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배덕자!

[중산] 2012. 1. 10. 08:41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가자 미셸은 임종 바로 전에 마리슬리느와 결혼한다. 아직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다. 결혼 후 신혼 여행지에서 미셸에게는 결핵 증세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대단히 심각한 상태였으나 마리슬리느는 그 옆에서 갖은 희생을 다하며 그를 간호하고, 미셸 역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후 꾸준히 행한 요양과 식이요법으로 병은 조금씩 호전된다. 그는 이후 다시 생명을 얻은 데 기쁨을 느끼고 그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자연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이 몰두하던 학문에 회의를 느낀다. 구태의연한 학문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학문에의 열정으로 새로운 삶에 열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침 아내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임신을 한 것이다. 미셸에게는 나날이 새롭고 행복하다. 하지만 행복의 끝을 암시하듯 아내는 유산을 하고 결핵 증세까지 보이는데...(요약)

 

 

 

 

배덕자(L'Immoraliste), 앙드레 지드 지음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미셸                       학자, 아버지 사망 후 마리슬리느와 결혼한다.

마르슬리느                    미셸의 아내

바쉬르                    요양지에서 미셸이 만나는 소년

목티르                    요양지에서 만난 소년으로 미셸이 아내를 간호할 때 다시 재회한다.

보카즈                    미셸의 농장 관리인

샤를르                    보카즈의 아들

메날크                    미셸이 건강을 회복하고 재회하는 친구

 

 

 

 

내 생애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네

 

미셸은 어느날,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던 세 친구를 불러모은 뒤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미셸은 죽음에 임박한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별 애정도 없이 마르슬리느와 결혼을 했다. 그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미셸은 겨우 스물네 살이고 마르슬리느는 스무 살이었다. 미셸은 그녀에게 조금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지만, 자애라든가 일종의 연민 또는 상당한 존경이라는 기분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미셸은 열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면서 엄격한 것을 존중하는 취미를 남겨주었고, 그는 온통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아버지는 그를 뒷바라지하면서 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미셸은 그 당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제법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배워서 히브리어, 범어를 당장에 깨쳤고, 페르시아어와 아라비아어도 배웠다. 스무 살쯤에는 아버지 일을 거들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그는 고대 학문과 책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스물네 살이 되었다. 그는 단지 연구에다 비상한 정열을 쏟을 뿐이었다. 몇몇 친구들을 사랑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친구 자체보다는 오히려 우정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았다. 그들에 대해서는 헌신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것은 고결한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자기 마음속의 아름다운 감정을 하나하나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요컨대 자기 자신을 몰랐던 것처럼 친구들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이다.

 

 

또 하나, 아버지와 그는 간단한 물건만으로 살았고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서야 상당한 재산이 있음을 알고 당황했다. 결혼 후 알게 된 사실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건강이 극히 좋지 않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알게 됐다. 너무나도 평온하고 순조로웠던 생활은 그의 체력을 약화시킨 동시에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아내 마르슬리느는 건강해보였다.

 

결혼 후 튀니스 행 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부친상 직후에 치른 결혼으로 미셸은 힘이 쑥 빠졌는데, 배를 타고서야 겨우 사물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두 집안이 가까이 지내온 덕에 그녀가 자라는 것을 보아왔던 그였는데,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그녀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것이다. 미셸은 튀니스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신비로운 젊음을 발휘하고 마르슬리느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러나 여행이 계속되면서 미셸은 피로를 느꼈고 계속 기침을 하면서 가슴 위쪽의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남쪽의 따뜻한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동하는 도중 마차 속에서 추위와 덜컹거림에 지치고 말았다. 더구나 기침은 갈수록 심해졌다. 마차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기침이 멈추는가 했더니 이제는 담이 나왔다. 속이 메스꺼워 손수건에 토하고 나서는 잠든 아내의 스카프로 입을 닦았다. 겨우 담이 그치고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보니 손수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처음에는 숨겼지만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미셸은 아내에게 피를 토했노라고 말했다. 여행 중이라 급히 연락할 수 있었던 군의관이 그를 진찰했는데 미셸은 상당히 중태였다. 그는 피곤에 지칠 대로 지쳐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그렇게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르슬리느는 단호하게 그가 회복될 것을 믿고 침착하게 남편을 위로했다. 그녀는 열렬한 애정으로 남편을 보호하고 간호했다. 그녀는 출발 지시도, 숙소 예약도, 그밖의 모든 준비를 맡아 면밀하게 신경을 쓰면서 남편과 함께 비스크라로 향한다.

