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목로주점

[중산] 2011. 12. 26. 12:44

 

 

 

제르베즈는 어린 나이에 랑티에를 만나, 클로드와 에티엔을 낳고 파리 북부 빈민가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랑티에는 다른 여자와 달아나버리고, 제르베즈는 자신에게 닥친 생활고에 맞서 세탁부 일을 해나가면서 열심히 살아간다. 성실하고 예쁜 제르베즈에게 반한 함석공 쿠포는 주저하는 그녀에게 계속 청혼하여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결혼 이후 부부는 열심히 일해 약간의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딸 나나도 얻었다. 그러나 쿠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이후부터 그는 노동자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나태와 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때문에 저축한 돈은 계속 새나가지만, 이웃남자 대장장이 구제의 도움으로 제르베즈는 소원하던 세탁소를 차려 그것을 번창시킬 수 있었다. 돈도 조금씩 모아지고 남편도 곧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세탁소가 한창 잘 되고 있을 무렵, 하지만 그녀에게는 불행의 그림자가 엄습해오고 있었다. 바로 랑티에가 다시 나타난 것인데..(요약)

 

 

목로주점(L'Assommoir), 에밀 졸라 지음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제르베즈           파리 빈민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여인. 하지만 환경은 그녀를 타락시킨다.

랑티에             제르베즈의 첫 남편. 제르베즈를 버리고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와 그녀를 완전히 몰락시킨다.

쿠포                제르베즈의 두 번째 남편. 처음엔 착실한 함석공이였으나, 사고 후 점차 술로 자신을 망쳐간다.

구제                제르베즈네 이웃집 대장장이. 제르베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실한 청년이다.

에티엔, 클로드   랑티에와 제르베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나나                제르베즈와 쿠포 사이에서 얻은 딸

 

 

 

새로운 출발

 

바람이 불 때마다 악취와 함께 도살된 가축들의 피비린내가 풍겨오는 허름한 봉쾨르 여관. 그 안의 침침한 방에서 제르베즈는 밤새도록 마음을 조이며 남편 랑티에를 기다린다. 이들은 결혼식 같은 것도 없이 철부지 사춘기에 눈이 맞아 동거생활에 접어든 젊은 부부다. 스물두 살의 제르베즈는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지만 화사한 얼굴에 가냘픈 인상을 주는 아리따운 여인이며, 스물여섯 살인 랑티에는 진한 갈색머리에 예쁘장한 얼굴 그리고 얄팍한 콧수염을 기른 사내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나타난 랑티에는 대뜸 제르베즈에게 집에 있는 옷 몇 벌을 던져주며 전당포에 가서 돈을 마련해오게 한다. 사실상 이 돈은 랑티에가 그 건물에 세들어 있는 비르지니 자매 중 애교 만점인 동생 아델과 도망칠 마차 삯이었다. 제르베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돈을 마련해주고 빨래터로 향한다. 그리고 빨래터에서 만난 건물 수위인 보슈 아줌마를 통해서 랑티에가 비르지니 자매와 곧잘 어울려다닌다는 얘기를 듣는다. 때마침 그 빨래터에 비르지니가 나타나 제르베즈를 비웃는 바람에 그들은 구경꾼들을 울타리 삼아 뒤엉켜 싸운다. 빨래터에서 텅 빈 집으로 돌아온 제르베즈는 두 아이들(여덟 살짜리 클로드와 네 살바기 에티엔)과 함께 배반당한 허탈감과 동시에 이 가난의 뒷거리에서 영영 못박혀버릴 것 같은 예감에 휩싸인다.

 

 

그로부터 3주 후, 콜롱브 영감의 목로주점에서 만난 함석공 쿠포는 평소에 제르베즈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그녀에게 넌지시 그들의 관계가 발전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자신이 버림당한 경험과 주위의 시선 때문에 쉽게 승낙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 앞에서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한다. 착실하게 일하는 것, 세 때 끼니를 거르지 않으며, 아담한 집에서 잠자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착하게 기르는 것, 마지막으로 새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면 남자에게 매맞지 않는 일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그 뒤로 그들의 만남은 계속되었고 서로가 많은 일을 도와가기 시작했다. 쿠포는 우유를 찾아다주기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세탁물 꾸러미를 전달해주기도 했다. 제르베즈 역시 쿠포의 옷을 빨고 손질도 해주면서 그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쿠포에게 샹송이나 파리 외곽지의 얘기를 들을 때면 그녀는 참으로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날 밤 쿠포는 제르베즈를 찾아와 다시 한 번 그녀를 설득시킨다. 그는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만큼 그녀를 기다리느라 지쳤던 것이다. 제르베즈는 항상 아이 딸린 여자가 총각에게 시집가는 걸 두고 주위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면서 늘 신경을 쓰곤 했다. 그런 그녀를 쿠포는 열심히 설득했다. 제르베즈는 착하고 총각인 데다가 수입도 괜찮은 함석공, 다른 노동자들처럼 거칠거나 술 취하는 일이 없는 성실한 사내 쿠포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쿠포는 그녀를 데리고 작은누이면서, 금사슬 세공업자인 로리외 부부에게 결혼식 보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러 간다. 그러나 누이는 그 결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오로지 제르베즈의 구두 밑에 금가루가 묻어갈까봐 그게 걱정인, 아주 인색한 사람이었다. 자신감을 잃은 제르베즈와는 달리 쿠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식을 추진한다.

