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시기. 억척어멈이라 불리던 안나 피어링은 세 자식들과 마차를 끌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전쟁을 이용해 먹고 살면서도 절대로 전쟁에 희생되지 않겠다던 그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큰아들은 군에 끌려가고, 작은아들은 기독교 군대의 출납계원이 된다. 어느날, 기독교 군대가 점령하던 지역에 천주교 군대가 기습한다. 그러자 억척어멈의 성실한 작은아들 쉬바이처카스는 자신이 맡고 있는 금고가 천주교 군대에 뺏길까봐 금고를, 억척어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차에 숨겨 버린다. 그러나 결국 작은아들은 천주교 군에게 체포되고 억척어멈 일행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군인들이 억척어멈에게 쉬바이처카스를 끌고와 그를 아느냐고 묻는데...(요약)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안니 피어링(억척어멈) 전쟁 중에 자신과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억척스럽게 장사한다. 결국 자식들을 다 잃었으나
그녀의 생존투쟁은 전쟁만큼이나 질기다.
카트린 억척어멈의 딸. 벙어리. 모성애가 강하다. 그러나 결국 그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아일립 큰아들. 대담하고 무모할 정도로 영웅심이 강하다.
쉬바이처카스 작은 아들. 너무 정직하고 성실해서 오히려 우둔해 보인다.
전쟁이 준 이름
30년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 1624년 봄. 옥센스티에르나 대장은 폴란드 원정을 위해 군인을 모집하고 있다. 억척어멈이라 불리는 안나 피어링은 아들 하나를 잃게 된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은 마차를 끌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두 군인 -상사와 졸병- 이 지원병을 모집하고 있는 거리를 지나게 된다. 억척어멈은 그들에게 뭔가를 팔려고 다가가지만 그들은 그녀에게 신분증을 요구한다.
억척어멈 : 신분증?
쉬바이처카스 (작은아들) : 이 분은 우리 억척어멈이요!
상사 :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 없는데. 그런데 왜 억척어멈이지?
억척어멈 : 전쟁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억척어멈이라오. 상사, 마차에 빵덩어리 50개를 싣고 대 포알이 쏟아지는 리가 지방을 죽기 살기로 뚫고 왔소, 빵에 곰팡이가 슬기 시작해서 더 기 다리고 있을 수 없었거든.
억척어멈은 두 군인에게 물건을 팔려고 애쓰나 군인들은 계속 신분증만 요구할 뿐이다. 그런 중에 큰아들 아일립이 그들의 눈에 띄게 된다. 군인들은 아일립에게 군대에 지원하도록 종용한다. 이에 억척어멈은 분노한다. 칼을 뽑아들고 아들을 보호하려 든다. 군인들은 그런 억척어멈을 보며 비웃는다. 전쟁 덕에 먹고 살면서 그 전쟁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영웅심 많은 아일립은 군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억척어멈은 자식을 죽음의 길로 보내려 하지 않는다. 군인들은 억척어멈을 회유하려 물건을 사는 척한다. 반항적이던 억척어멈의 태도가 달라진다. 억척어멈은 그들에게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쓴다. 상사가 가죽 허리띠를 보여달라고 하자 그녀는 물건을 꺼내기 위해 마차 뒤쪽으로 간다. 그 사이 졸병이 아일립을 끌고 가버린다. 돌아온 그녀는 상황을 파악하고 분개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자식 하나는 잃었어도 두 자식을 위해 먹고사는 일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억척어멈과 남은 두 자식은 다시 마차를 끌고 간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상사가 말한다. “전쟁에 붙어살려면 무슨 대가든 치러야 하는 법이야.”
1625~26년. 억척어멈은 스웨덴군을 따라 폴란드를 통과한다. 발호프 성채 앞에서 그녀는 큰아들과 재회한다. 그녀는 거세한 수탉 한 마리를 유리하게 팔아넘기고, 용감한 아들은 영웅대접을 받는다.
억척어멈은 스웨덴 사령부 취사실에 닭고기를 팔기 위해 취사병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때 용병대장과 두 부관이 들어오는데, 하나는 군목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큰아들 아일립이었다.
아일립은 얼마 전 농가에 내려가 소를 훔쳐온 얘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었다. 농부들이 쇠몽둥이를 들고 쫓아와 도망가다가 결국 한 농부를 살해하게 된 것도. 용병대장이 아일립의 영웅적 행동에 대해 칭찬이 쏟아지는 가운데 억척어멈과 아일립은 2년만에 감격스런 재회를 한다.
