코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정부가 있었고, 게다가 그녀는 하숙집의 옆방에 기거하고 있는 고리오 영감의 딸이었다.
라스티냐크는 레스코 부인에 대한 사랑을 그녀의 동생인 뉘겡느 부인에게로 옮겨가고, 둘 사이를 짐작한 고리오 영감의 도움으로 그들의 사랑은 커간다. 그러나 그의 출세욕을 이미 읽고 있던 보트랭은 그에게 백만장자 처녀를 소개시켜주겠노라는 엄청난 제안을 하게 되는데....(요약)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고리오 영감 시대적인 상황을 이용해서 벼락부자가 되나 두 딸의 지참금으로 모두 소비한다. 결국 무일푼이
되고 지나친 부성애로 죽음에 이른다. 하숙집에서는 항상 놀림감이 된다.
라스티냐크 법률을 공부해서 출세하려고 파리에 온 법대생. 그러나 파리의 생활은 그를 사교계로 이끌고,
그는 사교계의 여자들 통해서 벼락 출세를 꿈꾼다.
레스코 부인 고리오 영감의 맏딸. 라스티냐크가 처음 사랑에 빠진 인물. 자신의 정부를 위해서 헌신하다 결국은
남편과 정부 둘 다에게 버림받는다.
뉘겡느 부인 고리오 영감의 둘째딸. 라스티냐크를 사랑하나 그 사랑의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귀족 생활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사치와 허영으로 가득 차 있다.
보트렝 탈옥수면서 하숙집에 숨어 사는 사십대의 인물이다. 그는 적당한 매너를 갖추고 있었고, 또한 부르
주아 사회에 대해 냉소적이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으며, 라스티냐크의 도덕성에 미끼를 던진다.
보케르 부인 고급하숙집 ‘보케르 집’의 여주인. 돈밖에 모르는 몰인정한 과부.
하숙집 사람들
과부인 보케르 부인은 파리의 생마르소 거리와 라틴 구역 사이에 있는 뇌브 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서 사십 년 전부터 고급 하숙집을 경영해왔다. ‘보케르 집’으로 알려진 이 하숙집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하숙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무렵, 이 하숙집에는 일곱 사람이 있었다. 이층에는 이 집에서 가장 좋은 방 두 개가 있는데 보케르 부인은 그 가운데서 초라한 방을 썼다. 다른 방에는 프랑스 공화국 육군 출납지불관의 미망인인 쿠튀르 부인이 빅토린 타유페르라는 젊은 여인과 함께 기거하면서 어머니 노릇을 했다. 빅토린은 엄청난 부자인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불쌍한 처녀였다. 3층에 있는 두 방은 푸아레 노인과 마흔쯤 된 듯한, 검은 가발을 쓰고 구레나룻을 염색한 전직 도매상 보트랭이, 방이 네 개 있는 4층에는 미쇼노라는 노처녀와 이탈리아식 국수와 전분을 만드는 전직 제면업자, 고리오 영감이 살고 있었다. 나머지 두 방은 고리오 영감이나 미쇼노처럼 숙식비로 매달 45프랑밖에 낼 수 없는 철새같이 불쌍한 학생들이 썼다.
보케르 부인은 그런 학생들이 나타나는 것을 떨떠름하게 여겼고, 더 좋은 손님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만 그들을 받았는데, 이는 학생들이 빵을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법학 공부를 하려고 앙굴렘에서 파리로 올라온 으젠 드 라스티냐크는 이 두 방 가운데 하나를 썼는데, 원래 대식구인 본가에서는 그에게 일 년에 1200프랑씩을 부쳐주느라고 온갖 고생을 해야만 했다. 4층 위에는 빨래를 널어두는 헛간과 심부름하는 아이 크리스토프와 뚱뚱한 식모 실비가 쓰는 다락방 두 개가 있었다. 기숙하는 일곱 사람 말고도 보케르 부인에게는 해마다 평균해서 여덟 명의 법대생 또는 의대생들과 그 부근에 살면서 저녁만 먹기로 계약된 두세 명의 단골 손님이 있었다. 식당은 열 여덟 명을 수용할 수 있었지만, 저녁식사 때는 스무 명까지도 받았다.
