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어떤 시골 마을 구빈원에서 한 여인이 아버지를 모르는 사내아이를 낳고 죽는다.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부지하며 고아원에서 성장한다. 밥을 더 달라고 반항한 대가로 장의사 집으로 팔려간 후 이곳에서 모친을 욕하는 도제와 싸우고는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에서 그를 반기는 것은 소매치기 조직, 그는 소매치기 ‘교육’을 받던 중 우연히 선량한 자선가에게 구출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다시 소매치기들의 손에 들어간 그는 집털이 강도에 동원됐다가 동료 강도들이 그를 버리고 도망가는 바람에 다시 자선의 손길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를 에워싼 음모는 계속된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이복형인 몽스는 올리버가 타락하면 부친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매치기 두목 페이긴과 담합하여 올리버를 다시 범죄의 늪에 빠뜨릴 궁리를 하기 시작하는데......(요약)
올리버 트위스트 출생은 원래 좋으나 가난한 고아로 태어나서 온갖 모험과 곤혹을 겪는다. 마음씨가
착하고 여린 아이.
페이긴 교활한 유대인 영감으로 소매치기 조직을 관리하고 있으며 장물아비로 돈을 제법 모은
‘사업가’다.
브라운로우 인정 많은 노총각 노신사로, 올리버의 보호자가 된다.
메일리 부인 돈 많고 인정 많은 귀부인
로즈 메일리 메일리 부인의 양녀로 올리버를 동정하고 보살핀다. 사실은 올리버의 이모
몽스 올리버 트위스트의 이복형으로 부친의 유산을 노리고 올리버의파멸을 도모한다.
낸시 올리버에게 연민을 느끼는 맘씨 착한 매춘부로 페이긴의 영향권하에 있고 사익스 와
동거한다.
빌 사익스 건장하고 완악한 악한으로 살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낸시와 동거관계
존 도킨스 페이긴네서 일하는 어린 소매치기로 재주가 뛰어나고 의리가 남다르다.
이름뿐인 보호자들
갈 곳 없는 가난한 방랑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구빈원에서 이름 없는 고아가 한 명 태어난다. 아이를 낳은 여인은 산고를 못 이기고 숨을 거둔다. 이렇게 해서 구빈원의 밥그릇을 하나 더 늘게 만든 사내아이는 범블이라는 하급관리에 의해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이름을 받고, 다른 가엾은 고아들과 함께 목숨만 겨우 유지할 정도의 식량만을 배급받아 먹으며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고아원장에게 ‘끔찍한’ 도전을 한다. 그 내용인즉 정해진 양인 죽 한 그릇으로는 너무나 배가 고팠던 차라 한 그릇을 더 달라고 감히 요구한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려 지독해졌고 비참함에 치여 보이는 것이 없었던 올리버는 식탁에서 일어나서 주발과 숟가락을 들고 구빈원장에게 다가가서는, 스스로도 좀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있잖아요 원장 선생님, 조금만 더 주세요.” 뚱뚱하고 건장한 사내인 구빈원장은 올리버의 이 당돌한 요구에 이내 창백해졌다. 그는 몇 초 동안 이 꼬마 반역자에 놀라 넋을 잃고 있다가, 가마솥에 기대어 겨우 정신을 차렸다. 보조원들도 아연실색했고 아이들은 공포에 떨었다.
“뭐야!” 구빈원장은 희미한 목소리로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원장 선생님, 조금만 더 주세요.” 그저 죽 한 그릇 더 달라는 이 요청이 왜 이렇게 큰 사건이 되는가? 그것은 가능한 한 적은 비용을 투자해서 가능한 한 많이 남겨먹으려는 구빈원 관리들의 ‘경제철학’에 겁 없는 꼬마가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행여나 이 아이들이 고아원 생활을 너무 편하게 하면 나태하고 게을러져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바람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교육적’ 배려에서 매일 한 끼에 죽 한 그릇만을 먹여온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올리버가 도전한 것이다.
결국 이 일에 대한 대가로 올리버는 정부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추방되고 관을 짜고 장례식을 치러주는 소어베리씨의 집에 도제로 팔려간다. 이곳에는 낮에만 일하러 오는 노어 클레이폴이라는 못된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와 소어베리 부인은 올리버를 매우 미워해 틈만 나면 그를 괴롭힌다. 어느 날 노어 클레이폴이 올리버의 죽은 어머니를 흉보자 그간 참고만 지내오던 올리버는 마침내 솟아오르는 분노를 주먹으로 옮겨서 노어를 때려눕힌다. 평소에 올리버를 호의적으로 보아오던 소어베리씨는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할 수 없이 그를 헛간에 가둔다. 다음날 새벽 일찍 올리버는 그 집을 탈출해서 런던으로 무작정 상경한다.