 

 

 

사는 거다! 나는 살고 싶다

 

미셸은 병세가 매우 심한 상태에서 마르슬리느의 지극한 간호로 소생해갔다. 생명의 희미한 빛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생명이 뜻밖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곁에 있는 아내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옆에서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했다.

 

이렇게 지내던 중에 아내는 어느날 바쉬르라는 아랍소년을 집에 데리고 왔다. 미셸의 무료함을 달래주려는 배려였지만 그는 처음에는 좀 귀찮았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서부터, 바쉬르의 존재가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게 되었을 뿐더러 다음날에는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미셸은 그애의 건강함에 반했다. 그러나 이때도 여전해 각혈은 계속되었고, 입 안 가득 고인 피는 검고 끔직한 핏덩어리였다. 그는 몸이 떨리고 두렵고 울화가 치밀었다. 회복되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달리 그는 삶에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다. 별안간 어떤 욕망이 그를 붙잡았다.

 

 

사는 거다! 나는 살고 싶다.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미칠 듯이 몸부림치면서 살기 위한 노력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의학 팜플렛과 전문서적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치료법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는 일단 자신의 의지로 병을 고치기로 마음먹고 우선 식사부터 영양식으로 바꾸었다. 그날, 그는 새로운 용기가 생겨나는 예감에 도취되었고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한편 마르슬리느는 깊은 신앙심으로 그를 위해 기도했다. 아직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한 그는 자주 땀을 흘리고 한기를 느꼈다. 전반적인 신경 장애가 겹치기까지 했다.

 

 

이렇게 회복이 지지부진하던 병세는 맑은 공기와 최고의 식사로 영양섭취를 한 덕에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러 공원에도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부드러운 대기, 흐르는 시냇물, 만발한 꽃들, 이 모두가 그의 기분을 한결 풀어주었고 거기에서 만난 아이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호흡도 편해졌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그동안 잠자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그에 따라 사고도 건강해졌다. 몸 속에는 예상조차 못했던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고 마음은 행복에 젖어들었다.

 

마르슬리느는 미셸의 건강이 회복된 것에 기뻐하며 오아시스에 있는 멋진 과수원 얘기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그가 조금씩 산책을 늘려 병이 완전히 낫도록 했으면 바랐다. 그곳은 빛과 그늘로 채워진, 조용하고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그런 장소였다. 처음에는 아내가 따라와 시중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혼자서도 산책을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다. 외출하지 않을 때는 주변의 아이들이 찾아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했다. 아내가 데리고 온 아이들 중에는 목티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얌전하고 나약해보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웠고 미셸의 마음에 꼭 드는 유일한 아이였다. 특히 찬바람이 불면서 다시 악화된 병세 때문에 집안에서 우울하게 보낼 때는 아이들이 유일한 낙이 되어주었다.

 

 

2월의 우기가 지나면서 날씨는 갑자기 더워졌다. 하늘은 파랗게 개고 대기는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미셸은 건강이 금세 회복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의 대지가 겨울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기가 넘쳐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은 쇠약했지만 몸에서 상쾌한 열이 오름을 느꼈고, 이런 벅찬 감정으로 잠을 설쳤던 날 밤에는 성서를 펼쳤다.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젊을 때뿐이다.

 

다음날 새벽에 그들은 출발했다. 아직도 싸늘한 바람을 만나면 금세 몸이 안 좋아지고 구름이 지나가도 두려워지곤 했지만, 적어도 폐는 나아가고 있었다. 설사 재발한다 해도 전처럼 오래가지 않고 가볍게 끝났다. 병이 조금씩 나아가자 미셸은 아내에게 애정을 쏟을 여유가 생겼다.

 

 

 