보통 이러한 집단은 모든 사회의 요소들을 작은 규모로나마 나타내게 마련이고 또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숙집 안에서 고리오 영감은 늘 놀림감이었다. 그가 이 하숙집에 자리를 잡은 것은 4년 전쯤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에 계속 조금씩 싼 방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하숙집 사람들은 그가 문란한 여자 관계로 돈을 다 날렸다고 생각했다. 하숙집 주인 보케르 부인은 천문학자같이 정확하게 하숙비 액수에 비례하는 정성과 존경을 그들에게 보여주었고, 이런 의미에서 보트랭은 그녀의 가장 좋은 고객이었다. 라스티냐크는 열심히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곧 사람들과 교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이끌렸다. 그는 사회 생활을 하는 데에 여성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주목했고, 여성 후견인들을 정복하기 위해 갑자기 사교계에 나갈 생각을 했다. 마침내 라스티냐크는 백모를 통해 파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귀부인 중 한 명인 보세앙 자작 부인을 소개받았다.
고리오 영감의 비밀
며칠 후 라스티냐크는 보세앙 부인의 무도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새벽 두 시에 돌아왔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무도회에 매혹되었고, 특히 그곳에서 만난 레스코 백작부인에게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던 중에, 라스티냐크는 옆방인 고리오 영감의 방에서 불빛이 새나오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 열쇠 구멍을 통해서 방을 들여다보았다. 영감은 방에서 은쟁반 몇 개를 녹여 몽둥이 모양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너무 슬퍼보였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라스티냐크는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다음날 보트랭은 하숙집 사람들에게 고리오 영감이 시내의 금은세공 상점에서 은그릇을 팔더라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아마도 영감이 정부에게 줄 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라스티냐크는 어젯밤 자신이 경험한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인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레스코 백작부인은 고리오 영감의 정부 중의 한 명이라고 입을 모았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넋이 나간 라스티냐크는 다음날로 백작 부인을 찾아간다. 라스티냐크는 거기에서 엄청난 사실들을 발견했다. 살롱으로 들어가다가 그는 레스코 부인과 고리오 영감의 목소리, 입맞추는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거기에다 살롱에는 이미 다른 한 명의 남자가 백작부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그녀의 정부 막심 드 트라이유였다. 라스티냐크는 강한 경쟁심을 느꼈지만, 그는 이미 레스코 부인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레스코 백작이 들어오자 분위기가 어색해졌고, 라스티냐크는 백작과 함께 자신의 집안 내력을 얘기하고 있었다. 고리오 영감의 존재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던 라스티냐크는 백작에게 그에 관해서 물었는데 그 반응은 아주 냉담한 것이었다. 얼마나 매몰차던지 ‘고리오 영감’ 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그는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화가 난 라스티냐크는 마차를 잡아타고는 보세앙 저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보세앙 자작부인도 레스코 부인과 마찬가지로 정부 다주다 후작과 같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슬퍼한다. 그 당시 다주다 후작은 보세앙 부인을 떠나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스티냐크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만족해하면서 그녀의 집을 나선다. 라스티냐크는 사촌누이뻘인 보세앙 부인에게 사교계 진출에 필요한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하면서 오늘 일어났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보세앙 부인은 라스티냐크에게 엄청난 사실을 알려준다. 라스티냐크의 짐작과는 달리, 고리오 영감은 레스코 백작부인의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보세앙 부인은 랑제 공작부인과 함께 고리오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라스티냐크는 보세앙 부인의 원조를 약속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밝혔고, 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칭송했다. 식사를 마친 후 라스티냐크는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위해서 모아둔 돈을 보내달라고 썼다. 다음날 그는 성공을 확신하면서 편지를 보냈다.
