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생피에르섬, 2년간의 루소!

[중산] 2024. 8. 15. 12:03

생피에르섬에서 홀로 몽상에 빠져 있을 때, 천천히 흘러가는 보트 안에 누워 있거나, 강둑에 앉아 흔들리는 물살을 바라보거나, 아름다운 강가에 있거나, 조약돌위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을 바라볼 때 종종 이런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정체는 뭘까? 그것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이질적인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한 인간은 신처럼 그걸 홀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다른 모든 감각을 벗어 버린 채 그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할 때 우리는 만족과 평화를 맛보게 된다. 그런 식으로 지상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는 행복을 계속 방해해 비통하게 만드는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애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집착에 휘둘리는 대다수는 이런 행복을 잘 모르고, 드물게 느낀다 해도 완벽하게 음미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막연하고 어렴풋한 관념만 지닐 뿐 그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욕구가 있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활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좋은 일이라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불운한 인간이라면, 운명도 사람들도 그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기분 좋은 위로를 이런 상태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이런 위안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상황에서 느낄 수도 없다. 그러려면 마음이 평온해야 하고, 그걸 어지럽힐 그 어떤 번뇌도 없어야 한다. 이런 크나큰 행복을 경험하려면 그걸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기질뿐 아니라 주변 상황도 맞아떨어져야 한다.

 

움직임이 없는 삶은 무기력한 삶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불안해하느라 평온이 깨지면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여러 감정이 깨어나 외부 사물을 의식하게 되면서 몽상의 즐거움이 파괴되고, 자아와 분리된 우리는 즉시 운명과 인류의 속박을 받게 되면서 다시 불행하다고 느낀다.

 

절대적인 휴식은 우울을 일으키며, 죽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때 유쾌한 상상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것은 하늘이 베풀어준 자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런 유쾌한 상상을 하다 보면 휴식이 줄어들긴 하지만 그 남은 시간은 비할 바 없이 근사하다.

 

내면의 영혼을 흩뜨리지 않는 가볍고 기분 좋은 감각은 그저 그 표면만을 살짝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모든 불행을 잊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종류의 몽상은 고요한 순간을 찾을 수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종종 바스티유 감옥이나 심지어 불빛 하나 비치지 않는 지하 감옥에서도 여전히 즐겁게 몽상에 잠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에 둘러싸여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비옥한 외딴 섬에서 더 즐겁게 몽상에 잠길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보기 좋은 모습만 불 수 있고, 순하고 상냥한 성품의 몇 안 되는 주민들과의 사교 속에서 슬픔을 떠올릴 어떤 것도 없으며, 항상 내 관심을 끌 것도 없는 곳.

 

거기서 나는 종종 즐겁게 그 어떤 목적도 없고, 내 입맛에 맞는 일도하지 않은 채마음 푹 놓고 늘어질 수 있었다.

지극히 불쾌한 대상들 속에서도 유쾌한 몽상에 빠질 수 있어서 실제로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끌어들인 공상을 마음껏 탐닉하는 몽상가에게는 분명 좋은 가치다.

 

길고 평화로운 몽상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싼 신록과 꽃과 새들을 의식하면서, 드넓게 펼쳐진 맑고 투명한 호수를 품은 낭만적인 호숫가 멀리까지 살펴보면서, 나는 이 모든 사랑스러운 것을 내가 만들어낸 허구 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이 모든 사랑스러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것들을 알아차렸지만 어디서부터 허구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처럼 모든 것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거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

 

안타깝게도 내 상상력이 시들어가면서 나를 찾아오는 몽상은 점점 뜸해지고, 왔다가도 금방 사라져버린다. 아! 인간이 자신의 육신을 떠나기 시작할 때면, 마음도 한없이 서글퍼지는구나!

 

- 장 자크 루소(1712-1778)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소설가, 교육학자, 음악가, 도시의 쾌락보다는 자연과 고독의 세계를 선호했다. 획기적인 정치와 사회 이론들을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연애소설<신 엘로이즈>는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백론>으로 자서전이라는 장르의 시작을 알렸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사회의 힘과 고독의 즐거움, 그리고 자연 세계의 무한한 경이로움에 대한 믿음이 주된 주제였다. 이 책에서는 다섯 번째 산책을 발췌해 수록했다.

 

 

대포 주상절리
외돌개
강정포구,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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