 

 

제르베즈는 식을 올리는 것이 이웃사람들에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쿠포는 이웃과 함께 식사 정도도 안 하고는 결혼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시켰다. 결국, 물랭다르 목로주점에서 연회를 열기로 하고, 참석자들도 모으고, 반지도 준비하고, 미사를 할 사제도 결정하고, 옷도 마련했다. 마침내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참석자들은 연회장에서 떠들고 먹고 마신 후에, 미술관 구경도 갔다온다.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물랭다르에 모인 일행은 음담패설과 직업 얘기와 정치 얘기도 하면서 신나게 먹고 마셔댔다. 어쨌든, 신랑신부는 하루종일 요란하고 고달픈 식을 잘 치러낸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들이 결혼한 지도 4년이 지났다. 4년 동안 그들은 성실하게 생활했다. 제르베즈는 포코니에 부인의 세탁소에서 매일 열두 시간씩 일하면서도 집안식구들의 식사며 뒷바라지를 잊지 않았고, 남편 쿠포는 반 달씩마다 받아오는 품삯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내에게 갖다주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러 다닌다거나 술에 취해 주정하는 일이라곤 없었다. 일요일은 아이들과 산책을 하며 오붓하게 지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 부부의 착실함과 선량함은 곧잘 다른 부부간의 본보기로 내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들은 결혼식 때문에 진 빚을 청산하고 하루빨리 그 칙칙한 봉쾨르 여관을 떠나고 싶어했다. 때마침 플라상 마을의 한 노신사가 큰아들 클로드의 낙서그림을 보고 감탄해서는 자기 마을의 중학교에 클로드를 넣어주겠다고 하여, 돈을 더 저축할 수 있었다. 마침내 얼마 후, 그들은 빨래터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자그마한 2층집으로 이사했다. 하나 둘씩 멋진 가구들도 장만했다. 바로 그 집에서 그들은 예쁜 딸, 나나를 얻는다. 제르베즈 부부는 너무도 행복했다.

 

 

이웃집에는 구제 모자(母子)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레이스 수선을 하고, 아들은 대장장이로 볼트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 어머니에게서는 귀족다운 면모가 풍겼고, 아들 구제는 노란 수염을 가졌기에 친구들 사이에서 괼르도르(황금의 입)라고 불렸다. 잘생긴 구제는 늠름한 체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성품 또한 아주 진실하고 온화했다. 구제와 제르베즈는 한동안 서먹해하다가 곧 친해지고, 쿠포 역시 처음엔 그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곧 우정이 깊어졌다. 언젠가 폭동을 구경하다가 쿠포가 끌려갈 뻔한 것을 구제가 난폭한 군중에서 빼내 도망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가 빠져나오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참혹하게 살해되었을 것이다.

 

 

제르베즈는 그동안 착실히 모아온 돈으로 조그만 가게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쿠포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 조심스레 상의를 해보았다. 다행히도 모두 대찬성이었다. 제르베즈는 그 다음날로 당장, 자신의 가게로 물색해놓은 잡화상 셋집을 쿠포와 함께 가보기로 하고는 일터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대로 다음날, 그녀는 나나를 데리고 새건물 4층에서 지붕을 손질하던 남편 쿠포를 찾아간다. 사실 그녀는 높은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도 두려워서 단 한 번도 일터에 온 적이 없었다. 차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나가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쿠포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발이 그만 미끄러져 버렸다.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그는 높은 곳에서 내던진 빨래 보따리처럼 둔한 소리를 내며 한길 복판에 내동댕이쳐졌다. 제르베즈는 목이 찢어져라 절규하며 팔을 허공 중에 올린 채 정신을 잃고 서 있었지만, 이미 그는 떨어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그는 사경을 헤맸다. 다행히 제르베즈의 정성어린 간호와 애정으로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쿠포는 점차 몸이 나아짐에도 일을 하기 싫어하고, 그 전까지 보였던 직업에 대한 자부심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을뿐더러,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그렇게 망쳐놓은 일에 대해 저주를 퍼부으면서 극도로 사고가 비약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목로주점에 맛을 들여 이젠 취해서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같은 쿠포에 비해, 제르베즈는 남편에게 아무런 불평도 없이 줄곧 일만 계속했다. 저축했던 돈을 쿠포의 치료비로 다 써버렸기 때문에 뼈가 부스러질 정도로 더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르베즈 역시 남몰래 우울증이 쌓일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 구트도르 거리에 세놓은 그 가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가게에 대한 집념이 거듭거듭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구제가 찾아와 자신의 결혼비용을 빌려주마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어머니와 이미 상의해놓은 일이었던 터라, 제르베즈는 구제 어머니를 찾아뵙고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이튿날, 당장에 제르베즈는 그 가게를 빌려 세탁소를 운영하게 된다.