며칠 동안 라스티냐크는 레스코 백작부인을 찾아갔지만 누구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제 라스티냐크는 공부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사교계로의 진출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는 고리오 영감의 또 다른 딸 뉘싱겐 부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고리오 영감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조사했다.
고리오 영감은 대혁명 이후 급부상한 수완 좋은 사업가였다. 그는 열심히 돈을 긁어모았고 극진히 사랑했던 아내와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나 결혼한 지 7년 후 불행하게도 아내는 죽었고, 그러자 아내에 대한 사랑은 두 딸에게로 옮아갔다. 그는 끔찍이 두 딸을 아꼈고, 결국 자신의 전 재산을 둘로 나누어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 딸들을 사교계 한복판에 자리잡게 했다. 그러나 두 사위들은 장사꾼인 고리오 영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일도 그만두었을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냉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에는 보케르 하숙집에 칩거하게 된 것이다.
사교계에 입문
12월 첫주가 끝날 무렵 라스티냐크는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하나는 어머니의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누이의 것이었다. 편지를 보자 가난한 집안이 떠올랐고, 그래서 마치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판결문을 대하듯 긴장하며 편지를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열렬한 후원자가 되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집안에 있는 패물을 팔고, 몰래 숨겨두었던 돈을 보내주겠다고 적었다. 라스티냐크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전송된 돈이 하숙집에 도착하던 날, 하숙인들은 그의 어머니를 대단히 칭송한다. 그러나 단 한사람 보트랭만은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냉소에 찬 말을 던진다.
“그렇지, 어머니는 피를 짜냈겠지. 이제 자네는 광대놀음을 할 수 있게 됐군. 사교계에 나가서 지참금을 낚시질하고 머리에 복숭아꽃을 꽃은 백작 부인들과 춤도 추고 말야......” 사실 라스티냐크가 보세앙 부인 댁에 갔다온 날부터 보트랭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고, 그 이후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트랭은 계속 라스티냐크의 화를 돋워서 싸움이라도 할 듯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자 그는 냉철하고 냉소적인 달변으로 엄청난 제안을 한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실패와 라스티냐크의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이미 보트랭은 라스티냐크라는 젊은이에 대해, 그리고 그의 가정형편에 대해서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특히 그가 이미 사교계에 대한 동경과 벼락 출세에 대한 야망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트랭의 제안은 한마디로 라스티냐크에게 백만 프랑의 지참금을 가진 아가씨를 소개해줄 테니, 그 대가로 이십만 프랑을 달라는 것이었다. 보트랭은 지금 같은 하숙집에 있는 빅토린 양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보트랭은 빅토린이 라스티냐크를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빅토린에게는 수백만 프랑을 상속받은 오빠가 있었다. 즉 보트랭은 그 오빠가 죽으면 그 재산이 빅토린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엄청난 액수의 지참금에 흥미가 당겼던 라스티냐크는 이내 양심과 도덕에 따라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보트랭과 헤어져 하숙집으로 들어오는 라스티냐크는 자신의 속마음을 단숨에 알아채버린 그가 섬뜩하다.
라스티냐크는 식구들이 보내준 돈으로 해 입은 옷가지들을 입어보았다. 그때 고리오 영감이 그의 방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둘째딸인 뉘싱겐 부인 얘기를 꺼냈다. 고리오 영감은 단지 딸 소식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녀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에서 라스티냐크에게 모든 비밀을 알려주었다. 이제 라스티냐크는 사교계 진출을 위한 또 한 명의 후원자를 얻은 셈이다.
