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는 행복하게 사는데 인간이 얼마나 서툰지, 반면에 불행해질 이유를 만들어 내는 재능은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았다.
당신은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으면서 언젠가 승진하면, 부자가 되면, 은퇴하면 행복해질 거야, 라며 행복을 유예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현재는 흘러간다. 미처 즐기지도 못했는데,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떠나가고 만다. 에피쿠로스 철학자가 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왜 즐거움을 계속 미루지?” 당신은 과거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거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부모가 못되게 굴었기 때문에 지금 행복할 수 없다고, 그런데 지금도 부모가 당신의 삶을 통제하는가? 지금 당신을 못되게 구는 사람은 친구들도 부모도 아닌 당신 자신이다. 당신 자신이 당신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제 그만 쉬고 행복해지는 게 어떨까?
에피쿠로스학파의 대중적 이미지는 아마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주의였다면 매우 소박하고 합리적인 쾌락주의자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 것이라고 부를 물건이 거의 없었고, 빵과 올리브, 물만으로 아주 소박하게 끼니를 때웠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가 삶의 목표라고 말하는 쾌락은 일부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편견 탓에, 아니면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해서 이해하는 것처럼 방탕한 쾌락이나 관능적인 쾌락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쾌락이란 신체에 고통이 없고 영혼에 문제가 없는 상태다. 즐거운 삶이란 끝없이 술 마시고 떠들며 노는 것도, 성을 탐닉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식탁에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먹는 것도 아니다. 즐거운 삶이란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선택하든 회피하든 그 근거를 찾고, 영혼을 잠식하는 잘못된 믿음을 없애는 데서 얻을 수 있다.
에피쿠로스철학을 실천하는 건 스토아철학만큼 힘이 들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되는 건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우리는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들을 연습해야 한다”라고 썼다. 즐거움을 누리며 살기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잘못된 곳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잘못된 선택은 감정적 동요를 부른다. 따라서 인간은 합리적 쾌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미덕’이나 ‘의무’같은 엄숙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욕망 중에는 자연스러운 것들이 있고, 근거 없는 것들이 있다. 자연스러운 것들 중에도 자연스럽기만 한 것과,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필요한 것이 있다.” 에피쿠로스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이 평온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만을 관찰하고 그 욕망이 자연스럽고 필요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욕망이 이끌어낼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그로 인해 고통과 불편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 그 두가지를 비교해 봐야 한다.”
합리적 쾌락주의자는 온전한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만 욕망하는 법을 배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섰다. “건강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고, 위축되지 않고 삶의 요건들을 충족해주어....운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는.....소박하고 값싼 음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욕망이 적고 단순할수록 충족시키기가 쉽고, 일을 덜 해도 되며, 친구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아진다. 사실, 좋은 삶에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안전, 건강, 이성(理性),친구들이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좋은 삶의 중심에 놓았다.
에피쿠로스철학은 스토아철학이나 불교처럼 우리를 다시 지금으로, 지금 이곳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 데려다준다. 선 지도자 앨런 와츠는 ‘세상사는 과거를 가지고 설명할 수 없어요. 현재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거죠. 그래야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거예요. ’엄마가 나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신경증에 걸렸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엄마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신경증에 걸렸었고요.’ 하는 식으로요. 그러다 보면 아담과 이브까지 튀어나올 겁니다. 지금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변명할 여지가 없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으로 행복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아내가 날 떠나면 어쩌지? 병에 걸리면 어쩌지? 죽으면 어쩌지?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서 뭐? 어째서 미래에 일어날지 말지도 모르는 일을 걱정하느라 지금을 망쳐요?“ 미래에 나쁜 일이 생긴다면, 철학이 그 일을 이겨낼 수단을 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미래에 행복해질 가능성도 모두 사라지는 거잖아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음, 살아있다는 게 과연 늘 가장 좋은 걸까? 어쩌면 아주 늙거나 아픈 것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즐기며 살았다고 사후세계에서 벌을 받으면 어쩌죠?”
가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람을 단단히 움켜쥘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삶을 혐오하게 되고, 빛을 바라보면서
애절한 마음으로 자기 손으로 죽기로 결심한다.
정작 이 공포가 자신이 참지 못하는 것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루크레타우스>
에피쿠로스추종자의 한사람인 로마 시인 루크레타우스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죽고 나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즐기고, 지혜롭게 즐거움을 추구하고, 부나 종교나 성애 같은 것에는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위의 시는 정말로 멋진 작품이고, 오늘날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이시에서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 몸이 정말로 아플 때, 그리고 우리가 삶의 마지막에 직면했을 때, 즐거움의 철학은 과연 얼마나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에피쿠로스(B.C341?-B.C271)는 기원전 341년경, 에게 해의 사모스섬에서 태어났다. 쾌락주의적 자유의지론이 뒤섞인 철학으로서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아테네 군대에서 2년간 복무한 뒤,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그가 살던 때는 그리스 역사상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는데(바로 스토아 철학이 생겨나던 시기이다), 이때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마케토니아 황제에게 핍박받고 있었다. 그와 친구 몇 명은 아테네 외곽의 강근처 올리브 밭에 집을 사서 철학공동체를 설립하여 ‘정원’이라 불렀다. 입구 표지판에는 “낯선 자들이여, 여기 머무르십시오. 여기서 최고의 선은 즐거움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에피쿠로스는 즐거움은 “존재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가르쳤다.
절대적인 선이나 악은 없고, 즐거움으로 이끄는 생각과 행동, 고통으로 이끄는 생각과 행동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신들의 존재는 믿기는 했지만, 신은 우주의 머나먼 구석 어딘가에서 나른하게 자족하며 살아가며 인간사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게으른 존재들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신들처럼 우리 인간도 세상사에 괴로워하지 말고 무관심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에피쿠로스는 즐거움을 쫓으며 살았다고 해서 정강이를 걷어차일지도 모르는 사후세계 따위는 없다고 확신했다. 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물리학, 특히 천체물리학 연구였다. 즉, 우주는 역학법칙에 따라 떠돌아다니는 원자들의 집합체이고, 인간도 죽으면 천상의 원자들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떤 믿기 힘든 놀라운 행운 덕에 의식, 이성,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며, 그것들을 지녔다는 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좇는 데 필요한 모든 걸 지녔다는 뜻이라고 했다.
사후세계와 신의 응징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사람들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걸 막을 도리가 있을까? 광란의 파티가 벌어지고 거리에는 폭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스토아학파,플라톤학파,아리스토텔레스학파, 이후에는 기독교도들까지 즐거움에 대한 철학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학파에 대한 이런 중상모략은 오늘까지 이어지지만 에피쿠로스학파의 대중적 이미지는 아마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주의였다면 매우 소박하고 합리적인 쾌락주의자였을 것이다.<“삶을 사랑하는 기술, 철학을 권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줄스에반스 지음, 서영조님 옮김, 더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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