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파리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나이가 들면서 크고 작은 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심혈관계 질환, 전립선질환의 초기 증상, 나날이 감퇴되는 기억력, 그리고 평발, 타고난 체력 덕에 내가 그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몹시 의아할 것이다. 게다가 몇 주 전에는 경동맥에 협착증이 발생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혈관 벽이 쌓여 달라붙은 지방이 만일의 경우에 떨어져 나가면 뇌혈관 질환을 일으켜 사망이나 반신불수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생명 수류탄의 안전핀이 뽑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너무 늦었다. 10년 전이라면 왜 못 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매일 짧은 거리를 걷거나 조깅을 한 다음 팔다리를 쭉 뻗으며 체조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는 소파에 파묻혀야 한다.
그렇지만 베네딕트가 뿌린 작은 씨앗들은 계속해서 흙을 뚫고 나와 싹을 틔웠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도대체 언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15년 전 은퇴한 뒤에도 나는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들을 돕기위한 협회를 만들었고 13년 동안 열두 권의 책을 썼다. 왜 떠나는가?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또 왜 안 떠나는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단 말인가.
유럽 지도를 펼쳤다. 발칸반도는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발칸반도의 나라들은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서 지도 위에서 하나의 퍼즐을 이룬다. 내 마음속에서 살고 있는 악마가 속삭였다. “리옹에서 이스탄불까지 3,000킬로미터를 걷다 보면 너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동유럽의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을 거야.
걷기의 욕망이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다시 나를 사로잡았으니 일단 떠난다고 치자. 베네딕트가 암시했던 것처럼 그녀와 함께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지금껏 나는 항상 혼자 걸었다. 함께 걷는 제안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나는 혼자 고독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왔다.
새들의 노래와 놀라서 달아나는 짐승들의 소리, 그리고 심지어는 트럭의 굉음 속에서 내 신발이 흙이나 아스팔트를 밟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걷다 보면 마음이 한 없이 즐거워진다. 걷는 것, 그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다. 그 어떤 말도 성찰의 흐름을 끊어서는 안 된다.
과묵한 사람도 혼자 걷다 보면 길 가다 만난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문화와 역사, 언어의 차이 따위가 뭐 중요하겠는가. 손과 눈, 마음으로 말하면 되는데. 나는 500킬로미터 정도를 베네딕트와 함께 걸었다. 리옹에서 이스탄불까지 3,000킬로미터를 걸으려면 최소한 4개월이 걸린다.
여정이 길게 느껴졌다. 이정표를 근거로 계산해보니 나는 그날 아침 시간당 6킬로미터씩 걸었다. 나이 든 남자가 이 정도 속도로 걸으면 썩 괜찮은 거다. 내 나이가 이제 일흔일곱 살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내가 과연 최종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지 의심되는 게 사실이다. 둘이 걸으면 사람들은 별 관심을 안 보이는데, 혼자 걷고 있으면 내 모습과 율리시스에 흥미를 느끼고 이것저것 묻는다.
차갑고 짙은 안개 아래 잎사귀가 떨어지는 너도밤나무와 참나무 사이를 걷다보면 영혼이 어느 새 평화로워지는 듯하다. 겨울에 먹을 샐러드 야채의 모종을 옮겨 심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해발 2,083미터의 몽스니 고개에서 처음으로 국경이 나타났다. 우리는 여기서 처음으로 셀카를 찍었다.
서로를 껴안은 채 에베레스트 산에라도 오른 듯한 환상에 빠졌다. 가을의 고원은 무척 아름답다. 푸른색 엉겅퀴와 초롱꽃, 그리고 일곱 가지 품종의 용담속이 어둠과 함께 흐려져 가는 드넓은 인공 호수둘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씨까지 안 좋았다. 천둥 번개 치는 폭풍우에 이어 소나기까지 내렸다. 나는 사기가 완전히 바닥에 떨어져 결국 두 다리가 쇳덩어리처럼 무거워진 상태로 기운을 잃고 풀이 죽어 시스티아나에 도착했다. 하룻밤 묵으려고 생각했던 센(Senj)을 14킬로 미터 가량 남겨놓은 곳에서 율리시스의 타이어 하나가 터져버렸다.
베네딕트는 길을 걸을 때마다 중얼거리곤 했던 니콜라 부비에의 한 문장을 인용했다. “여행은 동기가 필요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여행은 곧 증명해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는 여행이 여행지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처음 출발할 때는 자기가 강하다고 믿는다. 길을 가면서는 자신의 힘을 헤아려본다. 여행은 보통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었느냐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났느냐에 다라 판단된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여행자를 해체한단 말인가? 나는 그 반대로 여행자가 시련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젯밤에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내가 해발 1,000미터 이상 되는 산 정상 근처를 지나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정말 발칸 산악 지대로 들어서는 것이다. 율리시스를 끌고 한 시간 반 동안 낑낑대며 산을 오른 끝에 세 개의 길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이다.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신경과 귀를 보호하고 귀중한 목숨도 아끼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를 통해 54킬로미터를 돌아 가기로 결정했다. 지나칠 정도로 잘 보호된 이 도로의 포로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보도까지 나오지 못하도록 쌓은 높은 철제 울타리 때문에 이 도로를 걷는 사람들 역시 도로변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로가 한 없이 이어지면서 갈증이 심했다. 오후 5시경, 결국 출구를 찾아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물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의 발로 4개월 동안 걸어갔던 3,000킬로미터를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데는 겨우 세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그렇다면 그 먼 거리를 왜 걸어간 것일까? 바깥바람을 쐬며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몸을 짓누르는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내 몸을 시련으로 단련하기 위해.
살아 있다는 느낌을, 현재성을 다시 발견하고 싶었고, 미래를 상상하고 싶었다. 바슐라르의 글귀가 떠오른다. “욕망을 해야 한다. 원해야 한다. 미래를 만들기 위해 손을 뻗고 걸어야 한다. 미래가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향해 가는 것이다.” 나는 미래를 향해 갔다.
<‘나는 걷는다 끝. 리옹에서 이스탄불까지 마지막 여정‘에서 P310 중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베르나르 올리비에, 베네딕트 플라테 지음, 이재형님 옮김, 효형출판>
* 베르나르 올리비에 : 30여년간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로 일했다. 은퇴 후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12,000키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고집스레 홀로 걸었다.
** 베네딕트 플라테 : 프랑스 연극배우, 연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에게 실크로드 마지막 여행을 제안했으며, 그와 함께 끝까지 걸었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 못 드는 고독한 사람들! (0) | 2021.06.14 |
---|---|
오지에서의 삶 - 마리아 샵들렌 (0) | 2021.06.10 |
왕도로 가는 길 (0) | 2021.06.02 |
정상적인 인간, 어린애 같은 인간 (0) | 2021.05.26 |
부부의견 대립해소, 이상과 이데올로기! (0) | 2021.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