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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한계!

[중산] 2012. 12. 24. 18:00

 

인간문명의 한계

 

짧아지는 문명의 수명

지구상에 존재했던 60여 개 문명의 평균수명은 421년이었으며 길게는 1000년, 짧게는 60년 정도였다. 근현대 문명 28개의 수명은 평균 305년으로 116년이나 짧아졌다. 그 이유를 미국의 역사학자 조셉 테인터는 현대로 내려올수록 문명을 지탱하는 기술 수준이 점점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대문명이 자전거 수준이었다면 근대에 이르러서는 자동차 수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고장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시스템이 자전거 수준이었을 때는 간단히 고칠 수가 있지만 시스템이 자동차 수준으로 복잡해지면 한 번의 큰 고장이나 몇 개의 작은 고장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면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발달한 문명사회는 정교하게 짜인 생태계와 흡사하다. 여기서 어느 문제 하나를 해결한다는 것은 평형을 이룬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과 같다. MIT 대학의 제이 포레스터 교수는 기술적인 문제 해결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기술로 성장의 한계를 넘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해결하기 어려운 성장의 한계를 맞게 된다. 어떤 기술적 해결책도 결국에는 실패한다. 문명의 붕괴는 과거의 사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현대 문명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자원고갈, 환경재난, 사회적인 시스템의 복잡화, 국가나 집단 간의 이해충돌, 매년 새로 등장하는 새로운 바이러스 등이 현대문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문명사회 초기의 문제들은 비교적 간단한 것들이었다. 농경지를 개간하고 수로를 만들고 성곽을 쌓는 일 등이었을 것이다. 또 초기의 문제들은 구성원 모두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들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이 생겨나고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면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도 복잡해진다. 여기서 불거지는 문제들은 이전의 방식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 자체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또 사회가 복잡해진 다음에는 하나의 문제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로마클럽이 지적한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가 늘어나 식량이 부족해지면 더 많은 숲을 베어내고 농경지를 만들어야 하지만 이는 다시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구조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원리가 지나치게 팽배해지면서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한 수많은 과제들은 무시되고 만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레베카 코스타는 복잡해진 문명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전가하면서 사회가 정체되기 시작하는 것이 몰락의 첫 번째 징후이며, 그릇된 믿음이 사실을 대체할 때가 두 번째 몰락의 징후라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당면한 문제들을 다음 세대로 전가하는 시기이다. 예를 들면 삼림 파괴와 지나친 화석연료의 사용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차일피일 뒤로 미루게 된다. 이것이 누적되면서 문명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둘째, 믿음과 지식 사이에 불균형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홍수, 가뭄, 흉년의 원인을 숲의 파괴나 토지의 염화현상에서 찾지 않고 수호신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할 때가 두 번째 몰락의 징후라는 지적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믿음’이 지식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재해나 전염병, 외침이나 내분이 일어나면서 문명은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한계

 

 

자본주의의 한계, 반복되는 불황

 