 

 

 

 

악몽의 그림자

제르베즈가 새 가게를 막 차렸을 때, 보슈 부부도 구트도르가의 아파트 수위실에 들게 되었다. 제르베즈에게는 아주 든든한 일이었다. 제르베즈는 성실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올바르게 되어가리라 믿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새 가게는 동네에서 평판이 대단했다. 로리외 부인이 제르베즈를 모함해도 그녀의 인기는 날로 좋아지기만 했다. 제르베즈는 일솜씨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가게를 연 지 보름 만에 여공 두 사람과 견습공을 고용해야만 할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쿠포는 날이 갈수록 폭음이 심해지고 주정이 늘었다.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생활해서 자신의 가게까지 얻게 되었는데 정작 남편은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나나와 의붓자식인 에티엔을 차별하여, 걸핏하면 에티엔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이를 보다 못한 구제는 에티엔을 자신이 다니는 대장간, 볼트공장의 풀무견습공으로 데려간다.

 

 

매주처럼 세탁물을 배달하고 구제네 집에서 나오는 계단에서 제르베즈는 우연치않게 예전에 빨래터에서 싸웠던 비르지니를 만났다. 순간, 예상 외로, 비르지니는 이전 일에 대해서 먼저 사과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날의 만남 이후 비르지니는 자주 제르베즈의 세탁소에 들르곤 했다.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항상 불을 지펴야 하는 제르베즈의 세탁소는 동네 여인들의 만남터가 되었다. 비르지니 역시 자주 이곳을 들렀다. 제르베즈는 그녀와 얘기할 때면 언제나 랑티에의 얘기가 나올까봐 조금은 걱정이 됐다. 그런 걱정은 빗나가지 않았다. 비르지니는 아델과 랑티에가 1주일 전에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그뿐 아니라 며칠이 지나자 랑티에를 만났다고 전한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제르베즈는 갈수록 내심 불안해졌다. 랑티에라는 악몽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예전의 그 칙칙한 봉쾨르 여관에서 그가 들고 나갔던 트렁크를 다시 들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여러가지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구제에게서 찾았다. 세탁물을 배달하는 길에, 아들 에티엔을 본다는 핑계로 그 볼트공장에 들러 구제를 만나곤 했다. 구제도 제르베즈가 찾아오는 날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제르베즈는 그를 만나면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고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구제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해왔던 것이다. 그를 만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술에 취한 주정꾼 남편 쿠포였다. 취한 쿠포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더듬고 만진다. 거의 망나니가 다 되어버린 쿠포였다. 언제나 술에 취해서 아내를 매질하는 윗방의 비자르 영감이나 주정뱅이 쿠포나 다를 바 없다고 제르베즈는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6월 19일은 제르베즈의 축명일(祝名日)이다. 그녀와 잘 알고 지내는 주위사람들은 벌써부터 축하인사를 하면서 모두 축명일 잔치를 기대하고 있었다. 사흘 전부터 음식을 장만하면서, 거위도 아주 큰놈으로 두 마리 준비해두었다. 드디어 축명일! 쿠포가 나타나지 않는 소동이 잠시 있긴 했지만 잔치는 즐겁게 시작되었다. 모두들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각양각색의 꽃들을 제르베즈에게 안겨주며 축하인사를 했다. 모두들 푸짐한 음식에 즐거워하며 누구한테 질새라 열심히도 먹어댔다. 어찌 보면, 노동자들에게 이런 축제는 먹는 축제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고 나서는 이제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한다.