올리버의 첫 사회생활
벌써 며칠째 굶은 걸까? 그리고 런던은 왜 이렇게 멀기만 한지! 어린 올리버가 허기에 시달린 채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큼직한 어른 옷의 옷소매를 걷어 입은 채 신사 모자를 쓴 꼬마 건달이 올리버를 부른다. “어이, 형씨! 어디를 가시는가?” “런던에 가는 길이야.” “잘 데는 있는가?” “없어.” “그럼 날 따라와. 괜찮은 영감님 한분을 아니까 말이야. 밥도 먹여주고, 재워주지.” 이 아이는 존 도킨스, 소위 ‘교묘한 미꾸라지’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꼬마 소매치기로 그 바닥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는 대가였다. 그의 손에 이끌려 올리버는 ‘괜찮은 영감님’, 즉 페이긴이라는 유대인 장물아비네 집으로 간다.
순진한 올리버는 처음에는 페이긴이 정말로 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니다. “무슨 손수건들이 저렇게 많을까? 그리고 왜 아이들이 매일 손수건이며 지갑을 영감님에게 가져오는 걸까?” 이때마다 페이긴은 꾸며낸 목소리로 말한다. “얘, 올리버야, 이것들 참 예쁘지?” 그러면서 ‘일’을 하고 온 미꾸라지와 그의 단짝 찰리 베이츠에게 용돈을 줘서 나가 놀라고 한다. 웃음보가 유달리 큰 베이츠는 올리버가 속아넘어가는 꼴이 흥겨워 웃음을 참지 못하며 즐거워한다. “참 멋진 생활이지? 이건 온종일 놀고 먹는 생활이라구.”
페이긴은 이런 말로 올리버를 유인하며 그에게 손수건 빼는 ‘훈련’을 장남삼아 시키면서 그를 쓸모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는지 올리버를 미꾸라지와 베이츠에게 맡긴 후 데리고 나가서 실습이자 견학을 시키도록 한다.
숱한 인파가 넘쳐나는 런던 거리. 두 소매치기를 따라 나선 올리버는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들은 좌판의 사과 한두 개쯤은 대수롭지 않게 주머니에 넣고 태연하게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들은 올리버를 사이에 두고 이런 말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저기 영감태기면 되겠지?” “그래. 아주 훌륭한 먹이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한 노신사가 길거리에 서서 책을 집어들고 그곳이 마치 서재의 안락의자라도 되는 듯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미꾸라지가 다가가 그 노신사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는 손수건을 빼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둘은 줄행랑을 쳤다. 그 순간, 드디어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올리버지만 동료들에 대해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린 채 같이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줄행랑에 일가견이 있는 미꾸라지나 베이츠와는 달리 올리버는 금세 군중에 잡혀버리고, 졸지에 ‘도둑’으로 몰리고 만다. 모든 정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무리 부인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기 직전, 피해자인 노신사는 올리버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단죄하려는 판사 팽씨 앞에서 그를 구출한다. “이 영감이 누구야? 이봐 형사, 무슨 혐의로 끌려온 자인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노신사에게 무례하게 구는 판사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노신사는 올리버를 구출해낸다. 왜 그랬을까?
잠깐의 행복
올리버의 일행에게 손수건을 빼앗긴 노신사는 브라운로우라는 홀아비 영감으로, 그는 올리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딘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착하게 생긴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라는 아이의 주장을 믿기로 한 것이다. 그럼, 왜 유달리 올리버를 친숙하게 느낀 것일까? 우연 중에서도 범상치 않은 우연의 일치로 브라운로우는 바로 올리버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고, 올리버는 그 친구가 사랑한 여인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기 때문이다. 브라운로우는 미처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측은한 마음에 올리버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런데 집에 걸려 있던 올리버 어머니의 초상화 앞에 선 올리버의 모습을 보고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 아무튼 올리버는 브라운로우씨 집에서 난생 처음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가정부 베드윈 부인의 사랑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때 올리버를 본의 아니게 잃어버린 페이긴은 미꾸라지와 베이츠에게 진노한다. 브라운로우가 올리버의 ‘정체’를 알아낸 거의 같은 시간에 페이긴 역시 그의 정체를 알게 됐고, 올리버에게 상당한 돈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페이긴은 어떻게 해서든지 올리버를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동업자이자 하수인인 살인범 사익스와 그의 배필 창녀 낸시를 동원한다. 낸시는 타고난 연기력을 발휘해 자신의 어린 동생인 척 올리버를 끌고 오기로 하고 길거리에 나선다.