자본주의는 크고 작은 불황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된다. 1907년 미국의 금융공황, 1930년대의 세계적인 공황, 1970년대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석유위기, 1980년대의 남미 국가들의 연쇄부도, 1997~8년에 있었던 아시아권의 경제위기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08년도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 등이 그러하다. 이처럼 반복되는 위기는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한계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은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에 맡겨 놓으면 수요와 공급이 조화를 이루며 사회 전체가 발전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모든 경제주체들이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면 확률적으로 주기적인 불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때로는 타락한 단어로 들리는 것이다. 과잉생산에 의한 불황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점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였다. 당대의 경제학자였던 맬서스와 리카르도 두 사람은 불황의 가능성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맬서스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불황의 가능성을 주장했고 리카르도는 어떤 경우에도 불황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 토론에서는 말 잘하는 리카르도가 이겼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했던 마르크스는 19세기 들어 거의 10년마다 되풀이되는 불황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 어디에서도 공황의 원인을 어느 하나 상세하게 기술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불황의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재화와 서비스가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획득에서 출발한다는 점, 자본가들은 자신이 만드는 상품은 모두 팔려 나가기를 희망하여 과잉생산을 하는 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되도록 적게 지불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공급과 수요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점, 신용붕괴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위기 등을 불황의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결국 마르크스가 지적한 불황의 요인은 공급과잉과 이윤저하의 법칙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자본주의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했지만 그가 자본주의를 일방적으로 매도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경이로운 생산성이 역사상 그 어떤 지배계급이 이룩한 것보다 월등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를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에게 맡겨 놓으면 과잉생산과 구조적인 이윤저하로 주기적으로 공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보았다. 과잉생산이 궁극적으로 공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자. 자본가들은 늘 과잉생산의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상품이 모두 팔려 나가리라는 가정하에 생산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잉생산된 상품이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공장이 문을 닫아야 하고 근로자들은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한다. 근로자들의 수입이 없어지면 수요는 더욱 위축되어 공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1930년대 미국에서 대공황이 일어나자 미국은 물론 세계 전체가 휘청거렸다. 미국은 1920년대 말에 이미 과도한 신용공여와 과잉투자가 누적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생산은 과잉상태, 오갈 데 없는 자금이 증권시장으로 몰리면서 거대한 거품을 만들었다가 그 거품이 꺼지면서 공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하는 게 아닐까 우려했다.

 

 

여기서 등장한 구원투수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였다. 그 역시 공황의 원인을 유효 수요의 부족으로 진단하고서 지금까지의 자유방임적인 경제운용을 그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정부도 경제주체의 하나로 민간이 하기 어려운 기간산업의 건설, 사회적 인프라 확충, 공공사업 등에 대한 투자로 유효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것이 테네시 강 개발사업 등 정부의 공공 부문 투자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전쟁 수요가 일어나면서 1930년대의 공황과 같은 불황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모순이다.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늘 미국이라는 이름 뒤에 제국주의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한 서구 열강은 가공할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나머지 세계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정복전쟁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므로 제국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의 동의어로 비난받는 이유이다.

 

마르크스가 두 번째로 지적한 것은 구조적 불황으로 이윤율 저하의 법칙이다. 생산성 증가를 위해 설비를 늘려가지만 투하 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 즉 이윤은 점점 더 줄어든다. 그리하여 불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될 당시만 해도 자본주의의 완벽한 승리를 노래했던 사람들이 다시 자본론을 꺼내 든다고 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불황 때문이다. 2008년 발생한 미국 금융위기 이후, 세계 전체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으며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사회학자들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론을 꺼내는 것이다.

 

 

지금 유럽 여러 나라들과 일본의 대학에 다시 자본론 강의가 개설되었다. 사람들이 다시 자본론을 읽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찾기 위한 것도 있지만 마르크스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인간회복’의 문제가 지금의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만은 자본주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한계, 포퓰리즘

 

