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은 산타클라라의 양지 바른 곳, 밀러 판사의 집에서 태어나 자란 네 살짜리 개. 벅은 실내에 사는 개도, 개장에 갇혀 있는 개도 아니었다. 이 저택 전체가 그의 영토였다. 세인트버나드와 셰퍼드 사이에서 태어난 벅은 훌륭한 체격과 기질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도박 빚에 쫓긴 판사 댁 정원사 매뉴얼의 농간으로 벅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팔려가게 된다.
이틀 밤낮을 열차에 실려 도착한 곳은 시애틀. 철창문이 열리고 그간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벅은 낯선 사내를 향해 140파운드의 몸을 날린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자비한 몽둥이질이 가해지고, 이 첫 싸움에서 벅은 원시적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교훈을 배운다. 졸지에 썰매끌이 개로 팔려가는 벅. 그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요약)
벅 세인트버나드 종과 세퍼드 사이에서 태어난 판사 집의 애완견정원사가 팔아넘기는 바람에 썰매끌이 개가 되었으며
결국 황야로 돌아간다.
손튼 알래스카에서 캠프를 치고 노다지를 찾으려는 인물로, 벅의 생명을 구해주었으며 벅이 사랑한 유일한 인간이다.
원시 세계로
벅이야 신문을 못 읽으니, 자신을 포함해 튼튼한 근육의 파짓 사운드 해안 털복숭이 개들에게 밀어닥치고 있는 시련을 알 리가 없었다. 추위 속에서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튼튼한 근육의 털복숭이 개는 이 지방 사람들이 눈독들일 만한 가치가 충분한 대상이었다. 벅은 산타클라라의 양지 바른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밀러 판사 댁으로 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으며 벅은 이 광활한 영토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벅은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4년을 살았다. 벅은 실내에 사는 개도 개장에 사는 개도 아니었다. 이 저택 전체가 그의 영토였다. 세인트버나드 종으로 몸집이 컸던 벅의 아버지 엘모는 항상 판사 곁에서 친구처럼 따라 다녔고 벅 역시 아버지의 예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스코틀랜드산 셰퍼드인 쉐프였기 때문에 벅은 몸집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몸무게도 140파운드밖에 나가지 않았다. 비록 몸무게는 적었지만 벅은 널리 존경을 받았으며 왕족같이 위엄 있게 행동했고 약간은 자기 중심적이었다. 벅은 사냥과 바깥 활동을 자주 했기 때문에 기름기 없는 몸매에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다. 물을 좋아해서인지 냉수욕을 하는 사람처럼 튼튼하고 건강했다.
판사 집에서 일하는 정원사 조수들 중에 매뉴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매뉴얼은 중국식 도박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도박을 하다 보면 빠져들게 되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그날 밤, 아무도 매뉴얼이 벅을 데리고 과수원을 지나는 것을 보지 못했고, 벅 자신도 단지 산책을 간다고 생각했다. 이 사내와 매뉴얼 사이에 돈 얘기가 오갔다. 벅은 조용히 품위 있게 순종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뉴얼을 믿었고 인간의 뛰어난 지혜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을 감은 끈이 점전 조여져 숨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시 후 정신이 들자, 혀를 다쳤는지 통증이 느껴졌고 어떤 화물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칼리지 파크라는 간이역에 혼자 서 있던 사내를 빼고는 아무도 매뉴얼과 벅이 그곳에 도착한 것을 알지 못했다. 벅은 판사와 여행을 여러 번 다녔기 때문에 화물 열차의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벅은 목과 혀의 고통으로 반은 넋이 나갔고 어리벙벙했으나 납치범에게 대들었다. 그는 밤새도록 지친 상태에서 분노와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래가며 거기에 누워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뭔가 불행한 일이 닥쳐오고 있다는 예감에 우울해졌다. 그러고 나서 그 철창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다. 마차에서 증기선으로, 증기선에서 철도역으로, 거기서 다시 특급열차로 옮겨졌다.
