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절친한 친구 바사니오가 부유하고 아름다운 벨몬트의 안주인 포샤에게 구혼하러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릴 때 기꺼이 보증을 선다. 평소 기독교인들에게 불만이 많았던 샤일록은 약속한 세 달 안에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위약금 대신 받겠다는 계약을 받아낸다.
한편 바사니오가 구혼하러 간 부유한 상속녀 포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배우자를 맞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각각 금, 은, 납으로 된 세 개의 상자 중 한 개에 포샤의 초상화를 넣어두고, 그 초상화가 든 상자를 고르는 사람을 포샤가 남편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유언을 해두었던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구혼자들의 각축 속에서도 포샤의 마음을 얻은 바사니오가 초상화가 든 상자를 고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는 그들에게 불길한 소식이 날아드는데......(요약)
포샤 벨몬트의 부유한 상속녀
안토니오 베니스의 상인. 바사니오의 친구로 샤일록에게 돈을 꾸어 바사니오가 포샤에게 구혼하러 가는 것을 돕는다.
바사니오 안토니오의 친구. 포샤에게 구혼하여 그녀의 남편이 된다.
샤일록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로렌조 샤일록의 딸 제시카를 사랑하여 그녀를 데리고 도주하여 결혼한다.
제1막 - 비극적 계약
무대는 베니스. 상업과 무역이 활기를 띠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가장 빨리 자리잡아가던 베니스에 그러한 경제체제의 주축이 되는 상인인 안토니오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다. 친구 살레리오와 솔라니오는 전 재산을 투자한 상선이 걱정되어서, 아니면 혹시 그 사이 사랑에 빠져 그렇게 슬픔에 잠겨 있는 거냐고 묻지만 안토니오는 모두 부인한다. 바사니오와 로렌조, 그라시아노가 등장하여 그의 기분을 돋우려 하지만 그것도 역시 효과가 없다.
다른 친구들이 떠나고 바사니오만 남자, 안토니오는 그에게 구혼 계획을 물어보면서 자신의 기분이 바사니오의 구혼과 관계 있음을 암시한다. 바사니오는 무절제한 생활로 이미 빚더미에 올라 있고, 안토니오에게 돈과 사랑에 있어서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그는 벨몬트의 아름다운 상속녀 포샤에게 구혼해 빚을 청산할 계획이다. 하지만 벨몬트로 갈 여비조차 없는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상선에 투자한 터라 배가 돌아와야만 돈이 생기는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의 여비를 사람들에게서 빌려다주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벨몬트에서는 포샤가 자신의 몸종 네리사에게 ‘이 거대한 세상이 지겹다’고 불평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상자 세 개 중에서 자신의 초상화가 들어 있는 상자를 고르는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해야만 한다. 그러나 네리사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좋은 뜻’을 의심하지 말라면서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올바른 상자를 선택할 리 없을 것이다’라며 위로한다. 포샤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구혼자들 한사람 한사람을 거론하며 가차없이 혹평한다. 네리사는 그들 모두가 포샤의 아버지가 정한 벌칙, 즉 제 상자를 고르지 못할 경우에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야 한다는 규정이 너무 가혹하다며 그 벌칙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에는 상자 고르기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전한다. 포샤는 아버지가 정한 규정은 바꿀 수 없다며 차라리 그들이 모두 떠나기를 바란다. 네리사는 베니스의 젊은이 바사니오를 기억해내며 그가 ‘아름다운 숙녀를 차지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자, 포샤도 이에 동의한다. 이때 하인이 등장하여 모로코의 왕이 도착했음을 알리며 그들의 대화는 중단된다.
다시 베니스. 바사니오는 안토니오를 보증인으로 해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3천 듀카트(이탈리아의 화폐단위)를 빌리려고 한다. 안토니오가 등장하자 샤일록은 방백을 통해 자신이 안토니오를 싫어하는 이유를 밝힌다. 우선 안토니오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어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안토니오가 이자 없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줌으로써 자신의 고리대금업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개’라고 부르며 모욕했기 때문에 그를 증오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샤일록은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안토니오에게 복수하겠다고 맹세한다.
