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루지는 돈을 모으는 것만이 목적인 냉혹한 구두쇠.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직원을 늦게까지 잡아둔 채 일만 시킨다. 조카 프레드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찾아오자 면박을 주고, 자선단체 사람들이 적선을 부탁하자 그런 잉여인구는 빈민원에나 가게 하라며 박대한다.
여느 때처럼 홀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갑자기 죽은 말리의 유령을 보게 된다. 동업자였던 말리는 자기처럼 냉혹한 구두쇠로 살다가 7년 전에 죽은 사람. 그는 흉칙한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생전에 잘못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자기처럼 사는 스쿠루지에게 그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왔다고 말한다. 말리는 앞으로 스쿠루지 앞에 세 명의 유령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겁에 질린 스쿠루지 앞에 과연 첫번째 유령이 나타나는데…(요약)
크리스마스 캐롤(Christmas Carol ), 찰스 디킨스 지음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스쿠루지 본래 악명 높은 냉혹한 구두쇠였으나 유령이 보여준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여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모한다.
봅 크래칫 스쿠루지 상점의 점원으로 가난하고 착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사람이다.
프레드 스쿠루지의 조카로 성격이 좋아 박대하기만 하는 아저씨 스쿠루지에게도 따뜻한 인간애를 갖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손님
전지적 화자는 햄릿이야기가 시작될 때 독자는 햄릿의 아버지가 이미 죽었음을 알아야 하듯이, 이 이야기에서 독자는 말리가 죽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시작한다. 이 책의 주인공 스쿠루지와 말리는 도매상회를 같이하는 동업자로 7년 전 이날 말리의 장례식에서는 스쿠루지가 유일한 유언집행자이며, 유일한 친구이며, 유일한 애도가였다. 생전에 말리는 너무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쿠루지도 말리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는 인색한 구두쇠다. 스쿠루지의 냉정하고 이기적이며 폐쇄적인 성격은 외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경직된 자세에 매부리코와 움푹 꺼진 뺨과 충혈된 눈, 얇고 푸르스름한 입술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항상 찬바람이 돌아 길가에서 마주치는 어느 이웃도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으며, 거지도 그에게는 구걸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스쿠루지는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 바람이 매섭고 안개가 자욱한 추운 날씨인데도 사무실의 불은 아주 조그마하게 켜져 있을 뿐이다. 이 음울한 사무실에 스쿠루지의 조카 프레드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즐겁게 들어선다. 이에 스쿠루지는 가난한 주제에 무슨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냉대한다.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계산서를 지불하고 1년의 수지타산을 맞추는 날일 뿐이다. 자선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자 스쿠루지는 냉혹하게 거절한다. 그는 게으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의향은 전혀 없고, 구빈원이나 감옥이 그런 사람을 처리해줄 것이니, 그곳이 싫다면 그런 잉여인구는 죽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하루종일 뚱한 스크루지는 여느 때와 같은 시각에 사무실 문을 닫고 똑같은 음식점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사는 음울한 집으로 돌아왔다. 문 앞에 서 있던 그에게 순간 문 두드리는 고리쇠가 말리의 얼굴처럼 보였다. 경악한 그는 냉정을 되찾으려 애쓰며 집안으로 들어간다. 모든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고 아무도 없다. 긴장하며 주변을 살펴보던 때에 오랜 동안 울려본 적이 없는 조그만 종이 저절로 울려대면서 말리의 유령이 나타났다. 말리의 머리는 흰 붕대로 둘둘 말려 있고 몸 가운데는 쇠로 만든 자물쇠, 금고, 열쇠꾸러미, 장부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쇠사슬이 둘러쳐져 있다. 벌벌떠는 스쿠루지에게 말리는 이것은 생전에 돈버는 데만 급급한 자신이 자초해 벼려낸 쇠사슬이라고 말한다. 말리는 자신과 똑같이 그릇된 삶을 살고 있는 스쿠루지에게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고해주기 위해 왔으며 앞으로 세 명의 유령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스크루지는 아까 본 말리의 유령을 생각하며 소스라치는데,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어봐도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어느새 시계소리는 말리가 첫번째 유령이 오리라고 경고했던 1시를 알린다.