특급열차는 이틀 밤낮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렸고, 그동안 벅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고고하고 섬세한 벅으로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목과 혀가 바싹 마르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틀 동안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면서 쌓인 분노 때문에 벅을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라도 봉변을 당할 참이었다. 눈에 핏발이 선 성난 악마로 변해서, 판사가 보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가 시애틀에서 내리자 특급열차 차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벅을 운반해온 사람들은 삽시간에 흩어져 안전지대로 피한 다음 구경할 태세였다. 철창문을 여는 동안 그간의 억눌러온 분노가 폭발해 벅은 사내를 향해 140파운드의 몸을 날렸다. 막 사내를 물어뜯으려는 순간 일격이 가해졌고, 곤봉으로 맞아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리벙벙했다. 이 정교한 몽둥이질에 비하면 여태껏 견뎌온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동안의 일격이 끝나자 사내는 겁도 없이 그토록 무자비하게 때렸던 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벅은 패배했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곤봉을 든 사람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웠고 그후 일생동안 그것을 잊지 않았다. 곤봉은 하나의 계시였다. 그것은 원시적 법칙의 지배에 대한 소개였고 그는 이제 반쯤은 입문한 셈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다른 개들이 끌려왔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내 사내에게 복종하게 되는 광경을 보면서 벅은 몇 번이고 교훈을 마음속에 새겼다. 즉, 곤봉을 쥔 사람에게 반드시 아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입법자며 자신이 복종해야 하는 주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돈이 오가면서 개를 두서너 마리씩 끌고 가곤 했으므로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기가 뽑히지 않을 때마다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마침내 벅의 차례가 되었다. 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페를로는 벅을 보자마자 천 마리 중 한 마리 있을까말까 한 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만 마리에 하나 있을까말까 하지.’ 페를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얼굴이 쭈글쭈글한 사내가 온순한 뉴파운드랜산인 컬리와 자신을 끌고 가도 벅은 놀라지 않았다. 페를로는 컬리와 그를 배로 끌고 가서 프랑스와라는 사내에게 넘겨주었다. 벅과 컬리는 나훨호 갑판에서 다른 개 두 마리와 합류한다. 하얀 털의 몸집이 큰 개는 상냥하지만 간교했고, 또 한 마리 데이브라는 개는 침울하고 까다로운 친구로 가만히 내버려두기만을 바랄 뿐이며 건드리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임을 분명히 해두었다. 벅과 컬리가 흥분과 공포로 반쯤 미쳐 있을 때도, 고개를 들어 그들에게 무심한 눈길을 던진 후 하품을 하고 다시 잠들었다.
날씨가 점차 추워지고 있었다. 공중에서 하얀 것이 자꾸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벅이 처음으로 본 눈이었다.
곤봉과 송곳니의 법
다이어 해변에서 보낸 첫날은 벅에게 악몽 같았다. 매 순간마다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이곳의 생활은 빈둥대며 따분해하기만 하면 되는, 게으르고 화려한 삶이 아니었다. 개들과 사람들 모두가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야만종인 이들은 법이라고는 몰랐고 존재하는 것이라곤 단지 곤봉과 송곳니의 법뿐이었다.
첫번째 희생자는 컬리였다. 컬리는 자기 덩치의 반쯤 되는 늑대만한 허스키 종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나 허스키는 아무 경고도 없이 금속성의 잇소리를 내더니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컬리의 얼굴은 눈에서 턱까지 찢어졌다. 이처럼 물어뜯고 도망가는 것이 늑대식 싸움법이었다. 컬리가 적에게 달려들자 허스키는 이상한 방식으로 가슴으로 막아낸 후 컬리를 내동댕이쳤다. 컬리는 일어서지 못하고 허스키들은 컬리 곁으로 모여들었고 컬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털이 곤두선 개들 사이에 파묻혔다.
공정한 싸움은 없다. 한번 쓰러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 절대로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벅은 컬리의 비극적 죽음의 충격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와가 벅의 몸에 끈과 물림쇠를 채운 것이다. 벅은 프랑스와를 썰매에 태우고 골짜기 근처 숲까지 갔다가 장작을 한 짐 해서 돌아와야 했다. 이처럼 운반용 짐승이 된 것이 몹시 자존심 상했으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반항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프랑스와는 엄격했고 즉시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숙달된 개 데이브는 벅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엉덩이를 물었다. 스피츠는 현명하고 노련한 대장이었다. 벅은 쉽게 배웠고 프랑스와와 두 동료의 도움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페를로가 개 두 마리를 더 데리고 돌아왔다. 이들의 이름은 빌리와 조우로, 순종 허시키 형제였다. 빌리의 단 한 가지 흠은 너무 마음이 좋다는 것이었던 반면에 조우는 내성적이고 악의에 차 노려보았다. 벅은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였고 데이브는 무시했으며 스피츠는 차례로 둘 다를 건드렸다. 저녁 무렵 얼굴은 상처투성이고 애꾸눈인 개가 더 나타났다. 그 애꾸눈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용감하게 번쩍거렸다. 그의 이름은 솔렉이고 화난 개라는 뜻이었다.
그날 밤 벅은 잠자리 문제에 직면했다. 그의 팀 개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무언가 발 밑에서 꼼지락거렸다. 아늑한 구덩이를 파고 빌리가 누워 있었다. 또 하나의 교훈이었다. 아, 이것이 그들의 방식이구나!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일을 경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데이브와 솔렉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마구를 두르자 그들은 완전히 다른 개가 되었다. 썰매를 끄는 일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고 존재의 최고 표현이며 유일한 기쁨이었다. 데이브는 공정하고 현명했으며 이유 없이 벅을 물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프랑스와의 회초리가 데이브를 지원해주고 있었으므로 벅은 복수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치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기도 전에 일을 완벽하게 배워서 동료들이 더 이상 꾸짖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프랑스와의 회초리가 날아오는 빈도도 훨씬 줄었고 영광스럽게도 페를로는 그의 발을 자세히 살펴주기도 했다. 벅은 아직 춥고 어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동료들과 함께 다시 썰매를 끌었다.