한편, 이제까지 돈을 빌리거나 빌려줄 때 이자를 따지지 않았던 안토니오는 친구 때문에 이번만은 자신의 철칙을 굽히겠다며, 바사니오에게 돈을 빌려줄 것을 샤일록에게 요청한다. 샤일록은 자신의 얼굴에다 침까지 뱉었던 안토니오가 돈을 빌리러 오다니 우습다고 말하자, 안토니오는 지금도 침을 뱉어줄 수 있다며, 친구에게가 아니라 적에게 돈을 빌려줘서 혹시 못 받게 될 경우 기꺼이 위약금을 받아가라고 응수한다. 그러자 샤일록은 세 달 동안 3천 듀카트의 돈을 빌려주되 이자는 받지 않겠으며 그 대신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그 보상으로 받겠다고 한다. 바사니오는 샤일록에게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며 꺼림칙해하지만, 안토니오는 자신의 배가 두 달 안에는 돌아오게 되어 있으므로 걱정하지 말라며 샤일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제2막 - 포샤의 구혼자들과 제시카의 도망
벨몬트에서는 모로코 왕이 포샤에게 구혼하고 상자 고르기 규정을 받아들인다. 포샤는 그를 상자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데, 그 앞에는 각각 금과 은 및 납으로 된 세 개의 상자가 놓여 있고, 각 상자에는 그 상자 안의 내용물을 암시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먼저 그는 “나를 고르는 자는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걸어야 하리라”는 문구가 적힌 납 상자 앞에 서지만, 그는 납과 같은 미천한 물건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겠다며 납 상자를 지나쳐 “나를 선택하는 자는 자신에게 합당한 것을 얻으리라”라고 새겨진 은 상자 앞으로 간다. 모로코 왕은 자신이 어쩌면 포샤를 얻을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다 “나를 고르는 자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얻게 되리라”고 쓰여진 금 상자의 문구를 읽어본다. 세 상자를 놓고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포샤야 말로 모든 세상의 남자들이 원하는 상대라는 생각에 금 상자를 고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해골바가지가 그려진 족자였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다 금은 아니다’
이번에는 다시 아라곤 왕이 포샤에게 구혼한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상자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으며, 다시는 어떤 여성에게도 구혼하지 않겠으며, 엉뚱한 상자를 고를 경우 즉시 떠날 것을 맹세한 뒤 상자를 선택한다. 그는 납은 볼품없다며 지나치고, 자신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금 상자도 거부한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지위나 재산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포샤를 얻을 자격이 있다면서 은 상자를 택하고 열어본다. 그 안에는 ‘그림자에게 입맞추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림자의 행복만 얻게 되리라’는 글귀와 함께 바보의 머리가 그려진 족자가 나온다. 아라곤 왕은 자신이 바보가 되었음을 알고 즉시 떠난다.
한편 베니스에서는 광대인 론슬롯 고보가 자신의 주인인 샤일록이 너무 인색해서 그를 떠나 부유하지는 않지만 관대한 바사니오의 하인이 되려고 한다. 바사니오는 그 청을 받아들여 그를 종으로 삼는다. 친구 그라시아노는 바사니오에게 자신도 벨몬트에 데려가달라고 요청하고, 바사니오는 그의 청도 거절하지 못해 수락한다.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광대인 론슬롯이 ‘지옥과도 같은’ 이 집을 떠나겠다고 하자 서운해하며, 그에게 자신의 편지를 연인인 로렌조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로렌조와 결혼해 기독교로 개종하려고 한다. 샤일록은 바사니오의 저녁식사 초대에 가면서 지난밤 돈주머니가 꿈에 보였다며 불안해하면서 제시카에게 집을 잘 지키라고 한다. 샤일록의 집 밖 거리에서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가면극을 위해 가장을 한 채 몰려든다.
샤일록이 집을 떠난 뒤 제시카는 로렌조의 횃불잡이로 변장해 남자옷을 입고 로렌조를 따라나선다. 그러나 갑자기 바람이 거세져 바사니오와 그라시아노는 즉시 벨몬트로 출항해야 하고 이에 따라 가면극은 취소된다. 집으로 돌아온 샤일록은 제시카가 돈과 보석을 챙겨 도망가버린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트린다. 한편 안토니오의 친구인 살레리오와 솔라니오는 샤일록의 불행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다가 안토니오의 배가 실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걱정한다. 샤일록이 지금 딸과 재산을 잃고 분노와 증오로 날뛰고 있으므로, 안토니오가 제날짜에 돈을 갚지 못하면 그 분풀이를 안토니오에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서였다.