오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병에 걸린 후로 한동안 그는 반성도 규율도 없이 짐승이나 아이들처럼 사는 것에만 전념해왔다. 이제 조금은 주의를 돌릴 수 있게 되자 미셸은 다시 자세를 바로잡아 뚜렷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시라큐스에서나 더 먼곳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는 다시 연구를 시작하고, 이전처럼 면밀한 조사에 몰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서 뭔가가 변질되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감각이었다. 이제 그의 눈에 과거의 역사는 언젠가 작은 뜰에서 본 밤 그림자의 움직이지 않는 자세, 그 끔찍한 부동의 자세, 죽음의 자세와 같은 것으로 보였다. 아직 그가 역사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을 현재와 결부시켜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해박한 지식이 그의 기쁨을 방해했다. 고대 그리스 극장의 유적을 보고는 고대에 행해지던 제전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는 죽음이 두려웠다. 폐허를 피하게 되었다. 전에는 자랑스러웠던 그러한 지식을 마음속으로 멸시하게 되었다. 죽음의 날개가 스쳐간 뒤에는, 아무리 중요하던 일도 이미 그렇지 않게 된다. 중요하게 보이지 않던 것, 또는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때부터 그가 발견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인간, 참다운 인간이었다. 이미 그는, 이전의 완고하고 편협한 학자도, 병약한 노력가도 아니었다. 이전에 공부에 쏟았던 근면함을 갖가지 섭생과 체력관리로 돌렸다. 그는 차츰 건강이 좋아져갔다. 모든 활동을 육체를 단련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변화가 있었다면, 그동안 길렀던 수염을 깎아버린 것이다. 이전의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고문서 학교 출신다운 모습이었으나 수염을 자른 후에는 가면을 벗은 듯했다. 아무 할 일이 없는 그로서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낸 것이기도 했다. 아내가 낯설음을 느꼈을 만도 했지만 그녀는 그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이 나아짐에 따라 아내를 보살피고 사랑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갖고 활기를 갖게 되었다. 언젠가 시내에서 마르슬리느를 만나기로 한 날, 미셸은 아내가 탄 마차가 미친 듯이 달리고 마부가 마구 후려치는 채찍에 말이 펄쩍 뛰어올랐다가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순간, 미셸은 분노가 치밀어 욕설을 퍼붓고 달려들어 마부를 후려갈겼다. 난데없는 공격을 당한 마부는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그에게 저만한 힘이 있었던가!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한 것에 놀라 미셸과 마르슬리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셸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그녀를 위해서 생명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갔다.

 

그들은 소렌토에서 온화하고 조용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미셸에게 이러한 방랑생활은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지만 아내는 이를 임시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놀라긴 했지만 미셸 역시 아내의 생각이 옳음을 인정했다.

 

 

건강이 회복되고서도 빈둥빈둥하던 무위도식에서 슬그머니 공부하고 싶은 욕망이 되살아났으므로, 그는 아내와 진지하게 귀국 이야기를 상의했다. 마르슬리느는 매우 기뻐했다. 마르슬리느와 장래를 의논하는 데서 미셸은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다.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분명히 결정하지는 못했으나 그는 조용한 곳에 가고 싶었다. 겨울에는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연구자로서 나폴리에 가기로 했다. 콜레즈 드 프랑스에서 강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르슬리느도 여러 가지를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그의 연구를 도왔다. 여행의 마지막 무렵, 그들의 행복은 실로 순탄하고 조용한 것이었다. 인간의 행복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걸까.

 

 

 

난 눈을 뜬 채로 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생을 사랑하고 있어

 

미셸 부부는 7월초에 라 모리니에르에 도착했다. 이곳은 미셸 선친의 재산인 목장이 있는 곳이다. 보카즈라는 늙은 소작인이 농장과 수확물을 관리하면서 그의 재산을 돌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미셸 부부는 옛날 집에 온 기분으로 편안히 지냈다. 지난일을 회상하면서 전혀 뜻밖의 감동을 받기도 했고, 그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 후에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고백을 듣고 난 뒤, 미셸은 한동안 하루 해의 전부를 그녀 곁에서 보냈다. 숲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서 아내와 보낸 시간들은 순간순간 유쾌했고 모든 것이 하나의 행복으로 엉켜 녹아들어 아침과 밤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는 서서히 일을 시작했다. 온화한 고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자연의 풍성함 속에 융합되어갔다. 그런데 소작인 보카즈는 그의 주위에서 부지런히 시중을 들고, 하인들을 지휘하고, 이제까지의 계산서를 설명하는 등 자신의 정직함을 과시하려는 태도로 미셸을 귀찮게 했다. 보카즈의 아들 샤를르는 수줍음을 띤 잘생긴 소년으로, 아버지와는 달랐다. 미셸은 웅덩이를 고친다거나 낚시를 하면서 그와 친숙해졌는데, 샤를르는 토지와 그 관리, 경영에 대해 미셸이 민망할 만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보카즈처럼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샤를르는 농사를 배우며 농업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미셸의 소유지는 넓었다. 샤를르는 땅이 제대로 경작되어 있지 않다, 손실이 있다, 경작인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여러가지 조언을 주기도 했다. 정말 그러고 보니 수익이 신통찮고 가축 관리에서도 속임을 당하고 있음이 눈에 보였다. 뿐만 아니라 샤를르는 말을 다루는 기술도 좋았다. 미셸은 그를 신임했고 산책도 즐기고 유쾌하게 함께 지냈다. 그리고 샤를르의 의견에 따라 소작일을 검토하고 몇 명에 대해서는 계약을 취소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샤를르는 너무나 기뻐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연구는 거의 완성돼가고 그럼으로써 아내 곁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가닥 미풍이 가끔 잔잔한 수면에 잔물결을 일게 하듯 자그마한 감동이 그녀의 이마에 나타나곤 했다. 그녀는 자기 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새로운 생명의 고동을 느꼈다. 가을이 되자 아내의 몸도 그렇고 새 살림집도 걱정이 되고 첫 강의도 준비해야했으므로 미셸 부부는 파리로 서둘러 돌아갔다.