올리버를 행복한 브라운로우씨 집으로 데려간 길거리의 우연은 이제 다시 그를 페이긴 소굴로 되돌려놓는 역할을 한다. 어느 날 브라운로우는 친구에게 올리버의 선함을 입증할 요량으로 돈 심부름을 보낸다. 게다가 자기가 소매치기를 당한 바로 그 서점으로. 그런데 브라운로우씨 집 밖은 악당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다. 올리버가 무사히 돌아오기에는 너무나 위험이 많았던 것이다.
브라운로우의 심부름 생각만을 하고 걷는 올리버 뒤로 한 젊은 여자가 달려들며 그를 껴안는다. “아이구, 내 귀여운 동생아!” “왜 이래요! 날 놔줘요.” “아이구, 하느님! 드디어 애를 찾았어요! 야, 올리버야! 이 못된 애야, 너 땜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집에 가자, 얘야. 가자구.”
주위 사람들이 여인에게 묻는다.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아이구, 말도 마세요. 한 달 전쯤에 얘가 부모님을 두고 도망을 쳤어요. 도둑놈들이랑 어울려서 어머니 맘을 산산조각나게 했지 뭐예요.” “이런 못된 놈이 있나. 집에 가거라, 어서. 이 짐승 같은 꼬마 녀석!” 이 와중에 건장한 사익스는 올리버를 붙잡아서 질질 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올리버의 짧은 행복은 무참히 끝나버린다.
전화위복
페이긴의 소굴에 다시 갇힌 올리버. 그는 이제 자신의 ‘사업’ 비밀이 모두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더 노골적, 적극적으로 올리버를 길들이기로 노력한다. 협박도 하고 구타도 서슴지 않으면서, 그가 순응할 때까지 감금하기도 한다. 또한 올리버에게 각종 범죄소설을 읽히면서 범죄의 세계에 매력을 느끼도록 교육한다.
왜 페이긴은 이렇게 올리버에게 집착했을까? 그것은 몽스라는 또 다른 악당과의 거래 때문이다. 올리버가 도둑으로 몰리던 날 그의 정체를 짐작한 사람들 중에는 몽스도 포함돼 있었다. 몽스는 올리버의 이복형으로 올리버의 아버지가 집안의 권유 때문에 원치 않던 결혼을 한 후 낳은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성격이 고약한 부인과 헤어진 후 애그니스 플레밍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이미 결혼한 몸이었으므로 이 둘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은 이미 건너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상태.
그런데,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기도 전에 그는 몹쓸 병에 걸렸고, 올리버를 가진 애그니스를 두고 멀리 로마에서 숨을 거두면서 유언장을 남겼다. 그 유언에 의하면, 몽스라는 자식이 워낙 못된 어머니에게서 나왔으므로 이 장자에게 재산을 그대로 물려줄 것이 아니라, 약간의 연금만을 몽스 모자에게 주고, 대부분의 재산은 애그니스 플레밍과 그녀의 아이 사이에서 반씩 나누도록 했다. 그러나 단, 그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성년이 될 때까지 행실이 발라야 유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달았다. 몽스는 이 유서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다. 애그니스는 이런 내용을 모른 채 죽었으므로, 올리버만 악당으로 변해준다면 재산은 몽스에게 모두 가도록 돼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몽스는 올리버를 타락시켜서 재산이 자신에게 오도록 페이긴의 도움을 청했던 것이고, 페이긴은 물론 일정한 대가를 받기로 하고 이 ‘사업’에 동업자가 된 것이다.
페이긴은 올리버를 결정적으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강도 사익스는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에게 일감을 주고 일의 대가로 생긴 장물을 처리하며 현찰을 손에 쥐어주는 자는 페이긴이다. 페이긴은 말하자면 사익스의 ‘고용주’인 셈이다. 그러니 이 둘 사이에는 장물 값이나 사익스의 보수를 놓고 늘 분쟁이 있었고 따라서 둘의 사이는 매우 험악하다. 하지만 어쨌든 사익스는 페이긴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관계에서 사익스에게 일거리가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런던 근교 시골에 한 저택에 쓸 만한 물건들을 좀 털어오는 것이다. 이런 ‘일’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거부감이 없는 사익스지만 다만 여기에 올리버를 데려가라는 페이긴의 요구를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명분은 올리버가 가벼우니 담을 넘게 한 다음 아래에서 문을 열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올리버를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페이긴과 몽스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페이긴의 뜻대로 올리버는 어둔 밤길에 사익스를 따라나선다. 혹시 기회를 봐서 도망을 치면 안될까? 그러나 무시무시한 사익스는 잠시도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드디어 ‘일터’에 도착했다. “잘 들어, 이 꼬마녀석아. 널 저 창문 안으로 집어넣을 거다. 이 등을 가지고 앞계단으로 살그머니 올라가서 앞문을 따고 우리를 들여보내. 허튼 수작을 할 때는 끝장날 줄 알아!” 권총을 휘두르며 사익스가 올리버에게 지시했다.