벅은 끝없이 이어지는 긴 나날을 길에서 일하며 지냈다. 늘 게걸스럽게 먹었지만 배가 고파 고통스러웠다. 첫 도둑질도 시도했다. 그로 인해 험난한 북부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임이 입증된 셈이었다. 그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곧 끔찍한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사랑과 우정이 지배적인 남부에서는 사유재산과 개인적인 감정을 존중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이 지배하는 북부에서 그런 것을 고려하는 사람은 바보였고 그것을 지키려 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어떤 시련과 맞서서도 벅은 싸움을 피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곤봉을 든 사내는 좀더 근본적이고 원시적인 규범에 따르도록 만들었다. 경험을 통해 새로운 법칙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길들여진 세대의 유산은 떨어져나갔고 오래 전에 사라졌던 본능이 되살아났다. 추운 겨울밤, 별을 향해 늑대처럼 울부짖을 때는 오래 전에 죽은 조상이 살아나 수세기를 흘러와 그를 통해 별을 보고 짖는 것 같았다. 벅의 억양에는 조상의 모든 기억, 즉 슬픔이자 고요, 추위, 어둠이 담겨 있었다.
다시 짐승으로
벅에게 잠재돼 있던 원시적인 짐승의 속성은 더욱 강해졌다. 스피츠와 심한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초조해하거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반면 스피츠는 벅을 위험한 적수로 생각했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달려들었다.
어느 날 얌전한 돌리가 갑자기 미쳐버렸다. 벅은 미친개를 본 적이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겁에 질려 도망쳤다. 돌리의 추적을 받던 벅은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면서 프랑스와가 자신을 구해주리라고 믿었고, 개몰이꾼은 벅이 쏜살같이 곁을 지나가자 이어 따라온 미친 돌리의 머리를 부수어버렸다. 벅이 지쳐서 비틀거리는 그 순간이, 스피츠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스피츠는 벅을 덮쳤고 그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물어뜯었다. 이 이상한 남부 개로부터의 위협은 견딜 수가 없었다. 스피츠가 보기에 벅은 참 이상한 개였다. 벅은 지배욕도 강했으나 만용을 부리거나 무모한 행동을 할 수 없게 기가 죽어 있었다. 그는 매우 교활했으므로 시간이 흐르길 참고 기다렸다. 그것이 바로 원시적인 삶의 방식이었다.
대장 자리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벅이 그것을 원했다. 그것은 본성에 따른 것이었으며 마구에 매여서라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구를 벗게 되면 가슴 아파하는 그런 자부심 때문이었다. 스피츠는 이 자부심 때문에 벅이 대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그가 벅을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벅은 사실 대장이 될 만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벅은 공공연히 스피츠가 다른 개를 위협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리고 스피츠와 범법자 사이에 더욱 자주 끼여들었다. 그것도 아주 교활하게, 프랑스와가 없을 때만 그렇게 했다. 벅의 은밀한 반란과 함께 개들 역시 점점 더 스피츠에게 반항하였다. 프랑스와는 이들 둘 사이에 생사를 건 싸움이 곧 벌어지리라는 생각에 늘 노심초사했다.
싸움이 벌어질 기운만 완연한 가운데 어느 황량한 오후에 일행은 다우슨에 도착했다. 벅은 여기서 남부 개를 만났는데, 그 개들은 주로 사나운 늑대 종자였다. 규칙적으로 밤마다 노래를 불렀고 벅도 그 무시무시한 유령 같은 합창에 합류했다. 벅이 주도한 교활한 반란으로 개들 사이의 유대가 끊어졌고 벅의 부추김으로 반란자들은 온갖 자질구레한 비행들을 저질렀다. 이제 아무도 스피츠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전의 두려움은 사라졌으며 점점 더 그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규율이 깨지자 개들 상호간의 관계도 바뀌었으므로 서로 짖어대며 싸우는 통에 캠프 전체가 정신병원 같았다. 프랑스와가 회초리를 휘두르며 스피츠를 후원했지만 나머지 개들은 벅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벅은 마구를 끌며 충실하게 일했는데 그에게 노동은 기쁨이었다. 그러나 동료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노동보다는 재미 때문이었다.