 

 

그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리에 와서 좀더 큰집을 구했고 강의와 저서, 농장의 새로운 수입까지 계산에 넣고는 지출을 주저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물건을 사느라 시간을 보내고 이어서 연일 사람들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마르슬리느는 거의 녹초가 돼서 저녁때가 되면 기진맥진했다. 미셸은 이러한 피로의 원인을 알고 있었으므로 방문객을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방문객을 접대하거나 답례 방문도 했다. 아내 곁으로 돌아오면 그는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생기는 권태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털어버렸다. 이때까지 그에게 미래는 분명 확실한 것이었다.

 

 

그후로 미셸은 강의를 시작했다. 주제에 끌려들어가 그는 첫 강의에 새로운 열정 전부를 쏟았다. 강의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비난했고 또 다른 이들은 칭찬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미셸은 옛친구 메날크와 재회했다. 그는 미셸의 강의를 좋게 평가했고 거만했던 모습과는 달리 강의에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미셸의 변화를 이미 알고 있던 그는 미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는 미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비난했다. 그후 3주일쯤 뒤 메날크는 미셸의 집을 방문했다. 그날은 방문객을 위해 집을 개방하기로 한 날이었다. 마르슬리느는 얼굴빛이 파리하고 피로해보였다. 아직 메날크가 남아 있었는데, 그는 요즘 최근의 탐험으로 얻은 진기한 발견들로 국가와 전 인류에게 크게 공헌했다는 갑작스런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전과는 아주 다른 평가와 대우였다. 그러나 이런 반응에 무심한 메날크는 또 다시 여행할 계획을 밝힌다. 그리고는 출발 전에 자신의 집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미셸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며칠 후 마르슬리느의 몸이 더 악화되었다. 미셸은 임신한 몸으로 방문객을 맞아서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탈이 나고 열까지 나는 바람에 의사가 불려왔다. 의사는 즉시 엄중한 요양을 명령했다. 그녀는 벌써 전부터 그래야 했던 것이다. 이후부터 그녀는 누운 채로 지내야 했고 까다로운 명령에 온순하게 순종했다. 그러나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많은 양의 약을 권했을 때는 반항하고 흥분했다. 사흘 동안 그녀는 약 먹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그동안에 열이 올랐으므로 그녀로서도 더 이상 거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애처로운 체념 때문에 슬펐다. 그녀의 건강은 그후 며칠 사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럭저럭 대처하는 동안 메날크와 약속한 밤이 다가왔다. 아픈 아내를 두고 친구에게 가기가 꺼림칙했으나 이미 해버린 약속이었으므로, 미셸은 아내에게 중대한 약속 때문이라고 말하고 대신 곁에 간호원을 두고 길을 나섰다. 그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메날크를 만났다. 미셸은 함께 떠나자는 그의 청을 거절하고 아침이 되어서야 그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여느 때와는 다른 어수선한 분위기에 소스라쳤다. 그 사이 상태가 나빠진 아내는 출산예정일도 아닌데 진통이 있었고, 의사가 황급히 달려와 아직도 환자 곁에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기를 잃고 만 마르슬리느는 파리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 뜻하지 않은 미래였다!