제3막 - 바사니오의 현명한 선택과 곤경에 빠진 안토니오
베니스의 거리는 안토니오의 배가 파선되었다는 소문으로 떠들썩하다. 샤일록은 자신을 고리대금업자라고 불러댔던 안토니오가 약속한 보증을 반드시 지키게 하겠다며 벼른다. 그는 자신에게도 기독교도인들에 못지 않은 감정이 있고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복수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제노아로 간 것으로 알려진 제시카를 찾아내려고 수소문을 해보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딸이 도망간 사실에 새삼 분통을 터트리는 샤일록을 보면, 과연 딸을 잃은 것을 애통해하는지 아니면 돈을 잃은 것을 애통해하는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제노아에 다녀온 샤일록의 유대인 친구 튜발은 안토니오의 배 한 척이 파선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이 소식에 샤일록은 매우 기뻐하다가, 제노아에서 제시카가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녔고 샤일록에게서 가져간 반지를 원숭이 한 마리와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분통을 터트린다.
한편 벨몬트에서는 포샤가 빨리 상자를 고르겠다는 바사니오를 만류한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게 된 바사니오가 잘못된 상자를 골라 그를 잃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바사니오는 이렇게 마음을 졸이느니 당장 시험을 치르겠다고 하고, 포샤는 그가 상자를 고르는 동안 음악이 연주되도록 한다. 바사니오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겠다면서 금과 은 상자는 선택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약속해주기보다는 보잘것없는 납이지만, 그 창백함이 어떠한 웅변보다 더 마음을 움직인다’면서 바사니오는 납 상자를 고르고, 마침내 그 안에서 포샤의 초상화를 찾아낸다.
자신의 행운을 믿기 어려워하는 바사니오에게 포샤는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치면서 비록 ‘교양도 없고, 배운 바도 없으며, 경험도 부족한 처녀’지만 앞으로 결혼 생활에서는 바사니오의 지도를 따라 순종적인 아내가 될 것을 맹세한다. 이러한 맹세를 마무리지으면서 포샤는 한 가지 단서를 붙이는데, 자신의 반지를 빼주면서 ‘이 반지를 빼내거나, 잃어버리거나, 남에게 주어버릴 경우에는’ 사랑이 식은 증거로 여기고, ‘그를 비난한 근거로 삼겠다’고 말한다. 이때 네리사가 자신도 그라시아노와 결혼을 약속했다는 소식을 알리자, 이들은 서로 축하인사를 나눈다.
베니스에서 사신으로 온 살레리오가 나타나 안토니오의 배가 모두 실종되었으며, 샤일록이 베니스 공작에게 안토니오가 위약금으로 약속한 살 1파운드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포샤는 바사니오에게 결혼의 즐거움은 뒤로 미루고 즉시 베니스로 가서 빌린 돈의 스무 배를 주고서라도 안토니오를 구하라고 한다. 살레리오가 가져온 안토니오의 편지에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자신과의 채무관계는 모두 청산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바사니오의 우정이 그를 베니스로 이끌지 못할 바에야, 이 편지 때문에 올 것은 없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바사니오가 베니스로 떠난 뒤, 포샤는 로렌조와 제시카에게 집을 맡기고 자신과 네리사는 남편들이 돌아올 동안 수녀원에 들어가 있겠다고 일러둔다. 포샤는 네리사와 둘만 남게 되자 다른 계획을 밝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남장을 하고 ‘남자가 되어’ 베니스로 가자는 것이다.