그런데 올리버는 이때, 어린 시절 죽 한 그릇을 더 달라고 외쳤던 용기를 다시 불러내보기로 결심한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거실 계단을 올라가 그 집 식구들을 깨우려고 했다. “돌아와!, 야, 너 미쳤어!” 아무리 사익스가 외쳐도 이미 올리버는 결심을 굳히고 그 일에 목숨을 걸었다. 이때 한 순간, 귀를 찢는 소리와 불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올리버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올리버의 외치는 소리에 잠을 깬 하인들이 나오자 사익스는 권총을 쐈고 이때 올리버가 상처를 입고 기절하자 그를 들쳐메고 내달린 것이다. 그러다가 올리버가 귀찮아지고 추적이 심해지면서 그를 버리고 둘만 도망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도랑에 버려진 채 짧은 인생을 마감하기 직전, 사익스를 추적하던 하인들이 올리버를 발견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올리버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은 셈이었다.
행운은 그뿐이 아니었다. 이 집은 마침 메일리 부인과 그녀가 데려다 키운 로즈 메일리라는 착한 여인이 사는 곳이다. 이들의 친구인 의사 로스번씨의 치료와 재치, 그리고 이 두 여인의 무한한 모성애와 자비 덕에 올리버는 블레이더즈와 더프라는 무능한 형사들의 취조도 따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하고 행복한 가정의 울타리 속에서 사랑을 마시고 정을 느끼며 살게 된 것이다.
낸시의 죽음과 파국
올리버는 항상 여성들의 도움을 받는다. 가장 타락한 여인이라고 할 낸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낸시는 비록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몸을 버렸고 흉악한 살인범과 함께 살고 있지만, 사익스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올리버를 페이긴의 소굴로 유인하는 크나큰 공로를 세우긴 했지만 늘 올리버를 가엾게 여겨 그를 보호해주기 위해 노력했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이 낸시가 우연히 페이긴과 몽스의 은밀한 ‘사업’ 이야기를 엿들었다. 이제 올리버가 메일리 가문의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올리버를 타락시키기에는 크나큰 장애물이 생긴 것을 놓고, 몽스는 페이긴의 ‘관리소홀’을 따지고 들었고, 페이긴은 변명과 또 다른 음모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이 광경을 낸시는 몰래 보고 들은 것이다. 몽스는 이미 두 번째 단계 ‘작전’에 몰입해 들어갔다. 올리버가 태어날 당시 구빈원에서 일하던 범블과 범블과 재혼한 간호부장 코니 부인을 찾아가 올리버의 신원을 밝힐 증거를 제거함으로써 유산 상속의 경쟁자를 없애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 무렵 올리버는 메일리 부인과 로즈 등과 함께 런던에 와 있었다. 이제 올리버에 대한 모든 비밀을 알게 된, 그리고 여전히 그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낸시는 수소문 끝에 로즈 메일리를 찾아가 자신이 들은 모든 사실들을 털어놓는다. 이에 로즈는 크게 감명을 받아 낸시에게 범죄 소굴로 돌아가지 말고 같이 있자고 권유한다. “아니예요. 돌아가야만 해요. 왜나햐면...... 내가 얘기한 남자 중에서 가장 절박한 처지의 사내 하나가 있어요. 난 그를 떠날 수 없어요. 안되지요.” “아뇨, 같은 여자로서의 간청을 못 들은 척하지 마세요...... 내 말을 들으세요. 당신을 구해드릴게요. 더 나은 삶을 위해서.”“아, 참 고마운 말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너무 늦었어요!”
그리고 낸시는 로즈를 통해 브라운로우씨를 만나 대책을 논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들은 매주 일요일 밤 열한시에서 자정까지런던교를걸어다닐테니그때우연히만나는것처럼하자고약속한후헤어졌다. 그런데 일요일 밤마다 외출하는 낸시를 두고 사익스는 당연히 의심을 품는다. 그런 그를 걱정해 낸시는 사익스를 잠재우기 위해 약물을 탄 술을 먹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브라운로우씨를 만나서 긴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교활한 페이긴은 이미 뭔가 수상하다는 눈치를 챘다. 마침 옛날 장의사네서 올리버를 학대한 전력이 있던 노어 클레이폴은 페이긴의 일꾼으로 변신해 있었다. 주인의 돈을 몰래 훔친 후 하녀를 데리고 런던까지 와서 일터를 찾던 중에 페이긴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워낙이 인간성이 형편없는 노어에게 페이긴은 낸시를 미행하도록 시킨다. 미행은 그야말로 그의 천성에 맞는 일이었고, 그는 낸시를 철저히 미행해서 낸시와 브라운로우씨간의 대화를 엿들은 후, 그대로 페이긴에게 보고한다.