모든 것이 캄캄한 추억 속에 뒤섞여버렸다. 이후 마르슬리느는 회복이 제법 빠른 듯했다. 미셸은 자신을 정성껏 간호해주던 그녀를 생각하고 깊은 애정으로 간호에 매달렸다. 이따금 그녀는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가 정맥염을 앓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발생한 혈전은 이내 그녀를 삶과 죽음의 경계로 몰아넣었다. 그녀는 불안해보였다. 혈전은 꽤 중대한 장애를 일으키고 있었다. 심장에서 내뱉어진 끔찍한 핏덩이는 폐를 피로하게 하고, 충혈시키고, 호흡을 방해했다. 미셸은 이네 마르슬리느가 완쾌되는 것을 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절이 바뀌고 미셸의 강의가 끝나자 그들은 마르슬리느의 요양을 위해 도시를 떠났다. 의사가 신선한 공기 이상의 것은 없다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역시 쉬고 싶었던 그는 피로에 지쳐 다시 농장으로 가기로 했다. 마르슬리느는 노르망디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미셸이 다소 무모하게 떠맡게 된 농장 때문에 가볼 필요가 있다고 우겨 하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농장일에 전념한다. 마르슬리느는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고, 다정하고 얌전한 그곳 친구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두고 밭일을 보러 다녔다.

 

넓게 펼쳐진 풍경과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면서 미셸은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샤를르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샤를르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중절모를 쓴 어색한 신사로 나타난 그와의 대화에서는 이미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전의 순수한 모습이 사라진 그를 미셸은 멀리하고 숲속에서 벌어지는 밀렵을 즐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렵이 행해진다는 사실에 화를 냈던 그였지만 일꾼 중 한 사람이 그것을 관찰할 기회를 귀띔한 이후, 그는 그 현장을 엿보는 데 빠져들었다. 알고 보니 밀렵에 관여해 이익을 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었고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이 일이 계속 진행되도록 방조한 셈이 되었다. 이를 안 샤를르는 주인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행위라고 항의했다. 이에 미셸은 라 모니에르를 팔겠노라며 보카즈에게 알리라고 응수한다. 그날 저녁 마르슬리느는 몸이 불편해 식사하러 내려오지도 못했다. 그들은 닷새 후에 그곳을 떠났다. 집안정리도 힘겨울 정도로 악화된 건강은 한동안 회복되는 듯하더니 여행을 떠난 첫날부터 상태는 몹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의사가 불려왔지만, 그는 별다른 도움도 못될 걸 알면서도 아내의 가족 중에 혹여 결핵환자가 있었는지를 자꾸 알고 싶어했다. 미셸은 대충 확인도 하지 않고 환자가 있었다고 대답한다. 자신이 폐결핵 때문에 거의 절망할 뻔했다는 것, 그리고 자기를 간호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매우 건강했다는 것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것을 혈전 탓으로 돌렸다.

 

 

의사는 그것을 단순한 유인 요소일 뿐, 병은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알프스의 고지대로 요양갈 것을 권했다. 그곳의 대지와 접촉하면 반드시 나을 것이라면서. 곧 그들은 여행을 떠났다. 이미 대기는 맑고 차가워졌다. 승합마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아내의 심한 기침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독한 기침이었다. 마르슬리느는 기진맥진했다. 마침내 도착했으나 준비된 호텔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셸에게는 이제 강의도 없었지만, 농장은 팔려고 내놓았으니 그 뒤에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더구나 돈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그녀를 위해서라면 돈은 얼마라도 써버리고 싶었다. 사치에 혐오와 흥미를 동시에 느꼈다. 그러는 동안 정성어린 그의 간호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마르슬리느는 점차 좋아졌다. 미셸은 그녀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 최고급 요리를 주문했고 마차로 외출도 했다. 좀먹듯 그녀를 괴롭히던 연속적인 미열도 사라졌고 혈색도 좋아졌다. 건강에 좋다는 그곳의 공기를 만끽한 지금이라면 이탈리아로 내려가 따뜻한 봄의 혜택으로 완쾌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아내를 설득했고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한편으로 그는 고지에 싫증이 나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봄은 아주 짧았다. 습기가 많고 음침한 그곳의 날씨는 마르슬리느의 기침을 재발시켰다. 이후 그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더욱 남쪽으로 내려갔다. 밀라노에서 플로렌스로, 로마로, 나폴리로, 나폴리에서 다시 로마로 향했다. 그 와중에 마르슬리느가 지출에 신경을 쓰면서 절약하려고 할라치면 미셸이 허용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는 상당량에 달하는 지출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농장에서는 한푼의 수입도 없었으며 그 땅을 살 만한 사람도 없다는 보카즈의 전갈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래에는 지출이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아! 나 혼자라면 이렇듯 돈이 들진 않을 텐데!