아일립 : 이건 정말 행운이에요. 제가 칭찬받고 있는 것을 들으셨죠?
억척어멈 : 그래 들었다. (아들의 뺨을 때린다)
아일립 : (뺨을 어루만지며) 소를 잡아와서 그러시는 거예요?
억척어멈 : 아니다. 그 농부들이 너에게 덤벼들어서 너를 저민 고기처럼 만들어 놓으려 했을 때 네가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몸조심하라고 이 에미가 가르치지 않았더냐?
부자를 지켜보고 있던 대장과 군목은 어이없어 웃고 만다.
살아 남기 위하여...
3년 후, 억척어멈은 핀란드 연대의 일부에 휩쓸려 고립됐다. 그녀의 딸과 포장마차는 구출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정직한 아들은 죽게 된다.
작은아들 쉬바이처카스는 기독교 연대에 출납계원을 맡게 되고, 억척어멈과 카트린은 여전히 마차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다.
어느날 그녀는 병기장교와 총알 한 박스를 놓고 흥정을 하고 있다. 부패한 장교들이 무기를 팔아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런 장교들을 욕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값을 깎으려 하고 있다. 병기장교는 할 수 없이 그녀가 제시하는 값에 물건을 판다. 억척어멈은 그런 장교들과 같이 있는 작은아들이 그들을 닮을까 걱정한다.
억척어멈 : 네가 출납계원이 된 것은 네가 정직하기 때문이지 네 형처럼 대담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가 그렇게 단순하니 금고를 들고 달아나려는 생각을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만은 그러지 않을 테니까.
쉬바이처카스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병기장교와 부대로 돌아간다. 그들이 돌아간 후 취사병과 군목이 술을 마시기 위해 그녀의 마차로 온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전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병기장교가 달려오며 천주교 군대가 기습했음을 알린다. 취사병은 황급히 돌아가지만 군목은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까 두려워 사제복을 벗고 그곳에 남는다. 그때 쉬바이처카스가 금고를 들고 달려온다. 그는 자신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금고를 들고 온 것이었다. 억척어멈은 금고를 당장 버리라고 재촉하지만 쉬바이처카스는 자신이 맡은 것이니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할 수 없이 금고를 마차에 숨겨둔다.
사흘 후 총성은 사라졌지만 그들 모두가 걱정에 싸여 있다. 억척어멈은 쉬바이처카스를 찾고 있을 천주교 군인들 때문이고, 군목은 자신이 군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배교행위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쉬바이처카스는 돈이 든 금고를 자신이 가지고 있으니 군인들이 급료를 받지 못할 것이 걱정스럽다.
억척어멈 : 후퇴 중에 무슨 급료냐?
쉬바이처카스 : 왜요, 그들에겐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어요.
억척어멈 : 쉬바이처카스야, 네 양심적인 행동 때문에 나는 겁이 날 지경이다. 난 너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쳤다. 네가 약지 못한 때문이지. 그렇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야.
그러나 그녀의 이런 충고도 소용이 없다. 쉬바이처카스는 고민 끝에 금고를 강가 근처에 숨겼다가 밤에 후퇴 중인 자신의 군대에게 가져다주기로 결심한다. 억척어멈과 군목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옷자락에 금고를 숨기고 나간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군인들에 의해 끌려온다. 그들은 억척어멈에게 쉬바이처카스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모른다고 딱 잘라 대답한다.
쉬바이처카스 : 저 사람들은 나와 상관없어요. 난 그냥 여기서 점심을 사먹을 뿐인데 어떻게 저들이 나를 알겠어요?
그러나 군인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보고 있다. 억척어멈은 다급해진다.
억척어멈 : 어떻게 내가 저 사람을 알아요? 이 세상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잖아요. 난 누구에게도 이 름이 뭔지, 종교가 뭔지 묻지 안아요. 돈만 내면 그만이니까.
결국 그녀의 아들은 군인들에게 끌려가 총살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때 억척어멈과 알고 지내는 창녀 이베트가 와서 200길더를 대령에게 주면 쉬바이처카스를 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억척어멈은 이베트에게 200길더에 마차를 팔기로 한다. 왜냐하면 금고가 있으니 그 돈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대령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마차가 없이 살아야 할 판에 200길더를 다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이베트에게 120길더로 대령을 설득해 보라고 시킨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이베트는 120길더로는 어림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 금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군인들에게 쫓기는 와중에 금고를 강물에 던져버린 사실을 자백했음을 알려준다, 억척어멈은 금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상황이 급박하자, 그녀는 할 수 없이 200길더를 다 주겠다고 한다. 그것을 전하기 위해 이베트는 황급히 나간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린다.