 

 

한참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 제르베즈는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건너편 보도에서 축제를 구경하는 인파들 속에 랑티에가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제르베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순간, 쿠포도 랑티에를 보았다. 그는 욕지거리를 하며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랑티에에게 달려나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구제는 곧 친구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들어와서는 그에게 술을 따라준다. 제르베즈는 숨이 막힐 듯했지만, 축제의 노랫소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축제가 끝날 무렵에는 모두 다 취해서 돌아갔고 제르베즈를 비롯해서 아무도 그 잔치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절망의 끝

축명일이 지난 다음 토요일. 쿠포는 랑티에를 데리고 들어와서 제르베즈와 악수를 시켰다. 제르베즈를 버리고 도망가서 최근 8년 동안 모자공장을 경영했지만, 지금은 근사한 일을 진행 중이라고 하면서 랑티에는 이 거리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랑티에는 동네사람들의 환심을 끌기 위해 여념이 없었고, 모두들 점차 그의 계획대로 움직여주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랑티에를 가리켜 멋지고 좋은 신사라고 말했다. 그의 거리가 된 셈이다. 이제 랑티에는 마음놓고 제르베즈의 가게를 들락거렸다. 하지만 제르베즈는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이 거리에서 좋은 집을 물색하던 랑티에는 보슈 부인이 좋은 방을 소개해도 맘에 들어하지 않고 쿠포에게 당신네 집 만한 데가 없다고 얘기한다. 이 말에 쿠포는 아예 랑티에를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하며 데리고 들어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랑티에는 제르베즈와 동거인이 된 것이다.

 

 

제르베즈는 예전과 다름없이 세탁일을 했지만 놀고먹는 두 남자를 먹여살려야 했기 때문에, 갈수록 가계가 어려워져가고 있었다. 여직공들마저 랑티에와 어울려 노느라고 일의 능률도 떨어져갔다. 결국, 몇 달이 채 못가서 외상값에 허우적대고, 일거리도 떨어졌으며, 직원을 쓸 여력마저도 없게 되었다. 거의 파산상태나 다름없는 처지임에도 쿠포와 랑티에는 그저 세탁소에 돈이 들어오는 족족 파먹기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거인 셋에 대한 이상한 소문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누구랑 누구랑 잔다, 셋이 같이 잔다더라는 둥... 물론 소문이 사실은 아니었지만, 제르베즈는 랑티에가 계속 심상찮게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견디기 힘들어하는 제르베즈를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구제는 그녀에게 어렵사리 같이 멀리 떠나자는 제안을 꺼낸다. 그래야 둘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제르베즈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편, 매일 주점을 돌며 술 마시기에 바쁜 쿠포는 랑티에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면서 그가 시키는 대로, 가게 안의 돈을 계속 가져다준다. 랑티에는 손끝하나 안 대고 제르베즈의 돈을 착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돈으로 둘은 목로주점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11월의 어느밤, 랑티에와 쿠포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끊임없이 부어대는데, 무슨 꿍꿍이 속인지 랑티에는 취한 척만 할 뿐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계획적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쿠포를 만들어놓은 다음, 집에 돌아와 제르베즈에게 수작을 부리려는 속셈이었다. 돈을 착취하고 이제는 몸마저 착취하겠다는 것이다. 제르베즈가 반항해도 이미 그녀의 몸은 드러나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의 침대에 끌려가고 있었다.

 

 

이제 매일 밤 랑티에의 침대로 제르베즈가 기어든다는 소문이 금세 퍼지고, 동네는 온통 제르베즈를 비방하는 말들로 가득 찼다. 처음에는 자기혐오감에 한동안 빠져 있었으나, 회수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차츰 예사로운 일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쿠포 역시 암묵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인정해주었다. 이제는 습관처럼, 당연하게, 제르베즈는 한 집에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여인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전락해가는 그녀의 생활 역시 나태해졌다. 점차 손님의 발길이 끊기면서 가게는 망하기 일보직전이었고, 굶지 않기 위해 집안에 있는 살림도 전당포에 하나둘씩 잡혔다. 제르베즈를 공유하면서부터 랑티에는 살림에서도 쿠포와 대등하다고 생각하고 가게에 눌러앉아 조금이라도 돈이 들어오면 그것을 쥐고 나갔다. 그 두 사내는 여자나 가게는 어찌되든 신경쓰지도 않고, 그들 입맛대로, 그들 기분대로 뭐든지 했다.

 

 

12월의 어느날 밤, 마침내 저녁을 굶게 되었다. 랑티에가 이 집에 동거한 지 2년 만에 닥친 결과였다. 하지만 비열한 머리가 너무 잘 돌아가는 랑티에만은 언제 어디에서든 먹고살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는 달콤한 말들로 비르지니와 그녀의 남편 프와송을 사로잡아 그들에게서 저녁을 얻어먹었다. 한술 더 떠 제르베즈의 가게를 비르지니와 프와송 부부에게 넘기는 데도 성공했다. 이제는 그 부부 사이에 끼여 그들을 조종할 작정인 것 같았다.

 

 

그해 겨울의 추위는 쿠포의 어머니를 데려갔다. 장례식장에서조차 제르베즈는 아파트 주인으로부터 밀린 집세를 독촉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장례식 비용까지 빚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영원한 후원자, 구제의 도움으로 다행히 장례식 비용은 간신히 해결했다. 가슴속 깊이 뜨거움을 느끼며, 그녀는 왜 일찌감치 구제와 도망가지 못했는지를 후회하고 또 후회해본다. 사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었다. 자기 생명의 일부였던 가게도, 여주인으로서의 긍지도, 그리고 그밖의 감정도. 그녀는 시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이 모든 것들을 묻어버리고 돌아왔다.