제4막 - 남장 여인 포샤의 명판결
베니스에서는 재판이 열리고 있다. 공작은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간청하고, 바사니오는 빌린 돈의 몇 배를 갚겠다고 제의하지만 샤일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법을 자구대로 적용해 계약서에 적힌 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받는 것뿐이라며 요지부동이다. 안토니오의 친구들은 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해달라고 공작에게 요청하지만, 상업 도시로서의 명성에 국가의 번영을 의지하고 있는 베니스에서는 아무리 공작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법 집행을 막을 방도가 없다. 노예들을 학대하면서 그들을 풀어주라고 하면 적법한 계약에 따라 사들인 재산이므로 그렇게 못하겠노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처럼, 샤일록은 자신 역시도 적법한 법의 적용을 바랄 뿐이라며 기독교인들의 모순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공작을 비롯한 베니스 시민들이 진퇴양란의 곤경에 빠져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유명한 변호사인 벨라리오가 그 판결을 위임해 보냈다는 젊은 변호사 발사자와 그의 서기가 등장한다. 물론 그들은 남장한 포샤와 네리사다. 포샤는 옆에서 칼을 갈고 있는 샤일록에게 물론 그는 법에 따라 증서에 적힌 사항을 집행할 권리가 있다고 상기시키면서, 그러나 자비야말로 그 자비를 받게 되는 사람뿐만 아니라 베푸는 사람을 고귀하게 만든다며 법을 바꿀 수는 없으니 모든 것이 그의 결심에 달렸음을 알린다. 그녀는 자비가 없는 정의는 충분하지 않다며,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그를 설득해본다. 그러나 포샤의 설득도, 부채의 세 배를 제공하겠다는 바사니오의 제의도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샤일록의 원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 증서에 적힌 대로 하겠으니 법이 그것을 허용해달라는 것뿐이다.
포샤는 샤일록의 요구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면서 안토니오에게 계약서에 적힌 대로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내줄 준비를 하라고 한다. 샤일록은 과연 현명하고 공정한 명판관이라며 포샤를 치켜세우고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는 자신이 바사니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부인에게 전해달라며, 바사니오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기만 해준다면 그가 자신에게 진 채무는 모두 청산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바사니오는 물론 새로 얻은 부인이 자신에게는 생명보다 소중하지만,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생명과, 부인과 세상 어느 것도’ 내놓지 못할 것이 없다며 안토니오의 작별인사에 답한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포샤는 부인이 그런 말을 듣는다면 좋아하지 않겠다며 한없이 감상적이 된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에게 일침을 놓는다. 샤일록도 이들 ‘기독교도 남편들’을 조롱한다. 샤일록이 안토니오의 가슴에 칼을 가져다 대자, 포샤는 누구보다도 샤일록이 오직 증서에 적힌 대로만 집행해줄 것을 요청했으므로, 증서에 명시되지 않은 ‘기독교도의 피 한방울’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명한다. 이에 샤일록은 당황한다. 그러면 바사니오가 제의한 채무금의 세 배의 돈을 받겠다고 하자, 포샤는 샤일록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대로 증서의 엄격한 조건을 따르라고 명하면서, 살 1파운드에서 조금이라도 적거나 더 많을 경우에는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한다. 점점 불안해진 샤일록은 원금만 받겠다고 말해보지만, 포샤는 증서에 약속한 것 이상은 절대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자신의 패배를 시인한 샤일록이 법정에서 나가려 하자, 포샤는 그에게 적용해야 할 또 다른 법조항이 있음을 알리는데, 이에 따르면 베니스인의 목숨을 노린 이방인은 재산의 반을 그 베니스인에게, 나머지 반을 국가에 내놓아야 하며, 그의 생명은 공작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작은 유대인과는 달리 베니스인은 자비롭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샤일록의 목숨만은 구해주겠다고 한다. 안토니오는 자신에게 돌아온 샤일록의 재산의 반을 받아 샤일록이 죽을 때 그 딸과 결혼한 로렌조에게 넘기겠다고 한다. 샤일록은 기독교인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받고 그라시아노의 조롱을 받으며 법정을 떠난다.
바사니오는 자신들을 법과 자비의 모순이라는 진퇴양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고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해준 젊은 변호사 발사자에게 원래 샤일록에게 갚아야 할 3천 듀카트의 돈을 답례로 제시하지만 그는 그 제의를 공손하게 거절한다. 그 대신 어떤 선물을 주겠다고 하니, 발사자는 바사니오의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달라고 부탁한다. 바사니오는 그 반지는 절대로 빼지 않겠다는 서약과 함께 부인으로부터 사랑의 징표로 받은 것이라며 난색을 표명한다. 그러자 발사자는 서운해하면서 서기를 데리고 떠난다. 그들이 떠나자 안토니오는 그 반지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냐며 바사니오를 설득하고, 결국 바사니오와 그라시아노는 자신들의 반지를 빼 발사자와 그 서기에게 보낸다.