은발을 한 어린이가 순백색의 야광옷을 입고 번쩍번쩍 빛나며 나타났다. 그것은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으로 스쿠루지의 과거를 보여주기 위한 유령이다. 스쿠루지는 두려우면서도 흥미를 느끼며 꼬마 유령을 따라 나선다. 유령은 스쿠루지가 어린시절에 살던 마을로 그를 데려간다. 그는 오랜 동안 잊고 지내왔던 낯익은 마을과 집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겁다. 다소 외톨이여서 친구보다는 동화세계 속에 빠져 있던 어린시절의 자신을 본 스쿠루지는 어제 집앞에서 구걸하던 어린이에게 돈을 주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워진다.
다음 장면은 이제 소년이 된 스쿠루지가 강압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순탄치 못하고 우울하고 폐쇄적인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그에게 이제는 죽은 상냥한 여동생이 그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려고 애쓰는 것을 본다. 이제 더 자라 청년이 된 스쿠루지는 근심과 탐욕의 표정을 보이며 욕심사나운 눈을 불안하게 움직인다. 그는 아름다운 소녀와 함께 있다. 애인인 그녀는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변해가는 스쿠루지를 안타까워하며 지참금도 없는 가난한 자신은 그를 떠나겠다고 말한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현재의 스쿠루지는 유령에게 자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면서 괴로운 심경을 토로한다. 이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많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그녀를 보며 스쿠루지는 그릇된 가치를 좇느라 자신이 잃어버린 행복을 실감한다.
가난한 영혼들에게도 축복을
스쿠루지는 다시 1시에 깨 유령을 기다린다. 가구도 없는 음산한 방이 초록빛 나무들과 꽃과 과일들이 있는 푸른 초원으로 변해 있다. 여기에 초록옷을 입은 현재의 크리스마스의 유령이 나타난다. 스쿠루지는 어제는 억지로 유령에게 끌려갔지만 오늘은 기꺼이 따라나서 가르침을 받겠다는 변화된 태도를 보인다.
순간 그들은 크리스마스 아침에 도시의 거리에 있다. 안개 낀 거리에서 눈을 쓸다가 눈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반쯤 언 거리 위를 이리저리 달리는 마차들의 모습은 그 거리를 어느 계절보다도 흥겹게 만든다. 가게에는 높이 쌓여 있는 만개한 과일들이 사람들을 군침 돌게 한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로 모여든다. 유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마술의 향을 피우자 그곳의 분위기는 더욱 흥겨워진다. 이 유령은 인간에게 사악한 일을 하는 나쁜 유령이 아니라 인간을 돕는 선한 유령이다.
온 가족이 모여 흐뭇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직원 봅의 가난하나 행복한 가정을 지켜본다. 봅 식구들의 걱정은 막내가 너무 허약하다는 것이다. 스크루지는 유령에게 막내 티니가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달라고 애원한다. 유령은 스쿠루지가 이전에 했던 말을 빌려 잉여인구가 죽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그를 떠본다. 스쿠루지에게는 참회의 빛이 역력하다.
이번에는 유쾌한 웃음이 울려퍼지는 조카 프레드의 집에 간다. 조카는 다른 가족의 마지못해하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인색하고 무정한 스쿠루지 아저씨를 위해 건배한다. 그는 아저씨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매년 아저씨에게 반갑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 조금이라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스쿠루지 아저씨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이 말을 숨어서 듣는 스쿠루지는 그가 고맙다.
12시가 가까워오자 하룻밤이 전 수명인 유령은 눈에 띄게 늙어간다. 그리고 그의 옷자락 뒤에는 누더기를 입고 굶주린 불쌍한 두 아이가 매달려 있다. 유령은 남자아이는 ‘무지’이고 여자아이는 ‘결핍’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죄악으로 이것이 인간을 얼마나 비참한 상태로 전락시키는지 보여준다.