라스티냐크는 새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여러 여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튈르리 공원을 산책한 후 보세앙 부인의 집으로 향했다. 뜻하지 않게 저녁 식사를 함께한 그는 오페라 극장에도 부인과 함께 간다. 극장에서 그는 고리오 영감의 딸 뉘싱겐 부인을 만나고 또 다시 사랑에 빠져버린다. 보세앙 부인의 정부인 다주다 후작의 소개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과 인사를 나누고, 서툴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친다. 벌써 라스티냐크는 보세앙 부인과 함께한 오페라 공연에서 사교계의 몇 가지 기술을 익혔다.
하숙집에 돌아온 라스티냐크는 오늘 자신이 만난 뉘싱겐 부인의 얘기를 고리오 영감에게 소상하게 해주었다. 영감은 너무도 행복하게 그의 얘기를 들었고, 라스티냐크는 딸들의 화려한 모습과는 대조적인 방에서 부성애에 탄복하며 고리오 영감을 즐겁게 해준다. 어느덧 그들 사이에는 마치 친구와 같은 우정이 싹트고 있었다.
다음날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에게 뉘싱겐 부인의 편지를 전했다. 그녀는 그를 토요일에 있을 음악회에 초대했고, 라스티냐크는 호기심에 끌려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만일 부인이 그를 경멸했다면, 분명 정열에 이끌려서 갔을 것이다. 뉘싱겐 집에서의 식사 후, 그들은 마차를 타고 팔레 르와얄에 있는 도박장으로 간다. 라스티냐크에게서 사랑을 확인한 그녀는 백 프랑을 주면서 도박을 해서 돈을 따든 잃든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다. 어리둥절해진 그는 방법도 모르면서 도박장으로 갔고, 운 좋게도 7천 프랑을 땄다. 돌아온 라스티냐크에게 뉘싱겐 부인은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남편에서 돈 한푼 못 받고 살고 있으며 결혼 생활 역시 극히 불행하다는 것, 그리고 사교계에서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등......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고 싶어도 돈 문제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거기에다 그녀에게는 드 마르세라는 정부가 있었으므로 라스티냐크가 도박으로 벌어들인 돈 중 6천 프랑은 그에게 보내고, 나머지 천 프랑을 라스티냐크에게 주었다. 이 사실에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라스티냐크는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집으로 돌아온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방으로 들어가 딸의 얘기를 전했다. 고리오 영감은 딸의 불행에 슬퍼했고 라스티냐크는 그녀에게서 받은 돈 천 프랑을 영감에게 주었다.
라스티냐크는 점점 더 확고하게 파리 사교계의 한복판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트랭은 그의 성공을 비아냥거렸다. 라스티냐크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고, 급기야는 많은 빚을 지기까지 했다. 반복되는 사교계의 일상에서 라스티냐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뉘싱겐 부인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며 조금은 회의를 느낀다. 그는 같은 하숙집의 빅토린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보트랭에 제시했던 엄청난 제안에 대해서......
눈치빠른 보트랭은 그의 마음을 읽고 또 다시 그를 유혹하려 한다. 어려운 경제란에 시달리는 라스티냐크에게 보트랭은 기꺼이 돈을 빌려주면서 이전의 제안에 대해서, 그리고 돈을 벌게 되면 펼칠 수 있는 자신의 꿈에 대해서 얘기한다. 결국 라스티냐크는 그에게 돈을 빌리지만 고집스럽게도 그 제안을 뿌리친다. 그는 빌린 돈으로 다시 놀이를 해서 돈을 벌었고 보트랭의 돈을 바로 갚을 수 있었다.