제5막 - 반지 소동
벨몬트에서는 로렌조와 제시카가 역사에 남은 위대한 연인들의 사랑과 자신들의 사랑을 비교하며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편들보다 먼저 벨몬트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베니스를 떠났던 포샤와 네리사가 음악이 흐르는 집에 도착한다. 그들의 뒤를 이어 곧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그라시아노도 등장한다. 포샤는 안토니오를 환영하며 남편 때문에 고초를 겪은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그라시아노와 네리사는 반지 때문에 다툰다. 그라시아노가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해준 젊은 변호사의 시종에게 자기 반지를 주었다는 얘기를 들은 포샤는 결혼의 징표로 준 반지를 주어버린 것은 경솔한 짓이었다면서 그를 비난하고, 자기 남편 바사니오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바사니오를 긴장시킨다.
곧 바사니오 역시 그 반지를 어쩔 수 없이 주어버렸다는 것이 밝혀지자, 포샤는 그가 그 반지를 되찾을 때까지는 그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 없다면서 바사니오를 당황하게 만든다. 바사니오는 그 반지를 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만 포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포샤는 자신이 평생 손에서 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그 반지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리다니, 벌써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간 것이 아니냐면서 바사니오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바사니오는 그 반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아니고,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해줌으로써 자신들 모두에게 은혜를 베푼 젊은 변호사에게 주었다며 포샤의 화를 풀어보려고 애쓴다. 포샤는 자신이 사랑의 맹세로 준 반지를 그 변호사가 갖고 있으므로, 그 변호사가 자신에게 온다면 몸이고 침실이고 아끼지 않고 그에게 다 내주겠다고 한다. 바사니오는 앞으로 다시는 포샤와 한 맹세를 어기는 일이 없을 거라며 자신의 영혼을 걸고 맹세를 하는데 . . .
이 모든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안토니오는 이러한 다툼의 불씨가 자신에게 있으므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자신은 바사니오를 위해 자신의 몸을 담보로 내세운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바사니오의 맹세를 보증하겠다고 나선다. 그러자 포샤는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안토니오에게 주면서 바사니오에게 건네주라고 한다. 반지를 받아든 바사니오와 그라시아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반지는 바로 자신들이 변호사와 그 서기에게 주었던 바로 그 반지였기 때문이다. 포샤와 네리사는 지난 밤 각각 그 변호사와 서기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그 반지를 받았다며 남편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그라시아노가 '그것은 길이 아직 멀쩡한 고속도로를 보수하는 것과 같다면서, 자신들이 남편 노릇을 채 하기도 전에 먼저 오쟁이가 되었음을 한탄한다. 그러자 포샤는 바로 자신과 네리사가 베니스에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그들 모두를 위기에서 구했고, 그 대가로 반지를 요구했던 젊은 변호사와 그 시종이었음을 밝혀 모두를 놀라게 한다. 뿐만 아니라 포샤는 그 경위는 묻지 말라면서 안토니오의 배 세 척이 모두 물건을 싣고 돌아왔다는 소식이 담긴 편지를 안토니오에게 전달하고, 로렌조에게는 샤일록이 사망할 때, 그의 재산 모두를 로렌조에게 양도하겠다는 각서를 건네 모두를 어리둥절하지만 즐겁게 만든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 그들은 미뤄왔던 결혼 첫날밤을 치르러 안으로 들어간다.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글쓴이 조영미교수>
▣ 저 자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가장 진부하면서 가장 참신한 작품들 속에 인간성의 모든 것, 영구불변의 진리를 담다.