억척어멈 : 흥정을 너무 오래했구나.
이베트 : 흥정을 잘 하셔서 마차를 그대로 갖게 되셨군요. 당신 아들은 총알 열 한 발을 맞았어요. 그리고 그들은 당신을 아직 의심하고 있어요. 당신의 어떤 반응을 떠보려고 시체를 가지고 이리로 올 거예요.
군인들이 시체가 누워 있는 들것을 들고 억척어멈에게 온다. 군인은 그녀에게 시체를 보여주며 아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억척어멈은 머리를 가로젓는다. 다시 한번 묻는다. 역시 모른다고 한다. 그로 인해 그녀의 아들의 죽은 몸은 쓰레기더미 위에 버려진다.
전쟁은 계속된다
2년 후 전쟁은 더 넓은 지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억척어멈의 마차 또한 그 전쟁을 따라 쉼 없이 질주한다. 어느날 억척어멈의 마차는 폭탄이 지나간 뒤 폐허가 된 마을에 서 있다. 그녀는 돈도 없이 술을 마시고 있는 군인과 싸우고 있고, 군목은 마을의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다.
군목 : (억척어멈을 향해 소리친다) 붕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소!
억척어멈 : (마차에 걸터앉아 마차 안으로 들어가려는 카트린을 막으면서) 붕대는 줄 수 없어. 가진것 없는 그자들이 나한테 돈을 줄 것도 아니잖아?
화가 난 군목이 억척어멈에게 다가와 소리친다.
군목 : 붕대 어딨소? (모든 사람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 억척어멈을 쳐다본다.)
억척어멈 : 나는 아무 것도 내줄 수 없다니까! 세금이고 이자고 뇌물이고 간에 내주는 일은 절대 안 하겠어.
카트린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판자를 집어들고서 자기 어머니를 협박한다. 그러나 억척어멈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군목이 마차 앞에 버티고 앉은 그녀를 밀어내고는 마차에서 군복을 끌어내 찢기 시작한다. 억척어멈은 군목을 말리지만 소용없다.
그때 누군가 집안에 아기가 있다고 소리친다. 그러자 카트린이 뛰어들어간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는 가운데 그녀는 어린 아기를 품에 앉고 나온다. 그리곤 마차 옆에 앉아 아기를 달래주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억척어멈 : (카트린에게) 이 난리통에 저렇게 퍼질러앉아 세상 가는 줄 모르다니. 당장 애를 주지 못하겠니? (술을 마시고 있던 병정이 그녀가 안보는 사이 술을 훔쳐가려는 것을 알아차린다) 술을 훔쳐가려구! 이 짐승 같은 놈아! 돈 내놔!
다른 지방으로 이동한 억척어멈 일행은 천주교 군대 대장의 장례식을 보게 된다. 억척어멈은 혹시나 전쟁이 끝나지 않을까 염려한다.
군목 : 대장이 죽었기 때문에? 유치한 소리하지 마시오. 그런 장군은 얼마든지 또 있다구. 영웅은 항상 있는 법이지.
억척어멈 : 이봐요. 내가 뭐 괜히 그러는 줄 알아요? 지금 싸게 살 수 있는 물건들을 사두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구요. 만약 내가 물건을 샀는데 전쟁이 끝나버리면 그 물건들은 모조리 쓰레기가 되는 거잖아요.
군목은 억척어멈에게 전쟁은 계속 될 거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러자 그녀는 물건들을 사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카트린에게 시내로 나가 물건을 사오도록 시킨다.
잠시 후 카트린은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물건들을 질질 끌며 돌아온다. 억척어멈은 물건을 뺏기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딸의 상처에 마음이 아프다. 그녀는 카트린이 가져온 물건들을 분류하며 분노에 떤다.
억척어멈 : 이게 다 전쟁 때문이라구! 돈줄 치고는 참 훌륭한 돈줄이지!
그때 대포소리가 들린다.
군목 : 이제 대장을 묻나본데? 역사적인 순간이군.