 

결국 그렇게 생각되었다. 그러면서도 재산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마르슬리느의 갸날픈 생명이 타들어가고 있음을 괴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열렬히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잠들 때까지 지켜보다가, 때로는 잠시 혼자서 들판이나 거리를 걸어보고 싶은 충동에 밖에 나갔다가도 황급히 그녀 곁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잠든 사이 짧은 시간 동안 방랑의 즐거움을 누리고 돌아오면 때로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럴 때면 미셸은 그녀를 달래주면서 자리를 비운 것을 변명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곤 했다. 그러나 다시 빠져나가기는 계속되었다.

 

 

해안의 습한 더위로 아내의 몸이 약해지자 그들은 다시 비스크라로 떠났다. 그는 예전부터 이곳에 오고 싶었다. 이곳은 그가 요양한 곳이기도 했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피곤해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는 혼자 산책을 했다. 예전에 알던 아이들은 많이 변해버렸고 그가 품었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변했다. 더욱이 아내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미셸은 거기서 추억의 소년 목티르를 만났다. 투구르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몹시 추웠고 공기도 나빴고 호텔에는 먹을 만한 것도 없었다. 미셸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러 나갔다 들어왔다. 아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으므로 그는 또 다시 밤거리를 배회했다.

 

 

거리를 헤매던 미셸은 투구르를 안내해주려고 기다리던 목티르를 만나 그를 따라 어떤 카페에 들어선다. 그곳에서는 단조로운 음악에 맞춰 아랍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인이 미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목티르의 정부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냈다.

 

그날 밤늦게 돌아와보니 마르슬리느의 침대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손에 쥐고 있던 묵주를 떨어뜨린 채 아내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미셸의 곁에서 헐떡이며 피를 토하고 또 토했다. 새벽녘까지도 계속… 그리고 결국 그녀는 반쯤 모래에 덮인 투구르의 묘지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미셸은 여전히 젊은 남자였다. 낮의 지루한 음울함과 아무래도 견딜 수 없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는 대낮에 잠을 잔다. 그는 남은 재산을 정리하고 거의 무일푼으로 지냈다. 가끔은 여관 주인의 누이와 어울려 지내면서.

 

 

<“배덕자(L'Immoraliste)”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드레 지드 지음, 글쓴이 박은영님>

 

 

저 자 앙드레 지드 Andr Gide(18691951)

 

글쓰기를 숙명으로 타고난 영혼. 성실과 자유, 도덕을 고민했던 작가.

 

아니, 이 수기가 끝남과 동시에 모두가 닫혀지고 모두가 끝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뭔가를 더 첨부해서 쓰고 싶다는 마음은 버리지 못하리라. 뭔가를 첨부해서 쓰리라. 덧붙여 쓸 거야. 덧붙여 쓰리라. 졸음이 온다, 정말. 그러나 자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밤 몇 시일까? 아니면 아침인가? 나도 모른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드는 삶을 마치기 엿새 전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작가란 지망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작가의 생애를 돌이켜보면 작가란 자유의사에 의한 선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숙명임을 알 수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 앙드레 지드 역시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모순의 태생, 문학으로 이끌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앙드레 지드는 가정 환경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남프랑스 랑그 도크 지방 출신의 신교도인 아버지와 북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출신의 구교도인 어머니로부터 각각 전혀 이질적인 두 가지 피의 혼합을 물려받는다. 어쩌면 출생하면서 정신적 방황을 겪을 만한 전제조건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파리대학 법과 교수인 아버지에게서 감화받은 합리주의, 외곬으로 신앙의 길을 가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완고한 종교 정신. 지드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성에 호기심을 가져 알사스학원에서 퇴학당하는가 하면 두 살 연상인 외사촌 누이인 마들렌느에게 가련한 연정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그로 하여금 문학에 기웃거리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시에 감동하고 헬레니즘에 도취해 있으면서도 복음서 속에서 사랑의 샘을 찾았다.

 

이러한 정신적 불균형을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청년 지드는 문학에 뜻을 두기 시작한다. 1887년 알사스 학원의 수사학급에 입학한 그는 새로운 산문 작품을 계획하고 거기에 청춘의 태풍을 남김없이 표현하려고 마음먹었다. 이 당시 성서와 아미엘과 쇼펜하우어의 사상, 쇼팽과 슈만 음악의 영향은 나르시스트인 지드에게는 결정적으로 다가왔다.