친숙한’ 셰익스피어, 그의 남아 있는 기록들, 남아 있지 않은 기록들
누가 뭐라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TV, 영화,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챨스 램 남매가 각색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포함, 독자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을 달리하는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실정이어서, 그의 드라마 중 몇 편의 내용은 세계각국의 남녀노소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하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틋한 사랑과 비극적인 죽음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정작 셰익스피어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자신을 둘러싼 당대 문제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를 말해주는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근대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그가, 자신을 휘감고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알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단서가 될 최초의 기록은 1564년 4월 26일의 세례 기록이다. 영국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소읍 스트래트포트 온 에이븐에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는,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사이의 3남으로 태어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64년 4월 26일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가 마을의 읍장을 지낼 정도의 유지였으므로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마을의 문법학교를 다녔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결혼에 관한 것. 1582년 11월 27일 당시 18세였던 셰익스피어는 자신보다 8년 연상이었던 앤 헤서웨이와의 결혼허가서를 발부받았는데, 세 번의 결혼예고 후에야 결혼이 이루어지던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급하게 허가서를 발부받았다는 사실과 신부와 신랑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며 이들 부부의 첫딸 수잔나가 결혼 후 6개월 만에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활동한 십수년 간 두 사람이 떨어져 살았다는 사실 등등, 그의 결혼 생활은 후대인들의 온갖 상상의 근원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2년 후 햄넷과 주디스라는 쌍둥이 남매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배우 겸 극작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1592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극장의 시인, 셰익스피어
1592년 9월, 극작가였던 로버트 그린이 사망한 직후, 그가 임종 침상에서 탈고한 자서전격의 유작이 출판되었다. 그 팜플렛에서 그린은 셰익스피어를 '벼락출세한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풋내기 배우요 극작가인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연극계를 뒤흔드는 것에 심한 질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글은 1592년에 이미 셰익스피어가 배우로서, 극작가로서 확고부동한 자리에 올랐음을 증명해준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 확실한 성공을 거둔 후에도 배우활동을 계속했는데, 1608년 기록에도 여전히 출연배우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1594년 챔벌린 극단에 입단한 그는 일 년에도 여러 편씩, 놀라운 언어구사력과 탄탄한 플롯을 바탕으로 각양각색의 생동감 넘치는 인물이 등장하는 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서의 명성과 부와 인기를 한몸에 누리게 된다. 1589년 『헨리6세』를 시작으로 1611년 『태풍』에 이르기까지 그는 총 37편의 극을 남겼다. 1613년 플렛처와 공동 집필한 『나의 두 귀족 친척』을 끝으로, 그는 극작가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고향인 스트래트포드로 돌아가 편안한 말년을 보냈으며, 1616년 4월 23일 생을 마감하였다.
‘영원한’ 셰익스피어, 격변기의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가 살았고 작품 속에 그려낸 시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도입으로 근대가 태동하던 대변혁기였다. 그 시대에 두 힘의 충돌과 그 갈등을 축으로 하는 드라마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성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몇백 년을 이어오던 질서가 스러지고 전혀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하층계급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함께 극장에 드나들며 무대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보고 그 역사의 형성에 참여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근대로 이행하는 역사적 흐름의 필연성을 짚어내고 그 질곡과 모순의 단초들을 예리하게 지적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사후에 동료 배우들과 인쇄업자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을 근거로 출간한 것들이다. 박제된 진리로서가 아니라 ‘열린’ 창작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부분이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무대에도 자주 올려지는 극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두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이 작품의 플롯을 구성했다. 그것은 상자의 선택에 따라 결혼상대자를 결정해야 하는 부유한 상속녀에 관한 것과 채무자의 살을 베어내 그를 죽이려 하는 사악한 고리대금업자에 관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여러 차례 형상화되어 아주 익숙한 이 이야기들을 창조적으로 결합하고, 각 인물들에게 고유의 복잡한 동기와 생생함을 부여해 원재료로 삼았던 이야기들과는 크게 달라진 극을 만들어내었다.