억척어멈 : 그 녀석들이 내 딸 눈을 찢어 놓은 것이 역사적인 순간이라구요? 그 애는 몸을 버렸다구 요. 이제 시집가기는 다 틀렸어. 그 애가 어렸을 때 어떤 군인 놈이 그 애 입을 뭔가로 꽉 틀어 막아버리는 바람에 벙어리가 됐는데... 쉬바이처카스도 이젠 볼 수 없고 아일립도 어 디 있는지 모르는데 저주받을 놈의 전쟁 같으니.
그러나 전쟁은 계속되었고 억척어멈의 사업은 번창하고 있다.
짧은 평화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가 뤼첸 전투에서 전사한다. 평화가 계속되고 억척어멈은 파산할 지경에 이른다. 억척어멈의 용감한 아들은 지나친 영웅심으로 결국 치욕스런 종말을 맞게 된다.
어느 여름날 억척어멈의 마차에 한 늙은 여인과 그녀의 아들이 커다란 침구를 팔기 위해 온다. 그들은 세금 때문에 자신의 집이 저당 잡힐 위기에 있었고 침구라도 팔아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억척어멈은 그런 침구는 쓸모가 없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그때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군가 외친다. 평화다! 스웨덴 왕이 전사했다! 모두 놀란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는가? 억척어멈은 전쟁이 끝나면 자신의 큰아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지금 막 사들인 물건들이 쓸모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때 취사병이 등장한다. 억척어멈은 반가워하며 아일립의 소식을 묻는다. 그는 아일립이 곧 도착할 거라고 알려준다. 그녀는 기뻐한다. 군목은 이제 사제복을 입어야겠다며 마차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억척어멈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억척어멈 : 취사병님은 내가 불행할 때 찾아주셨군요. 나는 망했어요. 평화가 온게 내게는 목이 부러질 정도로 벅차다구요. 군목의 충고로 물품을 사드렸는데 이제 모두 흩어져 버리면 나는 물건을 팔지 못하게 되잖아요.
취사병은 사제복을 입고 나온 군목에게 쓸데없이 다른 사람일에 간섭했다며 화를 낸다.
군목 : 간섭을 누가 했다고 그래? (억척어멈에게) 당신이 이분과 그렇게 친밀한 관계인지 미처 몰랐 소. 그에게 보고까지 하다니...
억척어멈 : 화내지 말아요. 취사병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뿐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의 전쟁이 쓸 모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시겠죠?
군목 : 평화를 욕되게 하지 말아요! 당신이야말로 전사자들의 군복을 훔치던 도둑이었소!
억척어멈 : 뭐라구요?
군목은 전쟁이 끝났으므로 다시 사제가 된 것이다. 취사병은 그런 그를 비웃는다.
취사병 : 하느님을 저버리지만 않았어도 평화가 돌아온 이때 어느 목사관이라도 쉽게 차지할 수 있었 을 텐데.
둘은 다투기 시작한다. 그때 이베트가 온다. 그녀는 지금은 전사한 어느 늙은 장군의 미망인이 되어 있었다. 억척어멈은 그녀가 부대의 연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이용해 자신의 물건들을 팔기로 한다. 황급히 물건을 싸들고 억척어멈과 이베트가 부대로 간다.
그들이 나가고 잠시 후, 창을 든 군인들에게 쫓기며 아일립이 온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다. 그는 처형되기 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러온 것이었다. 취사병과 군목은 놀라 이유를 묻는다.
군인 : 농가를 덮쳐서 농부의 아내를 죽였소.
군목 : 저런,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어.
아일립 : 예전과 똑같은 짓을 했는데 뭘 그래요?
취사병 : 하지만 전쟁은 끝났잖아. 지금은 평화라구.
아일립 : 닥치시오!
군목 : (군인에게) 전시에는 이 애의 그런 행위를 칭찬해 주었고, 용감한 행위로 대접을 받았어요. 내가 연대 헌병장교와 얘기해 보면 어떻겠소?
군인 : 소용없습니다. 농가에서 가축을 훔치고 살인까지 했는데 그게 어떻게 용감한 행위가 되겠소?
군인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아일립을 끌고 간다. 군목은 아일립을 도우려고 그들과 함께 간다. 그들이 가고 잠시 후, 억척어멈이 황급히 뛰어 들어온다. 그런데 물건을 짊어진 채다.
