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아는 귀를 기울일 때 말한다: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라오듯 자연히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을 행하지 않게 된다.” 『햄릿』에 나오는 이 유명한 구절 속에서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기를 당부한다. “내가 어떻게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죠?” 앰버가 나에게 오는 내내 이 ‘멍청한’ 주제를 생각했다고 고백한 후에 물었다. 나는 앰버에게 함께 생각해보자고 부드럽게 제안했다. “지금 당신의 레이더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생각과 감정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요.
만약 당신이 기꺼이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면 어떤 중요한 정보라도 알려줄 거예요.” 앰버가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를테면 한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았던 친구처럼 말인가요?” 우리는 나머지 시간을 앰버의 친구(내재된 자아)와 앰버가 글을 쓰는 것을 방해한 다양한 방해자들(강요된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냈다. 풍요롭고 생산적이었다. 앰버는 중심 이슈로 계속 접근했다. 하지만 앰버의 심판자는 이 완전한 주제를 계속 ‘멍청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만약 내가 앰버 심판자의 부정적인 라벨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앰버는 이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계속 미뤘을 것이다.
앰버의 질문인 “내가 어떻게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죠?”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자신의 어떤 부분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부인하고 깎아내리는 목소리(심판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훨씬 더 포착하기 어렵고 덜 독선적인 목소리(내재된 자아)를 관심과 존경으로 예우할 것인가? 고맙게도 내재된 감정과 요구는 계속 의식 표면에 나타난다. 무시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할 때조차도 예외가 없다. 내재된 자아는 심판자의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기 위해 강력하게 싸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당연히 많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앰버에게 말했다.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무리 물리치려고 발버둥 쳐도 계속 의식 속에 들어올 거예요. 정중하게 노크하고 들어올 때 받아들이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울증으로 바뀌어 공격하기 전에 말이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자신의 내재된 자아를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기꺼이 귀를 기울일 때 우리 자아는 말을 한다. 자아는 우리의 엄격한 판단구조를 뚫고 올라와 감정, 이미지, 꿈, 심지어 신체적 증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수많은 일상적인 재잘거림이라는 모래를 채로 곱게 쳐서 메시지를 보여주는 금을 걸러내는 것이다.
바뀐 자기대화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창조한다: 겨울 내내 감기를 달고 살면서 스키 휴가 전체를 반납하고 곽 티슈를 옆에 두고 겨울을 보낸 후에, 나는 병이 날 정도로 과로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결정은 쉽지 않았다. ‘네가 계속 이런 식이면 결국 모든 것을 잃을 거야.’ 같은 극단적인 자기 경고가 자주 나타났다. 게다가 늘어난 자유시간은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했다. 내 몸이 연이은 감기를 통해 내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만약 내가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것임을 인정하고 나는 스케줄을 조정했다. 자영업이기 때문에 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일반 직업이 요구하는 표준 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 심판자의 요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비록 마음대로 시간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스트레스 지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조이스는 내게 사무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완벽해라’ 조종자를 쫓아버림으로써 훨씬 편안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조이스가 완벽할 필요가 없음을 처음 깨달은 것은 여동생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였다고 한다. 조이스는 봉투에 잘못 적은 부분을 다시 쓰지 않고 그 위에 두 줄을 그어 처리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그것을 조심스럽게 언급했을 때 여동생은 그런 것이 있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내 완벽주의는 비싼 비용을 치르게 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조이스는 말했다. 해로운 ‘강요된 자아’ 메시지가 확산되어야만, 아니 확산될 때에만 내재된 자아가 완전히 나타난다. 지위, 돈, 성공, 명성, 심지어 사랑을 위해 싸우라고 요구하는 심판자의 압박감이 참기 힘든 한계에 도달할 때 내재된 자아는 자동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출현한다.
몇 주 전에 나는 거의 천장 높이까지 자란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 나무는 옮기기 전에는 실제로 천장에 닿지 않았음에도 성장을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며칠 후에 풍성한 새순을 틔웠다. 이전 크기의 두 배였다. 나무가 뻗어가도록 넉넉한 공간을 주는 것처럼, 당신도 억압하는 판단 구조 너머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새로운 면을 자발적으로 솟아나게 할 수 있다.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성장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자신이 수용한 성장 모델 안에서 생활환경을 바꾸기 위해 급격하게 단계를 밟을 수 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할 수도 있고, 리모델링을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작업시간이나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도 있으며, 파트너와 친구들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새롭게 형성할 수도 있다. 이런 가시적인 변화는 자기대화에 대한 당신의 자각이 증가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자신의 정당한 직함을 주장하고 강조할 것이다. 자신에게 재산권을 설정하면서 단호하게 말해보자.
“무엇보다도 난 내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은 심판자가 강요한 구시대적 한계를 극복할 것이다. 인공적이고 덧입혀진 껍질을 제거해, 마침내 자신의 원래 모습인 진정하고 진실된 자아를 회복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자아를 인정하자. 자신의 창의성, 에너지, 생동감을 경험하자. 자신에게 하는 말을 바꾸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더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파멜라 버틀러 지음, 역자 박미경님,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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