운명을 피할 수만 있다면
유령이 온몸과 얼굴을 검은 옷으로 감싸고 소리없이 나타났다. 이번 유령은 전혀 말을 하지 않고 그를 데려갈 뿐이어서 이미 유령에 익숙해진 스쿠루지인데도 무서워서 덜덜 떤다. 스쿠루지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관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그날 죽은 어떤 구두쇠에 대해 ‘저승에 가지고 가지도 못할 돈을 모으기만 했다’고 비아냥대며 아무도 그 장례식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업관계로 좀더 알고 지내던 다른 두 사람도 ‘그 노랭이가 죽었다지’ 라고만 얘기하고는 곧 그들의 일상적인 관심사를 이야기한다.
스쿠루지는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려 자기 모습을 찾아보나 찾을 수가 없고 유령은 그의 안색을 살핀다. 혼자 숨을 거둔 구두쇠의 장례식에서 몰래 물건을 훔쳐온 청소부, 세탁부, 장의사들이 각각 전당포에 왔다가 맞부딪친다. 그들은 구두쇠가 생전에 인정없이 살아 사람들을 다 떠나게 해서 자신들이 이득을 보는 것이라며 시체 밑에서 꺼내온 침대보, 반지 등 서로의 전리품을 자랑한다. 스쿠루지는 그들의 대화를 경악한 채로 듣고 있다.
캄캄한 방에 약탈당한 채,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고 울어주는 이도 없는 시체가 놓여 있다. 탐욕스럽게 살다가 외롭게 죽어간 이 사람이 자신임을 직감한 스쿠루지는 이 죽음에 무엇이든 느낀 사람이 있다면 보여달라고 한다. 이에 유령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빚을 갚지 못해 걱정에 싸였던 부부가 그 남자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안됐지만 안도하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다.
스쿠루지의 상점직원인 봅 크리칫 가족의 미래의 어느 크리스마스 모습이 보인다. 즐거움이 가득했던 지난번과는 달리 어떤 슬픈 일을 당한 뒤 가족들이 서로 위로하며 슬픔을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이다. 본디 몸이 약하고 다리를 절던 막내 티니가 결국 죽은 것이다. 봅은 스쿠루지의 조카 프레드가 위로해주어 고마웠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한다. 서로의 사랑에 의지하며 슬픔을 이겨내는 성숙한 봅의 가정을 보며 스쿠루지도 많은 것을 느낀다.
스쿠루지가 죽은 사람이 자신임을 계속 묻자 유령은 비석 위에 쓰인 스쿠루지의 이름을 가리킨다. 다급해진 스쿠루지는 자신이 이제라도 올바르게 살면, 지금 본 그 운명을 피할 수 있느냐고 되풀이해서 물으며, 답을 주지 않는 유령에게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이 땅 위의 모든 이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잠에서 깬 스쿠루지는 지금껏 겪은 것이 꿈이었음에 감사한다. 새 삶을 살기로 작심한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경축스러운 날로 새롭게 다가온다. 이제까지의 그와는 전혀 반대로 스쿠루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최상의 칠면조를 직원 봅의 집에 보낸다. 그가 박대한 자선단체 사람을 길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큰 액수를 기부한다고 서명한다. 스쿠루지는 특별한 날이라서 늦게 출근한 봅에게 이 일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야단치듯 말하다가, 급여를 올려주겠다는 봅이 상상할 수도 없던 결론을 내놓는다.