억척어멈 : 취사병, 평화는 벌써 끝났대요. 벌써 사흘째 다시 전투가 벌어졌대요. 내가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직 물건을 팔지 않고 있었어요. 참 다행이죠. 시내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요. 어서 마차를 가지고 이곳을 떠나야 해요. 카트린 짐을 싸라! 그런데 당신은 왜 그래요?
취사병은 아일립 얘기를 해준다. 그러나 그녀는 떠날 준비로 정신이 없다. 아일립은 전쟁이 다시 시작됐으니 살아 남을 거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리곤 취사병과 함께 마차를 끌고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나는 산다
위대한 종교 전쟁은 벌써 16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독일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극심한 기아와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1634년 가을. 우리는 스웨덴군이 이동하고 있는 군사도로 근처 피히텔 게르비히에서 억척어멈을 만나게 된다. 장사가 잘 안돼서 동냥질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취사병은 우트레히트에서 온 편지를 받고 이별을 고하게 된다.
초겨울의 어느날, 억척어멈 일행은 다 해진 양가죽을 두른 채 폐허가 된 사제관 앞에 앉아 있다. 그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사제관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취사병 : 고향에서 편지가 왔소. 어머님이 콜레라로 돌아가셨다는군. 이제 음식점이 내 몫이 되었소. 믿기지 않는다면 이 편지를 읽어보구려.
억척어멈은 편지를 읽는다.
취사병 : 우리 같이 음식점을 개업하면 어떨까? 생각을 좀 해봐요, 안나. 나는 어젯밤에 결심했소. 당신이 가든 안 가든 나는 오늘 안으로 떠날 생각이오.
억척어멈 : 카트린과 얘기해보겠어요.
그녀는 카트린을 불러 얘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취사병은 그녀를 잡아끈다.
취사병 : 당신이 뭘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당신하고만 가겠다고 말했소. 저 아이는 데려갈 수 없소.
억척어멈 : 나보고 카트린을 버리라는 거예요?
취사병 : 음식점엔 자리가 없소. 우리 둘이 힘껏 일하면 우리 먹을 것은 벌 수 있을 거요. 하지만 카트린까지는 힘들어요. 게다가 저 애는 벙어리에다 얼굴에 심한 상처까지 있소. 손님들이 저 애를 좋아하겠소? 카트린은 마차를 차지하면 될 것 아니오.
억척어멈 : 저 애가 어떻게 혼자 마차를 끌고 다니겠어요? 저 애는 전쟁을 무서워해서 견디지 못할 거예요.
그때 사제관에 불이 켜진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안에서 그들을 부른다. 그들은 사제관으로 들어가 음식을 얻는다. 그 사이 카트린은 보따리를 들고 마차에서 내려온다. 그녀는 마차 안에서 그들의 얘기를 다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에게 붙잡히고 만다.
억척어멈은 마차로 들어가 취사병의 물건을 밖으로 다 내던지고는 카트린과 함께 떠난다.
억척어멈 : 내가 너 때문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었다고 생각하진 마라. 너 때문이 아니고 마차
때문이야. 내 몸에 이렇게 익숙해진걸 내가 어떻게 버리겠냐. 절대 너 때문이 아냐.
둘만 남게 된 모녀는 점점 거지꼴이 되어가고 있다. 1636년 1월. 천주교 군대가 기독교 도시 할레를 위협해온다.
어느날 밤, 그들은 기독교 마을에 도착한다. 억척어멈은 카트린을 한 농가에 맡기고 장을 보러 시내로 나간다. 그때 중무장한 세 명의 천주교 군인들이 그 농가에 들이닥쳐 농부와 아내, 그리고 그의 아들과 카트린을 밖으로 끌어낸다. 그들은 잠든 마을을 공격하기 위해 마을을 안내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농부의 아들에게 안내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농부의 아들은 천주교도의 심부름은 할 수 없다고 버틴다. 그러자 군인들은 가축들을 다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농부 가족에게 유일하게 남은 식량을 죽인다는 말에 농부의 아들은 결국 굴복하고 만다. 군인들과 농부의 아들이 사라지자, 농부의 아내는 기도한다.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 달라고, 특히 어린아이들을... 아이들이란 말에 카트린이 놀라 일어난다.
농부의 아내가 계속 기도하고 있는 사이 카트린은 살금살금 마차로 가서 앞치마 속에 뭔가를 숨겨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들키지 않게 헛간에 세워둔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그녀는 지붕 위에 앉은 채 앞치마 사이로 엿보이는 북을 치기 시작한다.