벗겨진 가면
푸아레와 미쇼노는 식물원의 호젓한 길가에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형사 공뒤로였으는데, 공뒤로는 보케르 하숙집에 사는 보트랭이 툴롱 감옥에 ‘불사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탈옥수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그를 잡기 위해서 그들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트랭은 죄수들에게서 돈을 받고, 투자하고, 보관해왔는데 실제로 그 액수는 엄청난 것이었다. 형사는 보트랭의 죄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었고, 그를 체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도움을 청했다. 형사는 보트랭에게 정신을 잃게 만드는 약을 먹인 후, 그가 졸도해 있는 틈을 타서 어깨에 낙인찍힌 문자가 있는지 확인해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그 대가로 2천 프랑의 돈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쇼노는 선뜻 제안에 답하지 않았는데, 만약 보트랭이 진짜 ‘불사신’이라면 그와 흥정하는 편이 더 큰 액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하숙집에 돌아와보니, 라스티냐크와 빅토린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라스티냐크는 알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빅토린은 사랑의 행복감에 빠져 있었다. 이때 보트랭이 나타나서는 빅토린의 오빠를 죽일 기회를 잡았다는 말을 라스티냐크에게 전한다. 혼란스러워진 라스티냐크에게 몹시 흥분해서 돌아온 고리오 영감이 나타나서는 그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간다. 고리오 영감은 며칠 동안 자신의 딸과 함께 라스티냐크가 살 집을 구하러 다닐 것이다. 그는 그 집에서 라스티냐크와 자신의 딸이 함께 살고, 자신은 위층에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라스티냐크에게 딸이 준 라스티냐크 가문의 문장이 금으로 찍힌 시계를 전해주었다. 고리오 영감은 이 모든 것에 몹시 흥분해 있었고, 눈물을 흘리며 라스티냐크에게 자신의 부성애를 호소했다.
라스티냐크는 사랑에 대한 확신은 얻었지만 조금 전 보트랭에게 들은 말 때문에 혼란스러웠고, 빅토린 오빠의 죽음은 피하게 하고 싶었다. 그날 밤 보트랭은 일부러 하숙집에 포도주 파티를 열었고, 하숙집 사람들은 다들 술에 취하기 시작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트랭은 또 다시 라스티냐크의 귀에 속삭였다. 빅토린 오빠가 죽으면 그녀에게 1만 5천 프랑의 연금이 돌아갈 것이며, 그녀의 어머니 또한 30만 이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술에 취한 라스티냐크는 이내 잠이 들었고,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빅토린에게 보트랭은 라스티냐크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면서 만족해한다. 사실 이날의 파티는 보트랭이 주도한 것이었고, 그는 포도주에 약간의 마취제를 섞었었다. 반쯤 포도주에 취해 있던 의대생 비앙숑은 미쇼노에게 ‘불사신’에 대해서 물어보는 걸 잊어버렸고, 그녀는 이미 그를 체포하는 데 협조하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아침, 하숙집 사람들은 술 때문에 늦게까지 일어날 줄 몰랐다. 라스티냐크는 뉘겡느 부인과의 약속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엄청난 사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보다 먼저 일어난 미쇼노는 보트랭의 잔에 물약을 타놓았고, 또한 길에서는 마차소리와 함께 빅토린의 오빠 프레데릭의 죽음이 전해졌다. 이제 빅토린이 백만장자가 된다는 말은 현실이 되었고, 이 사실에 보케르 부인과 보트랭은 라스티냐크를 부추긴다.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고리오 영감에게, 그리고 다른 하숙집 사람들에게 그는 빅토린과 결코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밝힌다. 보트랭은 당황하는 라스티냐크를 보며 웃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때 물약의 효과가 나타났고 그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다들 의사를 부르고 수선을 떠는 동안 미쇼노와 푸아레는 어깨에 있는 수감인 낙인을 찾아낸다. 한편 뉘겡느 부인에게로 향하던 라스티냐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고리오 영감을 떠올리며 자신의 사랑을 확신한다. 결국 보트랭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붙잡혀간다. 순순히 체포에 응하면서도 그는 강력하게 사회를 비난하고, 자신의 밀고자를 찾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보트랭이 떠나고 하숙집은 떠들썩해졌다. 평상시 그의 매너에 반해 있던 몇몇은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밀고한 미쇼노를 쫓아내자고 소리친다. 결국 미쇼노는 하숙집에서 쫓겨났고 그녀와 친하다는 이유로 푸아레도 같이 떠난다.