20세기 들어 민주주의 열풍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제3의 물결』을 쓴 사무엘 헌팅턴에 의하면 1996년을 기준으로 20년 전에는 민주주의 체제를 택한 나라가 30%였으나 지금은 60%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 원칙이다. 정권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도 다수결에 의한다. 그러나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정치학자들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이라고 한다. 민주국가가 아닌 전제국가나 독재국가 지도자들이 훨씬 더 좋은 정책으로 국가를 부흥시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수행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최악의 선택은 막아보자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BC 5세기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는 지중해의 맹주로 군림하면서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역사상 가장 먼저 민주정을 이루었다. 그러자 아테네 시민들은 끊임없는 요구를 늘어놓았고, 지도자들은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그 당시에도 포퓰리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국가 재정은 급속도로 고갈되어 몰락의 요인이 되었다. 수천 년 전의 그리스와 지금의 그리스가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모습인지 경이롭기만 하다. 다시 보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 포퓰리즘은 피할 수 없는 함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역시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을 내건 선동가에게 언제든 정권을 넘겨줄 가능성에 대해 늘 문을 열어 두고 있다. 민주주의가 투표에 의해 정권이 창출되는 한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가장 많은 계층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투표권이 가장 많은 서민들을 위한 각종 복지정책을 내놓게 된다. 이것이 심해지면 나라경제는 파탄을 맞는다. 정당들마다 유권자가 많은 젊은 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시혜를 약속하고 있다. 이것이 포퓰리즘의 함정이며 민주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1970~80년대를 거치는 동안 포퓰리즘으로 심각한 영국병과 네덜란드병을 앓았다. 두 나라 모두 과도한 복지정책 때문에 2류 국가로 추락한 경우이다. 영국은 1942년에 나온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보장하는 복지정책을 채택했다. 그러자 세금에 짓눌린 자본은 하나둘 해외로 빠져나갔고 기업은 활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노조는 더 많은 몫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삼았다. 근로자들의 파업으로 전국의 발전소와 공장이 멎고 병원과 학교가 문을 닫았으며 자동차, 운수, 병원, 청소원들까지 파업에 가담했다. 장례업 근로자들의 파업으로 길거리에는 시신이 방치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른바 영국병이었다.

 

 

1979년, 영국병을 치유하겠다며 집권에 성공한 대처 총리는 모든 복지정책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우선 재정적자의 주범인 국민연금 지급액을 대폭 낮추었고 방만하게 운영되던 전기, 통신, 조선 등의 공기업을 민영화시켰다. 공무원 숫자도 대폭 줄였다. 일상화처럼 되어 버린 불법파업을 없애기 위해 노동법도 뜯어고쳤다.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는 모두가 노조 측이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으로 노조와 전면전이 벌어졌다. 가장 강력했던 것이 탄광노조였다.

 

 

당시의 탄광노조는 사실상 영국의 산업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막강한 권력 그 자체였다. 대처 개혁의 핵심은 탄광 노동자들과의 전면전이었다. 이들이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대처는 경찰을 보내 모든 것을 법대로 처리하게 했다. 노조 간부들이 모두 해고되고 이들의 사유재산도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하나둘 처분되었다. 그러자 일 년을 버티던 탄광노조는 마침내 항복을 선언했고 마침내 산업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 결과 영국은 지금 유럽에서 실업자가 가장 적은 나라가 되었다.

 

 