우정과 사랑의 자리다툼 한 판
막이 오르면 이미 확고하게 상업자본주의 체제가 자리잡은 베니스에서 그 경제 체제의 주춧돌이 되는 ‘고귀한’ 상인 안토니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다. 친구들이 여러 면에서 그 슬픔의 원인을 찾아내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제대로 짚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가장 절친한 친구인 바사니오가 자신이 처한 경제적 위기를 타파할 돌파구로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러 곧 떠나려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바사니오와의 우정이 위협받게 된 상황이 안토니오의 슬픔과 관련이 있음이 암시된다. 르네상스의 고귀한 이상으로 여겨졌던 우정과 관대함의 표본이 될 만한 안토니오는 ‘돈과 사랑에 있어서’ 바사니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다 내준 터였다. 바사니오의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안토니오는 자신의 몸을 저당잡히기까지 하는데, 이쯤에 이르면 그가 사실은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려는 바사니오에게 물질이 아니라 충실함으로만 갚을 수 있는 구속을 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시나 관대하다고 평판이 난 바사니오는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고 안토니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태인데, 그의 이 같은 처지는 관대함이 갖는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 민첩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이전의 태도를 고수하다가 결국 많은 빚을 지고 만 바사니오는 당대 귀족 청년들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만하고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포샤의 다른 구혼자들과는 달리 꾸밈없고 겸손하며, 외양과 실재의 차이를 구분할 만큼 지혜로웠으므로 그는 포샤의 남편이 된다.
포샤와 바사니오가 자신들의 결합을 기뻐하려는 바로 그 순간, 바사니오 때문에 죽게 되었으니 죽기 전에 바사니오를 보고 싶다는 안토니오의 편지가 날아든다. ‘아무런 조건 없이’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담보로 내걸었던 안토니오의 행동이, 사실은 바사니오가 자신과의 우정을 뒤로 하고 포샤와 새로이 맺으려는 관계에 위협을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든 바사니오를 자신과 묶어두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음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포샤는 즉시 이러한 위협을 알아차리고 바사니오를 베니스로 먼저 보내지만,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 안토니오가 드리우는 위협을 제거할 때에만 자신과 바사니오의 관계를 확고하게 만들 수 있음을 느낀다. 남장을 하고 베니스로 간 그녀는 베니스의 법 체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베니스의 어떤 남자도 해결하지 못한 딜레마를 멋지게 풀어낸다. 그녀의 판결은 법을 그 자구(字句)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법이 담고 있는 정신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해냄으로써 바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진 빚을 모두 청산한 포샤는 친구의 목숨을 구한 법관으로서 바사니오에게서 자신이 결혼의 징표로 주었던 반지를 선물로 얻어낸다. 친구 때문에 포샤와의 약속을 저버린 바사니오는 벨몬트로 돌아온 후 그 반지를 요구받고 되돌려받는 과정을 통해 이제 자신에게는 포샤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극의 전 과정을 통해, 포샤는 셰익스피어의 어느 여주인공보다도 강력한 여성으로 제시되며 그녀가 주도하는 바사니오와의 결혼은 르네상스 시대에 새로이 등장한, 낭만적 사랑을 바탕으로 한 동반자적 결혼 관계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식의 독특한 문제극
베니스의 상업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또 다른 축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이 극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다. 그가 안토니오를 위시한 기독교인들에 대해 갖는 반감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제시되고, 딸이 자신의 돈을 챙겨 기독교인과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안토니오를 향한 복수의 칼날은 더욱 이해할 만한 상황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재판이 끝날 무렵에, 물론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빌려준 돈의 원금을 못 받게 됨은 물론이요, 재산의 반을 빼앗기고 게다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기독교 개종을 강요받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살아갈 기운을 잃어버린 채 퇴장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19세기에는 그를 비극적 주인공으로 해석하는 감상적 비평과 공연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도 샤일록이야말로 이 극의 갈등을 집약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보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샤일록의 일면을 과다하게 강조함으로써 셰익스피어가 어렵게 유지한 균형감각을 손상시킨다. 딸이 돈을 훔쳐 도주한 것을 알게 되자, 딸에 대한 걱정과 잃어버린 돈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표출되는 샤일록의 반응은 그의 성격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완전히 상반되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변하듯이,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극의 전개 과정을 통해 제기된 여러 문제들이 어느 한 쪽으로 결론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랑과 우정의 성질이라거나 인간과 돈의 관계,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립, 고리대금의 도덕성, 부모의 권위의 문제, 법의 정의와 자비의 관계 등 다양하고도 중요한 문제들이 이 극을 통해 제기되지만, 어느 것 하나 손쉬운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어떤 평자들은 『베니스의 상인』을 문제극으로 보기도 하는데, 전통적으로 비극보다는 가볍게 보여온 희극에 상당히 심각한 삶의 비전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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