어느 날 타키아나의 입구에서 토끼를 발견했으나 머뭇거리다 놓치고 말았다. 사냥감을 총으로 쏘게 만드는 본능, 피를 보고 싶어하는 욕망, 살인의 기쁨...... 벅의 경우에는 그 욕망들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스피츠는 흥분한 가운데서도 냉정하게 계산해 토끼를 덮쳤다. 벅은 큰소리로 으르렁대지 않고 곧바로 스피츠에게 달려들었다. 벅은 마침내 때가 온 것을 알았다. 이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였다. 그 동안 내내 허스키들이 둘러서서 조용히 둘 중 하나가 쓰러지기를 기다렸다.
벅에게는 상상력이라는 위대한 재능이 있었다. 그는 본능으로 싸우면서도 머리를 썼다. 이제 스피츠에게 희망은 없었고 벅은 무자비했다. 자비란 좀더 부드러운 환경 속에서나 통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나머지 개들은 스피츠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언제라도 달려들 기세로 몸을 반쯤 웅크리고 있었다. 스피츠가 쓰러지자 이제껏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원은 달빛 넘치는 눈 속에서 한 점이 되어버렸다. 벅은 성공한 승리자였다. 살상을 마친 즐거운 원시 짐승이 되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누가 대장이 되었는가
벅은 스피츠가 차지했던 대장자리를 차지했다. 개몰이꾼은 벅에게 악마가 두 마리 들어앉아 있다고 높이 평가했지만 얼마 안돼 그것도 과소평가였음을 깨달았다. 벅은 단숨에 책임감 있는 대장의 면모를 드러냈다. 재빨리 판단하고 생각했으며 행동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이제껏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았던 스피츠보다도 몇 배나 더 뛰어났다. 벅은 법을 정하고, 동료들로 하여금 그 법을 지키게 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팀의 분위기는 곧 되살아났고 옛날의 유대감이 회복되었으며 개들은 다시 한 번 끌잇줄에 매인 개답게 달렸다. 14일 동안 평균 40마일씩 달린 기록적인 질주였다. 얼마 후 정부의 지시가 하달되었고 그것을 끝으로 벅은 이제 프랑스와 페를로를 볼 수 없었다.
이제 스코틀랜드 혼혈인이 벅과 동료 개들을 돌보게 되었다. 다우슨으로 돌아가는 피곤한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매일 매일이 노역인데다 금을 찾아 북극까지 간 사람들에게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우편 썰매이기 때문이다. 벅은 이 일이 싫었지만 데이브와 솔렉의 태도를 본떠 자부심을 느끼려 애썼으며 자신의 몫을 해내며 잘 견뎌냈다.
벅은 때때로 산타클라라에 있는 밀러 판사 저택을 떠올랐다. 그리고 곤봉의 사내와 컬리의 죽음과 스피츠의 필사적인 결투와 먹고 싶은 맛있는 것들을 생각했지만 향수병에 걸리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강렬하게 그를 사로잡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옛 조상에 대한 기억이었다. 사라졌다 되살아난 이 본능은 점점 더 맹렬하게 움직였다.
고되고 힘든 일에 시달려 개들은 지쳐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매일 눈까지 내렸다. 일행 중에서는 데이브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는데, 아무래도 그에게는 뭔가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는 결국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고 가끔 썰매가 급정거하거나 떠나면 고통스러워하며 짖어댔다. 그는 너무 쇠약해져서 더 이상 여행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데이브는 눈 속에 누워 헐떡거리면서 동료 개들을 향해 간절하게 짖어댔다. 데이브의 울음소리는 강가 숲을 지날 때까지 들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권총소리가 났다. 썰매는 쉬지 않고 눈보라를 일으키며 길을 따라 나아갔다. 하지만 강가 숲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벅이나 다른 개들 모두 알고 있었다.
썰매 끌기
30일 만에 우편물이 스케이구와이에 도착했다. 140파운드였던 벅의 몸무게는 115파운드로 줄었다. 죽을 정도를 피곤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 피로감은 수개월 동안 서서히 진을 빼고 일한 결과 생긴 것이었다.
3일이 지났고 나흘째 되는 날, ‘할’과 ‘찰스’라는 사람들이 개들과 마구 일체를 샀다. 두 사람은 모두 이런 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이런 사람들이 북부를 탐험하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벅 일행이 도착한 새 캠프는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거기에는 찰스의 아내이자 할의 누나인 어떤 여자도 하나 있었다.