스쿠루지는 자기가 언약했던 것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현실에서는 죽지 않은 티니에게 그는 대부가 되었다. 그는 좋은 친구이고 좋은 주인이며 좋은 사람이 되었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한국인에게 찰스 디킨스는 낯익은 이름이다. 세계명작을 많이 읽어본 독자들은 디킨스 하면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의 이야기》, 《위대한 유산》 등을 떠올릴 것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이들은 이 이외에도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아 전공자들만 읽어보았을 《황폐한 집》, 《리틀 도릿》, 《우리 서로의 친구》 등 예술성이 뛰어난 후기작품들을 들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일반인들에게 찰스 디킨스 하면 단연코 《크리스마스 캐롤》이 떠오를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디킨스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고 자손대대로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작품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롤》은 그러나 사실은 심각한 현실비판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디킨스가 이 작품을 쓰던 1843년경에는 급격한 경제발전 속에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많았다. 반세기 전만 해도 부의 기반은 땅이었고, 땅부자는 자손대대로 세습되었으므로 대체로 제한된 몇몇에 불과했고 땅은 쉽게 현금화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증기력을 이용하여 대규모 공장들이 설립되면서 대량으로 상품이 생산되고 이 상품들은 쭉 뻗은 철로 위를 달리는 증기기관차 위에 실려 전국으로 유통되었다. 그전에는 상상도 못한 시대변화였다. 이렇게 가속도가 붙은 산업과 상업은 가히 혁명이라 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시대에 민첩하게 반응해 산업과 상업분야에 뛰어든 사람들은 단기간에 목돈을 움켜쥘 수 있었다. 따라서 현금을 가진 벼락부자들이 많이 생겼다.
그런 벼락부자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를 부러워하고 시기하며 자신도 유망해보이는 산업이나 상업분야에 뛰어들었다. 돈의 움직임을 휘둥그레한 눈으로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돈욕심도 극성을 부리게 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탐욕스런 사람이 있게 마련이나, 특히 19세기 초엽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 시대로 가장 먼저 입문한 영국 런던의 황금어장의 탐욕은 시대적 특성으로 부각될 정도였다. 탐욕은 이제 어느 특정인의 비난받아야 할 속성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유발 동기가 되었다.
탐욕스런 근대인의 전형, 스쿠루지
《크리스마스 캐롤》의 주인공 스쿠루지는 그러한 탐욕스런 근대인의 전형이다. 그는 1년 12달 쉴새없이 일만 하는데, 크리스마스 전날까지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늦게까지 일한다. 부하직원 봅에게는 일하는 것보다도 더 인색한 봉급을 주며, 더 많은 수지를 얻기 위해 쉴새없이 봅을 다그치고 닦달한다. 자선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을 단순히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악담을 퍼붓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빈민원이나 감옥에 처넣을 것이지, 그런 잉여인구를 뭐하러 도와주느냐는 것이다.
빈민원이나 잉여인구라는 언급은 돈이 인간평가의 절대적 가치가 된 시대상황을 잘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적선을 강요하는 잉여인구라는 것이다. 그러한 잉여인구는 어떤 개인적 불행이나 상황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라 게으르고 방종해서 그렇게 된 것이므로, 빈민원에 수용해 나태해지지 않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스쿠루지처럼 당시 이기적인 중산계급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스쿠루지는 자신에게도 인색하다. 추운 날에도 사무실에 온기라고는 거의 없다. 고된 하루를 마친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값싼 식당에서의 고독한 저녁식사와 가구도 없는 감옥 같은 덩그레한 방 한칸일 뿐이다. 돈을 쓸 줄도 모르고 오직 모으는 것만이 목적인 것이다. 인색하고 부당하게 돈만 모으는 그의 인생은 그와 똑같은 인생을 살다 죽어간 동업자 말리의 인생처럼 자물쇠, 열쇠꾸러미, 장부와 같은 쇠사슬로 압축된다. 그의 인생은 탐욕스런 마음이 벼려낸 쇠사슬로 묶여 있다.
디킨스의 문제의식은 이처럼 객관적인 현실의식에 기초한다. 그런데 그 심각한 문제의 해결방식은 동화 속의 소원성취기법을 따른다.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이미 뭔가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전날밤을 떠올린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는 사랑, 축복, 참회, 용서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연상시킨다. 크리스마스에는 멀리 있던 가족도 모두 가정으로 돌아와 외로운 타지생활을 버텨나갈 사랑을 재충전하고, 손해보지 않으려 무장했던 마음도 누그러져 가난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연민이 우러난다. 디킨스는 인간의 마음이 순정을 지향하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택해 스쿠루지를 변모시키려고 한다. 스쿠루지의 탐욕은 우리들 모두가 갖고 있는 탐욕의 보다 확대된 형태이므로, 그의 변모는 우리 자신의 변모에의 소원성취다.
