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노인으로 입문하는 것!

[중산] 2022. 7. 9. 17:24

드립니다

 - 기욤 아폴리네르

 

만일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드리리다.

나의 명랑한 아침을,

당신이 좋아하는 나의 머리카락을,

나의 금빛 눈도 드리리다.

그리고 당신 마음 가까이

두지 않으면 숨을 거두고 말

나의 마음도 드리리다.

 

 

수국
라벤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

- 헤르만 헤세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는 어린아이로

팽팽한 얼굴 가득 미소 지으며 웃었네.

어느새 나는 이미 늙은 노인.

살아온 이야기를 서툴게 털어놓고

충혈된 눈으로 흐릿하게 바라보고,

이제는 꼿꼿하게 걷지도 못하는.

오,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은 저무나니

어제는 새빨갛고, 오늘은 우매하고,

모레는 죽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면,

아내가 나를 두고 떠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노래를 부르며 길을 배회하고

여전히 푸른 젊음으로 침대에 누워 있으리.

그러나 여자들이 당신을 두고 가버리면

젊은이여, 그럼 당신은 길을 잃고 헤매며,

위스키 한 잔 들이키고 애써 용기를 추스르리.

그런 다음 물러나고, 퇴장하게 되리니.

 

 

 

진하 명선교

 

 

노인으로 입문하는 것!

 

나이 든 사람과 호호백발 노인 사이에는 독특한 관계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나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예순이 되었다고 하거나, 일흔이 될 거라고 하거나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약간 충격이다. 

 

명예회장으로 위촉되었다고 하거나 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이를 대접받는 모습으로 불쑥 나를 놀라게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작은 충격에서 벗어나면 이제 노인이 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측은함을 느끼게 된다.

 

말하자면 나이에 대한 내 생각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즉시, 나이가 나보다 젊은 친구들과 나 사이에 거리를 느끼는 것이다. 축하, 명예, 통증과 같은 고령에 동반되는 현상이 이제 새로 입문한 사람에게는 아직 그 기색만 보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인으로서의 자만이랄까.

 

칠십 세의 생일을 축하받으면 뭔가 중요한 경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나 대학 신입생이 느끼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한 단계를 달성하고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것으로, 체념과 경사스러운 느낌이 함께 뒤섞인다.

 

진정한 노인이 된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호호백발 노인들은 죽음에 둔감한 이웃으로서, 거만함의 이면에 품위를 지키며, 체념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 결국 나이 들어서 갖게 되는 유일한 지혜는 ‘다시 어린이가 되는 것‘에 있다.

 

나는 대개 나보다 더 젊은 예순 살, 일흔 살, 일흔 다섯 살 친구들이 생일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런 비슷한 방식의 사고로 반응한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는 경고와 우리들의 웃음으로 저항하려는 시도다. 삶의 모순에는,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압도되는 슬픈 전망도 포함된다.

 

예술가들은 영혼의 절반으로 하루살이의 순간이나 번개처럼 순식간에 바뀌는 삶의 모습을 사랑하거나 그것에 감탄한다. 나머지 절반의 영혼으로는 지속성․ 안정성․영원함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그것을 쫓는다. 

 

지혜로운 사람이 일체의 행동에 있어 사려 깊은 포기를 통해 도달하려고 하는 것, 즉 시간관념을 없애는 것을 예술가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추구한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그것을 붙잡고 영원하게 하려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단계로 입문할 때 ‘노인’이 되기 시작하면, 그는 어떤 선물을 받기를 소망한다. 삶이 그를 단계까지 올라가게 허락한 것들, 즉 다른 사람의 판단에 덜 의존하고, 열정에 휩쓸리지 않으며, 아무런 방해 없이 영원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선물 말이다.”

 

"사람이 나이 들고 할 일을 다 했으면, 조용한 시각에 죽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그에게는 이제 사람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미 그들을 알고 있고 충분히 봐왔기 때문이다. 그가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그런 사람을 방해하거니, 잡담으로 괴롭히거나, 그에게 말을 거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그의 집 근처를 갈 때면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을 지나치 듯 그냥 스쳐지나가야 한다.“ <‘어쩌면 괜찮은 나이’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엮음, 유혜자님 옮김, 프시케의 숲출판>

 

* 헤르만 헤세 : 독일 시인이자 소설가. 1877년 독일 칼브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독교 선교사의 아들이었지만 신학교를 중퇴, 자살 미수 등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을 심하게 겪은 헤세는 자전적인 소설<페터 카멘친트>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차 대전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서 나치의 탄압으로 작품들은 몰수되고 출판이 금지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스위스의 한 시골에 은둔하며 인도의 불교 철학과 공자, 노자의 도덕경에 심취하며 작품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지고 깊어졌다. <크놀프>,지와 사랑>,<데미안>,<싯다르타>,<나르치스와 골드문트>,<황야의 늑대>,<유리알 유희>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62년 스위스 몬타뇰리에서 85세로 생을 마감했다.

진하 명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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