썰매에 짐을 너무 많이 실어 제대로 균형조차 잡지 못하던 썰매가 벅과 동료 개들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다 보니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꺾어진 길을 도느라 썰매가 기우뚱하자 느슨하게 묶인 곳이 풀려 짐의 반은 흘러내렸다. 개들은 무거운 짐에 분개하고 있었으며 벅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친절한 시민들이 개를 붙잡아주고 흩어진 물건들을 모아주었다. 사람들은 짐을 반으로 줄이고 개들을 두 배로 늘려야 다우슨까지 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결과적으로 짐은 원래 무게의 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마어마했으며 저녁에는 개들을 여섯 마리나 새로 사와서 이제는 도합 열네 마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새 개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벅은 재빨리 위치 잡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가르쳤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썰매 끌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북극 여행은 그 성격상 열네 마리가 썰매 한 대를 끌어서는 안될 이유가 있었다. 썰매 한 대로는 개 열네 마리분의 식량을 운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찰스와 할은 이 사실을 몰랐다. 다음날 이들은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긴 대열을 이끌고 출발했다. 벅은 어렴풋이 이 두 사내와 여자를 믿고 섬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감대로 개들의 식량은 곧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굶주림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할은 먹이를 정량의 반으로 줄이고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려고 했다. 누나와 매부도 그것에 동의했다. 제일 먼저 덥이 죽었다.
이미 세 사람에게서 남부 특유의 상냥함과 온순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지칠 줄 모르고 한 일이라곤 싸움뿐이었다. 이 두 사내와 여자에게 썰매몰이꾼 특유의 인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결과는 끝없는 가족 싸움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벅은 악몽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개들의 선두에 서서 휘청거리며 걸었다.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사람도 개도, 봄이 온 것을 알지 못했다. 빛나는 태양과 미풍을 받으며 두 사내와 한 여자와 허스키들이 죽음을 향한 여행자처럼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 이렇게 비틀거리며 화이트 강 어귀에 있는 존 손튼의 캠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얼음이 녹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찰스와 할은 끝까지 다우슨까지 갈 거라며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나 개들은 꼼짝도 안 했고 손튼은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눈물이 글썽였고 벅이 계속 채찍을 맞자 어쩔 줄 모르고 서성거렸다. 벅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엄청나게 큰 고통을 겪은데다 너무나 지쳐 있었으므로, 더 이상 채찍으로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손튼은 할과 싸워 벅의 끌잇줄을 잘라내버렸다. 할은 싸울 기운도 없었다. 벅은 그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손튼은 벅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거칠지만 친절한 손길로 벅의 몸 중 부러진 곳이 있나 찾고 있었다. 갑자가 썰매 끝이 곤두박질치고 할이 쥐고 있던 썰매채가 공중으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얼음이 전부 가라앉고 사람과 개들이 모두 사라졌다.
“불쌍한 사람들.” 존 손튼이 말했고 벅은 그의 손을 핥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수천 마일이나 여행한 후의 휴식은 달콤했다. 그런 점에서 손튼 일행은 빈둥대며, 다우슨으로 실어다줄 뗏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는 벅과 곧 친해진 아일랜드산 스킷도 포함돼 있었다.
벅이 기운을 회복하자 그들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놀이에 벅을 끌어들였는데 이 놀이에 손튼 자신도 꼭 끼였다. 벅이 그토록 열정적인 사랑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존 손튼에 대한 느낌은 찬미에 가까운 것이었고, 미친 듯이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이었다. 벅의 사랑은 대부분 숭배였다. 오랫동안 벅은 한시라도 그를 보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손튼은 마치 자식이라도 되는 양 벅을 보살폈다.
그러나 부드러운 문명의 손길을 향한, 존 손튼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북부 지방의 원시적인 기질은 여전히 살아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벅의 내부에는 따듯한 가정에서 생겨난 충성심이나 헌신과 아울러 야성과 뚝심도 존재했다. 곤봉과 송곳니의 법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유리한 상황에서는 늘 싸움을 걸었으며 싸우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원시 세계에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자비는 두려움으로 여겨졌고, 그것을 모르면 죽는 수도 있었다. 죽느냐 죽이느냐, 먹느냐 먹히느냐의 법칙이었다. 시간의 심연에서 비롯된 이 절대 명령에 그는 복종했다. 벅은 숲속에서 도도하게 울려퍼지는 그 부름이 어디에서, 왜 들리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져지지 않은 땅과 푸른 숲으로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존 손튼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손튼만이 문명 세계와의 유일한 끈이었다.
한번은 벅이 알래스카의 유명한 토템 기둥에 이름을 새길 만한 공적을 세웠다. 엘도라도의 한 술집, 사람들 사이에서 개 자랑이 벌어지자 손튼은 1,000파운드를 걸고 짐 끌기 내기를 벌였다. 한편으론 손튼 역시 의구심에 차 마음이 무거웠지만 서둘러 내기에 임했다. 결국 벅에게는 반 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짐이 맡겨졌는데, 벅은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황야의 부름
벅이 5분 만에 돈을 벌어주자, 그 후 주인은 그 돈으로 빚을 갚고 전설 속의 광산을 찾아 동료들과 함께 동부로 떠났다. 손튼은 사람이나 자연을 의심하지도, 황야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소금 한줌과 총 한 자루만 있으면 황야에 뛰어들어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가 있었다.
