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 사람 저 사람의 의견에 낙엽처럼 휘둘리진 않았나요?
분명히 목구멍까지 차올라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말이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조언을 따르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충고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란 것을 잊지 마세요.
- <셀프 힐링북, 봄봄스쿨 출판>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을 따른다.
- 아우리피데스
모순으로 해결하기
에머슨은 뉴턴의 법칙 중 세 번째 법칙(자연계의 모든 작용에는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을 심리학에 적용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성품에는 크기는 같으나 방향이 반대인 특성이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강함은 약한데서 자라”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약점과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특질에는 그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고, 마찬가지로 사람이 가진 모든 약점에는 어딘가 그에게 유용한 점이 분명히 있다.”
우리가 내면에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특징들은 우리가 완전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모순은 우리로 하여금 복잡한 현실과 갈등하게 만들고, 동시에 개인적인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준다.
“신이 만든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이음새 하나 없는 완전체가 되려는 시도는 멈추고 우리의 찢긴 천성과 화해할 수 있다.
반대가 주는 긴장감이 우리의 근간을 이루며, 우리가 가진 흠과 비일관성에 불평하며 칭얼대는 것은 생각해볼 것 없는 시간 낭비다.
우월한 사람인 양하는 태도를 멈추고,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좋다. 모순이 되는 것을 쉽게 참지 못하는 특징은 강한 문화적 편향과 관련이 있다.
에머슨은 “모든 사람은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진실한 자아를 위해 우리의 변증법적 자아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
모든 과잉은 결함을 낳고, 모든 결함은 과잉을 낳는다. 모든 달콤한 것에는 시큼한 면이 있고, 모든 악함에는 선한 면이 있다. 기쁨을 받아들이는 모든 능력은 이 능력을 남용할 때 똑 같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모순은 우리의 극단화된 세계 속에서 우리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양극단의 충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제3의 가능성(자기초월)이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형성되면 자연히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종족간 전쟁을 알리는 북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 어느 누구도 피 흘리지 않고서는 그 전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 딜레마에 대해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부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언어가 있는 세계는 둘로 나뉘게 된다.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양과 염소, 그리고 선택된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
히틀러의 제3국 시기에 유대인 망명자로서 누구보다 소시오패스에 통달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설명한다.
"정신적으로 매우 아픈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나르시시즘적인 이미지에 최소한의 의구심을 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집단의 일원으로서는 전혀 의구심을 품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즘을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쪽 저쪽 진영으로 나뉘어지면 '타자'는 더 이상 전인적 인격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정형화stereotyping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타자를 적으로 돌리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일로 만든다.
부정한 시스템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부정이며, 사회적 요구에 반기를 들고 그 요구보다 개인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의 의무와 개인적인 가치, 공공의 예의와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자기신뢰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이중의식은 다양한 상황에서 특정 순간이 요구하는 것에 맞춰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데, 매우 만족시키기 어렵고 복잡하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태도와 스타일, 어투를 바꾸라는 요청을 받는다.
인간은 마치 서커스에서 말 타는 곡예사들이 이 말에서 저 말로 날렵하게 갈아타고, 한쪽 다리는 이쪽 말에, 다른 쪽 다리는 저쪽 말에 올려놓고 말을 타듯, 개인적인 성격과 공개적인 성격이라는 말을 번갈아가며 탈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12가지 원칙-랄프 왈도 에머슨의 내면 수업'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마크 마토우세크지음, 이지예님 옮김, 한빛비즈 출판>
* 랄프 왈도 에머슨 : 미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작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에머슨의 <자기 신뢰>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감을 얻었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에머슨이 소유한 윌든호수 근처의 오두막에서 그와 교류하며 <윌든>을 집필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의 시와 문장<'하고 싶은 일을 하라','너의 행복을 따르라','삶은 목적이 아닌 여정이다' >등의 글로 사랑을 받고 있다.
배우다 보면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방은 자살행위라는 확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니 좋든 나쁘든 자신과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넓은 우주는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지만, 주어진 땅을 자기 손으로 갈지 않는 한 단 한 알의 옥수수도 손에 넣을 수 없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잠재력은 근본적으로 새롭지만, 시고해보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얼굴, 성격, 사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기억 속에 각인된 인상은 조화롭기 때문이다. 우리 눈은 빛이 떨어지는 위치에 있어서 특정한 빛을 인식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생각을 절반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표현한 신성한 생각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 그 신성한 생각은 자신에게 잘 맞고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니 충실하게 전해야 한다.
신은 자신의 역사를 전하는 임무를 겁쟁이에게 맡기지 않는 법이다. 인간은 맡은 일을 성심껏 최선을 다해서 했을 때 개운함을 느끼고 즐거워진다.
그렇지 않았을 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 사람은 구제할 길이 없다.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간 천재성도 떠나고,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에게도 절교당하고, 독창성도, 희망도 없다.
자신을 믿어라. 모든 사람의 심장은 이 철칙에 본능적으로 공명한다. 신의 섭리가 당신을 위해 마련한 자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사교, 사건 사이의 연결성을 받아들여라. 위대한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해왔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니 가장 고결한 마음으로 그와 같은 초월적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보호받고 있는 미성년이나 환자가 아니며, 혁명을 피해 달아나는 겁쟁이도 아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한 분의 노고에 복종하며 혼란과 어둠을 향해 나아가는 안내자, 구세주,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 랠프 왈도 에머슨
: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 19세기 미국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으나 교리와 뜻이 맞지 않아 사임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자 사회비평가로서 명성을 누렸다. 그의 에세이<자연>은 사회가 개인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개인주의와 자립을 옹호했다. <자기 신뢰>는 개인의 가치, 자연의 힘,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철학을 피력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