갑작스런 소원성취는 동화의 세계다. 노력이 아니라 행운처럼 떨어지는 소원성취는 동화 속의 요정이나 천사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에서는 죽은 친구 말리의 유령이 그 역할을 한다. 말리 유령은 흉칙스런 모습을 한 귀신이지만, 자신처럼 그릇되게 살고 있는 스쿠루지의 잘못을 깨우쳐 사후 고통받지 않게 하려는 선한 의도를 갖고 있으므로 천사다. 말리의 유령은 세 유령을 보내 스쿠루지의 마음을 변모시키려고 한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운 동화의 세계이므로 스쿠루지의 개심이라는 목표를 경제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유령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리고 장면과 장면을 자유로이 옮겨다닌다.
동화적 분위기로 상징적 변신
유령이 보여주는 장면 장면들은 상당한 심리적 개연성을 확보한다.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이 보여주는 장면에서 독자는 왜 스쿠루지가 현재와 같은 이기적인 구두쇠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스쿠루지는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가정에서도 상처를 입었다. 그는 아마 그때부터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자신의 마음을 냉정하게 무장하고 돈으로 힘을 키우려 한 듯하다. 어쩌면 그와 따뜻한 가정을 이루었을 애인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모해가는 그에게 실망해 떠나버린다. 그를 전환점으로 그는 돈만 아는 맹목적인 삶만을 살아온 것이다. 그는 다급한 사람에게 혹독하게 돈놀이를 했고 더 많은 이득을 내기 위해 직원을 혹사시켰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만큼 사람들도 그에게 냉정해져, 그의 장례식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시체가 놓여있던 방은 약탈당한다. 인간사회는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혹독하게 대한 것은 결국은 자신에게 혹독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고 충격을 받은 스쿠루지의 변모는 실제 생활에 비추어볼 때는 지나친 돌변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롤》 전체에 흐르는 동화적 분위기로서는 갑자기 유쾌하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한 스쿠루지의 모습이 거의 무리가 없다.
그의 변신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스쿠루지는 모든 따뜻한 감정을 배제시키고 친지들과의 관계도 절연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돈을 축적하는데 희생시킨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도 스쿠루지이므로 우리는 그의 변모를 보면서, 우리도 변할 수 있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우리는 다시 태어난 스쿠루지의 어린애 같은 환호에 함께 기뻐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세계 각국에서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재상연되고 새롭게 각색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인간의 가장 원형적인 상실감과 두려움과 열망을 담은 신화다.
<“크리스마스 캐롤(Christmas Carol )”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찰스 디킨스 지음, 글쓴이 이선주님>
▣ 저 자 찰스 디킨스 (1812-1870)
누구보다 영국을 사랑했고, 영국민 또한 극진한 사랑을 주었던 영국의 국민작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영국의 국민작가
한국인에게 찰스 디킨스는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기억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절대왕정시대의 궁정과 상류계층의 생활사를 아름다운 시어와 함께 접했다면, 디킨스의 작품에서는 번성하기 시작한 근대 도시에서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며 돈과 젠틀맨 신분을 쥐려고 애쓰는 근대인의 모습을 풍성한 산문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산업혁명의 시발지로 제일 먼저 근대로 입문한 영국사회는, 현대 우리사회가 시작되었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디킨스의 입지전적인 생애도 뛰어난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근대인의 성공신화를 대표하는 듯하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주막에서 누군가 디킨스의 소설을 크게 낭독해 주는 것을 들으며 즐겼던 서민에서부터, 문학적 심미안과 비판의식을 갖춘 상류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영국 국민들은 디킨스의 소설을 사랑하였다.
당시의 신분구조 속에서 디킨스 집안을 굳이 분류해보자면 디킨스는 중하류계급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귀족의 집사였고 할머니는 그 집의 가정부였다. 아버지는 그 귀족의 추천으로 해군기지 사무소의 서기로 일했다. 그는 낙천적이고 유머 있는 사람이었지만, 경제관념이 희박했다. 항상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아서 계속 빚을 졌다. 어머니도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가는 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디킨스 가족은 더 가난한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다. 급기야는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다다르게 되는 채무자감옥에까지 갇히게 되었다.