바로 이때 한 심부름꾼이 보케르 부인에게 편지를 전하는데, 그 내용은 빅토린과 쿠튀르 부인이 그 집을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하루 사이에 하숙집에는 방 네 개가 비어버렸고 다섯 명의 하숙인이 떠났다. 바로 그때 고리오 영감이 마차를 타고 나타나서는 라스티냐크를 태우고 떠난다. 고리오 영감은 그를 위해 마련한 아파트에서 딸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파트에 도착한 라스티냐크는 갑작스러운 사치와 앞으로 펼쳐질 우아한 삶에 만족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아파트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부녀의 설득에 못이겨 그는 그들의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였고, 그들은 마치 한가족처럼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고리오 영감은 모처럼 딸이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신도 행복해했고, 뉘싱겐 부인 즉 델핀 또한 사교계의 새 신사와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했다.
아버지의 죽음
다음날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는 하숙집을 떠나려고 짐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오쯤 마차 한 대가 도착했는데, 바로 뉘싱겐 부인의 마차였다. 고리오 영감은 학교에 출석만 하고 돌아온 라스티냐크를 미처 의식할 새가 없었으므로 라스티냐크는 우연히 두 부녀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뉘싱겐 부인은 남편의 파산을 알리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남편은 새로운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데, 거액의 돈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고리오 영감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딸을 위로하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무척 불안해했다. 그런데 이러한 남편과의 불화에 대해서, 델핀은 이것에는 아버지 탓도 있다고 말해버린다.
두 부녀가 울먹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또 하나의 마차가 하숙집에 도착한다. 이번에는 레스코 부인 아나스타지였다. 라스티냐크는 계속 잠자는 척하면서 이들의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 그녀 또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레스코 부인은 자신의 정부 막심의 부채를 위해 집안 대대로 물려오던 다이아몬드를 몰래 내다판 것이다. 막심은 살아났지만 남편이 모든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녀는 슬퍼했다. 레스코 부인은 남편과 막심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두 딸의 모습을 보며 고리오 영감은 미칠 듯한 괴로움에 사로잡혔다. 두 딸은 고리오 영감을 사이에 두고, 평소 껄끄러운 사이 때문에 작은 말다툼을 벌인다.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고, 당장 아나스타지에게 필요한 1만 2천 프랑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고리오 영감은 무능력함에 절망하면서 머리를 벽에 박으려고 했다. 옆방의 한바탕 소란을 듣다 못한 라스티냐크는 예전에 보트랭에게 서명했던 어음을 교묘하게 고쳐서는 그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라스티냐크의 돌연한 출현은 레스코 부인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의 존재를 몹시 못마땅해했는데, 그녀는 일부러 델핀이 그의 존재를 숨겼다고 생각하며 화를 냈다. 또다시 딸들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이 소란 속에서 고리오 영감은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버렸다. “제발, 얘들아, 너희들이 계속 이러면 나는 죽어버릴 테다!”
하지만 델핀은 아나스타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따졌고 아나스타지는 나가버렸다. 고리오 영감이 더욱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나스타지는 돌아와 동생과 화해하고 라스티냐크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어음에 필요한 고리오 영감의 서명 때문에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서명을 받아 떠나버렸고, 괴로움에 신음하던 고리오 영감도 잠이 들었다. 델핀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라스티냐크는 의대생인 비앙숑에게 그의 상태를 물었다. 고리오 영감은 심각한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니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했다.
저녁 무렵 이탈리아 극장에서 라스티냐크는 델핀을 만나 고리오 영감의 상태를 전했다. 그녀가 충격받지 않도록 설명하는 그에게 그녀는 사랑을 고백하고, 내일 있을 무도회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그들은 고리오 영감이 병석에 누워있는 데도 서로 사랑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다음날 집에 돌아온 라스티냐크에게 보케르 부인은 매정하게도 고리오 영감과 그의 하숙비를 독촉했다. 그런데 그날 고리오 영감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아나스타지를 만나고 돌아와 상태가 더 악화돼버렸다. 아나스타지의 사정을 들은 영감은 돈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팔아서 그녀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는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두 딸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리오 영감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도 철없는 델핀은 무도회장에 가자는 전갈을 보냈다.