이에 격분한 페이긴은 사익스에게 자초지종을 알림으로써 사익스를 부추긴 뒤에 낸시를 조용히 해치우도록 권한다. “그자들이 뭐라고 했다고, 지난 일요일에 대해서?” 페이긴이 노어에게 묻는다. “그들이 그 여자한테 물었어요. 왜 약속대로 지난 일요일에 안 나왔냐고요. 그러니까 그 여자가 말이, 지난번에 얘기한 그 빌이란 사람한테 강제로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못 왔다고 했어요.” “그 밖에 또 뭐라고 했어?” “처음 그 숙녀를 만나러 갔을 때 약을 타서 그 사내한테 먹였다던데요. 하하하! 정말 웃겨서, 원!” “지옥 불을 맞을 년!”
집으로 달려간 사익스는 낸시가 조직도, 자신도 배반한 것에 대해 분노해 애원하는 낸시를 침대에서 끌어내린다. “빌, 내 말을 들어봐... 제발 이러지 말고.” “넌 오늘밤 미행당했어. 네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들었단 말이야.” “그렇다면 제발 목숨만은 살려줘. 빌, 사랑하는 빌, 나를 죽일 생각은 아니지? 난 자기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어. 그리고 살인하지 마. 난 자기한테 진실했다고, 내 죄지은 영혼에 걸고 맹세하건대!”
그러나 몰인정한 강도는 권총을 꺼내 들었다. 총소리가 나면 틀림없이 당장 붙잡힐 거라는 생각에 그는 그의 얼굴에 거의 닿을 듯한 낸시의 얼굴에 있는 힘을 다해서 권총을 두 번 내리쳤다. 여인은 비처럼 쏟아지는 피 속에서 숨을 거둔다.
하지만 낸시의 죽음은 곧 사익스와 조직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 사건 때문에 도주길에 나선 사익스는 결국 건물 옥상에서 실족해 죽는다. 그리고 이미 낸시의 제보를 통해 모든 상황을 파악한 브라운로우씨를 주축으로 한 ‘정의의 세력’의 노력으로 페이긴도 법의 망에 걸려 처형을 당한다.
이리하여 모든 악한들이 제거된 후 브라운로우는 몽스를 붙잡아 사건이 자초지종을 자백하게 만든다. 비로소 모든 비밀이 다 밝혀지고, 눈물과 충격이 뒤섞인 가운데 올리버는 사실은 이모가 되는 로즈의 품에 안기고 유산도 물려받는다. 한편 로즈는 그간 자신을 극진히 사랑한 헤리 메일리, 즉 메일리 부인의 외아들과 결혼한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찰스 디킨스 지음, 글쓴이 윤혜준교수>
▣ 저 자 찰스 디킨스 (1812∼1870)
누구보다 영국을 사랑했고, 영국민 또한 극진한 사랑을 주었던 영국의 국민작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영국의 국민작가
한국인에게 찰스 디킨스는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기억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절대왕정시대의 궁정과 상류계층의 생활사를 아름다운 시어와 함께 접하게 된다면, 디킨스의 작품에서는 번성하기 시작한 근대 도시에서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며 돈과 젠틀맨 신분을 쥐려고 애쓰는 근대인의 모습을 풍성한 산문을 통해 접한다. 산업혁명의 시발지로 제일 먼저 근대로 입문한 영국사회는, 현대 우리사회가 시작되었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디킨스의 입지전적인 생애도 뛰어난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근대인의 성공신화를 대표하는 듯하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주막에서 누군가 디킨스의 소설을 크게 낭독해 주는 것을 들으며 즐겼던 서민에서부터, 문학적 심미안과 비판의식을 갖춘 상류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영국 국민들은 디킨스의 소설을 사랑하였다.
당시의 신분구조 속에서 디킨스 집안을 굳이 분류해보자면 디킨스는 중하류계급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귀족의 집사였고 할머니는 그 집의 가정부였다. 아버지는 그 귀족의 추천으로 해군기지 사무소의 서기로 일했다. 그는 낙천적이고 유머 있는 사람이었지만, 경제관념이 희박했다. 항상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아서 계속 빚을 졌다. 어머니도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가는 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디킨스가족은 더 가난한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다. 급기야는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다다르게 되는 채무자감옥에까지 갇히게 되었다.