그때 디킨스는 12살이었다. 대략 6월 정도였으니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이 경험은 그에게 평생 기억될 심리적 외상을 입힌다. 장남인 디킨스를 빼고는 동생들과 어머니도 감옥에 들어가 살았다. 디킨스는 감옥 앞의 허름한 집에 세들어 살며 구두약 공장에서 일했다. 소설을 즐겨 읽고 꿈 많던 소년 디킨스는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가난한 아이들 속에 끼여 일해야 하는 상황에 깊이 상처를 입었다. ‘학식 있는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는 어린시절의 희망이 내 가슴속에서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고, 어떤 말로도 내 영혼 속에 숨겨놓은 그 고뇌를 표현할 수는 없었다’고 그는 후에 토로한다.
말년에 자신의 전기작가에게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로 할 정도로 디킨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겼던 이 경험은, 그러나 작가로서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풍족하고 순탄하기만 한 삶 속에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작가로서 필수적인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공감적 이해가 양육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시 소위 산업혁명시대에는 열 살도 채 안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산업현장으로 내몰렸다. 가장역할을 하면서 학대받고 방치된 어린이들의 고통에 특히 민감했던 디킨스의 작품에는 불쌍한 어린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런던의 영세민층 속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디킨스는 소설사상 처음으로 도시의 빈민지역 주민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심지어 평생 런던에 산 사람들도 여태껏 가보지 못했던, 경관조차도 일행 없이는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그런 지역을 다룬다. 어린시절의 경험은 도시빈민을 변두리적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사회계급 전체가 예술적 재현의 위엄을 부여받는 예술상의 민주화작업을 이룬 토대가 된다.
가난한 소년가장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디킨스의 생애는 자수성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출감한 뒤에도 가정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 디킨스는 15세까지만 학교교육을 받았다. 그후로는 다양한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는 법률사무소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했고 밤으로는 열심히 속기술을 익혔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에 속기술은 법원직원이나 기자들에게 아주 경쟁력 있는 기술이었다. 그는 탁월한 문장력과 부단한 노력으로 고등법원에 출입하는 기자가 된다. 나아가 의회에 출입하는 가장 유능한 기자로 성장하여 1832년 당시 제1차 선거법개정에 대한 논쟁이 분분했던 의회를 실제 취재하기도 했다. 무지와 이기심에 가득 찬 국회의원들에게 느낀 당시의 크나큰 환멸은 평생 지속된다. 그리고 이 시절 그는 작가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그의 첫 소설은 《피크위크 문서 Pickwick papers》다. 이것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이 아니라, 신문에 매일매일 삽화와 함께 일정 분량 실렸다가 월간본으로 묶여 판매되었다. 이후 디킨스의 모든 소설은 이렇게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씌어지고 출판된다. 이 소설은 사람 좋은 중년신사인 피크위크가 영국의 풍물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과 인정 넘치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피크위크를 일약 영국민이 매우 사랑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이 출판되었을 때 당시의 비평지들은 디킨스의 놀라운 문학적 재능에 대해 모두 호평했다. 그들은 관찰의 넓은 폭과 정확성에 대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드는 위트와 유머에 대해, 인물들과 사건의 독창적인 창조에 대해, 마술적인 숙달된 언어조작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또한 이같은 문학적 재능만이 아니라 작품 속에 배어나는 디킨스의 온화하고 따뜻한 품성과,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사회의 불의와 그릇된 제도에 대한 정당한 분노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디킨스의 천재적인 문학적 재능과, 인간미와 정의에 기초한 개혁의식은 이후 모든 작품에 꾸준히 이어지며, 그의 독보적인 명성과 인기의 비결이 된다.