벅은 사냥 및 수렵과 끝없이 낯선 장소를 헤매는 것이 무한한 기쁨이었다. 몇 달인가가 흘렀을 무렵, 그들은 지도에도 표시돼 있지 않은 황야를 헤매고 있었다. 그처럼 헤매던 끝에, 사라진 오두막 대신 넓은 계곡에서 설거지통 바닥에 노란 버터가 끼여 있는 것 같은 사광을 발견했다. 벅은 불가에서 명상에 잠겨 시간을 보냈는데, 다리 짧은 털복숭이 인간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이었다. 벅은 점점 더 자신이 기억하는 다른 세계를 헤매었다. 이 다른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공포였다. 이 털복숭이
인간의 환상과 유사하게 그를 사로잡는 것은 숲속 깊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부름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몹시 동요되었고 몸 속에서 이상한 욕망이 들끓어올랐다. 뭔지 미지의 것에 대한 열망과 설렘이 일었다. 뿌리칠 수 없는 충동이 벅을 사로잡았다.
어느 날 밤 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숲속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전에 없이 똑똑하고 분명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벅은 그것이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예전부터 친숙한 소리인 것을 알아차렸다.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코를 하늘로 향한 여윈 늑대가 보였다. 벅은 늑대를 공격하는 대신 주위를 빙빙 돌면서 다정하게 다가갔다. 벅이 해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알고 마침내 늑대가 다가와 킁킁거렸다. 벅은 미칠 듯한 환희에 차올랐다. 그는 숲속의 형제와 나란히 그 부름의 진원지를 향해 달리면서 자신이 그 부름에 답했음을 알았다.
그는 결코 지칠 줄 모르고 여유 있게 여행을 계속했으며 여행 도중 식사는 사냥으로 해결했다. 그 강가에서 모기에 물려 눈이 먼 커다란 곰이 낚시를 마치고 숲으로 돌아가는 것을 잡기도 했다. 이 싸움에서 벅은 아직 숨겨져 있던 마지막 난폭성까지 드러냈다. 그 어느 때보다 피에 대한 동경이 커져가는 가운데, 벅은 적자생존의 환경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먹이가 필요할 때만 상대를 죽였지 장난으로 그러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벅은 무척 사냥을 즐겼고 그 행동에는 장난기가 넘쳤다.
캠프를 떠나 큰 숫사슴을 쓰러뜨린 후 벅은 캠프와 손튼을 향해 달렸다. 대지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 점차 더 뚜렷하게 의식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 공기를 들이킨 후 어떤 메시지를 감지해 최대한의 속력으로 달렸다. 재난이 이미 닥쳤거나 닥쳐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우울해졌다. 그는 자신이 좇고 있는 생명의 흔적을 묘사해주는 여러 징표들의 냄새를 맡았다. 손튼이 다우슨에서 산 썰매 개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죽어 있었다. 일생의 마지막 열정이 지혜와 이성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가 분노한 것은 손튼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해츠 족은 허물어진 자작나무 장작 창고 주위에서 춤을 추다가 울부짖음을 들었다. 이들은 겁에 질려 악령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르며 숲으로 달아났다.
벅은 정말로 악마의 화신처럼 미친 듯이 쫓아가, 나무 사이로 사슴처럼 도망가는 인디언들을 끌어냈다. 이 날은 이해측 족의 최후 심판의 날이었다. 벅은 자부심에 찼다. 그는 동물 중 가장 고귀한 동물인 사람을 죽였다.
밤이 다가오자 수심에 차 늪가에 앉아 있던 벅은 새로운 생명의 움직임을 느꼈다.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났고 이어 그와 유사한 음의 합창이 뒤따랐다. 벅은 이 소리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 자신도 전과는 달리 기꺼이 그 부름에 따를 태세가 되어 있었다. 이미 손튼은 죽었고 그것으로 이 세상과의 마지막 끈마저 끊어져나간 셈이었다.
사람들을 사냥하던 늑대떼는 흐르는 숲을 지나 벅이 있는 계곡을 정복했다. 그 중 가장 대담한 놈이 나서서 벅에게 대들었지만 벅은 상대를 번개같이 물리쳤다. 이렇게 되자 늑대떼는 전체가 모여 일렬로 서서 공격을 시작했다. 벅은 아주 신속하고 유능하게 대처했다. 그는 아주 잘 싸웠고 마침내 늑대들은 모조리 패주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 늑대는 하루 밤낮을 함께 달렸던 황야의 형제였다. 벅은 늑대떼 속에 끼여 황야의 형제와 달리면서 계속 노래했다.