그때 디킨스는 12살이었다. 대략 6월 정도였으니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이 경험은 그에게 평생 기억될 심리적 외상을 입힌다. 장남인 디킨스를 빼고는 동생들과 어머니도 감옥에 들어가 살았다. 디킨스는 감옥 앞의 허름한 집에 세들어 살며 구두약 공장에서 일했다. 소설을 즐겨 읽고 꿈많던 소년 디킨스는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가난한 아이들 속에 끼여 일해야 하는 상황에 깊이 상처를 입었다. ‘학식 있는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는 어린시절의 희망이 내 가슴속에서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고, 어떤 말로도 내 영혼 속에 숨겨놓은 그 고뇌를 표현할 수는 없었다’고 그는 후에 토로한다.
말년에 자신의 전기작가에게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로 할 정도로 디킨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겼던 이 경험은, 그러나 작가로서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풍족하고 순탄하기만 한 삶 속에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작가로서 필수적인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공감적 이해가 양육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시 소위 산업혁명시대에는 이제 열 살도 채 안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산업현장에로 내몰렸다. 가장역할을 하면서 학대받고 방치된 어린이들의 고통에 특히 민감했던 디킨스의 작품에는 불쌍한 어린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런던의 영세민층 속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디킨스는 소설사상 처음으로 도시의 빈민지역 주민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심지어 평생 런던에 산 사람들도 여태껏 가보지 못했던, 경관조차도 일행 없이는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그런 지역을 다룬다. 어린시절의 경험은 도시빈민을 변두리적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사회계급 전체가 예술적 재현의 위엄을 부여받는 예술상의 민주화작업을 이룬 토대가 된다.
가난한 소년가장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디킨스의 생애는 자수성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출감한 뒤에도 가정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 디킨스는 15세까지만 학교교육을 받았다. 그후로는 다양한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는 법률사무소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했고 밤으로는 열심히 속기술을 익혔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에 속기술은 법원직원이나 기자들에게 아주 경쟁력 있는 기술이었다. 그는 탁월한 문장력과 부단한 노력으로 고등법원에 출입하는 기자가 된다. 나아가 의회에 출입하는 가장 유능한 기자로 성장하여 1832년 당시 제1차 선거법개정에 대한 논쟁이 분분했던 의회를 실제 취재하기도 했다. 무지와 이기심에 가득찬 국회의원들에게 느낀 당시의 크나큰 환멸은 평생 지속된다. 그리고 이 시절 그는 작가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그의 첫 소설은 『피크위크 문서 Pickwick papers』다. 이것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이 아니라, 신문에 매일매일 삽화와 함께 일정 분량 실렸다가 월간본으로 묶여 판매되었다. 이후 디킨스의 모든 소설은 이렇게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쓰여지고 출판된다. 이 소설은 사람좋은 중년신사인 피크위크가 영국의 풍물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과 인정 넘치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피크위크를 일약 영국민이 매우 사랑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이 출판되었을 때 당시의 비평잡지들은 디킨스의 놀라운 문학적 재능에 대해 모두 호평했다. 그들은 관찰의 넓은 폭과 정확성에 대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드는 위트와 유머에 대해, 인물들과 사건의 독창적인 창조에 대해, 마술적인 숙달된 언어조작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또한 이 같은 문학적 재능만이 아니라 작품 속에 배어나는 디킨스의 온화하고 따뜻한 품성과,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사회의 불의와 그릇된 제도에 대한 정당한 분노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이 같은 천재적인 문학적 재능과, 인간미와 정의에 기초한 개혁의식은 이후 디킨스의 모든 작품에 꾸준히 이어지며, 그의 독보적인 명성과 인기의 비결이 된다.