 

 

 

 

머나먼 여로

쿠포 부부는 계단쪽 손바닥만한 방으로 이사를 했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상황에서 제르베즈는 얼마 동안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그러나 끼니마저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예전에 일하던 포코니에 부인의 세탁소에 다시 나가기로 했다. 일도, 남편도 모두 엉망이 되었는데 이제는 딸 나나까지 이상한 짓을 하고 다녔다. 나나는 소행이 좋지 않다 해서 성체도 겨우 받은 상태였다. 계속되는 생활고 때문에 벌써 열다섯에 이른 나나를 꽃 만드는 조화공으로 보내야 했다. 소녀다움도 없고 음란한 끼가 다분한 나나는 집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고, 따라서 돈을 보낸 적도 없었다. 지독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제르베즈는 일급까지 깎였다. 일에 대한 부지런함도, 성의도 없는 데다가 기술마저도 난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견습공의 일급 수준에, 완전히 의욕을 잃고 태만해져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일터에서 훌쩍 나가버리기도 하였다.

 

 

쿠포 일가는 전락을 계속했다. 나나는 집을 나갔다가 한동안 안 들어오고, 다시 들어왔다가는 곧 나가기를 밥먹듯 했다. 제르베즈는 일자리마저 뺏겨 완전히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과거의 기품도, 아리땁던 모습도, 애정이나 예절, 존경에 대한 욕구도 어디엔가 다 묻어버렸다.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다. 그녀 역시 조금씩 술을 입에 대면서 돈만 조금 생기면 목로주점을 찾곤 하였다.

 

한편, 랑티에는 이제 쿠포 부부에게 하던 짓을 프와송 부부에게 하고 다녔다. 프와송이 없는 틈을 타서 비르지니와 뒹굴고, 계획했던 대로 비르지니의 식료품가게에서 마음대로 과자와 초콜릿 등을 먹으며 지내는 것이다. 예전에 바로 제르베즈의 가게였던 바로 그곳에서, 마음대로 제르베즈의 돈을 썼듯이 아주 편하게 생활했다. 반면, 알코올에 찌든 쿠포는 수전증에 목소리도 변했고, 한쪽 귀도 먹었으며, 시력도 극히 쇠약해졌다. 몸은 주름투성이에 완전히 산송장이나 다름없어보였다.

 

 

돈을 구할 데가 없는 쿠포네는 이제 집주인한테 쫓겨날 판이었고, 제르베즈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신세가 되었다. 뱃속이 텅 비어 있으면 시간의 흐름도 늦게 마련이다. 현기증 때문에 눈을 감으면 금방 잠이 들었다가도 허기에 못 이겨 다시 깨고, 겨우 정신을 가다듬으면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생각다 못해, 로리외 부인을 찾아가 돈을 꾸려 했으나 헛된 일이었다. 그 인색한 인간들이 도와줄 리 만무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아버지인 비자르 영감에게 늘 두들겨 맞으면서도 어린 동생들을 엄마처럼 챙기던 여덟 살짜리 랄리의 마지막을 보게 된다. 랄리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인데다, 뼈들이 튀어나올 것처럼 말라 있었다. 정말 비참한 현실이었다.

 

 

제르베즈는 거리에서 여자들이 호객행위를 하며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을 본다. 극도의 허기는 결국 그녀로 하여금 그것을 따라해보게 만들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남자들을 불러본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냥 지나쳐가고, 제르베즈는 계속 여보세요, 잠깐만요를 외친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매춘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도 도둑질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고, 지나가는 남자들을 다시 불러본다. 그러다 구제와 마주친다. 그녀는 순간 하늘을 원망했지만, 구제는 오히려 그녀를 집에 데려다가 따뜻하게 해주고 배불리 먹게 해준다. 그녀는 예전의 자신의 소망을 생각해본다. 성실히 일하고, 날마다 빵을 먹고, 말쑥한 잠자리를 갖고, 아이들을 제대로 기르고, 매맞는 일도 없이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반대였다. 하는 일도, 먹을 것도 없고, 딸은 갈보짓을 하고 남편은 매질을 한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큰길 한복판에서 쓰러져 죽는 일뿐이다.