농부와 아내는 놀라 카트린을 쳐다본다. 자신의 아들과 함께 간 군인들이 북소릴 듣는다면 그들과 그의 아들은 모두 끝장이었다. 농부는 카트린을 끌어내리려고 사다리로 가지만 그녀는 아예 사다리를 지붕 위에 끌어올리고는 계속 북을 친다. 농부와 아내를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북소리에 놀란 군인과 농부의 아들이 다시 돌아온다. 군인들은 그녀를 죽이려 하지만 총알 상자를 가지러 간 군인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에게 마차를 부셔버리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나 카트린은 절망적인 눈으로 잠시 마차를 보았을 뿐 북 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군인이 카트린에게 소리친다.
군인 : 마을 사람들은 네 북소리를 못 듣는다. 우리는 너를 총으로 쏘아 떨어뜨릴 거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북을 던져버려!
농부의 아들 : 계속 두르려! 아니면 마을사람 모두가 죽게 돼! 계속 두드려...
군인들이 달려들어 농부의 아들을 마구 때린다. 카트린은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계속 북을 두드리고 있다. 그때 총알 상자를 든 군인이 도착한다. 군인들은 재빨리 총을 장전하고 카트린에게 소리친다.
군인 : 마지막 경고다, 북을 버려!
그러나 카트린은 울면서 온 힘을 다해 북을 두드린다. 군인들이 총을 발사한다. 카트린이 총에 맞는다. 그리곤 몇 번 더 북을 치고는 천천히 쓰러진다. 이제 조용해진다. 그러나 카트린의 마지막 북소리는 총성으로 이어진다. 멀리서 경종소리, 우레 같은 대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군인 : 그녀가 성공했군.
새벽녘, 억척어멈은 죽은 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농부 : 당신은 여길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억척어멈은 딸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억척어멈 : 어쩌면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죠...
그녀는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리곤 그들에게 어린애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한다.
농부 : 당신이야말로 가지 말았어야 했소, 무슨 떼돈을 벌겠다고. 그랬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지도 몰 라요.
억척어멈 : 이 아인 잠이 든 걸요.
농부의 아내 : 잠든 게 아니에요. 마음에 새기세요. 당신 딸은 하늘나라로 갔다구요.
농부 아내의 말에 억척어멈은 딸이 죽었음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마차에서 굵은 삼베를 가지고 나와 딸의 시체를 그들에게 부탁한다.
농부의 아내 : 찾아갈 다른 식구는 있나요?
억척어멈 : 있어요, 한 사람 아일립이요.
농부 : 그럼 그 사람을 찾아야 됩니다. 저기 저 애는 우리가 잘 묻어 드리겠소.
억척어멈 : 여기 필요한 돈 있어요.
그녀는 농부의 손에 돈을 쥐어준다. 농부와 아들은 카트린을 들고 나간다. 억척어멈은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마차의 고삐를 챙긴다.
억척어멈 : 마차는 혼자서 끌 수 있을 거야. 든 것도 별로 없으니 할 수 있을 거야. 다시 장사가 되 야 하는데...
어느 연대의 호각소리와 북소리가 들린다. 억척어멈이 마차를 끈다.
억척어멈 : 나 좀 같이 데려가요!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감정이입은 없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총 12장으로 구성)이 1941년 취리히에서 초연됐을 당시 관객과 비평가들은 억척어멈을 전쟁에 희생된 비극적 인물로 해석하였다. 브레히트는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 억척어멈의 개인적 비극을 약화시키고 그녀의 범죄적 행동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대본을 수정하였다. 이 수정 대본을 가지고 1949년 베를린에서 자신이 직접 연출하여 공연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이 억척어멈의 고단한 삶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브레히트는 관객들이, 전쟁에 동참하여 이득을 얻고 살려는 억척어멈의 탐욕을 보지 못하고 그녀의 실패와 고통만을 보았다고 불평하였다.