그 이후, 여름마다 그 계곡을 찾는 방문자가 있었다. 한동안 그는 생각에 잠겼다가 길고 애처롭게 한 번 울부짖고는 떠나곤 한다.
<“황야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잭 런던 지음, 글쓴이조애리교수>
▣ 저 자 잭 런던(1876∼1916)
열렬한 사회주의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40세의 나이로 자살.
빈곤과 노동의 어린 시절
실제로 런던의 가족은 끼니걱정을 할 만큼 곤궁하지는 않았다. 이웃들처럼 그런 대로 먹고살 만한 정도였는데, 오클랜드로 이주하면서부터 형편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열한 살 난 잭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스스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우선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볼링장에서 일하거나 아이스크림 장사로 돈벌이를 했다. 장사로 오클랜드 여러 술집을 돌던 잭은 후에 소설로 형상화한 여러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는데, 남극 고래잡이 선원, 뱃사람, 밀수꾼, 사냥꾼, 해적, 어부, 부랑자, 노동자들이 그러했다.
「가출소년 The Apostate」이라는 단편은, 바로 런던 자신의 경험을 그린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잭도 일찍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는데, 열세 살에 초등학교를 마친 것이 그가 받은 정규교육의 전부였다. 그후부터는 오로지 노동의 일상에 매달려야 했다. 잭은 몇 달 동안 통조림공장에서 노동하는 일상에 매몰되었으나, 열다섯 살이 되자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그는 일찍이 샌프란시스코 해안을 따라 늘어선 굴 양식장에서 굴을 훔쳐 오클랜드에 내다 파는 ‘굴해적’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잭은 이 해적질이 적잖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해적이 된다.
모순에 찬 삶
잭 런던은 마흔 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작가로 활동한 16년 동안 그는 19편의 장편소설, 18권의 단편집, 8권의 자전적이고 사회비평적인 책들을 써냈다.
잭 런던은 어쨌거나 지난 세기말 미국 문학계의 중심인물이었고, 그의 삶은 물론 작품들도 온갖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를테면 낭만적 사회주의자인가 하면 베스트셀러 작가로 극단적인 사치를 즐겼다.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서술에서 보면 적자생존이라는 원칙에 충실한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사내다움, 육체적인 힘에 대한 예찬도 뒤섞여 있다. 형상적인 화려한 언어로 씌어진 흥미로운 소설들을 남겼는가 하면 신문이나 잡지, 출판사들의 청탁에 따라 쓴 잡문들도 적지 않다.
작품에 대한 미친 듯한 열정은 결국 그 자신을 얽어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치열한 문학적 열정 덕택에 그의 여러 대표작들은 높은 문학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차츰 대량으로 작품을 써대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잃어갔다.
사회주의자로서의 잭 런던
런던은, 자본가 계급이 생존에 위협을 느꼈을 때 얼마나 극단적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나올 수 있는가를 동시대 미국의 어떤 지성인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1937년 레온 트로츠키는 『강철군화』의 소련판이 첫 출간됐을 때, “그 당시 어떤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도 자본과 노동귀족 사이의 불길한 야합의 가능성을 그처럼 완벽하게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라고까지 단언했다.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한 사회변혁 사상은 런던의 특징으로도 대변된다. 그러나 한편 1902년 7월, 런던은 영국의 소외당한 계층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하층민의 세계로 잠적하기도 한다. 런던의 이스트엔드 구역에 방을 얻고, 미국 선원으로 신분을 위장하고는 떨어진 옷을 입은 채 슬럼가의 주민으로 변신한 것이다. 런던은 스스로를 연구자라고 생각했다. 런던은 이렇게 하여 사회 르포 『밑바닥 사람들』을 썼다. 그는 참여자의 관점에서 충실히 사정을 보고하려 했다. 이 슬럼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일종의 새로운 인간유형들을 이루는데, 런던이 묘사한 것을 보면 시끄럽고 신경질적이며 흥분 잘하고, 요리조리 따지기 좋아하고, 알콜중독에 빠지기 쉽고, 둔감하며, 어리석게 변해버린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이 밑바닥 사람들 편이었다. 이들이 처한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상황을 드러냈고, 이들을 그릇된 경제관계의 희생자들로 묘사했다.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1903)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경제학의 논쟁보다, 사회주의의 논리성과 필연성에 관한 어떤 명철한 증명보다 나에게 심각하고 확고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어느 날 나락의 구덩이가 내 주변에 벽을 쌓고 나는 그 속으로 끝없이 미끄러져 내려가 맨 밑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그 경험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런던
런던은 자신이 불안정하고 참담한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는데, 후에 작가가 되고 나서는 이 믿음이 유혹으로 바뀌어 차차 낯선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 유혹은 성공이었다. 1909년 한 해만도 『황야의 부름』은 무려 75만 부나 팔렸다. 이 책으로 런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영화산업도 그의 작품에 눈을 돌려 1913년 『바다 늑대』가 영화화된 것을 시작으로, 1914년에는 한 해 동안 네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미국에서만 1913년부터 1958년까지 런던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 무려 42편이다.