 

 

처녀작 앙드레 왈테르의 수첩은 이렇게 태어났다. 쇼팽이나 슈만의 곡을 치면서 호반의 서정적 고독 속에서 써나간 이 작품에는 20세기 소설의 첫번째 꽃송이가 될 만한 여러 가지 요소가 담겨 있다.

 

또한 지드는 작품 출간 직전에 발레리에게 보낸 편지에 시에 있어서는 말라르메, 희곡에서는 마테를링크, 소설에서는 나라고 할 만큼 포부가 대단했고, 자연주의에 등을 돌려 소설의 혁신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초기 야심작은 말라르메 등의 일부 작가를 빼놓고는 당시 문단에서 아예 묵살되고 만다. 게다가 지드는 작품을 읽은 외사촌 누이 마들렌느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하는 괴로움도 맛본다.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하겠노라는 욕심, 마들렌느와의 결혼을 실현시키려던 두 가지 야망이 한꺼번에 무참히 꺾이고 만 것이다.

 

 

성실, 자유, 도덕, 그리고 열정

지드는 문단과 점점 더 깊은 관계를 맺는다. 새로운 문학을 갈망하여 말라르메의 화요회의 열성적인 일원이 된 그는 스승의 이론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 이 거장을 어떻게 하면 넘어설 수 있을까? 스승의 문학 이론 자체, 그 이상 나갈 수 없다면 어떤 길이 남겨져 있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였다.

 

 

여행을 떠나자, 강렬한 태양에 몸을 태우면 새로운 생명이 싹틀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알제리를 향해 출발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행길에서 병을 얻어 파리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벌써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알제리의 꽃향기와 생명의 숨결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의 눈에 비친 파리의 분위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파리에 대한 혐오와 권태는 『팔뤼드가 되었고,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욕정과 찬미는 『지상의 양식에서 나타난다. 결국 지드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배운 교훈은 한마디로 말해 모든 도덕은 상대적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지드 특유의 뉘앙스를 띤 성실자유의 문제가 덧붙여진다.

 

그런데 사사건건 그의 행동을 제약하고 간섭했던 엄격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막상 지드는 해방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둥을 잃고 당황했으며 마치 어머니를 대신하는 것 같은 외사촌 누이 마들렌느를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까지 한다. 마들렌느와의 결혼을 둘러싼 그동안 심정의 일면이 작품에 담긴다. 『좁은 문, 배덕자는 아내 마들렌느와의 상황을 작품의 소재로 취한 것이다.

 

지드는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고민의 발로였으며, 그런 문제에 대한 회답이었다. 아직 뭔가 덧붙여 쓸 것이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삶을 마친 대작가. 그의 유해는 많은 추억이 담긴 노르망디의 퀘베르빌에 옮겨져 이 세상에서는 육체적으로 맺어진 일이 없었던 사랑하는 아내 옆에, 즉 문학적 창조의 원천이었던 마들렌느 부인 곁에 매장되었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배덕자는 지드가 그의 아내 마들렌느와의 결혼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작품에서처럼 실제로 1892년 지드는 폐결핵을 앓았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 마들렌느와의 심정을 다룬 이 소설은 왜 비극으로 결말을 맺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드의 독특한 양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양면성을 지닌 사람은 어느 한 쪽 면에만 고착해 있을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리라. 지드는 결혼한 그 해에 신부를 데리고 이교도의 땅인 알제리로 떠났다. 『배덕자에 나오는 수많은 여행지는 그가 돌아다니며 경험한 곳이고 특히여행 일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유로움을 갈망했던, 타고난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이 성경구절은 늙기 전에 자기를 따라오라고 가르친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미셸은 다음 구절에 새벽에 우리는 출발했다고 적었다. 그에게 여행과 자유를 통한 삶의 의미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주인공 미셸에게서만 자유를 추구했던 지드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욕망은 미셸이 강연을 마친 후 재회하는 친구 메날크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이번에는 지드의 본심이 메날크에게 투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휴식이 제일 싫어, 소유는 사람을 휴식으로 꾀어내고, 사람은 안전 속에 들어가면 잠들고 만단 말야. 그래서 나는 부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불안정한 느낌이야. 그렇다고 위험을 좋아한다고는 할 순 없어. 어쨌든 아슬아슬한 생활이 좋아. 그리고 그러한 생활이 시시각각으로 나의 용기, 나의 행복, 나의 건강의 전부를 요구해주기를 바라는 거네.”