디킨스만큼 왕성히 활동한 작가도 없다. 그는 25세에 첫 소설을 출간하고 58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거의 매년 대작을 써낸다. 또한 연극대본을 직접 써서 연출하고 아마추어 배우들에게 몇 달에 걸쳐 연기를 지도하는가 하면 스스로도 역할을 맡았다. 다른 배우들의 역할을 너무 잘 알고 그것에 몰입하여, 때로는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가정의 말들 Household Word』과 『일년내내 All the Year Round』라는 당시 인기 있던 두 주간지를 차례로 창간하고 편집장을 맡았다. 그는 900명의 자유기고가의 글을 하룻밤에 읽고서, 그중 11개만을 취해 그 기사를 거의 자신이 다시 새롭게 썼을 정도로, 기사를 읽고 거절하고 승인하고 다시 쓰는 작업을 혼자 도맡다시피 했다. 또한 하루 몇십 통의 독자와 작가지망생들의 편지에 일일이 충실하게 답장했다. 디킨스가 이토록 지치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로서의 투철한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문학에 의해서, 문학을 위하여, 문학으로서, 문학이 내 안에 서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맹세는 사회와 대중에 대한 디킨스의 투철한 작가의식을 보여준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엔터테이너
40대 중반에 디킨스는 명망과 재산을 모두 성취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즈음 매우 불안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애써 외면하려 한 불행한 결혼생활이 더이상 다둑거려 수그러들 수 없게 불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20세 즈음에 만나 결혼한 아내 캐서린은 본디 순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느긋한 아름다움이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무한정으로 노력하고 활약하며 성공을 거듭하는 디킨스와 감정이 덤덤하고 매사에 서투른 캐서린은 점차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부가 되어갔다. 그는 절친한 친구인 포스터에게 ‘인생에서 한 가지 크나큰 행복을 놓쳤다는 것, 그리고 친구와 동반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왜 이렇게 나를 짓누르는지’ 알 수 없다며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고백한다.
이 즈음에 디킨스는 연극활동 중 19세 소녀인 엘렌 터넌(Ellen Ternan)을 만나게 된다. 이후 15년동안 그녀는 디킨스의 베일에 싸인 애인이 된다. 그녀를 만난 다음 해에 그는 아내와 별거를 하게 되어, 국가적인 스캔들을 불러일으킨다. 여지껏 디킨스의 가족은 그야말로 모범적인 중산계급 가정의 모델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열 명의 자녀와 따뜻한 아내와 함께 ‘가스힐 Gad's Hill' 의 품격있는 저택에서 저녁시간을 보내거나,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모든 보통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으로 보여졌다. 평생 대중들의 환호와 인사와 관심에 에워싸여 살아온 만큼, 부인과의 별거에 대한 대중들의 지탄도 대단했다. 심적으로 자신도 큰 상처를 입은 디킨스는 ’허황된 수많은 소문들을 나의 명성과 성공의 빛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림자로서 나는 항상 받아들였다‘고 토로한다.
디킨스 생애의 빛은 바로 작가로서의 대중적 성공이었다. 그는 비밀리에 어린 여배우와 연애했지만, 어떤 평자가 지적했듯이 ‘그의 인생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대중과의 연애’였다. 그는 평생 대중과 연애하듯이 그들에게 충심을 다했다. 그가 노년에 대중을 대상으로 작품낭독을 강행한 것도 사람들과의 감정적 결속을 향한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10년 동안 작품낭독을 위해 영국 곳곳과 세계를 여행했다.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성공이었고 대중들의 눈물어린 환대와 장관이나 시장들의 영접을 받았다. ‘그의 낭독여행은 개인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공적이며, 거의 국제적인 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디킨스는 그의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엔터테이너일 뿐 아니라 특별한 숭배를 불러일으키는 인사였다. 그의 이야기는 진정 그 시대의 화제였다. 거의 정치나 뉴스와 같은 것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윈저성의 여왕은 ’그 엄청난 손실‘에 슬퍼했고, 시장의 과일장수 딸은 ’디킨스가 죽었다고요. 그러면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도 죽었겠네요‘라고 했으며, 노동자들이 모이는 주막에서는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고 애도했다. 그만큼 디킨스는 계급과 나라의 경계를 가로질러 사랑받은 작가였던 것이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
이 소설은 로즈 메일리나 브라운로우처럼 명백하게 ‘선한’ 이들을 그리고 있지만 우리의 인상에 남는 강렬한 인물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악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모든 악당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닌 것처럼, 겉으로 선하다고 해서 꼭 그 인물이 선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악당들이 들끓는 실제 사회 속에 올리버라는 순수한 인물을 던져놓았지만 그 선한 인물은 지극히 무력하며 설득력도 없게 제시된다. 작가는 한편으로는 순수한 선량함을 존중하고 있지만 동시에 악당들을 유형별로 독특한 모습으로 분류해놓음으로써 선과 악의 공식을 보다 복잡하게 탐구하고 그것이 전복되는 모습에 몰입한다.