 

 

예전의 함석공, 하지만 지금은 주정뱅이인 쿠포는 완전히 제정신을 잃고 정신병원에 격리되었다. 이상한 춤과 알 수 없는 노래, 고함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발작을 보였다. 결국, 나흘간의 발작 이후, 쿠포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집마저 잃어버린 제르베즈 역시 계단 밑에 만들어놓은 개집만한 잠자리에서 비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관을 들고 온 사람은 평생 장의사노릇을 하는 바주주 영감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입관하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누구나 다 가는 곳이라네. 하지만 먼저 가겠다고 밀고 덤비고 할 건 없지. 가야 할 차례가 있고 가서 묻힐 자리는 다 있는 법이니까. 무작정 죽겠다고 서두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쉽사리 가게 되는 곳도 아니니까 말일세.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 여기 누운 이 사람도 처음엔 싫어했지만 나중엔 가고싶어했지. 나는 기다리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이제 그 시기가 온 모양이야. 자아, 갑시다! 당신은 이제 행복한 여자라구. 잘 가라구, 미인 아가씨!

<“목로주점(L'Assommoir)”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에밀 졸라 지음, 글쓴이 이윤경님>

 

 

저 자 에밀 졸라 Emil Zola(1840∼1902)

정의의 수호자, 프랑스가 사랑했던 시대의 양심.

 

 

쿠데타도 잠재워버린 목로주점의 외설 논쟁

목로주점은 발표 즉시 프랑스 문단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제3공화국은 도덕적 질서를 강조하는 시대였기에, 노동자들의 삶을 역겨울 정도로 저속하게 그려놓은 이 작품을 비난, 단죄했다. 외설스럽다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1876년 6월 5일 공화주의 계열 신문인 『공익 Le Bien public은 마지막 13장까지 마무리짓지 못하고 6장 말미에서 게재를 중단하고 만다. 그러나 주간지 『문학공화국 La R publique des lettres은 나머지 부분을 게재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목로주점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논쟁은 더욱 크게 일어났다. 사람들은 병적인 지속 발기증. 동물적 악취등의 수사를 동원하여 목로주점을 비난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동족을 경멸함으로써 연간 3천 프랑을 벌어들일 기술을 발견했노라고 졸라를 비아냥대기도 하였다. 1877년 5월 16일,막마옹 Mac-Mahon 원수가 의회에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 때문에 정치적 소동이 야기됐지만, 그마저 이 논쟁의 폭풍우에 슬그머니 묻혀버릴 정도였으니 『목로주점에 연관된 논쟁의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성공은 스캔들에 비례했다. 플로베르의 표현에 따르자면 아무튼 이 소설은 광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출간된 1877년 한 해 동안 38판을 거듭하고 1881년에는 10만부 출간에 도달했다고 하니 19세기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보면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셈이다. 졸라는 마침내 『목로주점의 인세로 메당M dan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서 졸라를 주축으로 모인 청년학파를 메당의 그룹이라 하였고, 이후 이들은 자연주의 소설이론을 주창한다.

 

 

유전과 환경의 소설 루공 마카르총서

졸라는 실험적 방법만이 허위와 오류의 세계로부터 소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하듯, 인물과 그 인물이 처한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소설의 임무라 여겼던 그는, 실험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환경결정론과 유전론을 끌어들였다. 자신의 소설이론을 실천에 옮긴 것이 바로 총 20권으로 이루어진 『루공 마카르 Rougon-Macquart』. 이 작품은 부제가 보여주듯이, 2제정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를 작중인물들의 수대에 걸친 혈통과 유전의 법칙을 연구, 적용해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목로주점의 알콜 중독자 쿠포와 제르베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랑티에가 술 한 방울만 마셔도 살의를 느끼는 유전자를 가진 채 제르미날의 주인공이 되고, 엄마의 부도덕한 성관계를 자주 목격한 딸 나나는 곧 매춘부로 살아가는 『나나의 주인공이 된다.

 

이 방대한 창작 욕망은 발자크의 총서 인간희극 La Com die Humaine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자극이라 할 수 있다. 발자크의 『인간 희극이 제정 말기의 왕정복고시대와 7월 왕정 치하의 사회상을 그려냈다면, 졸라의 『루공 마카르는 제2제정하의 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두 개의 가지를 통해 내려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 『루공 마카르는 인간의 육체에 대한 자연적 탐구이면서 동시에 인간 사회에 대한 사회적 탐구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처음에 루공이라는 건강한 농부와 결혼하고, 그가 죽은 후 마카르라는 술주정뱅이와 결혼한다. 푸크로부터 출발하는 유전은 후손의 기질, 환경, 그리고 다른 피와의 결합 등의 요인으로 인해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유전과 환경의 축에 따라서 제2제정 사회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정의의 수호자, 시대의 양심 졸라

 

졸라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대로 드러낸 시대의 증인이기도 하지만, 그를 더욱 정의의 투사로 만든 직접적 역할을 한 것은 아마도 드레퓌스Dreyfus 사건일 것이다. 그 사건은 프랑스군 수뇌부가 군부의 위신과 장군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죄없는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 대위를 독일의 간첩으로 몰아 무기징역을 선고한 데서 연유한다. 광기어린 여론은 무조건 군부의 편을 들어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군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국가 안보를 해치는 자들로 몰아붙였다.