라스티냐크는 이 소식을 델핀에게 알리러 가지만, 그녀는 무도회 얘기만 할 뿐 전혀 아버지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날의 무도회는 보세앙 자작부인의 집에서 열리는 아주 성대한 무도회였고, 또한 그녀의 정부였던 다주다 후작의 결혼이 공식적으로 밝혀지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무도회를 끝으로 보세앙 부인은 파리의 사교계를 떠나 노르망디로 갈 예정이었다.
새벽 5시쯤 하숙집으로 돌아와보니, 영감의 병세는 더욱 악화된 상태였다. 의식이 돌아온 고리오 영감은 딸들이 무도회를 즐겼는지에 대해서만 묻는다. 그리고 딸들이 오기만 하면 자기의 병이 씻은 듯이 나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녀들을 기다린다. 라스티냐크는 두 딸에게 고리오 영감의 병세를 설명하고 치료비를 요구하지만 두 곳에서 다 거절당한다. 결국 영감은 딸들의 방문을 체념해버린다. 마치 오래 전부터 두 딸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자신이 딸들에게 해준 것과 딸들이 자신에게 퍼부은 냉대를 말하면서 흥분한다.
라스티냐크는 직접 두 집을 방문하지만, 레스코 백작부인의 집에서도,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뉘싱겐 부인 집에서도 그녀들을 데려올 수 없었다. 오히려 뉘싱겐 부인은 무도회의 피로를 핑계삼고 있었고, 고리오 영감의 병간호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느라 전당포에 시계를 맡긴 것을 탓했다. 결국 고리오 영감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위층에서 고리오 영감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아래층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슬픔하기는커녕 일상적인 모습들을 보인다. 돈밖에 모르는 보케르 부인은 고리오 부인의 머리카락으로 엮은 금 고리까지 탐낸다. 고리오의 장례식에는 라스티냐크와 하숙집의 하인인 크리스토프만이 참석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딸들을 기다렸지만, 그녀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라스티냐크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토프마저 가버렸다.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 꼭대기를 향해 몇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는 센 강의 기슭을 따라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았다. 두 눈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불치병자 병원의 둥근 지붕 사이를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가 그토록 속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사교계가 있었다. 그는 벌들이 윙윙거리는 벌집에서 미리 꿀을 빨아먹은 것 같은 시선을 던지며 우렁차게 말했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사회에 도전하려는 첫 걸음으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의 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고리오 영감』은 플로베르와 함께 19세기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인 발자크의 대표작으로, 그의 글쓰기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발자크는 그 자신이 구축한 『인간 희극』이라는 거대한 범주 속에서 19세기 프랑스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고리오 영감』을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 희극’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것처럼 발자크는 개인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러한 그의 관심은 곧바로 자신의 작품 속에 많은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이 다양한 인물은 19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의 삶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따라서,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은 모두가 중요하고, 그들을 통해 발자크는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소설은 고리오 영감의 부성애와 라스티냐크의 사랑과 상승 욕구가 주테마로, 이 두 가지는 한 권의 책 속에 조화롭게 녹아 있다. 독자는 비밀에 싸인 고리오 영감의 베일이 라스티냐크라는 청년을 통해 조금씩 벗겨지는 것을 보면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극한 부성애와 이와 반대되는 두 딸의 배신과 불효는 우리가 『리어 왕』에서 본 것처럼 고리오 영감의 비참한 최후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적인 흐름에 편승해서 엄청난 부를 획득한다. 그러나 그에게 물질적인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자신이 극진히 사랑했던 아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두 딸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갔고, 그 사랑의 배신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은 죽음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사랑이 야기한 부르주아 노인의 점진적 쇠퇴와 대비해서 라스티냐크라는 시골 청년의 상승 욕구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라스티냐크라는 인물은 사실 『고리오 영감』에 그려진 총 35명의 인물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다. 