그러면 브레히트가 이 작품을 쓴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개인이 얼마나 비참하게 희생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가 덴마크로 망명하였을 때는 파시즘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그는 파시즘의 위험을 보지 못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특히 파시즘의 가장 큰 후원자인 자본가들은 전쟁을 통하여 많은 이득을 얻고, 부를 축적하여 사회의 권력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억척어멈은 바로 그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브레히트는 그들, 전쟁을 통하여 부와 권력을 얻은 그들도 결국은 전쟁에 희생될 거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관객 혹은 독자들 또한 브레히트의 이런 의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억척어멈의 삶에 감정이입되어 그녀의 비극에 눈물짓는 오해를 왜 범하고 있는가?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 비극의 인물이 어머니라는 점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자식들과 먹고 살기 위해 전쟁 속을 필사적으로 달리는데 이런 모습을 그 당시 자본가의 모습과 연관시키기가 쉽지 않다. 전쟁이란 상황 속에서 오직 먹고 살려는 생존투쟁을 탐욕이라고 매도하기에는 오히려 너무 비극적이다. 그래서 그런 비극적 어머니에 익숙한 관객들은 그가 감정이입을 배제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끈질긴 생명력과 모성애에 동정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모성애와 희생적인 모성애
억척어멈과 카트린, 두 모녀에게서 가장 닮은 점과 가장 다른 점이 공존한다. 그것은 ‘모성애’다. 둘의 모성애의 공통점은 자식들 - 카트린에게는 다른 어린아이들 - 에 대한 절대적 사랑이다. 억척어멈이 자식들에게 늘 가르치는 말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라는 것, 절대로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는 것, 전쟁에 절대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희생하느냐의 문제에서는 아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억척어멈의 모성애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당하지만 자신의 생존 문제가 걸리면 얼마든지 배반할 수 있다. 그녀의 모성애는 강하지만 더 강한 건 먹고사는 일, 살아남는 일이다.
이에 비해 카트린의 모성애는 절대적 희생이다. 그녀는 어린아이 소리만 들어도 다 무너져가는 집으로 뛰어들어가고,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북을 쳐댄다. 그녀는 결국 그 희생적 모성애에 의해 죽고 만다.
그러나 두 모녀의 모성애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참다운 모성애냐를 따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왠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전쟁이란 극한상황에서 둘의 모성애는 모두 비극이기 때문이다. 억척어멈은 그렇게 끈질긴 생명을 유지하면서도 자식들 모두를 잃었다. 그것이 모두 그녀의 탓은 아니었다. 전쟁에 의해 그녀도 강요당한 것이다.
카트린의 모성애는 절대적이며 희생적인 모성애를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희생적 사랑의 대상은 어린아이지 자신의 자식이 아니다. 카트린의 모성애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보다 큰 의미의 ‘인류애’다.
어떤 시대든 전쟁이란 것은 이기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종교를 위해, 자신의 민족을 위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댄다. 그리고 거기에는 소수 권력층의 자기들만을 위한 눈먼 이익이 있으며, 왜 전쟁을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소시민들이 있다. 억척어멈의 30년 전쟁뿐아니라, 브레히트가 직접 고통을 느꼈던 제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의 수많은 전쟁들...
이런 전쟁 속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을 전쟁을 막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바로 카트린이 보여준 인류애다. 이 사랑에는 종교의 차이도, 민족의 차이도 없다. 다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뿐이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글쓴이정미정님>
▣ 저 자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1898∼1956)
독일문학의 얼굴을 바꿔 놓은 세계적인 희곡작가.
망명생활에서 얻은 것
브레히트는 1898년 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학창시절 그는 “조국출범 Vaterlandischer Aufbruch" 이란 단체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했고, 자신의 주도하에 동호회를 결성하여 간혹 시민들을 놀라게 하면서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지만 주로 자연 속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후 그는 뮌헨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제대로 공부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보다 최초로 대성공을 거둔 희곡 「한밤의 북소리 Trommeln in der Nacht」를 써서 젊은 연극인에게 주는 클라이트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에게 ‘독일 문학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는 찬사를 안겨주었다.
그는 그 당시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중산층을 비판한 「서푼짜리 오페라 Die Driegroschen Oper」와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상을 그린 「인간은 인간이다 Mann ist Mann」 등의 작품으로 연극계에 확고히 자리잡게 됐다. 그런 그가 독일을 떠나 망명생활을 하게 된 건 히틀러의 나치정권 때문이었다.