 

이에 졸라는 1898년 1월 31일자 『여명 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 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하여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 군부의 음모 등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프랑스 전국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에 빠졌고, 국민 전체가 재심요구파와 재심반대파로 양분되었다. 재심요구파에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진보적 지식인들이 앞장섰고, 재심반대파에는 왕당파, 국수주의자, 가톨릭교도, 반유대주의자 들이 한편이 되어 싸웠다. 후에 결국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사실이 천하에 밝혀졌음에도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제, 드레퓌스 사건은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양심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 양심의 선두에 졸라가 있었다. 결국 드레퓌스는 석방되었고, 그것은 바로 프랑스 양심의 진정한 승리를 확인시켜준 셈이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거짓과 협잡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지식인의 역사적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목로주점를 읽다보면,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알 수 있다.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파리 빈민가의 가난과 그곳에 즐비하게 늘어선 술집들이 야기하는 알코올중독 등이 주인공 제르베즈를 필연적으로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안타까운 여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살려고 무던히도 애썼고 성실히 일했던 제르베즈! 그녀가 소원했던 것은 아주 평범한 것이었다. 착실하게 일해서 세 때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작고 아담한 집에서 잠잘 수 있고, 아이들을 착하게 기르고, 남편에게 매맞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너무도 소박하고 평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원 같아 보이지도 않는 그런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절실한 꿈이었다.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한치의 나아짐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목로주점 사람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일 그들의 삶에서 희망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바람기 있는 남편을 둔 보슈 부인은 남편이 한눈팔지 않는 것일 테고, 술 취한 남편에게 매질당하는 비자르 부인은 매맞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구제 모자는 구제 영감의 속죄를 위해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런 것들이 아닐까? 우리들도 역시 무언가를 희망한다. 희망의 궁극적인 목적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함이다. 『목로주점의 그들도 똑같다. 그들의 소원도 단지 그것, 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환경이 그들을 짓밟고 만다. 가난이라는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지만 그 노동현장은 노동자들을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그런 현실을 잠시나마 잊으려고 찾은 출구는 빈민가에 늘어선 술집들이다. 언제나 피로와 굶주림에 젖어 있는 노동자들에게 알코올은 모든 것을 잊게 하고, 덧없는 행복을 보장해주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점차 절망을 이겨낼 힘도 잃어버린다. 비에 옷이 조금 젖으면 상당히 신경쓰이고 빨리 갈아입고 싶지만, 흠뻑 젖으면 하는 수 없이 비 피하기를 포기하는 것처럼 알코올로 인한 그들의 무력감은 삶을 포기상태에 이르게 한다. 될 대로 돼라 식으로. 그래서 이내 타락하고 전락해버린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이란 견디기 힘들고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니 그냥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고 졸라가 이 작품을 쓴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졸라는 시대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목로주점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사회고발의 냄새가 나지 않지만 그것은 곧 제르베즈의 아들, 에티엔이 주인공으로 나올 『제르미날에서 이루어진다. 『목로주점민중의 냄새를 가진 민중에 대한 최초의 소설이다. 그만큼 민중의 냄새가 계속 풍겨나가길 바라는 소설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는 절망에 굴복하고 결국은 몰락하는 삶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의문을 갖게 된다. 평범하고 소박한 그들이 그조차도 못 이루고 절망에 이르러야 했던 이유에 대해, 열심히 살려고 애썼던 예쁜 여인 제르베즈가 매춘까지 이르렀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졸라는 어쩌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해보고자 이런 작품을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희망이란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무엇이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하는지를, 무엇이 희망을 숨죽이게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목로주점은 우리들 모두의 연민의 작품이자, 부정한 환경에 대한 항의와 개혁을 갖게 해줄 힘을 주는 작품이다. 사실, 『목로주점이라는 제목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의 현실을 그리고 있는 내용에 반해 제목이 낭만적인 경향이 있는 듯하다. 대부분 『목로주점이라고 번역돼 나오는데, 민중의 냄새를 의식한다면 오히려 『선술집정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졸라의생애와작품

 

1840 4 2일 파리에서 출생.

1843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자란다.

1852 부르봉 중학교에 입학, 거기서 나중에 위대한 화가가 될 폴 세잔과 친구가 된다.

1854 콜레라 전염병을 피해 시골로 피신하여 뒤마, 쉬(Sue), 베르테(Berthet), 곤잘레스 (Gonzal s) 등의 연재소설을 탐독한다.

1856 파리에서 온 교사 덕분에 위고, 라마르틴, 뮈세 등의 문학세계를 알게 되고 그들을 예찬하면서 처음으로 습작을 시작한다.