1913년 런던은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돈버는 작가라고 스스로 일컫기에 이른다. 이렇게 『황야의 부름』이 대성공을 거두자 런던은 여러 번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쓰게 되는데, 1906년 발표된 『흰 이빨 White Fang』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엄청난 수입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토록 빚에 쫓기며 살았다. 성공한 작가로 살려니 수입보다는 지출이 더 늘어갔다. 이 무렵 몰려드는 친구며 손님들을 맞을 수 있도록 피드몬트 산 언덕에 큰집을 하나 얻었는데, 손님이 자꾸 늘어 일주일에 100여 명씩 되었고 살림규모는 그가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커져만 갔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황야의 부름』은 1903년 작품으로 작가가 클론 다이크 금광 개발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세계 2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이 소설은 오늘날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20세기 벽두에 대도시에서의 참담한 경험에서 벗어나 심기일전하려는 듯, 잃어버린 낙원으로서의 ‘대자연’이라는 주제를 다룬 소설이다. 그러나 자연 또한 이젠 더 이상의 낙원은 아니다. 단지 그 안의 특정 공간에 주인공들의 특정 유형 행태를 보여주기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예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행태 말이다. 여기서는 문명 이전의 상태에서처럼 강함을 바탕으로 한 개인이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다. 산업사회의 복잡다단한 갈등 따위는 북녘의 대자연 속에서 쉽게 잊혀질 수 있는 것이다. 도살장 같은 삶의 참담한 현실은 다시 죽음과 삶의 순환으로 바뀌고, 눈 덮인 황야의 광활함, 자기보존본능이라는 본질적인 이야기로 바뀐다.
『황야의 부름』은 런던이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을 쓴 것에 대한 평가 예가 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벅이라는 개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인간 조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런던은 다윈의 생물학적인 진화론뿐 아니라 그것을 사회·심리·윤리의 영역으로 옮긴 스펜서의 숭배자이기도 했다. 런던에게 있어 자연이란 생존의 법칙이 관철되는 장이며, 자연을 지배하는 곤봉과 송곳니의 법은 인간세계의 질서이기도 하다.
런던에게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사상으로, 인간이 환경과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자연주의가 있다. 벅은 환경에 의해 애완견에서 유령개로 변했을 뿐 아니라 유전에 의해 품성이 결정되었고, 그 유전은 부모의 형질뿐 아니라 핏속에 흐르는 먼 조상에 대한 기억까지도 포함함을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벅을 포함한 자연의 질서이자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런던이 의식적인 수준에서 진화론이나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와 자연계에도 생존의 법칙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음을 증언한 것은 그의 높은 문학적 성취라고 할 만하다. 손튼에 대한 벅의 애정과 신의는 곤봉을 든 빨간 스웨터의 사내를 따르던 것과는 변별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죽는 순간까지 썰매를 끄는 일에 충실한 썰매끌이 개들의 모습은 감동적일 뿐 아니라 생존의 법칙을 넘어선 위대한 정신이 있음을 증명한다.
▣ 런던의생애와작품
1876 1월 12일 태어나다.
1880 런던 가족이 캘리포니아의 알라메다라는 농장으로 이사
1886 오클랜드로 이사
1891 굴 해적 노릇을 하다.
1893 ‘소피 서덜랜드’라는 물개잡이 배의 선원이 되다.
이때의 경험을 『일본해안의 태풍 Typhoon of the Coast of Japan』이라는 단편으로 형상화
1897 3월 12일 노다지를 찾아 알래스카로 감.
1898 금을 찾는데 실패하고 괴혈증에 걸려 돈 한푼 없이 오클랜드로 돌아옴.
1990 단편집 『늑대의 아들 A Son of the Wolf』 출간, 엘리자베스(베시) 마던과 결혼.
1902 단편집 『추위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Frost』, 장편 『눈의 딸 A Daughter of the Snows』, 청소년 소설 『대즐러호의 모험 The Cruise of the Dazzler』 출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시 이스트엔드 구역에 체류한다.
1903 장편 『황야의 부름 The Call of the Wild』, 르포 『밑바닥 사람들 The People of the Abyss』
1904 장편 『바다 늑대 The Sea-Wolf』 출간
1905 차미언 키트리지와 재혼
1906 『강철군화 The Iron Heel』 탈고하고, 1907년에 출간되다.
1909 요트여행 중 쓴 『마틴 에덴 Martin Eden』 나옴
1910-1916 수많은 단편, 장편 희곡 발표
1916 아내와 하와이 여행 중 서면으로 사회당 탈당 선언
11월 농장에서 자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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