 

그러면서 미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는 지드가 부모로부터 이중적인 성향을 물려받고 게다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가져다주는 생활의 안정감으로부터 느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부담감에 대한 불편한 심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대할 때 배덕자라는 제목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배덕자는 누구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선, 초반부를 읽으면 목티르를 주목하게 된다. 그는 마르슬리느가 미셸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집으로 데려오는 소년인데, 곧 미셸의 마음에 든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아이는 놀이를 하다가 아무도 안보는 줄 알고 가위를 몰래 숨긴다. 미셸은 이를 알아챘지만 그냥 재미있어하면서 넘긴다.

 

 

하지만 이 하찮은 정도의 행위를 두고 배덕자라고 부르기는 좀 석연찮다. 그럼 다음에는? 보카즈와 그의 아들 샤를르는 어떤가? 보카즈는 미셸의 농장을 관리해주는 소작인이다. 그가 정직하게 수익을 보고하는지에 대해선 약간의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그는 단순한 농부로 묘사된다. 미셸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샤를르는 미셸의 큰 신임을 얻었고, 농장일 전부, 하물며 고용하고 해고하는 일까지 미셸과 의논할 정도였으니 상당한 혜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색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던 그의 모습은 재회했을 때 중절모를 쓰고 구레나룻을 기른 거만한 자로 비춰진다. 미셸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배덕자라고 할 만큼 대단한 배신을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 혐의를 둔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서서히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짐작한 대로 그는 미셸이다. 이야기가 그의 고백으로 이루짐에서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혼 후 결핵에 결려 중한 상황에 처한다. 병세는 거의 절망적이었지만 그의 아내 마르슬리느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를 간호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결국 그는 완쾌한다. 하지만 다음에는 아내가 병에 걸린다. 물론 그도 극진히 간호한다. 그녀를 위해 재산을 아끼지 않고 배려한다. 그러나 굳이 우기면서까지 요양에 최적지였던 알프스 고지를 떠난다. 완치를 하려면 따뜻한 공기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사실 그는 그곳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마르슬리느의 배려와는 대조되는 상황이다. 그를 위한 곳이면 어디든 향하던 그녀와는 참 다르다. 미셸이 귀찮아할 정도로 그의 옆에 붙어 있었던 모습과도 비교된다. 미셸은 그녀가 잠들었을 때 외출하곤 한다. 자유가 그리워서. 그리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녀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 메날크와의 약속으로 집을 비운 날 유산을 하고, 목티르와 밤에 거리를 배회하고 아내를 배신하고 돌아온 다음날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후에 그려지는 정돈되지 않은 그의 삶 역시 덕성스러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미셸이 배덕자라고 결론지으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는 우리는 어떠한가?

 

 

앙드레지드의생애와작품

1869 11 22일 파리 출생

1877 알사스학원에 입학하지만 품행 불량으로 정학 처분을 받는다. 3개월 후 다시 등교했으나 홍역에 걸려 휴학한다.

1879 알사스 학원에 복교하다.

1880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다. 몸이 약해 다시 휴학, 요양한다.

1884 알사스 학원에 다시 입학하지만 얼마 후,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이때부터 독서에 열중한다.

외사촌 누이 마들렌느를 사모한다.

1887 알사스학원의 수사학급에 입학

1888 앙리 4세 학교에 입학하나 곧 퇴학하고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열중한다.

1889 대합입학 자격시험에 합격

1891 파리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곧 퇴학한다.

1892 입대했으나 폐결핵 진단을 받고 제대한 후,『앙드레 왈테르의 수첩을 익명으로 출판한다.

1895 알제리 행.『팔뤼드출간, 어머니 사망, 마들렌느와 결혼한다.

1897지상의 양식출간

1901배덕자출간

1909좁은 문을 프랑스 누벨 르뷔 프랑세즈 La Nouvelle Revue Francaise(NRF)』지에 연재

1913교황청의 지하도출판

1917 미소년 알레그레와 동성애에 빠져 스위스로 여행가다.

1919전원교향곡출간

1920 수기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1부를 익명으로 출판

1921 역시 익명으로 2부 출간

1926사전꾼들출간

1927콩고기행출간

1937소련기행출간

1938 아내 마들렌느를 잃다.

1947 노벨 문학상 수상,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수여받다.

1951 2 19일 자택에서 사망하다.

                                                                                               <몽상가 블로그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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