1858 다시 파리로 옮겨, 생루이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1859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 응시, 두 번 실패하고 경제적 이유로 고등학교도 중단한다. 습작을 계속하며 미슐레를 탐독한다.

1860 경제적 이유로 부두 세관 사무원으로 취직하나 곧 그만둔다. 이때 조르주 상드와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자신의 시편들을 거장 위고에게 보낸다.

1862 아셰트출판사에 입사, 여기서 중요한 지적 성장기 4년을 보내게 된다. 이 해에 프랑스로 귀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아버지가 이탈리아인이었다)

1864 아셰트 출판사의 필자들이었던 생트 뵈브, 텐느 등과 관계를 맺는다. 최초의 창작집 『니농에게 주는 이야기 Contes Ninon가 출판됨.

1865프티 주르날, 피가로 등 주요 신문에 서평, 예술평을 기고한다.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클로드의 고백 La Confession de Claude』출간.

1866 작가로 살 것을 결심하고, 아셰트 출판사를 떠난다. 『사건지 등 여러 신문에 기고는 계속한다. 『죽은 여인의 소원 La Voeu d'une morte』 출간.

1867 외젠느 쉬(Eug ne Sue)의 파리의 비밀을 모방한마르세유의 비밀 Les Myst res de Marseille, 루공 마카르이전에 발표된 작품 중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테레즈 라캥 Th r se Raquin 출판.

1868 65년에 썼지만 상연되지 못했던 희곡 마들렌느 Madeleine』 소설화, 『마들렌느 페라라는 이름으로 출판. 발자크를 다시 읽으면서 『루공 마카르 시리즈를 계획한다.

1870 알렉산드린느 멀레와 결혼.

1871루공 가의 행운 La Foutune des Rougon』, 이전투구 La Cur e 출간

1873파리의 배 LeVentredeParis 출간

1874 4 14일 이른바 야유받은 작가들의 식사가 처음으로 있게 되며 앞으로 매월 열릴 이 식사모임에서 플로베르, 투르게니에프, 도데, 에드몽 공쿠르, 졸라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게 된다. 마네 덕분에 대시인 말라르메와도 친해진다. 『플라상스의 정복 La Conqu te de Plassans 출간

1875무레 사제의 잘못 LaFautedel'abb Mouret 출간

1876외젠느 루공 각하 Son Excellence Eug ne Rougon 출간

1877목로주점 L'Assommoir』 출간

1878목로주점의 성공이 가져다준 수입 덕분에 파리 근교 메당(M dan)에 집을 산다. 『사랑의 한 페이지 UnePaged'amour 출간

1880나나 Nana 출간

1882살림 Pot-Bouille』 출간

1883부인 백화점 Au Bonheur des Dames』 출간

1884삶의 기쁨 La Joie de vivre』 출간

1885제르미날 Germinal』 출간

1886작품 L'oeuvre』 출간

1887La Terre』출간. 자연주의를 따르던 다섯 명의 젊은 소설가들이 그들의 스승인 졸라와의 절연을 통고하고 자연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나선다. (5인선언)

1888Le R ve 출간

1890인수 La B te humaine 출간

1891L'Argent』 출간

1892패주 La D b cle 출간

1893의사 파스칼 Le Docteur Pascal』 출간

189498 현대사회의 종교에 대한 문제와 부르주아지에 맞선 노동자들의 비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작품으로, 세기말의 종교적, 철학적, 사회적 결산을 담은 『세 도시 LesTroisVilles시리즈인루르드 Lourdes』로마 Rome』, 파리 Paris』가 각각 94년, 96년, 98년에 출간된다.

1897 드레퓌스 옹호에 나서 피가로지에 세 편의 글 청년들에게 주는 편지를 발표한다.

1898 프랑스를 향한 편지라는 팜플렛을 발표하고 이어 1월 13일 『여명지에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를 싣는다. 군부의 부정을 공격한 일로 사직 당국에 의하여 고발되어 징역 1년, 벌금 3천 프랑의 판결을 받고 영국으로 망명한다.

1899 드레퓌스 재심 결과, 무죄가 밝혀짐으로서 6월에 다시 귀국한다. 새로운 사회의 창건을 위한 메시지를 담을 의도로 구상된 『네 복음서 시리즈 중 첫 번째 풍요 F condit 출간

1901네 복음서 시리즈 두 번째, 『노동 Travail』 출간

1902 9 28일, 가스 중독으로 사망한다.

1903 시리즈 세 번째 작인 진실 V rit 이 사후 출판. 마지막 『정의는 습작노트만을 남긴 채 미완으로 남아 있다.

1908 6 4일 졸라의 유해가 프랑스 위인들이 묻히는 팡테옹으로 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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