기업에 대한 세율도 대폭적으로 낮추어 해외로 빠져나갔던 자본을 다시 불러들여 기업을 활성화시켰다. 평등주의 교육 시스템에도 칼을 댔다. 평등주의가 영국을 망친다며 중등교육의 평준화를 없애고 대학에도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이나 등록금지원을 대폭 축소했다. 그로 인해 대학교육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술교육을 강화했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국가로 낙인찍힌 아르헨티나를 보자. 100년 전 아르헨티나와 캐나다는 세계 10대 부국에 속해 있었다.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 등 조건도 비슷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캐나다는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부국으로 G7의 강대국이 되었으나 아르헨티나는 국민소득 4천 달러의 후진국으로 추락했다. 1946년 부두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대통령에 당선된 페론은 국가 예산의 33%를 서민들을 위한 정책에 쏟아부었다. 무상의료에다 대학교육까지 무료였다. 근로자들의 실업수당도 웬만한 직장의 월급보다 많았다. 이것으로 국가의 재정은 파탄이 났다. 그러자 외국 자본이 떠나고, 투자가 위축되고, 고용이 감소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 감소와 투자 감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페론은 물러났지만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정책은 여전히 망령을 드리우고 있다. 2011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페르난데스는 과도한 복지정책을 내걸었다. 국가 예산의 19%를 국민생활 보조금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며 은퇴자 670만 명의 연금을 37% 인상했다. 무주택 가정에 대한 보조도 50%를 인상했다. 아르헨티나는 전기, 가스, 유류도 거의 무상이다. 그러다 보니 자원 부국인 아르헨티나지만 2008년부터는 가스를 수입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국가 부도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를 보자. 그리스는 대학은 물론 석, 박사과정까지 모두가 무료이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모든 학생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이는 그리스가 자랑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그리스에는 해운이나 관광산업 외에는 변변한 산업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 최고의 엘리트만 들어가는 아테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43%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리스 정부는 공무원 숫자를 과도하게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에는 공무원이 넘친다. 노동인구의 25%가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넘치다 보니 할 일도 별로 없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2시 반이면 퇴근한다. GDP 53%에 달하는 국가 예산은 공무원 급여가 대부분일 정도이다. 그리스에서는 지금 공무원들이 시위의 중심에 서 있다. 국가 부도위기에 처한 그리스 정부가 예산감축과 공무원감축 계획을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여 경찰과 공무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스는 유럽의 우등생이었다. 유권자들은 선심공약을 약속하는 선동 정치꾼들에게 표를 주었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선거를 의식하여 내놓는 선동적인 포퓰리즘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의 대부분은 독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가 끝난 다음의 일은 알 바가 아닌 것이다. 독일 경제학자 빌헬름 뢰프케의 말이다. 포퓰리즘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일단 시작된 인기 위주의 복지는 멈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유럽에서 포퓰리즘으로 집권했던 정당들이 2011년에 모두 정권을 내놓고 물러나는 이변이 벌어졌다. 이른바 ‘PIIGS’ 국가들이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유럽 사람들은 이 국가들을 ‘돼지들’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완벽한 복지국가는 국민을 돼지로 만든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돼지가 꿀꿀이죽을 기다리듯이 정부의 시혜만 기다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산주의가 망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도덕적으로 해이해진 민주주의를 토양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복지라는 이름의 포퓰리즘으로 말이다.

 

 

 

경제 기업의 한계

 

 

찰스 다윈은 말했다. 살아남은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능이 높은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한 종일 뿐이다. 곤충류는 다섯 번에 걸친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았지만 파충류나 공룡은 단 한 번의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되고 말았다. 그러나 박쥐는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5천만 년 이상 살아남은 포유류 동물일 것이다. 박쥐는 우선 최소한의 에너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먹이활동을 하는 시간 외에는 동굴 속에 거꾸로 매달려 반수면 상태에서 휴식을 취한다. 밤에만 먹이활동을 하는 것도 경쟁자들과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 진화된 행동이다. 또 박쥐들은 먹이나 서식지를 놓고 동일종 간의 경쟁을 하지 않는다. 죽고 사는 싸움 대신 활동 시간대를 달리하여 차별화하거나 서식지를 옮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간다.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 그리하여 박쥐는 1,000여 종이 넘는다.

 

그러나 정상에 선 기업들은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일단 궤도에 오른 기업은 몸집이 비대해지면서 변화에 둔감해진다. 설사 변화를 깨달았더라도 비대해진 몸집 때문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기업이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가 되면 안정 위주의 선택을 하게 된다. 자칫 지금까지 일군 성과를 되돌릴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발 추적자에게 덜미를 잡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셋째, 규모가 커지면 사용하는 에너지가 많아진다. 그러다가 유입하는 에너지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더 많아지면 기업은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지 못하고 서서히 소멸한다.<“성장의 한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이영직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저자 이영직님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을 졸업한 뒤 시사영어사 편집국을 거쳐 LG화학 마케팅 팀장, 한국갤럽 기획조사실장을 지냈다. 현재 브랜디아 컨설팅 대표로 있으면서 경영 컨설턴트, 시장조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펄떡이는 길거리 경제학』, 『시장을 지배하는 101가지 법칙』, 『한국의 소호 아이템 201가지』, 『소호족을 위한 실전 마케팅』, 『창업아이템 창업노하우』, 『강자와 싸워 이기는 란체스터 경영전략』, 『단순한 원칙 하나가 당신의 미래를 바꾼다』,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등이 있다.

                                                                                                     <해인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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