따라서 이 소설의 악당들을 무조건 악당으로만 단순히 구분할 일은 아니다. 예컨대 올리버를 범죄소굴로 유인한 ‘죄’가 적지 않은 ‘교묘한 미꾸라지’는 비록 올리버를 죄악의 소굴로 끌어들인 장본인이기는 하지만 의리와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다. 이 아이와 소매치기 단짝인 찰리 베이츠는 웃음보가 큰 낙천적인 아이로 범죄자이긴 해도 크게 미워할 수 없는 대상이다. 또한 소매치기보다 도덕적으로 더 지탄받을 만한 낸시라는 어린 창녀도 마음씨만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반면에 어른 범죄자들은 본격적인 악한들로서 어느 모로 보나 흉한 인간들이다. 먼저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장물아비 페이긴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구두쇠에다, 교묘한 음모에까지 능하지만 겉으로는 인자한 척하는 이 유대인 영감은 하루 빨리 올리버를 수렁에 빠뜨리기 위해 전력한다. 그의 수하에 있는 사익스라는 살인강도는 페이긴에게 조종당하는 처지기는 하나 험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윽박지르곤 하는 술주정뱅이로 힘이 센 악한이다. 그의 사악함은 자신과 동거하던 낸시를 무자비하게 쳐죽이는 살인행위로 극점에 이른다.
이들처럼 본격적으로 범죄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인간들 외에 좀더 ‘점잖은’ 축에 속하는 양반 범죄자들이 있다. 이중 첫번째로 들 수 있는 인물은 몽스인데, 그는 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아버지를 둔 이복형제면서도, 올리버가 범죄자가 되면 유산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페이긴에게 올리버를 타락시키도록 부탁하고 거액의 사례금을 약속한 사람이다. 인간적 의리는 물론이고 혈육의 정도 돈에 팔아넘기려는 몽스는 악한 중의 악한이다. 또한 겉으로는 멀쩡하면서도 사실상 범죄적 이기심에 사로잡힌 사람들 또한 여럿 있는데, 그 중에는 올리버에게 이름을 지어준 하급관리 범블도 포함된다. 그는 늘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극빈자들에게 잔인무도하게 굴 뿐 아니라, 물질적 이익을 좇아서 코니부인과 결혼한다. 고아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은 교구 이사들도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중시하는 부도덕하고 비인간적 작자들이고, 각종 형사사건에 대한 즉결재판의 권한을 행사하는 치안판사 팽씨도 법의 권위를 마구잡이로 뒤흔들면서 약자를 윽박지르기를 즐기는 악한 아닌 악한이다. 결국 정말 악한 자들은 법과 기득권의 울타리 속에서 자신의 권력 밑에 들어온 힘없는 자,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위선자들임을 디킨스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찰스 디킨스는 흔히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하룻밤 새 꾼 악몽 덕에 자선가가 된다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크루지 이야기가 보여주듯, 디킨스는 누구나 알 수 있고 공감할 만한 수준에서 이야기를 꾸며나가면서 웃음과 울음을 적절히 뒤섞어놓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꾸준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웃음 이면에는 권력자와 오만한 부자, 탐욕스러운 세도가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었다. 이것은 디킨스 문학에 면면히 흐르는 큰 특징이기도 하다.
말뿐인 ‘법대로’
이 소설은 사기, 간통, 유괴, 가택침입, 매춘, 절도, 심지어 살인 등 온갖 종류의 범죄를 직접 간접적으로 망라하면서도 집요하게 사회의 지도자들인 법률가와 그들의 권위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마지막에 페이긴은 법의 심판을 받지만, 작가는 블레이더즈와 더프 같은 형사들을 비웃고, 팽 같은 판사를 풍자하고, 온 장안이 다 동원되어 낸시를 죽인 살인자 사익스를 잡으려 할 때도 결국 제도화된 법의 테두리 밖에서 그를 죽게 한다. 그런가 하면, 범죄의 피해자들이 법에 의존하는 대신 오히려 자기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법에 대한 불신은 법이 힘있고 돈 있는 자들의 편만을 들어준다는 대중들의 불만을 대변한다. 그것은 나아가 이 소설에 나오는 많은 공직자들에 대한 불만으로도 이어지는데 이들은 법대로 세금을 걷어 쓰면서도 진정으로 시민들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재빨리 이득을 본 사람들도 많았으나 반대로 피해를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득을 취한 사람들로서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자는 공리주의적 경제철학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들리겠으나, 당장 잘 데가 없고 당장 입을 옷이 업고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이것은 한마디로 각자 알아서 굶어죽으라는 논리와 다름없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힘있고 돈 있는 자들에게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올리버 같은 고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들은 한마디로 ‘법대로’ 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놓은 법에 의하면, 죽 한 그릇을 먹고 구빈원에서 자라 죽지 않고 살아남아 사람구실을 할 만하면, 여전히 배를 곯며 하루 10시간 넘도록 공장에서 일을 하든지, 아니면 좀 쉽게 배를 채우기 위해서 소매치기 일당에 합류해 잠깐 즐기다가 법망에 걸려 죽거나 유배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디킨스가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는 이러한 운명을 벗어난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나 디킨스는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가 좀더 많은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해당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소설을 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