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다?
학자들은 모차르트가 어릴 때 작곡한 음악이 천재성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늘 날 이 분야에서 최고로 뛰어난 수준의 기량을 보이는 어린이들과 함께 섞여 있다면 결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모차르트에 있던 재능은 비범할 정도로 조숙한 수많은 어린 연주자의 재능과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능력, 자기 솜씨를 연마하겠다는 어른스러운 목적이었다.
모차르트는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습에 몰두했고, 그래서 일찌감치 1만 시간이나 되는 연습 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위대한 업적을 쌓아갈 수 있었다.
최근에 발표한 한 논문은 놀라운 성공 뒤에는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풍경하고 청교도적인 연습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천재성과 평범한 재능을 가르는 핵심적인 요소는 결코 ‘반짝거리는 신의 뜻’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나아질 수 있는 능력이다.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자 에릭손이 보여주었듯이, 그것은 신중한 연습이다. 최고의 연주자들은 평균적인 연주자들보다 다섯 배나 더 많이 연습했다.
그러나 단지 연습에 들인 시간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류 수준의 업적을 남긴 사람은 될 수 있으면 즐거운 방식으로 연습했다. 반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자기비판적인 방식으로, 최대한 신중하게 연습했다.
이런 사람들은 가장 작은 요소들로 전체의 각 부분을 해체한 다음 이 요소들을 놓고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다. 뉴욕 북부에 있는 메도 마운트음악학교의 학생들은 악보 한 쪽을 놓고 세 시간씩 연습한다. 이들은 이 곡을 보통보다 느리게 다섯 번 연주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대니얼 코일은 <탤런트 코드>에 다음과 같이 썼다.“모든 기술은 기억의 한 형태다.” 기술은 기억이라는 내적인 구조들은 쌓는 힘든 연습과 투쟁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식으로 뇌 연구는 구식노동관을 강화한다.
<‘쇼설애니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님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출판> * 데이비드 브룩스 :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보보스>,<인간의 품격>,<두번째 산>,<사람을 안다는 것>등의 작품이 있다.
역사를 외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함은 곧 인간 일반에 대해 외경심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역사란 인간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삶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뷔히너*는 문학작품도 작가가 혼자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즉 독자를 포함한 타자와 함께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뷔히너는 그의 첫 작품<당통의 죽음>에서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작품에서도 작가로서 독자에게 결코 어떤 ‘지침’ 같은 것을 하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결코 어떤 작가들처럼 ‘내 말은 진리이니 나를 따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절대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그는 인간의 인식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이 절대진리를 맹종하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흑백논리 내지 이분법의 잣대로 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 또한 역설한다.
그는 이성보다 감성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렇다고 그가 이성을 백안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성의 오만을 경계할 따름이다.
뷔히너는 이러한 오만한 자들의 냉혹한 가슴과 단세포적 생각이 인간집단을 계급화하고, 이웃을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격하하는 현대사회를 규탄한다.
어쩌다 환경이 좋아서, 운이 좋아서 쌓게 된 학식과 부를 가지고 이웃을 능멸하고 박해하는 사회, 뷔히너는 이러한 현대사회를 "지옥으로 보내야 할 진부한 현대사회"로 규정한다<구츠코에게 보낸 서신>중에서.
오만한 이성은 편견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오만한 이성이 편견에 빠진 경우를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그리고 오늘의 현실에서 수없이 발견한다.
대표적인 사례만 몇 가지 손꼽아보자. 기원전부터 기승을 부리던 앤티세미티즘, 중세에 뿌리를 둔 마녀 사냥, 근세부터 일기 시작한 인종차별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등등(이 매카시즘은 오늘날 여전히 ‘색깔론’이란 이름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편견은 인류사회를 계층화하고, 반목과 불화를 조성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수의 인간들을 나락과 죽음의 길로 몰고 간다.
뷔히너는 <당통의 죽음>에서 오만한 이성을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오만한 이성이 궁극적으로 이기주의, 즉 감성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뷔히너는 작품<렌츠>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보다 더 좋은 세상을 제멋대로 개칠할 수는 없으며, 우리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사업을 조금이라도 모방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게오르크 뷔히너의 문학과 삶’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임호일교수 지음, 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 * 임호일교수 :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교 독문학박사, 한국 뷔히너학회 회장 역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문과대학장 역임. 현재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 게오르크 뷔히너 (181~187) : 천재는 요절한다고 했던가? 이상이 27세, 모차르트는 35세, 고흐는 37세, 그는 불과 24세 나이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작품은 드라마 3편<당통의 죽음>,<레옹스와 레나>,<보이체크>과 소설 1편<렌츠>에 불과하다. 훗날 이 4편의 작품이 일읜 파문은 해일이 되어 독일 문단을 뒤덮는다. 독일문학을 개방문학으로 인도함으로써 현대를 선취한 작가다. 어떤 이들은 그를 독일의 셰익스피어라고 일컫는다.
독일 문학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그가 천재를 부정한다. "천재는 세계 지배도 꼭두가시놀음"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위대함 또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뷔히너는 그 누구보다도 사회의 해방을 갈구했던 작가다. 인문학 분야에 넓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그는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취리히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불과 23세에 대학 교수가 된 것이다. 셰익스피어, 호머, 괴테, 각종 민요 그리고소포클레스를 좋아했다. <당통의 죽음>에서는 국민의 이익을 표방하는 당통 일파의 개인(쾌락)주의와 로베스피에르 일파의 공화주의가 궁극적으로 개인 및 집단 이익을 위한 이기주의임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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