그는 당시 파리라는 세상을 읽을 줄 알았고, 또한 어떠한 것이 출세에 필요한 것인지도 분명히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와 사랑을 고집하는 성품은 그의 출세욕을 지연시킨다. 그러나, 사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순수에서 출발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의 사랑은 처음에는 레스코 부인이었고, 그 다음에는 뉘겐느 부인이었다. 사랑의 대상은 항상 자신의 벼락출세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순수한 양심을 유지하고 싶었다. 보트랭의 엄청난 제안, 어찌 보면 라스티냐크 자신도 빅토린이라는 여성에 연민과 사랑을 느꼈을 수 있는데도, 그의 거부는 이러한 양심적인 순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가장 인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양한 선택 상황에서 갈등하고 번민하지만 인간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도리는 지킬 줄 아는 인물, 이러한 점이 아마도 동시대에 그려진 스탕달의『적과 흑』에 나오는 줄리앙 소렐과 다른 점이다. 아마 발자크가 라스티냐크를 줄리앙 소렐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면, 『고리오 영감』의 맛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35명의 인물들을 통해 발자크는 직선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물론 대부분의 인물들을 자본주의 체제가 산출해낸 이단아로 표현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하는, 특히 고리오 영감을 통해 삶을 배우고 새롭게 일어서려는 모습은 가장 인간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주제, 예술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발자크가 보여주는 사랑은 절대 물질적인 사랑이 아니다. 의도이건 우연이건, 그는 작품 속에서 물질적 인위적인 사랑에 대해서는 비참한 결과를 선사한다. 반면에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는 더욱 높이 평가한다. 특히 고리오 영감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부(富)’가 삶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랑은 그러한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절대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돈은 행복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고리오 영감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 제시하는 것이다.
▣ 발자크의생애와연보
1799 5월 20일 베르나르 프랑수아 발자크와 안느 샤를로트 로르 살랑비에 사이의 둘째로 태어나다. 이후 4세 때까지 생 시르 쉬르 누아르의 한 유모에게 4세 때까지 맡겨진다.
1807 방돔 오라토리오회 중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6년간 기숙사 생활을 한다.
1813 파리에 있는 강세학교에서 기숙생 생활
1816 법대에 등록하고, 소송대리인 기요네 메르빌 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한다.
1819 문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 레디기에르가에 있는 고미 다락방에서 기거 를 시작한다. 비극 『크롬웰』을 쓰지만 실패한다.
1822 45세의 여인 베르니 부인과 교제한다.
1826 출판사, 인쇄소, 활자 주조소 경영, 모두 실패하고 엄청난 채무를 안게 된다.
1829 오노레 발자크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첫 작품 『올빼미 당원』을 발표한다.
이후 『결혼생리학』을 발표하여 문학계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832 카스트리 공작부인과 불행한 관계, 한스카 부인과 서신 교류를 시작한다.
1834 『으제니 그랑데』발표. 비스콩티 백작부인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1835 『고리오 영감』발표. 『파리시평』인수.
1836 『골짜기의 백합』에 관한 『파리 지』와의 재판에서 승소. 『파리시평』 청산. 베르니 부인 사망
1841 퓌른느와 『인간희극』출판을 계약하다. 그후 17권 출판
1845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는다.
1850 3월 베르디체프에서 한스카 부인과 결혼하여 5월 파리에 도착한다.
8월 18일 사망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힘. 빅토르 위고가 조사를 헌정 한다.
<“고리오 영감(Le P re Goriot)”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글쓴이 윤석헌님>
▣ 저 자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 de Balzac(1799∼1850)
당대 어느 작가보다도 시대정신에 철저했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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