디킨스만큼 왕성히 활동한 작가도 없다. 그는 25세에 첫 소설을 출간하고 58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거의 매년 대작을 써냈다. 또한 연극대본을 직접 써서 연출하고 아마추어 배우들에게 몇 달에 걸쳐 연기를 지도하는가 하면 스스로도 역할을 맡았다. 다른 배우들의 역할을 너무 잘 알고 그것에 몰입하여, 때로는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가정의 말들 Household Word》과 《일년 내내 All the Year Round》라는 당시 인기 있던 두 주간지를 차례로 창간하고 편집장을 맡았다. 그는 900명의 자유기고가의 글을 하룻밤에 읽고서, 그중 11개만을 취해 그 기사를 거의 자신이 다시 새롭게 썼을 정도로, 기사를 읽고 거절하고 승인하고 다시 쓰는 작업을 혼자 도맡다시피 했다. 또한 하루 몇십 통의 독자와 작가지망생들의 편지에 일일이 충실하게 답장했다. 디킨스가 이토록 지치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로서의 투철한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문학에 의해서, 문학을 위하여, 문학으로서, 문학이 내 안에 서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맹세는 사회와 대중에 대한 디킨스의 투철한 작가의식을 보여준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엔터테이너
40대 중반에 디킨스는 명망과 재산을 모두 성취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즈음 매우 불안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애써 외면하려 한 불행한 결혼생활이 더이상 다독거려 수그러들 수 없게 불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20세 즈음에 만나 결혼한 아내 캐서린은 본디 순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느긋한 아름다움이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무한정으로 노력하고 활약하며 성공을 거듭하는 디킨스와 감정이 덤덤하고 매사에 서투른 캐서린은 점차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부가 되어갔다. 그는 절친한 친구인 포스터에게 ‘인생에서 한 가지 크나큰 행복을 놓쳤다는 것, 그리고 친구와 동반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왜 이렇게 나를 짓누르는지’ 알 수 없다며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고백한다.
이즈음 디킨스는 연극활동 중 19세 소녀인 엘렌 터넌을 만나게 된다. 이후 15년 동안 그녀는 디킨스의 베일에 싸인 애인이 된다. 그녀를 만난 다음 해에 그는 아내와 별거를 하게 되어, 국가적인 스캔들을 불러일으킨다. 여지껏 디킨스의 가족은 그야말로 모범적인 중산계급 가정의 모델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열 명의 자녀와 따뜻한 아내와 함께 ‘가스힐 Gad's Hill' 의 품격 있는 저택에서 저녁시간을 보내거나,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모든 보통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으로 보여졌다. 평생 대중들의 환호와 인사와 관심에 에워싸여 살아온 만큼, 부인과의 별거에 대한 대중들의 지탄도 대단했다. 심적으로 자신도 큰 상처를 입은 디킨스는 ’허황된 수많은 소문들을 나의 명성과 성공의 빛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림자로서 나는 항상 받아들였다‘고 토로한다.
디킨스 생애의 빛은 바로 작가로서의 대중적 성공이었다. 그는 비밀리에 어린 여배우와 연애했지만, 어떤 평자가 지적했듯이 ‘그의 인생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대중과의 연애’였다. 그는 평생 대중과 연애하듯이 그들에게 충심을 다했다. 그가 노년에 대중을 대상으로 작품낭독을 강행한 것도 사람들과의 감정적 결속을 향한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10년 동안 작품낭독을 위해 영국 곳곳과 세계를 여행했다.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성공이었고 대중들의 눈물어린 환대와 장관이나 시장들의 영접을 받았다. ‘그의 낭독여행은 개인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공적이며, 거의 국제적인 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디킨스는 그의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엔터테이너일 뿐 아니라 특별한 숭배를 불러일으키는 인사였다. 그의 이야기는 진정 그 시대의 화제였다. 거의 정치나 뉴스와 같은 것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윈저성의 여왕은 ’그 엄청난 손실‘에 슬퍼했고, 시장의 과일장수 딸은 ’디킨스가 죽었다고요. 그러면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도 죽었겠네요‘라고 했으며, 노동자들이 모이는 주막에서는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고 애도했다. 그만큼 디킨스는 계급과 나라의 경계를 가로질러 사랑받은 작가였던 것이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리스탄(Tristan) (0) | 2011.12.26 |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0) | 2011.12.26 |
목로주점 (0) | 2011.12.26 |
밑바닥! (0) | 2011.12.26 |
친구를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0) | 201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