브레히트가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 건 1918년에 쓴 「죽은 병사의 전설」이라는 시 때문이었다. 이 시는 브레히트가 군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하면서 직접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바탕으로 쓴 시였는데, 이런 군대체험이 학창시절부터 막연히 가져오던 반전사상을 더욱 확고히 해주는 계기가 됐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희곡작가로 명성을 날리던 그의 작업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는 파시즘 정권하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망명을 결심했다. 우선 그는 프라하, 비인, 파리를 거처 덴마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의 반전사상이 잘 그려진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썼다. 그러나 1939년 파시즘의 그림자가 유럽전역으로 뻗어나가자 그는 더 이상 덴마크에 머물 수 없었다. 그는 한동안 스웨덴, 핀란드에서 살다가 1940년 소련을 거처 최종 망명지인 미국에 정착했다.
미국에서의 망명생활로 전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으나, 정신적·물질적 이중고를 견뎌내지 않으면 안됐다. 그는 때때로 생활을 연명하기 위해 할리우드에서 영화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는 당시의 생활감정을 「할리우드」라는 짧은 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매일 아침 밥벌이를 위해
거짓이 매매되는 장터로 간다.
희망을 품고
판매자들 사이에 끼여든다.
그러나 그의 시나리오는 대부분 영화화되지 못했다. 상업적 성공을 꾀한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그의 작품을 변질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희곡작가로서 망명생활의 이중고를 극복해가면서 창작활동과, 연극이론을 계속 정립해 나갔다.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 「쓰촨의 착한 사람 Der gute Mensche von Sezuan」, 「코카서스의 백묵원 Der kaukasische Kreidekreis 」 등 그의 중요 작품들이 이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1948년 동베를린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망명생활이 끝났다. 그는 그곳에서 “베를린 앙상블 Berliner Ensemble”이라는 연극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다시금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이런 고된 망명생활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세계적인 희곡작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창작에 대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낯설게 하기
브레히트의 연극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외효과 Verfremdung Effekt’다. 여기에서 ‘소외’로 번역된 ‘Verfremdung'의 원뜻은 ’낯설게 하기‘의 뜻인데, 그는 이 방법을 통해 극중인물과 관객과의 거리를 만들고자 했다.
보통 관객들은 연극 혹은 영화 등을 보면서 극중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여 자신과 극중인물을 혼동하곤 하는데 이것이 ’감정이입‘이다. 브레히트는 감정이입을 아주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감정이입은 관객의 객관적 사고를 흐리게 만들고, 극중인물의 행동과 선택이 관객의 실제생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관객이 객관적 입장에서 각자의 이성에 의해 연극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음악, 극을 설명하는 노래, 팬터마임, 가면 등을 사용해 관객이 감정이입에 빠지지 않고 극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계속해서 환기시키는 작업을 시도했다.
「쓰촨의 착한 사람」에서는 각 장의 첫머리에서 그 장에서 일어날 사건의 개요, 시간, 장소들을 미리 제시하여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긴장감과 감정폭발을 억제하고, 관객이 극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도록 해주었다.
▣ 베르톨트브레히트의생애와작품
1898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부유한 중산층 가정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1917 뮌헨대학교 의학과에 진학
1918 최초의 희곡 「바알 Baal」, 「죽은 병사의 전설」이라는 시를 썼다.
1919 희곡 「한밤중의 북소리 Trommeln inder Nacht」 완성
1922-28 「한밤중의 북소리」 초연. 클라이트상 수상「도시의 밀림속에서 Im Dickicht der Stadte」(1922), 인간은 인간이다 Mann ist Mann」(1926),
서푼짜리 오페라 Die Dreigroschen Oper」(1928) 등 발표.
1933 나치 정권 장악. 망명 결심 2월 28일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나 프라하, 비엔나, 취리히 등지를 거쳐 덴마크 스벤보르에 정착
1939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ei」 발표
1940 미국으로 망명. 「쓰촨의 착한 사람 Der gute Mensche von Sezuan」,주인 푼틸라씨와 그의 종 마티 Herr Puntila und sein Knecht Matti」 발표
1944 「코카서스의 백묵원 Der Kaukasische Kreidekrise」 발표
1947 반미사상 혐의로 워싱턴 소환 심문. 미국을 떠나 취리히로 갔다.
1948 체코 여권을 갖고 동베를린으로 귀향
1949 동베를린에서 여배우 헬레네 바이겔과 극단 베를린 앙상블 창립.
1951 ‘동독민족 문학상’ 수상
1954 스탈린 평화상 수상
1954 파리 국제 연극제에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로 대상 수상 「연극소론 Kleine Organon f r das Theatew」 발표
1956 8월15일 심장마비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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